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화
[전반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데릭 레드먼드의 빈자리가 커 보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데릭 레드먼드 대신 센터백 자리를 채워주는 건 잔루카 안토니치였다.
그는 갑자기 출전했는데도 레이턴 버트란드와 호흡을 맞추며 차분히 토트넘의 수비진을 막았다.
“나이스! 잔루카-!”
제이미 포든과의 헤딩 경합에서 이기자 레이턴 버트란드는 그를 꽉 끌어 안아주며 기뻐했다.
“고, 고마워.”
전반전이 계속 진행되며 분위기는 토트넘에서 아스날로 넘어왔다.
데릭 레드먼드가 부상 당하며 아웃된 바람에 아스날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덤벼든 덕분이었다.
퍼---억!
“이게 아파?”
그들은 거친 몸싸움으로 토트넘의 공격진을 반죽음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러던 중.
뻐---엉!
전반 종료 직전, 유지우에게 향하는 패스.
토트넘 또한 상대 에이스를 향한 견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유지우에게로 금방 거리를 좁혀왔다.
“유한테 거리를 좁혀! 패스 줄 곳도 경계하고!”
유지우의 앞에 선 건 총 세 명의 선수였다.
그들은 그의 근처를 둘러싼 채, 유지우가 들어갈 수 있는 길목을 전부 막았다.
‘못 지나가지.’
그들 중에는 김우일도 있었다.
[토트넘이 오늘 유지우 선수를 막으려고 여러 수를 쓰고 있습니다!]
[계속 변화하는 수비 전술 때문에 유지우 선수도 혼란이 올 것 같은데요!]
토트넘 홋스퍼의 수비 호흡은 상당히 좋았다.
김우일이 포백 보호를 해주는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센터백과 풀백 사이의 소통이 원활한 것이 컸다.
“내가 갈 테니까 넌 앞으로!”
적절한 타이밍의 압박.
그들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스날의 공세를 신중히 막아내고자 했다.
‘…….’
유지우는 그런 그들의 압박을 보고는 차분히 드리블했다.
볼을 발등으로 살살 밀면서 거리를 좁혔고.
툭.
바디 페인팅 후에 벌어진 다리 사이로 볼을 찌르며 빼냈다.
그리곤 오른쪽으로 돌아서 나가며 한 명의 선수를 제쳐내자.
촤—악!
근처에 있던 김우일이 몸을 날리며 볼을 차단하고자 했다.
하나 유지우는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그는 발을 쭉 뻗어 볼 밑부분을 띄우며 간발의 차이로 김우일을 제쳐냈다.
- 오오오오오!
두 명의 선수를 제치고 나니 나머지는 쉬웠다.
유지우는 특기인 솜브레로 플릭으로 세 번째 선수마저 제쳐내며, 측면을 무너트려 버렸다.
[좁은 구역에서 빠져나오는 유지우 선수-! 볼이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토트넘이 세 명의 수비를 붙여서 막으려고 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유지우 선수를 막을 순 없죠!]
유지우는 속도를 올려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막상 진입한 공간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아 보였다.
센터백들이 벽을 세워 슈팅 코스를 차단해둔 뒤였고.
공을 받아줄 아드리안 로마오도 단단히 마크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유지우가 선택한 것은.
뻐—엉!
기습적인 슈팅이었다.
돌파로 수비수들의 타이밍을 빼앗은 뒤, 골키퍼가 한쪽으로 쏠린 것을 발견하곤 왼쪽 구석으로 낮게 깔아서 찬 것이다.
철렁.
그 볼은 골키퍼의 손을 피해 왼쪽 구석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고오오오올! 선제골의 주인공은 유지우 선수입니다! 수비수 사이를 휘젓고 때린 슈팅이 그대로 골문을 가릅니다!]
[토트넘의 견고한 수비도! 유지우 선수의 돌파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 최고의 드리블러! 바로 이 선수입니다!]
유지우는 골대 안에 들어간 볼을 들고 센터서클로 달렸다.
그리곤 제이미 포든을 지날 때.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제부터 경기가 재미있어질 거 같지 않아?”
데릭 레드먼드를 부상 입힌 장본인.
유지우를 포함해 아스날은 한 골로 만족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 * *
전반전은 1 – 0으로 아스날이 우세를 잡았다.
그렇다고 토트넘 홋스퍼의 기세가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후반전에 들어오자마자 초반부터 공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라인을 올려서 압박을?’
폴 사르는 그들의 배치를 보고서 의문을 품었다.
보통 토트넘 홋스퍼의 압박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형태나 라인을 내려서 안정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라인을 올린다?
폴 사르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스윽.
그는 손을 들어 지시를 내렸다.
‘섣부르게 공격하지 말고 볼을 돌릴 것.’
그가 전술적으로 훌륭한 감독이라 평가받는 것은 이 같은 신중함에 있었다.
절대 방심하지 않고, 상대방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늘 의심했다.
아스날이 전술적으로 유연한 팀이라는 평을 받는 것은, 이 덕분이었다.
한편, 아스날이 신중한 자세를 취하자 조금씩 초조해지는 건 토트넘 쪽이었다.
아드리앙 솔레 감독은 턱을 쓸며 필드를 응시했다.
‘아스날의 볼을 빼앗는 건 어려워, 그렇다면 전개하는 것을 방해해야지.’
그는 선수들에게 빠른 타이밍의 압박을 지시해 아스날이 여유 있게 볼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뒷공간에 대한 대비를 허술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
김우일을 중심으로 후방 경계 또한 확실하게 했다.
퍼—억!
거칠게 몸을 부딪치며 선수들이 필드 위를 굴러다녔다.
후반이 시작하고 10분.
치열한 중원 싸움 끝에 토트넘 홋스퍼 쪽에서 볼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뻐—엉!
“계속해서 볼을 돌려.”
그 중심에 선 김우일은 차분히 빌드업을 쌓아갔다.
아스날이 전방 압박으로 라인을 올리자 김우일은 상대 진영을 유심히 살폈다.
‘아직이야.’
그는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우일은 볼을 끌면서 자신에게 아스날 선수들을 당긴 후.
뻐---엉!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펼쳐지자 롱패스를 찔렀다.
하프라인 아래서 쏘아 올린 패스는 그대로 아스날 진영을 지나 최전방으로 침투하는 주드 마운틴을 겨냥했다.
[제이미 포든이 레이턴 버트란드를 묶는 사이! 주드 마운틴이 라인을 뚫어냅니다-!]
오프사이드 깃발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만큼 절묘한 침투.
잔루카 안토니치가 따라붙지만, 그는 그보다 먼저 볼을 받아내곤.
뻐—엉!
투 터치로 슈팅을 처리했다.
그렇게 날아간 슈팅은 다비드 바르트라의 옆구리 사이를 지나.
철렁.
골망을 갈랐다.
[고오오올-! 김우일 선수가 올린 패스를 주드 마운틴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꽂아 넣습니다!]
[후반기부터 토트넘의 주요 득점 루트입니다! 김우일 선수의 롱패스와 주드 마운틴의 침투! 이걸로 양 클럽의 균형이 맞춰졌습니다!]
1 – 1로 좁혀진 균형.
북런던 더비는 한층 뜨거워졌다.
* * *
한국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에 한국에서 온 아이들은 경기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
그 리그에서 최고의 더비라고 손꼽히는 경기에서 두 선수가 보여주는 플레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재미있지?”
너튜브 채널 대표, 조광수는 웃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매일 TV나 핸드폰으로만 보던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맞아.”
“맨날 너튜브 하이라이트만 봤는데.”
아이들만큼이나 기뻐 보이는 건 차강식 감독이었다.
“감독님은 어떻게 보세요?”
“후배들이 해외에서 이렇게 활약한다는 게 대견하지, 뭐.”
차강식은 감독으로서는 국내에서 나름 성공한 감독이었지만, 선수 시절은 아니었다.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은퇴했고, 은퇴하기 전에도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런 그에게 프리미어리그는 늘 동경하던 목표이자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 무대에서 후배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니, 그로서는 뿌듯하면서도 부러웠다.
“그리고….”
그는 미안한 눈빛으로 유지우를 봤다.
“미안하기도 하고.”
축구협회에 그토록 당했는데도 스스로의 힘으로 꽃을 피우고 성공한 후배.
그를 더 도와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 와아아아아아아!!!
지금은 그 누구보다 높이 올라간 후배를 보는 차강식의 눈빛에는 기특함이 가득했다.
“와! 유지우 선수가 또 잡았어요!”
아이들의 시선이 유지우에게로 향했다.
김우일도 대단했지만, 유지우의 플레이는 차원이 달랐다.
어떤 선수들이 붙어도 돌파해내며 기회를 만드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기대하게 했다.
두근.
두근.
그건 다른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기대했다.
유지우가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투—웅!
그리고 그때.
유지우는 머리 위로 볼을 띄우며 두 명의 선수가 압박하는 것을 센스 있게 제쳐냈다.
뻐---엉!
이어지는 얼리 크로스.
빠른 타이밍에 나온 크로스는 토트넘 센터백 사이를 파고드는 아드리안 로마오를 정확히 겨냥했다.
툭.
다이빙 헤딩으로 머리에 맞춘 볼.
골키퍼가 골대를 비우고 나오면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아드리안 로마오의 헤딩 타이밍이 보다 더 빨랐다.
철렁.
그렇게 볼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 와아아아아아아!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38골 20어시스트.
컵 16골 5어시스트.
총 54골 25어시스트 [총 79개]
유지우는 공격 포인트 80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 * *
[아스날 2 – 1 토트넘]
70분이 흐른 시점.
토트넘이 한 골을 넣으며 추격하는 듯싶었지만, 아스날은 쉽게 볼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역습을 시도하며 라인을 올린 토트넘을 위협했다.
‘역시, 저기야.’
폴 사르는 토트넘 홋스퍼의 공세가 중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눈치채고 선수들에게 그곳을 집중적으로 마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퍼—억!
그러자 김우일을 향한 아스날 선수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흐름을 타던 토트넘을 강하게 조여가는 아스날!]
[김우일 선수를 놓아주면 안 된다고 판단을 한 거겠죠, 전반전부터 토트넘의 공격 대부분이 김우일 선수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토트넘 홋스퍼가 김우일을 중심으로 빌드업을 짰다면 아스날은 크리스티안 페레스를 중심으로 빌드업을 짰다.
툭.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건.
“크리스! 다시!”
유지우였다.
그는 측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중앙으로 올라오며 빌드업 관여를 많이 했다.
스위칭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그만이 가능한 플레이였다.
[아드리안 로마오가 오른쪽으로 내려가며 중앙으로 올라오는 유지우 선수-!]
그를 따라다니는 토트넘 선수들이 있었지만, 잡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허억….”
그들의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거칠어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선수.
퍼—억!
바로 김우일이었다.
어떻게든 유지우를 막고자 하는 간절함.
그 간절함이 보이자 토트넘 홋스퍼 팬들은 더욱 열광했다.
[유지우 선수가 중앙으로 올라오는 빈도를 높이자 김우일 선수와 만나는 상황이 많이 나옵니다!]
[아아아-! 제가 다 떨리네요! 여태 코리안 더비 중에 이렇게 재미있는 코리안 더비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코리안 더비가 여러 번 성사되긴 했지만, 양 클럽에서 한국 선수들이 주인공이 되는 때는 없었다.
그나마 화제가 된 건 유지우 vs 강예수가 붙었던 챔피언스리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아스날의 유지우.
토트넘의 김우일.
두 선수가 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필드를 누비고 있었다.
[김우일 선수의 날카로운 스루패스-!]
각자의 장점으로.
[유지우 선수의 기습적인 중거리-! 아아아! 이게 골대를 넘어가네요!]
관중들의 목이 쉬게 했다.
씩.
두 선수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두 클럽은 치열하게 볼 소유권 쟁탈을 이어갔다.
잠시간의 소강상태.
그 끝에 선 토트넘 홋스퍼의 원조 에이스, 제이미 포든은 기회를 만들어냈다.
볼을 받고 돌아서는 과정에서 레이턴 버트란드가 뻗은 다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삐—익!
[여기서 프리킥이 주어집니다!!]
[레이턴 버트란드가 살짝 무리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걸 제이미 포든이 영리하게 이용했습니다!]
레이턴 버트란드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안타까워했다.
다비드 바르트라는 그를 위로해주며 포지션을 잡았다.
지나간 일에 후회하기보다 어떻게 막을지 고민하는 게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프리킥.
키커 자리에 선 건 제이미 포든, 주드 마운틴, 그리고 김우일이었다.
[저기 모인 세 선수가 토트넘에서 킥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들이죠.]
[네, 최근 김우일 선수가 키커 역할을 맡기도 했으니, 김우일 선수가 찰 가능성도 있습니다.]
잠시 후, 정해진 키커는 김우일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심호흡한 뒤에 골대를 바라봤다.
수비벽과 골대의 거리를 계산하곤.
뻐---엉!
주심의 신호에 맞춰 슈팅을 때렸다.
점프를 뛴 수비벽의 위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궤적.
그러면서 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볼은 그렇게 다비드 바르트라의 앞에 한 번 튄 후.
까—앙!
골포스트에 맞았다.
그런데 골포스트 안쪽에 맞으며 그대로.
철렁.
득점으로 연결됐다.
[들어갑니다-! 김우일 선수의 완벽한 프리킥-! 다시금 동점을 만듭니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열광시키는 주인공은 김우일!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입니다-!]
아스날 2 – 2 토트넘.
다시 동점이 되자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지진이 온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렇게.
종료까지 5분만을 남겨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