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치열하군.”
전반전이 끝난 후, 관중석.
관중들은 화장실이나 먹을거리를 사는 등,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각자 볼일을 보러 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선수들의 플레이가 잔상처럼 남아 사라지질 않았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잖아?”
그들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서포터즈들이었다.
“예상은 했지, 근데 유의 플레이가 예상 이상이야.”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 게 유였지.”
단순히 수준이 높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는 수준이 높은 선수들보다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 세계를 휘저었던 선수들처럼.
“플레이 자체가 완벽해. 45분 동안 실수 하나를 안 하더라.”
“상대 팀이지만…. 존경스러울 정도야. 저 나이에 저런 플레이를 하면 대체 5~6년 뒤에는 어떤 걸 보여주려는 걸까?”
그들은 상대이면서도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주는 유지우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을 빼앗겼다.
‘놀라움.’
그들의 가슴에 이러한 감정이 뿌리내렸다.
“…우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상대 선수를 칭찬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애들이 최고야!”
“맞아! 우리한테는 라다멜도 있잖아!”
“유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후반전에서는 마음대로 설치지 못할걸?”
“우리 수비는 라리가를 넘어 유럽 최고야!”
그들은 유지우를 향하는 관심을 부정한 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승리를 기도했다.
* * *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vs 아스날의 경기를 주목하는 건 비단 두 클럽의 팬들만이 아니었다.
“흐음.”
관중석의 한 곳.
그곳엔 파리 생제르맹 전력 분석관 페르난도 호마르가 앉아 있었다.
“…어떤 클럽이 올라와도 쉽지 않은 상대야.”
여기서 이기는 클럽은 대진상 파리 생제르맹과 붙을 확률이 높았다.
또 다른 8강.
파리 생제르맹 vs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이미 1차전에서 파리가 5 – 0 대승을 거둔 뒤라 그들은 다음 상대가 될 두 클럽의 전력 분석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팀장님, 이것 좀 드시면서 하시죠.”
팀원이 사 온 건 샌드위치였다.
“마침 출출했는데 고마워.”
두 사람은 앉아서 후반전이 시작된 필드를 바라봤다.
선수들이 치열하게 붙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생생히 들어왔다.
팀원 중 하나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아틀레티코는 전반전보다 전환 속도가 빨라졌네요.”
“아스날의 역습에 대비한 걸로 보여.”
“아스날은 유를 아예 프리롤로 풀어서 폴 사르 감독이 좋아하는 사르볼을 쓰고 있고요.”
“그게 유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니까.”
두 클럽은 후반전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먼저 아스날은 사르볼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유지우를 프리롤로 두어 자유를 줬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미드필더와 수비 사이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수들 간의 간격을 좁히며 공격을 풀어나가는 방향을 보였다.
스스스슥.
페르난도 호마르는 그들의 플레이를 눈으로 보며 노트에 볼펜으로 끄적였다.
‘유는 이미 월드 클래스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선수야. 저 선수가 올라오면 수비 전술을 전체적으로 손을 봐야 할 정도로.’
아스날과 반대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라리가 최강의 방패라고 불릴 만해. 아스날의 화력을 저런 식으로 막아내다니.’
필드에서 보이는 두 클럽의 플레이는 각자의 매력이 있었다.
.
.
.
5분.
10분.
후반전이 시작하고 양팀은 서로의 골대를 집요하게 노렸다.
수비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우위에 있겠지만, 공격에서는 역시나 아스날이 우위였다.
“유!”
그들은 에이스를 중심으로 화력을 집중했다.
이때,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롱패스가 그에게로 향했다.
퍼—억!
그러나 압박이 빨랐다.
이반 카마초는 유지우의 등 뒤에서 몸을 부딪치며 위치싸움을 했다.
반칙이 선언되지 않을 정도로.
주심의 시선에서 가려진 곳에선 갖은 더러운 손이 오갔다.
하지만 유지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골대는 뒤.’
골대 쪽으로 등을 지면서 이반 카마초의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툭.
유지우는 중앙에서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롱패스를 가슴트래핑으로 받았다.
‘이 녀석의 중심은 왼쪽에 있으니까 오른쪽으로.’
찰나의 순간 이반 카마초의 무게중심이 어디 쪽으로 있는지 파악한 그는,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됐다.’
이반 카마초의 반응이 살짝 늦었다.
다른 선수였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수비 가능한 찰나에 불과했지만.
유지우는 그들과는 레벨이 다른 선수였다.
그에게 필요한 건 볼 하나만 지나갈 정도로 자그마한 공간이면 충분했다.
볼이 땅에 떨어지기 전.
뻐---엉!
유지우가 그대로 시도한 발리슛은 레이저처럼 뻗어갔다.
까---앙!
아쉽게도 볼은 크로스바를 강타하며 땅으로 떨어졌고 골키퍼가 몸을 날려 그것을 잽싸게 끌어안았다.
[오오오오-!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합니다!]
[골이 됐다면 원더골이었는데 아쉽습니다! 정말…. 가슴트래핑으로 이반 카마초를 제치는 것 좀 보십시오! 축구의 신이 있다면 지금 이 필드 위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유지우가 볼을 다루는 센스는 거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마저 인정하는 수준이었다.
스르르르륵.
자신의 리듬대로 템포를 조절하고.
뻐---엉!
정확하게 패스를 주는 그의 능력은 아스날의 공격에 윤활유를 붓는 듯했다.
경기를 지배하는 그의 플레이를 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은.
“…….”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 * *
“예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서서히 아스날에게 밀려가자 세르지 라토가 볼이 나간 틈에 강예수에게 다가갔다.
“어? 왜?”
“이대로면 언제가 실점할 것 같은 느낌이야.”
“…나도 그래.”
“그러기 전에 한 방 먹여야 하지 않겠어?”
“당연한 얘기를.”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걸 하자.”
세르지 라토의 말에 강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시즌 라리가에서 공격 포인트 생산 능력은 두 선수가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왼쪽 라인이 리그 3위에 속했다.
타다다다닷-!
그들은 라인을 타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라다멜! 왼쪽!”
강예수가 빈 곳에서 손을 들었고 압박이 오기 전에 볼을 받았다.
그때였다.
‘…왔구나.’
강예수의 앞을 막은 건 유지우였다.
[두 선수가 마주 봅니다!]
한국 취재진은 카메라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UEFA 챔피언스리그.
유럽과 남미 선수들만이 활약하는 곳에서 두 한국인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자부심이 될 만큼 임팩트가 있었다.
‘어떤 걸 보여줄까.’
내심 기대하게 됐다.
두 선수가 보여줄 플레이가.
[아아아-!]
먼저 움직인 건 강예수였다.
툭.
그는 제자리에 서서 유지우와 제대로 된 대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개인 능력으로는 자신보다 유지우가 월등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가 제일 잘하는 것.’
그건 바로.
- 와아아아아!!
동료 선수를 이용할 줄 아는 이타적인 플레이였다.
[순식간에 오버래핑으로 올라오는 세르지 라토!!! 강예수 선수가 유지우 선수의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로빙패스로 뒷공간으로!!!]
주력은 세르지 라토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다.
[카를로스 로호가 거리를 좁힙니다!]
볼을 걷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세르지 라토의 머리가 먼저 볼에 닿았다.
그는 헤딩으로 볼을 앞으로 보내며 카를로스 로호를 센스있게 제쳐냈다.
- 오오오오오!!!
세르지 라토는 거리를 더 벌리기 위해 볼을 멀리 차 놓고 달려갔다.
카를로스 로호도 주력이 빨라 따라가긴 했지만, 붙잡지 못했다.
뻐—엉!
세르지 라토는 왼발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고 산티아고 시몬이 헤딩을 했다.
‘어.’
하지만 산티아고 시몬은 헤딩한 직후.
그걸 막아낸 선수를 보고 놀랐다.
분명히 10초 전만 해도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데릭 레드먼드는 순식간에 그에게 따라붙으며 헤딩슛을 머리로 걷어냈다.
[데릭 레드먼드의 수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에 버금가는 아스날의 장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머리에 맞은 볼이 라인 밖으로 나간 걸 보고 데릭 레드먼드는 넘어진 상태에서 산티아고 시몬을 보고 말했다.
“두 번은 안 당해.”
얼룩투성이가 된 유니폼.
그 속에서도 데릭 레드먼드의 웃음은 빛났다.
[코너킥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득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오늘 경기 세트피스에서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주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코너킥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그 후에 이어지는 코너킥은 아스날이 막아내며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깨지지 않은 1 – 1의 균형.
그리고 서서히 정규 시간 종료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남은 시간은 10분.
응원 소리는 시작보다 두 배 이상은 커졌고 신경전도 오갔다.
아스날 1 – 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균형이 유지되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교체를 통해 공격적인 부분을 강화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교체 카드를 보면 수비에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교체를 한 걸로 보입니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경기할 때와 비슷한 패턴이네요.]
아스날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지만,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87분.
서로 몇 차례의 슈팅을 주고받았고 아스날의 공격이 끊기자 볼을 잡은 세르지 라토가 라인을 내려온 강예수에게 패스를 줬다.
“강!!!”
세르지 라토는 패스를 주면서 크게 소리쳤다.
멀리서 단숨에 거리를 좁혀오는 한 선수.
유지우를 봤기 때문이었다.
‘아.’
강예수는 걷어내려고 했으나 늦어버리고 말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다리를 뻗은 유지우에게 볼을 빼앗겼다.
[유지우 선수가 빠르게 압박해서 강예수 선수의 볼을 빼앗습니다!]
세르지 라토가 백업을 했다.
촤—악!
태클로 막으려고 했으나.
탓, 타닷!
유지우는 라 크로케타로 태클을 피해냈다.
아스날 원정 팬석에서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뻐—엉!
그는 골대 앞을 본 후, 낮게 크로스를 올렸다.
아드리안 로마오는 침투하다가 수비수들이 자신에게 붙는 걸 보고선, 볼을 잡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퍼—억!
티아고 게헤이루는 아드리안 로마오에게 붙어 필사적으로 다리를 뻗어 방해했다.
살짝만 건드리면 됐다.
하지만 아드리안 로마오는 티아고 게헤이루보다 체격이 작지만, 그걸 버텨냈다.
툭.
만약 오랜 시간 몸싸움을 했다면 밀렸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드리안 로마오에게 필요했던 시간은 1~3초였다.
볼에 발만 가져다 댈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만 있다면.
철렁.
유지우의 완벽한 패스를 골로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 2 – 1으로 균형을 깨는 아스날! 라리가의 철벽을 제대로 뚫어냅니다!]
[아드리안 로마오가 오늘 경기를 결정짓는 결승 골을 터트립니다! 남은 시간은 추가 시간까지 포함하면 5분! 아스날이 막기만 하면 4강에 올라갑니다!]
이 골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은 절망했다.
2 – 1.
이건 단순한 스코어가 아니었다.
오늘 철벽 수비를 보여준 아스날을 상대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5분…. 5분 남았어! 포기하지 마!”
“할 수 있잖아!”
축구에는 언제나 기적이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이제 믿을 건 그 기적뿐이었다.
촤---악!
아드리안 로마오는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세리머니를 했고 유지우는 세레머니에 합류하지 않은 채, 묵묵히 진영으로 돌아갔다.
스윽.
그리곤 고개를 들어 강예수를 봤다.
“…….”
그로서는 허탈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골대를 보는 강예수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옆을 지나가다가 강예수에게 살짝 손을 내밀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게.
강예수는 허탈한 표정으로 골대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았다.
불과 2주 전까지는 국가대표 동료로서 뛰었지만.
프로의 세상은 잔인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경기는 그렇게.
[아스날 2 – 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원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원정팀인 아스날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주목한 코리안 더비.
그 승자는 유지우로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