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279화 (279/383)

제279화

86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

루카 모드리치 감독은 라인에 서서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내가 뭐라고 했어! 유에게 공간을 내줄 바에 반칙하라고 했잖아!”

한 점 차이로 좁혀지면서 흐름은 아스날이 가져갔다.

그들은 매섭게 몰아쳤고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은 번번이 위협당했다.

[유지우 선수가 후안 나바스를 따돌리고 오른쪽에서 낮은 크로스로-! 아드리안 로마오가 원터치 돌려놓습니다!!!]

아드리안 로마오가 센스 있게 돌려놓은 슈팅은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흘러나왔다.

[아드리안 로마오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옵니다!]

[아-! 나올 듯 나오지 않는 동점 골! 아스날 선수들의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게 보입니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아스날 선수들은 급한 마음에 실수도 자주 나왔다.

“멀리!”

아스날이 조급해하는 게 보이자 레알 마드리드는 빌드업을 하며 볼을 돌렸다.

아스날의 압박이 강하니, 간격을 넓게 벌려 압박 밀도를 옅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제 버티면 우승입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할 텐데요!]

어떤 팀이라도 움츠러드는 게 당연한 타이밍이었지만,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는 달랐다.

그들의 사전에 ‘시간을 끈다’라는 표현은 없었다.

제라르 레오는 추격당하는 와중에도 상대의 틈을 호시탐탐 노렸고.

까---앙!

마법 같은 플레이로 아스날의 골대를 위협했다.

[와-! 이게 역습의 정석이죠! 제라르 레오의 패스가 왼쪽으로 길게! 그리고 스피드가 빠른 데니스 클로스터만의 낮은 크로스와 아벨 페르난데스의 침투! 불과 4초 만에 만들어진 슈팅이었습니다!]

[아스날은 가슴이 철렁했겠는데요? 이 한 방이면 아스날이 라인을 올릴 때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노린 의도는 명백했다.

아스날이 라인을 올려 파상공세를 하니, 아예 공격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너희 계속 그러면 한 방 얻어맞는다?’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런 의도는.

“패스해!”

한 점 뒤지고 있는 아스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역습당할 우려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에 집중했다.

“두려워하지 마! 서로를 믿고 우리가 할 것만 하면 돼!”

데릭 레드먼드가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렇게 90분.

정규 시간이 지나고 추가 시간 4분이 주어졌다.

* * *

“버텨!!!”

3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레알 마드리드의 견고한 수비와 효율적인 역습.

그 때문에 아스날은 템포가 끊겨 공격이 막히고 말았다.

추가 시간 4분 중 3분이 흘러가고 남은 건 1분.

냉정한 시선으로 보면 아스날의 패배가 명확해 보였다.

퍼---억!

레알 마드리드는 체력이 떨어졌음에도 기회가 생기면 마지막까지 아스날의 숨통을 조이며 챔피언다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그러던 중.

아스날은 데니스 클로스터만이 크로스 올린 것을 차단하며 볼의 소유권을 가져왔다.

[아벨 페르난데스에게 오는 볼을 빼앗으며 전방으로 보내는 데릭 레드먼드! 아스날의 결승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데릭 레드먼드 – 크리스티안 페레스 순으로 넘어간 볼이 향한 곳은.

탁.

유지우였다.

[유지우 선수가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터치!!!]

순식간에 세 명의 선수가 에워쌌다.

패스받을 선수들도 집중 마크를 당하고 있어 쉽게 패스를 줄 상황도 아니었다.

“유!!!!”

팬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자 유지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

그는 호흡을 내뱉으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그의 눈에 압박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휘릭.

드래그 백으로 한 명.

탓.

스텝 오버로 두 명.

탓, 타닷!

라 크로케타로 세 명.

짧은 순간에 순식간에 세 명을 뚫어내자 없던 공간이 생겨났다.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올라옵니다! 유지우 선수! 한 명! 두 명!!! 세 명!]

[기회입니다! 여기서 득점을 가져가야 해요!]

아드리안 로마오와 마틴 그라임스는 이미 한계가 왔지만, 계속 뛰어다니며 유지우가 돌파하기 편하게 수비진에 혼란을 줬다.

“때려--!”

슈팅 공간이 나왔다.

유지우는 더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슛 자세를 잡았고, 볼을 때리려는 순간.

촤---악!

제라르 레오의 태클이 들어왔다.

정석적인 태클이었지만, 유지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태클이 들어오는 순간 몸을 살짝 틀었고 그 덕분에 심판은 휘슬을 불 수밖에 없었다.

삐---익!

[이걸 반칙으로 끊어내는 제라르 레오!!! 깊은 곳까지 내려와 유지우 선수의 돌파를 차단합니다!]

살짝 오른쪽에서 내준 프리킥.

골대와 거리는 24m라 직접 킥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추가 시간까지 다 지난 시간! 프리킥이 주어졌고 레알 마드리드는 벽을 세웁니다!]

[유지우 선수는 왼발로 킥을 준비합니다! 양발 모두 정교한 킥을 하는 선수인 만큼 기대가 되는데요! 여기서 성공하면 연장! 그리고 실패하면 사실상 경기 종료입니다!]

제라르 레오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었어.”

“잘했어, 그대로 중거리 슈팅을 줄 바에야 이게 나아.”

크리스티안 플리크는 제라르 레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기서 막아서 우승하던.

여기서 먹혀서 연장을 가던.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눈앞의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반드시 막자!”

* * *

프리킥이 주어진 곳에서 유지우는 침착하게 볼을 세워놓고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오른쪽으로 감아? 아니면 파 포스트 쪽으로?’

그는 끈을 묶으면서 프리킥 코스를 생각했다.

수비벽과 골키퍼의 위치.

골대와의 거리.

모든 상황을 파악하며 최상의 코스를 고르던 중.

“유.”

그런 그에게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다가갔다.

“어?”

“편하게 차. 이 킥이 이 경기의 마지막 킥이 되더라도 우린 아무런 후회도 없으니까.”

마테오 크리스단테의 말에 대답한 건 크리스티안 페레스였다.

“유에게 그런 말이 들릴 거 같아?”

“응? 난 그냥 부담될까 봐….”

“유는 킥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넣을 생각뿐이라고.”

영혼의 듀오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운 두 선수는 서로의 속마음을 잘 알았다.

유지우는 축구화 끈을 다 묶고서 일어나 마테오 크리스단테를 바라봤다.

“어떤 결과라도 후회가 없다고? 난 후회가 있을 거 같아. 그래서 무조건 넣을 거야. 넣어서 모두하고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게 내 목표니까.”

긴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에이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테오 크리스단테는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페이크는?”

“필요 없어.”

“그러면 우리는 가본다.”

“응.”

“자신감 가지고 차, 만약 흘러나오면 우리가 무조건 골대 안으로 넣어줄게.”

선수들은 위치를 잡았고 키커 위치에 선 유지우는 집중력을 높였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

우승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넣어야 했다.

삐---익!

그렇게 자세를 잡고 심호흡 몇 번 하자 들려오는 휘슬.

후우.

유지우는 천천히 발을 떼 슈팅을 때렸다.

왼발로 잔뜩 감아 니어포스트를 겨냥한 킥은 수비벽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유지우 선수---!]

수비벽이 점프를 뛴 높이를 넘어간 볼은 급격하게 안으로 꺾였다.

크리스티안 하르케는 날아오는 슛의 궤적을 읽었다.

‘이 방향으로 올 줄 알았어.’

그는 유지우의 프리킥 영상을 몇백 번을 보며 그가 선호하는 코스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확률을 분석하곤 방향을 읽는 데 성공했다.

‘막으면 우승이다.’

그는 궤적을 향해 힘차게 손을 뻗었다.

‘…아.’

하나 자신 있게 움직인 것과 달리 뭔가 부족한 게 느껴졌다.

다가오는 공과 손의 거리가, 왠지 모르게 멀게만 느껴진 것이다.

그 이유는 방향을 읽는 데는 성공했으나, 유지우의 킥 코스가 너무나도 절묘했던 탓이었다.

일명 야신존이라고 불리는 완벽한 구석.

‘이걸 어떻게 막아.’

볼은 그곳에 정확히 꽂혔다.

철렁.

전광판에서 아스날 옆에 있던 2가 3으로 변하며.

아스날 3 – 3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은 종료 직전에 마침내 균형의 추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아스날 에이스의 포효에 스타디움 안은 거대한 함성으로 물들었다.

* * *

“…이거 실화야?”

관중석 곳곳에는 태극기를 흔드는 한국 팬들도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유지우가….”

“2골 1어시스트.”

“지금까지 한국 선수 중에 이런 임팩트를 주는 선수가 있었나?”

“없었지…. 박찬우도 챔피언스리그 결승 경험이 있지만, 이 정도 활약을 보이진 못했으니까.”

그들은 보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아스날이 끈질긴 추격 끝에 동점을 만든 것을.

-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함성이 들려오고서야 깨달았다.

등번호 10번의 한국 선수가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을.

[동점입니다! 동점! 유지우 선수가 프리킥으로 마침내 3 – 3 균형을 맞춥니다!]

[믿어지십니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후반전에만 3골! 그것도 긴장되는 상황에서 프리킥 골을 환상적으로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버렸습니다!]

이 골로 경기는 원점이 됐고 곧이어.

삐익-! 삐익-! 삐----익!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다.

[3 – 3! 마지막에 유지우 선수의 극적인 동점 골로 아스날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장전으로 이어질 두 클럽의 결승 매치! 아아아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진정되질 않습니다!]

아스날 팬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1분을 남겨놓고도 좁혀지지 않는 차이에 경기를 포기하려고 했을 때, 에이스 유지우의 한방이 그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짝짝짝짝짝!

기적을 보여준 선수들을 향해 그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엄청난 경기력으로 마침내 추격에 성공한 선수들을 향해 아스날 팬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며 위대한 추격을 보여줬습니다! 만약 연장전에서 역전을 한다면 이 경기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평생 기억될 것입니다!]

연장전 시작 전 휴식 시간은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진행되게 되어 있었다.

각 팀은 필드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양 클럽 선수들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아스날 선수들은 금방 쓰러질 정도로 지쳤지만, 얼굴만큼은 미소가 가득했다.

“드디어… 드디어!!!”

“이 흐름을 타자! 이제 마드리드 녀석들도 여유롭게 하지 못할 거야! 저 녀석들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여주자!”

양 클럽이 쓴 교체 카드는 똑같이 세 장씩.

규정에 따라 양 클럽 모두 두 장의 여유가 있었고, 연장전이 시작되는 만큼 한 장이 추가되어 총 세 장의 교체 카드를 쓸 수 있었다.

“다들 잘 해줬다.”

폴 사르는 최고의 추격쇼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말했다.

“패배할 뻔한 경기를 너희 손으로 다시 원점으로 만들었다. 이제 물러날 곳은 없어. 연장전은 정신력 싸움이다. 더 간절한 쪽이 승리할 뿐이야.”

연장전까지 온 것만으로도 아스날은 기적을 쓴 셈이었다.

전반전에 2골을 실점하며 2 – 0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후반전 추격으로 3 – 3으로 만들어냈으니까.

“우리가 일으킨 기적은 패배하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

“우리의 이 위대한 추격을 기억하게 하려면 이기는 길뿐이라는 걸 명심해라.”

스포츠에서 과정이 아름다워도 결과가 아름답지 못하면 기억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유, 체력은?”

“멀쩡합니다.”

호흡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지만, 유지우는 한계에 도달했다.

폴 사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저 지금은 팀 사기를 위해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는 것도.

“수비 가담은 줄여도 돼.”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눈을 마주쳤다.

“기회가 오면 계속해서 공간을 공략하고. 마드리드 녀석들도 지친 건 마찬가지니까 흔드는 것에 집중해.”

“네.”

“이 경기에서 이기려면 미안하지만…. 네가 더 뛰어주는 수밖에 없어.”

“자신 있습니다.”

“좋아!”

폴 사르는 선수들에게 어떻게 뛰어야 할지 지시를 내렸다.

“수비는 중앙으로 간격을 좁혀서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는 식으로 간다. 측면은 잡을 수 있으면 따라가도 되는데 확신이 없으면 크로스를 허용해도 돼. 어차피 마드리드의 공격 대부분은 중앙 집중적이니까.”

선수들은 수분 보충하면서 얘기를 들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또 뛸 수 있을까 싶은 몰골이었으나 선수들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어서 필드로 나가 뛰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했다.

“우리가 연장에서 신경 쓸 건 마드리드보다 한 발 더 뛰는 거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마드리드도 똑같아.”

큰 전술 설명은 없었다.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양 클럽.

지금부터는 전술보다는 정신력 싸움이었다.

“전반전부터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만들었다. 이제 연장에 그 흐름을 이어 기적을 만들어보자!”

잠깐의 짧은 휴식을 가진 선수들은 다시 필드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정규 시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채, 연장전에 돌입합니다!]

[과연 유럽 정상에 올라 가장 빛나는 열매를 차지할 클럽은 어디가 될지! 끝까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양 클럽 선수들은 서로를 마주 봤다.

유지우는 호흡을 정리하면서 제라르 레오와 시선이 마주쳤다.

씩.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삐-익!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연장 전반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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