제251화
아스날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코리안 더비가 열리는 곳은 아스날의 홈, 애슈버턴 그로브였다.
“오늘따라 유의 나라 국기가 자주 보이는데?”
“원래 많았잖아.”
“평소보다 많아진 느낌이야.”
“한국 친구가 그러는데 아틀레티코에 유랑 같은 국적의 선수가 있어서 한국에서도 주목하는 경기라고 하던데?”
“그냥 자국 선수들끼리 경기하는 거에?”
“응, 관심이 많다고.”
“…왜?”
“나야 모르지.”
해외 축구팬들은 자국 축구선수들끼리 경기하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만큼 축구 중심에 있었고, 흔히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시아의 변방국인 한국은 달랐다.
해외 진출한 선수도 적을뿐더러 유럽 최고의 무대인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난다는 건 큰 의미였다.
펄럭.
거리 곳곳에 국기를 든 한국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걸음은 애슈버턴 그로브를 향하고 있었다.
.
.
.
취재진이 세팅하는 사이.
선수들이 워밍업을 위해 필드로 나왔다.
- 와아아아아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들어올 때는 들리지 않던 환호성이 아스날 선수들에게 쏟아졌다.
-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경기전부터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그렇게 선수들의 워밍업이 시작됐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곳은.
뻐—엉!
유지우였다.
명실상부 아스날의 에이스이자 프리미어리그 최고 스타인 그는 수만 명의 이목 속에서 차분하게 몸을 풀었다.
“유.”
“응?”
“저 선수가 너랑 같은 국적인 거지?”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말에 유지우는 고개를 돌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진영을 봤다.
그곳에는 강예수가 몸을 풀고 있었다.
“맞아.”
코리안 더비를 앞두고 서로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짧은 메시지가 다였다.
- [누가 이기더라도 축하해주자.]
그 뒤로 유지우는 별말 없이 몸을 풀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한편, 필드에서 나가는 선수들을 보고 있던 한국 취재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었다.
“여기서 코리안 더비를 볼 줄이야.”
“선배님도 처음이죠?”
“당연하지. 이제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리그에서 코리안 더비는 많이 봤어도 챔피언스리그는 처음이네요. 그것도 토너먼트에서.”
“후우, 준비하자. 누가 이기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네!”
* * *
아스날 라커룸 안.
경기를 앞두고 폴 사르는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이야기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수비적인 전술이 뛰어난 팀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장점은 바로 수비였다.
“미드필더와 수비진 간의 간격이 좁아서 커버 플레이에 능숙하다. 볼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금방 둘러싸여서 빼앗길 가능성이 커.”
폴 사르는 대형 모니터를 두드리면서 선수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사이드로 볼을 전개하면서 중앙에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이랑 마테오의 중거리 슛으로 스타트를 끊는 게 첫 번째.”
- “네!”
“상대가 중거리 슛을 견제하기 시작하면, 뒷공간에 생긴 균열을 이용해 측면에서 마틴과 유가 돌파해서 들어가는 게 두 번째다.”
선수들에게 전술을 상기시키는 것을 마친 후, 그는 마지막으로 동기부여의 말을 꺼냈다.
“상대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우리한테는 안 된다! 너희들이 흘린 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플레이로 증명해라!”
선수들은 의지를 다지고 라커룸을 나섰다.
터널에 가서 서 있자, 곧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도착했다.
명문 클럽 간의 만남인 만큼 서로 아는 얼굴들이 적지 않았다.
친한 선수들은 인사를 나눴고 유지우도 강예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재미있게 즐겨요, 형.”
짝.
강예수는 유지우가 내민 손을 하이 파이브 하며 웃었다.
“실컷 즐기고 울지나 마.”
“제가 할 소리를 미리 하시네.”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후.
주심의 발걸음이 떨어지자 선수들이 뒤를 따라 필드로 입장했다.
- 와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환호성.
그 소리를 들은 강예수는 순간 당황했다.
‘…이게 아스날의 홈인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의 열기도 뜨거웠다.
그런데 여기는 차원이 달랐다.
열기를 단계로 따지자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4단계, 그리고 아스날이 5단계였다.
“형.”
“…….”
“웰컴 투 아스날.”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국가대표 에이스가 뛰는 클럽이 어떤 클럽인지.
[시작부터 엄청난 열기! 그리고 일제히 발을 구르며 응원가를 시작합니다!]
선수들은 인사를 하고 각자 진영으로 갔다.
포지션에 서서 준비하는데.
스윽.
두 선수는 시선을 마주쳤다.
왼쪽 윙어인 강예수.
오른쪽 윙포워드인 유지우.
포지션 상 맞붙을 수밖에 없었다.
‘후회 없이.’
‘재미있게.’
삐—익!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이 시작됐다.
* * *
경기는 한국 기준 늦은 새벽 시간에 진행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코리안 더비를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모였다.
【 LIVE) UEFA 챔피언스리그, 아스날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진행 중 】
- 가즈아아아아아아!
- 코리안 더비 ㄷㄷ
- 갓지우와 예수님의 대결이라…. 이게 현대판 종교 전쟁인가?
사람들은 유지우를 ‘갓지우’라고 불렀고 강예수는 이름을 따 ‘예수님’이라고 불렀다.
- 꼬마(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이 부르는 팀의 애칭)는 수비축구, 아스날은 공격 축구. 경기 볼 맛 나겠다.
- ㄹㅇ 창과 방패의 싸움 아니냐?
- 꼬마는 역습 전술에 특화된 클럽이라 방심하면 질 수도 있음.
- 레알도 그것 때문에 호되게 고생했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수비 전술을 다듬었다.
그로 인해 이번 시즌.
은하수 군단으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대등한 플레이를 펼쳤다.
경기를 패배하긴 했으나, 그들은 라리가 3강의 이름값을 제대로 보여줬다.
- 저봐 유지우 잡으려고 세르지도 내보냈잖아.
- 부상 아니었어?
- 유지우 잡을 선수가 쟤밖에 없어서 그렇지 뭐. 다행히 메디컬로는 문제없다고 하더라.
- 근데 가능할까?
- 빠르긴 겁나 빠르던데.
- 괜히 차세대 스페인 국대 풀백이라고 불리겠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 출신의 세르지 라토.
20세인 그는 수비력이 좋아 왼쪽, 오른쪽 모두 뛸 수 있는 멀티 자원이었다.
장점은 빠른 주력.
그래서 상대의 스피드 스타를 통제하는 데 특화되었다.
- 근데 그거 알아?
- 뭐?
- 세르지 라토…. 유지우 팬이잖아.
- 진심?
- 쟤 SNS 못 봤어? 거기에 유지우랑 호흡을 맞추고 싶다고 공개까지 했어.
- ㅇㅇ 그거 꼬마 팬들은 다 아는 사실 ㅋㅋㅋㅋ
- 나도 저 얘기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건 몇몇 팬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TV에 나오고 있는 그의 시선은.
힐끔.
수시로 유지우를 향했다.
그 눈빛은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팬의 눈빛이었다.
* * *
유지우는 오른쪽 측면 깊숙한 곳에서 볼을 잡았다.
한 발만 뻗어도 라인 밖으로 나가는 위치였다.
타다다다닷-!
그리고 유지우가 볼을 잡자 쏜살같이 달려온 한 선수.
바로 왼쪽 풀백 세르지 라토였다.
‘꽤 끈질긴 녀석이야.’
전반 초반부터 두 선수가 맞붙는 상황이 자주 나왔다.
그러면서 유지우는 세르지 라토에 대해 신경을 썼다.
그동안 상대한 풀백 중에서도 손에 드는 집요함을 지닌 선수였으니까.
촤---악!
무엇보다 전력 질주 후에 깔끔한 태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다.
이것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측면을 모조리 무너트렸다고 하니, 그 위력이 실감이 났다.
[세르지 라토가 유지우 선수를 집중적으로 견제합니다!]
[두 선수 모두 어린 선수들이지만, 확실하게 이름을 날리고 있죠. 미래에 어떤 선수들이 될지!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기대가 됩니다!]
둘 다 20세의 나이.
유지우가 공격으로 이름을 날린다면 세르지 라토는 수비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퍼---억!
두 선수는 맹렬하게 충돌했고 유지우는 발바닥에 볼을 붙여놓은 것처럼 컨트롤을 했다.
‘집중력이 높아.’
유지우는 볼을 잡아놓으면서 세르지 라토를 봤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어느 방향이라도 반응할 수 있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툭.
그걸 보고선 오른쪽으로 균형을 한 번 흔든 뒤.
왼쪽으로 기습적으로 돌파하려는데 세르지 라토는 금세 반응했다.
하지만 유지우가 준비한 것 역시 그게 다가 아니었다.
툭.
유지우는 플리플랩을 선보이며 세르지 라토의 다리 사이로 알을 먹였다.
나이는 같았으나.
실력 면에서 유지우가 더 뛰어난 것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 와아아아아아!
중심을 무너트리자 세르지 라토는 역동작에 걸리고 말았다.
유지우는 그대로 돌파해서 골대와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세르지 라토는.
타다다닷-!
억지로 균형을 틀며 뒤쫓았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빠릅니다! 유지우 선수를 뒤쫓는 세르지 라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스피드 스타라고 불리는 선수답습니다!]
5m.
3m.
1m.
발만 뻗어도 볼에 닿는 거리까지 좁히는 순간.
툭.
유지우는 세르지 라토를 보지도 않고 컷백 크로스를 내줬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 아닌 밖.
쇄도하는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앞으로 갔고.
뻐---엉!
벼락같은 슈팅을 시도했지만.
까—앙!
볼은 크로스바를 맞고 라인 아웃이 되고 말았다.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도였다.
‘이걸 이런 식으로 풀어나간다고?’
아스날의 공격 패턴은 이 경기를 준비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수비 전술은 아스날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신하니까.
그러나 계속되는 아스날의 공격을 보고 그들의 뇌리에는 똑똑히 새겨졌다.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공격력.’
아스날의 공격력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 * *
전반은 어느덧 40분이 지나갔다.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5분.
유효 슈팅 개수는 6 vs 1로 아스날이 우위였으나 여전히 0 – 0의 스코어가 유지됐다.
퍼—억!
그 이유는 단 하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였다.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아스날의 공세를 차분하게 막아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는 정말 단단합니다.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의 간격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있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역습 전술이 제대로 전개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같은 스코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역습의 비율을 줄이고 수비에 더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더 단단해.”
그리고 그 덕분에 아스날의 공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볼이 잠시 아웃 된 사이.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유지우는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측면 커버가 조금씩 늦어.”
“그러면 플랜 C로?”
“…아니, 일단 중앙으로 유인하자. 그러다가 기회가 나오면 바로 측면 전환해주고.”
“알았어.”
“전반도 거의 종료되니까 한 방 제대로 먹이고 끝내자.”
“좋아.”
아스날의 공격은 이 두 선수가 주도하는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진이 지역방어 형태라 아스날은 볼을 돌리며 수비진을 끌어내려고 했다.
“나가는 자리는 커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중심을 잡는 건 티아고 게헤이루였다.
올해로 36세가 된 노장.
그는 신체 능력도 뛰어났지만, 경험 면에서도 어마어마했다.
‘유가 중앙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는 필드 전체를 보며 수비라인을 직접 컨트롤했다.
넓은 시야로 경기장 전체를 보고 있었기에 그의 눈은 유지우가 측면에서 수비수 뒤쪽 공간으로 패스를 보내는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타다다다닷-!
티아고 게헤이루는 아드리안 로마오가 스피드를 활용해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하려던 순간.
먼저 길을 읽고는 어깨를 집어넣으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넌 못 지나간다.”
이 같은 티아고 게헤이루의 노련함 때문에 아드리안 로마오는 완벽하게 그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아아아-!”
아드리안 로마오는 짜증이 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이는 그 스스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괜히 라리가 최고의 수비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닙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꽁꽁 묶었던 그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스날이 힘들겠는데요.]
아스날의 공격은 유럽에서도 알아줬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도 마찬가지였다.
창과 방패의 싸움.
하나 팽팽한 두 존재 간의 대결에서는 언제나 승자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정규시간이 지나고 주어진 2분의 추가 시간.
창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이 방패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유지우가 측면에서 세르지 라토를 따돌리고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티안!”
기습적으로 중앙으로 올라오며 볼을 받은 유지우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수비 한복판에 있었다.
[어! 유지우 선수! 벗어나야 합니다!]
밀집된 지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가 가장 단단한 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이 일제히 그를 압박했다.
[이반 카마초와 조르디 카스트로가 동시에!]
두 선수는 스페인 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미드필더였다.
그들은 사실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의 핵심으로 불렸다.
그만큼 피지컬, 순발력, 수비력이 뛰어났다.
촤—악!
이반 카마초는 타이밍을 포착하고 과감하게 슬라이딩 태클을 했다.
그러나.
스르르륵.
유지우는 드래그 백으로 피했다.
그리고 바로 조르디 카스트로가 압박이 들어오자.
툭.
유지우는 드래그 백 동작을 이어서 넛맥으로 제쳐냈다.
- 오오오오오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수비진에 균열이 갔다.
유지우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이용해.
뻐—엉!
반 박자 빠르게 기습적인 스루패스를 찔렀다.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긴 수비수의 다리 사이를 지나 볼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갔다.
[패스---! 유지우 선수의 패스가 수비진을 관통합니다!!!]
그 패스는 왼쪽에서 들어오는 마틴 그라임스의 앞으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향했다.
[뒤를 파고드는 마틴 그라임스!!! 그대로 슈우우우웃!]
주발인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시도한 슈팅.
그는 파 포스트가 아닌 니어 포스트를 노렸다.
중심이 무너지면서도 끝까지 볼에 대한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고.
철렁.
그 집념은 마침내 균형을 깨는 데 성공했다.
- 와아아!!!
[아스날이 전반 종료 직전! 득점에 성공합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손을 들며 오프사이드라고 어필을 하지만 통하지 않죠!]
[명백한 온사이드였습니다! 아드리안 로마오를 침투를 견제하는 티아고 게헤이루가 라인을 더 내리고 있었거든요!]
전반 종료 직전에 나온 골.
이것으로 아스날로 분위기가 쏠렸다.
[아스날 1 – 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프리미어리그의 창이.
라리가의 방패를 꿰뚫으며.
삐익-! 삐익-! 삐----익!
전반전이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