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06화 (306/383)

제306화

대한민국 1 – 2 브라질.

2점 리드와 1점 리드는 심리적으로 다가오는 게 달랐다.

더구나 브라질은 그토록 경계하던 유지우가 아닌 다른 선수가 득점했으니, 그 부분에 대한 신경도 써야 했다.

“…유가 미끼가 될 줄이야.”

브라질 감독은 헛웃음을 지었다.

본래 스타 플레이어들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지고 있는 경기라면 더 많은 활약을 하고 싶은 것이 심리인데 유지우는 전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동료를 이용하고 얼마든지 스스로 미끼가 된다.’

유지우는 브라질이 어떤 것을 노리고 있는지 정확히 눈치채고 농락한 거였다.

- 와아아아아!!!

경기는 재개됐다.

“이대로 동점 가자---!”

점수 차이가 한 골 차이로 좁혀지자 관중들의 응원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들 사이로 응원가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1점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들! 할 수 있습니다!]

아직 1점을 앞서고 있는 브라질은, 라인을 수비적으로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차이를 더 벌리고자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흔들리지 마! 겨우 한 점이야!”

“라인 유지하고! 아까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한 점은 큰 영향이 없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더 공격해서 점수 차이를 벌릴 생각이었다.

뻐---엉!

그들은 사이드로 볼을 전개해 공간을 넓혔다.

이제 막 텐션을 올리기 시작한 대한민국으로서는 퍽 지칠법한 전개였다.

하나, 선수들은 지치지 않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계속 붙어!”

“쉬지 마!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죽어라 뛰어!”

이것이 대한민국이 가장 잘하는 방식이었다.

죽어라 상대를 몰아붙이는 집념.

그로 인해 브라질의 공격이 살짝 주춤했다.

“패스해!”

뻐---엉!

히카르지뉴는 자신에게 오는 패스를 원터치 스루패스로 빠르게 찔렀다.

대한민국 수비진의 타이밍을 빼앗고 쇄도하고 있는 아우미르 파투를 겨냥한 패스.

탁.

아우미르 파투가 볼을 잡자마자.

촤---악!

타이밍에 맞춰 날카로운 태클이 들어갔다.

[오오오오! 김재민 선수의 깔끔한 태크으으을! 아우미르 파투가 넘어지면서 어필해보지만, 주심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제3자가 볼 때는 위협적으로 보일 법했으나 김재민의 태클은 정확하게 아우미르 파투의 발아래에 있는 볼만 노렸다.

[그대로 걷어내는 권창현 선수! 볼은 김우일 선수에게!]

김우일이 볼을 받고 돌아섰다.

브라질의 전방 압박이 빠르게 들어왔지만.

스르르륵.

김우일은 드래그 백으로 볼을 보호했다.

발기술이 남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안전하게 보호하는 능력은 유럽 클럽들의 관심을 끄는 만큼 안정적이었다.

그는 전방을 보며 상황을 살피곤.

“우일이 형!”

볼을 받으러 온 에이스에게 패스를 내줬다.

[유지우 선수가 압박을 빠져나오며 볼을 잡습니다!]

그것을 본 주앙 파울리스타가 바짝 붙었다.

그림자처럼 붙어 유지우를 방해하려고 할 때.

툭.

유지우는 퍼스트 터치로 방향을 틀어 주앙 파울리스타의 왼쪽으로 볼을 보내고, 본인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뛰었다.

‘막아야 해!’

주앙 파울리스타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허공을 저었다.

[엄청난 속도! 볼을 쭉 밀고 들어갑니다!]

유지우는 또 앞을 막는 선수를 라 크로케타로 제쳐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틈을 타, 유지우는 고개를 돌려 선수들의 위치를 살폈다.

‘…….’

찰나의 순간.

그는 갈 길을 정하고 발을 내디뎠다.

선택지는 여러 개였다.

양 윙어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쇄도하고 있었고.

조정후가 수비수들을 등지고 서서 혼란을 주고 있었으니.

뻐---엉!

그가 선택한 건 패스가 아니었다.

브라질 선수들이 한국의 공격진에 신경을 뺏긴 틈을 타.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유지우 선수---! 슈우우우웃!]

그의 왼발 슈팅은 골키퍼가 가까스로 선방하며 라인 아웃이 됐다.

[아아아-! 아쉽게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게 찾아온 코너킥 기회! 이 기회를 살리면 동점까지 가능합니다!]

흐름은 점차 대한민국에게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주도하는 건.

- 유지우! 유지우! 유지우!

대한민국의 에이스였다.

* * *

오른쪽 코너라인으로 가서 코너킥을 준비하는 건 유지우였다.

골대 앞에는 수비수인 김재민까지 올라와 득점을 노렸다.

[신중히 사인을 맞추는 대한민국!]

[여기서 득점만 한다면 이 경기! 정말 아무도 모르게 됩니다!]

치열한 문전 앞 자리싸움.

유지우는 그것을 보고서 볼을 전개했다.

크로스가 아닌 짧은 패스.

미리 사인을 맞춘 차선호가 내려와서 받아줬지만, 금방 수비수가 따라와 압박했다.

툭툭.

두 선수는 패스를 주고받으며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앞을 브라질의 수비수들이 가로막았지만, 유지우의 시선은 이미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조바심을 느낀 브라질의 선수가 태클을 시도해왔다.

촤—악!

유지우는 그것을 가볍게 피해내고는.

뻐—엉!

높지도 낮지도 않은 궤적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

조정후를 경계하고 있던 센터백들의 틈을 파고드는 건.

타다다다닷.

김기하였다.

브라질 수비수들이 조정후를 비롯해 다른 공격수를 마크하고 있었기에.

뒷공간으로 쇄도한 김기하는 한순간 압박을 피할 수 있었다.

“잡아-!”

주앙 파울리스타는 김우일에게 밀려 김기하를 따라가지 못했다.

완벽하게 약속된 플레이.

브라질을 상대로 준비한 대한민국의 세트피스 전술이었다.

[김기하 선수의 다이빙 헤디이이이잉!]

죽어라 뛰어 브라질의 빈 곳으로 쇄도해 만든 기회.

그 기회는.

철렁.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

정작 골을 넣은 당사자는, 자신이 골을 넣었는지 못 넣었는지도 분간을 못 했지만.

-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내 관중들의 함성에 정신을 차리고 포효했다.

[김기하-! 대한민국의 캡틴이 동점 골을 만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냅니다!]

[68분에 나온 동점 골! 김기하 선수의 집념이 2 – 2 스코어를 만듭니다!!!]

세레머니를 하고 돌아가는 길.

유지우는 김기하에게 다가가 말했다.

“몸은 안 다쳤어요?”

“멀쩡하지.”

“그러다가 뼈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자칫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다이빙이긴 했다.

김기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1점 차이로 좁히고 싶었어.”

“…….”

“비록 다치더라도 내가 넣을 수 있다면 난 그곳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생각이야.”

그가 국가대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유지우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었다.

* * *

2 – 2.

원점이 되면서 경기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국 녀석들, 죽어라 뛰어다니고 있어.”

“빈 곳으로 패스를 찔러도 따라가니까 더 빠르게 전개를 하는 게 어때?”

히카르지뉴와 주앙 파울리스타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대한민국을 공략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선수들! 브라질을 상대로 훌륭히 싸워주고 있습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브라질의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오로지 집념으로 뒤집은 대한민국! 과연 마지막에 승리하는 팀은 어느 팀이 될까요!]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이 저절로 찼다.

“…와.”

브라질의 화려함과 대한민국의 투박함.

두 팀이 필드에서 부딪치며 나오는 시너지는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점유율은 여전히 브라질이 우세지만! 대한민국의 중원도 절대 밀리지 않습니다!]

70분.

80분.

경기는 어느덧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삐익-!

그때 한국 측에서 교체 카드를 꺼냈다.

[대한민국에서 교체 카드를 꺼냅니다! 김기하 선수가 빠지고 최남일 선수가 들어갈 준비를 마칩니다.]

[이것으로 김기하 선수의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마무리되네요.]

81분에 김기하의 교체 명령이 떨어졌다.

“후우.”

그걸 본 김기하는 웃으며 호흡을 내뱉었다.

‘끝이구나.’

사전에 교체로 빼주겠다는 감독의 말이 있어서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발로 내보내 준 감독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저벅.

걸을 때마다 그동안의 국가대표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관중들은 서서히 한두 명씩 일어났다.

[관중들이 일어나 그동안 헌신해준 캡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비록 그가 이끈 세월이 가장 빛나던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맡기 싫어했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면서 버텨준 캡틴! 그의 마지막은 가장 빛나고 있습니다!]

코치진들을 비롯해 벤치에 있는 선수들까지 다 일어나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주앙 달루트가 데려온 코치진들도 있었지만, 그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코치진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김기하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함께 경험한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

- 김기하! 김기하! 김기하!

김기하는 나오기 전, 주장 완장을 벗어들고는 한 선수에게 걸어갔다.

“뒤는 너한테 맡길게.”

그가 주장 완장을 채워준 선수는 유지우였다.

“믿어주세요.”

“내가 널 안 믿으면 누굴 믿는다고.”

그는 유지우에게 완장을 채워주고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고생해라.”

짧은 인사말.

그러나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유지우는 웃으며 말했다.

“예.”

대한민국 대표팀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 * *

그 후로 경기는 박빙이었다.

[아우미르 파투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옵니다! 볼은 아직 라인 아웃이 되지 않은 상황!!! 강인우 선수가 몸을 날려 가까스로 잡아냅니다!]

브라질의 파상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막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허억… 헉….”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그들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이가 안 된다면 잇몸으로.

“으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날려 패스를 차단하는 최남일 선수!!!]

그렇게 수비를 통해 볼을 가져오면 대한민국은 빠르게 역습을 전개했다.

그 중심에는 유지우가 있었다.

탁.

볼을 잡고 돌아서는 순간.

코앞까지 접근한 주앙 파울리스타의 압박.

툭.

유지우는 바로 이어서 볼을 살짝 밀어 주앙 파울리스타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볼을 빼냈다.

- 오오오오오오!

[압박을 벗어나는 유지우 선수! 탈압박 능력은 세계 최고입니다!!!]

유지우를 통제하는 것이 브라질로서는 최우선 과제였다.

유지우의 주변에 있던 선수들은 곧장 압박을 가했고, 돌파당했던 주앙 파울리스타 역시 금세 그 뒤를 따라왔다.

스르르르륵.

유지우는 침착하게 볼을 간수했다.

무리한 돌파로 볼을 뺏길 생각 따위 없었다.

그가 돌파할 수 없다면, 다른 선수에게 볼을 주면 그만이었다.

유지우는 마르세유턴으로 볼을 보호한 뒤에.

투—웅!

수비수들의 머리 위로 볼을 넘기는 감각적인 로빙 패스를 했다.

찰나의 순간에 생긴 공간을 뚫고, 공을 받은 건 조정후였다.

그는 가슴 트레핑으로 볼을 받고 터닝슛을 했지만.

센터백에게 막히고 말았다.

퍼스트 터치가 좋지 않았던 탓에 상대에게 시간을 준 탓이었다.

[조정후 선수가 밀리면서 볼을 빼앗깁니다! 아~ 이게 정말 될 듯하면서 되지 않으니까 죽겠네요!]

[유지우 선수가 계속해서 무언가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데요. 마지막 마무리가 계속 아쉽습니다!]

유지우는 압도적 재능을 가진 브라질의 선수들 사이에서도 빛났다.

그들이 몇 명이 붙어도 뚫어내고 기회를 만드는 모습은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볼을 띄우는 솜브레로 플릭.

라 크로케타.

마르세유턴 등, 화려한 개인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브라질 진영을 농락했다.

<브라질이 승리하고 대한민국이 패배한다.>

이 공식을 깨트리는 데는 유지우의 플레이가 결정적이었다.

퍼---억!

주앙 파울리스타가 계속해서 부딪치며 방해했지만, 유지우는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볼을 트래핑했다.

휙.

왼쪽으로 도는 척하면서.

탓.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는 동작.

주앙 파울리스타는 그것을 읽고 막으려고 했지만.

툭.

유지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앙 파울리스타의 스텝을 읽고서 시도한 플리 플랩.

유지우의 의도에 완벽하게 무너지며 주앙 파울리스타는 넘어지고 말았다.

- 오오오오오!!!

플레이 하나하나 관중들의 환호를 일으키는 선수.

그를 보며 브라질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한 명에게 농락당했군.’

득점을 한 건 그가 아닌 다른 선수지만, 그 득점을 만든 기점은 모두가 유지우였다.

‘…예측해도 못 막는다라.’

전반전까지는 흐름이 좋았다.

그런데 후반전이 되면서 흐름이 반전되어버렸다.

유지우라는 존재.

그를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선수들이 살아나면서 경기가 꼬였다.

[유지우 선수가 돌파하면서 그대로 왼쪽으로 넣어준 패스-! 강예수 선수가 니어포스트로 돌려놓지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필드 위에서 재능으로 압도하는 브라질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독 강한 빛을 내는 선수.

“.... 월드컵에 태풍이 불겠어.”

브라질 감독은 그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서로의 골문을 노린 두 팀의 전술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아름다운 플레이의 향연.

그렇게 추가 시간까지 다 지나며.

삐익-! 삐익-! 삐---익!

종료 휘슬이 울렸다.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최종 스코어 2 – 2! 대한민국이 후반전에 두 골을 넣으며 경기를 무승부로 만듭니다!]

[이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유지우 선수입니다. 에이스답게 공수 양쪽 방면에서 맹활약하며 브라질 선수들을 압도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비록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경기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이기는 건 대한민국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만큼 후반전은 대한민국이 브라질을 압도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웃는 대한민국의 에이스 유지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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