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6화
아스날의 아시아 투어 소식으로 한국은 연신 떠들썩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그것도 한국 선수가 에이스로 있는 팀이 오는 것인 만큼 대중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 ㄹㅇ 이때만을 기다렸다.
- 다 괜찮은데 티켓값 실화야?
- 얼마든지 높여봐라! 내가 월급을 털어서라도 산다!
- 돈 없는 학생은 웁니다 ㅠㅠㅠㅠㅠ
- …돈 있는 직장인도 웁니다 ㅠㅠ
- 3일은 라면만 먹을 각오로 티켓팅해서 성공함.
- 아스날이 짧게 있는 거라 아쉽긴 해 ㅠㅠㅠㅠㅠ
- 이거 ㄹㅇ ㅠㅠㅠ 두 경기만 더 해줬어도 ㅠㅠㅠ
- 나중에 아시아 투어 말고 한국 투어만 따로 또 해주겠지?
아스날의 한국 방문 소식은 쉬지 않고 쏟아지며 스포츠면을 도배했다.
【 아스날 선수단, 명동 거리에서 포착! 】
경기가 있기 전, 아스날 선수들은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유지우가 추천을 해줬기 때문인지, 선수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휴식 시간에 활발히 돌아다녔고.
그 결과, 쇼핑도 다니고 맛집도 가며 관련된 목격담이 쏟아졌다.
【 울고 있는 아드리안, 무슨 일? 】
- 저거 마틴이 아이스크림 빼앗아 먹어서 저럼.
- 실화?
- ㅇㅇ 내가 옆에서 봤거든.
- ㅋㅋㅋㅋㅋㅋ 아드리안은 보면 볼수록 애 같음.
- 그게 매력이지.
- 한국 와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거 보니까 괜히 뿌듯해지네.
【 호떡을 먹는 유지우와 크리스티안. 】
- 두 사람은 무슨 화보 찍나?
- 뭐 저렇게 잘 생겼냐.
- …하나만 잘하라고! 얼굴이 잘하면 축구를 못 하던가!
- ㅋㅋㅋㅋㅋㅋ 위에 찐텐 나왔네.
-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 …크리스티안은 미쳤음, 축구 안 하고 배우했어도 성공했을 비주얼 ㄷㄷ
- 저렇게 생기면 어떤 기분일까?
아스날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걸어 다니는 CCTV들이 SNS를 통해 알려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식.
- 7만 개 티켓이 3초 만에 다 팔리는 거 실화야…?
바로 경기 티켓 판매였다.
6월 말에 진행된 아시아 투어 티켓팅은 3초 만에 다 매진되며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 난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못함. 서버 다운돼서.
- 저거 티켓팅한 사람들이 운 개 좋은 거 ㄹㅇ
- 무슨 로또보다 확률이 더 안 좋냐….
- 여기 로또 당첨된 사람입니다.
- 3초를 뚫은 사람입니다 ㅎㅎㅎㅎㅎㅎ
- 개 부럽다…. 진심.
이외에도 커뮤니티에는 아스날과 관련된 여러 글이 올라왔다.
한데 그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투어가 아닌 이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 뜬금없긴 한데 아스날 선수들 이적설에 휘말리고 있던데 몇 명이나 떠날까?
아직까지 직접적인 기사는 없었지만, 찌라시는 존재했다.
그래서 팬들은 아스날의 선수들이 좋은 조건으로 이적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 떠나긴 할까? 챔스 우승팀을 떠나는 멍청이들이 어디 있어?
- 이번에 우승했지만, 다음에도 우승할 수 있을까? 더 확실하게 우승하려면 레알이나 파리를 가는 게 나을 듯?
- 선수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너희가 ㅈㄹ이야?
- 그냥 의견을 말한 것뿐이야.
- 아스날이 우승하는 꼬라지 더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고?
- 저런 분탕질 치는 놈들 많으니까 상대해주지도 마.
- ㅇㅇ 어차피 다른 클럽에서 돈찍누 하고 싶어도 못 함.
- 왜?
- 아스날 구단주를 봐봐라.
- 아.
- 돈으로는 안 뺏겨, 다른 클럽에서 빼앗아 오는 거면 모를까.
그 후에도 댓글이 몇 개 더 달렸지만, 화제는 다시 투어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되며 그 글은 묻히고 말았다.
* * *
며칠 후.
경기를 이틀 남겨둔 어느 날.
아스날 선수들이 훈련하는 트레이닝 센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오픈 트레이닝 데이.’
아스날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볼 수 있게끔 오픈 트레이닝을 계획하며 100명의 팬을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걸 당첨될 줄이야.”
“15시부터 16시까지지?”
“오픈된 시간은 그 정도고 그 후에 비공개 훈련을 진행한다고 하더라고.”
“짧긴 하네.”
“그래도 유럽 가야지만 볼 수 있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거잖아.”
“그것만으로도 매리트가 있지.”
선수들이 내부 트레이닝 장에서 나오자 팬들이 모인 곳에선 환호성이 나왔다.
아스날 선수들은 손을 흔들며 팬들에게 인사했고, 필드 중앙에 원으로 둘러 모였다.
“팬들이 보고 있다고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시작하자.”
“네!”
“처음은 가볍게 조깅부터! 스티븐! 네가 앞에서 템포만 조절해줘.”
“알았어.”
오픈 트레이닝 데이라 선수들은 전술적인 부분을 보이지 않고 가벼운 몸풀기 정도를 하며 컨디션을 유지했다.
“유지우 선수!”
“안녕하세요---!”
“오빠 사랑해요!!!”
체력 훈련을 하던 중.
유지우가 가까워지자 팬들은 손을 흔들며 반겨줬다.
유지우는 그들을 보며 손을 흔들고는, 가장 앞에 있는 아이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와줘서 고마워.”
“네, 네!!!”
아이는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유지우는 다시 훈련을 진행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가만히 보면 유지우 선수는 아이를 되게 좋아하는 거 같지?”
“응, 유럽에서도 많이 알려진 건데 아이 팬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다고 하더라.”
“게다가 그것도 하고 있잖아.”
“뭐?”
“아르헨티나 보육원 기부, 보카 주니어스 시절부터 매달 계속하고 있다고 하던데?”
“…대단하다. 진심.”
“그리고 조만간 재단도 설립한다고 들었어.”
“재단?”
“응, 환경이 어려워 꿈을 꾸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꿈을 이룰 기회를 주고 싶다면서.”
이 재단 사업은 유지우의 팬이라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유지우가 2년 동안 준비해 마침내 재단을 설립하기 직전까지 와있었으니.
“어리지만….”
“존경스럽지?”
“어.”
“마인드가 달라. 그러니 성공하는 거겠지만.”
사람들은 아스날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봤다.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
그들은 친선경기라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유럽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팀을 상대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아스날 선수단을 보며 팬들은 감탄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만 비춰도 팬들은 좋아할 테니까.
그런데 아스날은 그런 마음으로 아시아 투어 길에 오른 게 아니었다.
< 어떤 경기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 >
이런 생각이야말로 머나먼 타지의 팬들을 만나는 예의라고 생각하고 오른 거였다.
삐---익!
“패스는 빠르게! 연습도 실전처럼 집중해!”
“네!”
“아드리안! 한 번만 더 장난치면 선발명단에서 빠질 줄 알아!”
“네, 넵!”
삐---익!
“다시 집중해서!”
폴 사르는 UEFA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선수들을 다독였다.
“…….”
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감탄하며 지켜봤다.
잠시 후.
훈련이 종료되고 팬들과 만나는 시간이 되자, 선수들은 팬들이 모인 곳으로 가 팬서비스를 해줬다.
스스스슥.
“감사합니다.”
유지우는 팬들에게 사인해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오픈 트레이닝 데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아스날 vs K리그 올스타의 경기를 앞두고 관중석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K리그 관객 동원율과 차이가 심해.”
“유럽 최고의 클럽이 왔으니까.”
“평소 이거의 반이라도 됐으면…. K리그도 더 수준이 높아질 텐데 아쉬워.”
관중석에는 시작 전부터 많은 인원이 채워졌다.
유지우와 관련된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이채운 감독과 충북 풋볼 클럽의 선수들.
박우근과 축구협회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가 경기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 오오오오오!
곧이어 선수들이 워밍업을 하러 나왔다.
먼저 K리그 올스타팀이 나온 뒤.
뒤이어 아스날 선수들이 나오자 팬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나왔다.
그 함성 속에서 아스날 선수들은 침착하게 자리를 잡았다.
폴 사르는 손뼉을 치며 선수들을 집중시켰다.
짝.
“자, 천천히 몸 풀어보자.”
선수들이 워밍업을 시작했다.
유지우는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짝을 지어 장거리 토스로 발 감각을 끌어올렸다.
뻐---엉!
두 사람이 주고받는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어느새 사이드 라인 끝과 끝에서 노바운드로 주고받았다.
“와.”
두 선수가 보여주는 묘기에 관중들은 감탄했다.
원터치, 투 터치, 쓰리 터치.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감각을 올리는 모습에 K리그 올스타팀에서도 구경할 정도였다.
제일 하이라이트는 골대 맞추기였다.
까—앙!
까—앙!
까—앙!
맞출 때마다 발아래로 정확하게 오는 컨트롤.
마치 골대와 패스를 주고받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거야?”
“저 장면 꽤 유명하잖아.”
“저거?”
“경기 워밍업 때마다 갓지우가 마지막 순서로 늘 하던 거라 평소에 해외 축구 자주 보는 사람들은 익숙할걸?”
관중석에 앉은 남성의 말처럼 해외 축구를 자주 보거나 너튜브를 통해 유지우의 루틴을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 묘기를 끝으로 워밍업이 끝났고, 각 팀의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향했다.
* * *
경기를 앞둔 아스날 라커룸의 분위기는 좋았다.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 경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선수들은 집중력을 높였다.
“집중.”
폴 사르는 작전판을 가리키며 선수들에게 전술을 설명했다.
큰 전술은 늘 사용하는 거지만, 선수들에게 세부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새 시즌을 앞두고 얼마나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려는 의도였다.
“친선전이긴 하지만 지는 꼴은 보지 못한다. 최선을 다해 상대를 쓰러트려라. 그것이 챔피언이 보여야 하는 자세니까.”
폴 사르는 선수들에게 각오를 심어줬다.
아스날은 더 이상 암흑기의 클럽이 아니었다.
프리미어리그 2연속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제 정상에 있는 클럽인 만큼 단 한 경기도 대충 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그리고 오늘 데릭이 쉬는 건 알고 있지?”
“네.”
데릭 레드먼드는 컨디션 조절 차 오늘 경기는 쉬는 걸로 했다.
“어제 미팅에서 말한 대로 주장은 유가 맡는다.”
어젯밤 폴 사르는 동료 선수들과 가벼운 미팅을 하며 유지우가 오늘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는 것이 어떤지 물어봤다.
누구도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머지않은 미래, 그가 아스날의 주장이 될 테니까.
“부담 되나?”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죠.”
“오, 자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의외군. 덤덤할 줄 알았는데.”
“주장의 자리는 그런 자리 아닌가요?”
“하하하!”
폴 사르는 호탕하게 웃었다.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유지우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오로지 설렘만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당하게 어깨 펴고 나가, 주장이 흔들리면 팀이 흔들리는 거야.”
주장 완장이 유지우의 팔에 채워졌다.
그 뒤.
폴 사르는 선수들의 준비가 끝난 것을 보고 외쳤다.
“가자!”
그렇게 아스날 선수들은 라커룸을 나와 통로에 섰다.
유지우는 맨 앞에 나와 K리그 올스타팀과 나란히 섰는데, 주장 완장을 찬 김기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살살해줘.”
“그건 불가능해요.”
“야박한 놈.”
“최선을 다해서 골을 노릴게요.”
김기하를 비롯해 김우일, 강현오, 최민연, 조정후 등 국가대표 동료들의 얼굴도 보였다.
경기를 앞두고 있어 그들은 짧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위치에 섰다.
‘지우가 주장?’
‘아스날이 팬 서비스를 제대로 해주네.’
‘관중들이 좋아하겠어.’
아스날의 선두에 선 유지우를 필두로 선수들이 필드에 올라섰다.
- 와아아아아아아!!!
모습만 드러냈을 뿐인데도 엄청난 환호성이 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