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07화 (307/383)

제307화

삐익-! 삐익-! 삐---익!

종료 휘슬이 울리고 한국 선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필드에 쓰러졌다.

“하아….”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평소보다 오버페이스가 된 경기.

브라질을 막기 위해 체력을 모두 쏟아부은 그들은 그대로 방전이 되어버렸다.

“죽겠다.”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모르겠어….”

“심장이 너무 뛰는데. 이러다가 터지는 거 아니겠지?”

“저도요. 입에서 단내가 나고 있어요.”

선수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유지우는 히카르지뉴와 만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비록 적으로 만나는 사이지만, 그만큼 돈독했다.

“이번에는 내가 이길 줄 알았는데.”

리버풀 소속으로 아스날에게 매번 지니, 이번만큼은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유지우는 클럽이나 국가대표를 가리지 않고 빛났으니까.

“그건 힘들지.”

“하하, 진짜 남미에서 뛸 때부터 느꼈지만, 너랑 적으로 만나면 무서워.”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네가? 그러면 좀 한 번 져줘.”

“그럴 순 없지.”

긴 시간을 붙잡을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눴다.

“리그에서 보자.”

“그럼, 이번 시즌은 우리가 우승할 거니까 각오하고 있어라.”

“얼마든지.”

두 선수는 유니폼 교환을 하고 헤어졌다.

브라질 선수단은 필드를 나갔다.

그리고 브라질 감독은 기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대한민국의 축구는 대단했습니다. 특히 유의 플레이는…. 도저히 어떻게 막아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완벽했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저절로 떠올랐다.

브라질을 혼자 농락한 아시아 선수의 모습이.

“우리에게 여러 실수가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강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그렇게 인터뷰를 한 뒤에 브라질 선수단은 경기장을 떠났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들은 팬들에게 인사를 했고, 유지우는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했다.

“오늘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지우 선수도 생각하고 계셨나요?”

“승리를 예상했는데 무승부라 아쉽긴 하네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기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묘한 미소를 지었다.

강호 브라질.

모두가 그들의 승리를 예상했으리라.

하지만 유지우는 그런 예상을 뒤엎고 월드컵을 향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브라질의 축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여러 문제가 보였습니다. 그 부분은 앞으로 고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성장해 가다 보면… 월드컵을 나갈 때는 더 뛰어난 수준이 되어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유지우는 대답을 해줬고 곧이어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김기하 선수가 은퇴 선언을 하면서 다음 세대 주장으로 유지우 선수가 선택되셨는데, 부담감은 없으십니까?”

기자들의 눈빛이 빛났다.

사실 다른 질문보다 이게 메인 질문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은퇴한 주장과 새롭게 선발된 주장.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시기니 기자들의 관심도 그만큼 뜨거웠다.

유지우는 그들을 보며 신중히 대답했다.

“주장이라는 자리는 항상 부담되는 자리입니다. 그렇다고 부담감에 사로잡힐 생각은 없습니다.”

“…….”

“저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가장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장직을 수행할 뿐입니다.”

그의 담담한 각오에 기자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자회견이 끝났고 모두가 기다린 순서가 다가왔다.

* * *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분주했다.

그들은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곧 있을 행사를 준비했다.

관중들도 빠져나간 사람은 극소수였다.

경기가 끝나고 진행되는 행사.

‘김기하 은퇴식.’

이걸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준비는 다 됐지?”

“네, 시간 딱 맞출 수 있습니다.”

“좋아! 다시 더블 체크한다. 절대로 실수가 있어선 안 돼.”

철저하게 준비했고 잠시 후, 김기하의 은퇴식이 시작됐다.

김기하를 제외한 선수들과 코치진은 필드로 나와 대기했고.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은퇴식이 시작됐다.

관중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김기하는 가족들과 함께 필드로 나왔다.

품에는 4살 된 아이를 안고.

손에는 12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서 아내와 같이 걸어왔다.

- 와아아아아아아!!!

팬들은 그를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 “대한민국의 캡틴! 김기하 선수입니다!”

김기하는 지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사회자가 전해준 마이크를 잡은 그는 고개를 들어 팬들을 봤다.

“안녕하십니까, 축구 국가대표 선수 김기하입니다.”

팬들은 박수로 화답해줬다.

“어렸던 제가 처음 국가대표에 오고 14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본격적인 말을 시작하자 스타디움은 금세 조용해졌다.

“돌이켜보면 전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여러분께 항상 부족한 모습만 보이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못 낸 부족한 선수였죠.”

22세 때부터 시작된 국가대표 생활.

A매치 118경기 출전.

대부분 만족스럽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국제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적이 없었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막상 마이크를 든 지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주위를 보는데 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보였다.

“대표팀은 지금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음으로써 대표팀의 변화가 막히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김기하는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떠날 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긴 여정이었고 한 경기 한 경기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이 나라를 대표했다는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몇몇 팬들은 눈물을 훔쳤다.

“뒤는 걱정되지 않습니다. 저보다도 더 멋진 곳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줄 주장이 있으니까요.”

그는 고개를 돌려 뒤에서 자신을 보는 선수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듬직한 후배들.

저들은 분명히 본인보다 더 멋진 팀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앞이 아닌 뒤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응원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암흑기를 지탱했던 주장.

“축구팬 여러분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의 노고를 아는 팬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한 시대를 지탱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장은 필드를 떠났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었다.

* * *

이탈리아와 브라질.

대한민국이 강호들을 상대로 놀라운 성과를 보이자 월드컵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다.

‘우리 이러다가 2030 월드컵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거 아니야?’

우승 후보로 불리는 팀과 대등하게 대결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음 날.

포털 사이트에 분야를 막론하고 축구 대표팀과 관련된 소식들이 올라왔다.

【 10월 A매치 종료! 한국 1승 1무! 】

【 월드컵 강호를 상대로 훌륭한 성과를 거둔 대표팀. 】

【 주앙 달루트,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겠다.” 】

【 브라질 감독, “우리의 예상보다 한국은 더 강했다.” 】

- 브라질 상대로 2 – 2? ㄷㄷ

- 미친 ㅋㅋㅋㅋㅋ 브라질 황금세대 아님? 거기를 무승부로?

- 그저~ 갓지우. 그냥 믿고 봐라. 그럼 질 수가 없다고ㅋㅋ

- ㅋㅋ 악플러들 다 사라졌죠? 열받죠? 응~ 한국도 이제 강팀이야 ㅅㄱ

- 거의 혼자 멱살 잡고 이끌던데?

- 어제 강예수랑 차선호도 괜찮았음.

- ㄹㅇ 그리고 김기하 동점 골 넣을 때 울컥하더라.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두는 부분은.

【 국가대표 살림꾼 김기하 은퇴! 】

【 새로운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 유지우 선임! 】

【 주앙 달루트, “선수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

김기하의 은퇴 소식이었다.

폼이 떨어져 항상 김우일과 최남일, 두 선수에게 밀리는 그림이라 사람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놀라고 슬퍼했다.

- 그동안 국대에서 김기하가 했던 걸 본 사람들은 진짜…. 눈물이 앞을 가리지.

- ㄹㅇ 개고생했지.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고.

- 가장 힘들 때, 가장 무거운 짐을 든 주장… 잊지 않겠읍니다.

- 그리고 가장 빛나려고 할 때, 스스로 물러나는 것까지 그저 갓벽하다 ㄹㅇ

- 아 ㅠㅠㅠㅠ 그래도 월드컵 앞두고 은퇴하니까 뭔가 심란하다.

- 갓지우가 주장 이어받긴 했지만, 뭔가 싱숭생숭하긴 함.

- 그래도 지우가 잘해주겠지.

- ㅇㅇ 지우만큼 주장 자리에 잘 어울리는 선수는 또 없으니까.

사람들은 김기하의 은퇴로 슬퍼하면서도 새로운 주장이 된 유지우가 대한민국이라는 팀을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 * *

며칠 후.

인천국제공항.

유지우는 가족들과 인사를 하곤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

“유지우 선수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 오늘이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어?”

“야, 뭐해 사진 사진! 별스타에 올려야지!”

“대박….”

사람들은 모두 유지우를 보며 놀랐다.

그때.

“사인 부탁드려도 되나요?”

한 팬이 용기를 냈다.

유지우는 웃으며 팬이 내민 펜을 받았다.

“그럼요.”

그러자 뒤이어 팬들이 몰렸고, 경호원들은 유지우가 다치지 않도록 팬들을 통제했다.

“뒤에서 밀면 안 됩니다.”

입구서부터 이어진 사인 행렬은 게이트 앞.

취재진이 있는 곳까지 이어졌다.

유지우가 팬들을 위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와.’

그냥 가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사전에 약속된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유지우는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연신 웃으며 팬들을 만났다.

“감사합니다!”

“다치지 마세요!”

“항상 응원할게요!”

“꼭 우승하세요!”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유지우의 사인 행렬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유지우는 이럴 것을 대비해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공항에 방문한 거였다.

“이거 선물이요!”

꼬마 아이가 자그마한 손으로 내민 종이가방.

그 안에는 직접 쓴 편지와 색종이로 접은 동물들이 담긴 유리병이 있었다.

“고마워.”

스스스스슥.

그는 팬들에게 사인을 끝낸 후,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봤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로 인해 주변은 엄청난 인파가 몰려 유지우가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줬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지난 월드컵보다 더 높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유지우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월드컵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이 모두의 목표입니다.”

월드컵을 향한 당당한 포부.

국가대표 주장이자 에이스인 그의 말이라 팬들은 더욱 믿음이 갔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누구보다도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온 선수였으니까.

그가 있는 한국이라면.

우승 후보들과도 대등하게 싸워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작년처럼 폭풍 같은 시즌을 보내고 계시는데요! 목표는 변함이 없습니까?”

유지우와 아스날의 목표는 웬만한 축구팬들은 알고 있었다.

시즌 초에 당당하게 밝혔으니까.

“네, 선수들 모두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역시나.”

“트레블이죠.”

작년 시즌에 했던 더블.

그리고 이번 시즌 목표인 트레블.

아스날이 트레블을 목표로 삼았다고 우습게 보는 시선은 없었다.

“공격 포인트 100개를 목표로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몇몇 사람들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 시즌 공격 포인트 100개.

이것을 이룬 건 아르헨티나 레전드 리오넬 메시가 유일했다.

신의 영역에 들어선 선수.

유지우가 그 영역에 도전한다고 하니, 국내 팬들 또한 기대하게 됐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즌 마지막에 그 결과를 지켜봐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깜짝 놀랄 소식을 들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유지우는 모두의 환호를 받는 대표팀 주장이 되어 영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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