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31화 (331/383)

제331화

대한민국 1 – 0 멕시코.

대한민국의 경기력을 본 멕시코 감독은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이게 아시아의 축구 수준인가.”

아직도 세게 축구 곳곳에선 아시아를 두고 축구 변방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축구계를 지배하는 건 유럽과 남미였으니까.

멕시코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를 겪자, 그는 자신의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히 축구 변방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수준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비교해도 될 만큼 뛰어났으니까.

“패스 수준이 상당합니다.”

“패스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도 좋아.”

경기를 보던 코치진도 감독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다고 경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걸 이겨내야지.’

월드컵에 출전하는 이상 앞으로도 변수는 수없이 많을 터였다.

이런 경기에서 역전을 이뤄낼 수 있다면, 그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그는 다시 집중해서 지시를 내렸다.

“볼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잖아! 짧게 짧게!”

그는 거의 선수들과 같이 뛰는 수준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럴 때는 백패스를 해! 무조건 전진 패스만 한다고 좋은 게 아니야!”

그의 열정적인 지시로 멕시코 선수들은 실점했음에도 집중해서 기회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멕시코가 찬스를 잡았다.

속공으로 사이드를 집요하게 노리던 그들은 마침내 비어있는 공간을 발견해냈다.

[아-! 왼쪽이 열렸어요! 최민연 선수가 돌파당합니다!]

견고한 중앙과 달리 사이드는 부실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찾아온 기회를 멕시코는 살리려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뻐—엉!

비어있는 곳이 보이자 곧장 패스가 찔러졌다.

툭.

아르빙 산토스는 퍼스트 터치로 볼을 자신이 차기 좋은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강현오에게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앞을 막는 그를 예의주시하며.

뻐---엉!

반 박자 빠르게 슈팅을 때렸다.

촤---악!

아르빙 산토스의 움직임을 끝까지 응시한 강현오는 몸을 날려 슈팅 코스를 차단하려고 했다.

그의 간절함 덕분인지 아르빙 산토스가 때린 슈팅은 그대로 강현오의 발에 맞고 굴절이 됐다.

‘…됐다. 이 정도 세기면 인우 선배가…. 아.’

그러나 그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강인우도 슛 코스를 차단하려고 골대를 비우고 나왔던 것이다.

굴절된 볼은 그의 머리 위를 지나.

철렁.

안으로 들어가 동점이 되어버렸다.

[전반 종료 직전에 나온 멕시코의 동점 고오오오올! 아르빙 산토스의 슈팅이 강현오 선수의 태클에 굴절됐는데도 들어가는 행운의 골이 나옵니다.]

[아쉬운 골이 나오네요. 이건 강인우 선수도 어쩔 수 없는 골이었습니다.]

삐익-! 삐익-! 삐---익!

동점 골을 끝으로 전반전이 종료됐다.

* * *

대한민국과 멕시코.

두 팀은 월드컵에 출전하는 나라답게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서로가 얼마나 간절한지 관중들에게 전해질 만큼.

- 와아아아아아!!!

후반전을 위해 선수들이 필드로 나오자 관중들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환호성을 보냈다.

“주장!”

자리로 가려던 유지우를 부른 건 강현오였다.

“왜?”

“후반전에는 한 골도 안 줄 테니까 믿어줘요.”

전반 마지막에 실점한 걸 마음속에 두고 있던 거였다.

그 마음을 안 유지우는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확실하게 해, 월드컵에서 수비의 중심이 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너니까.”

“네!”

대표팀의 막내이자 현재 수비진의 핵심.

그가 흔들리면 수비가 흔들릴 것이기에 유지우는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삐---익!

잠시 후, 시작된 경기.

두 팀은 전반전과 선수진 구성을 살짝 다르게 가져갔다.

멕시코는 두 장의 교체 카드를.

대한민국은 한 장의 교체 카드를 쓰며 변화를 줬다.

[경기 초반의 멕시코는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들은 무리해서 라인을 올리지 않고 패스를 돌리며 들어갈 공간을 찾았다.

[멕시코가 공격 성향이 강한 팀이긴 하지만 그만큼 조심성도 있습니다. 전반전에 대한민국을 상대하고 느낀 게 있는 거겠죠.]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월드컵을 앞두고 각자가 원하는 전술을 모두 실험해보는 것처럼 보였다.

5분.

10분.

탐색전이 종료되고 시작된 공격.

탁.

김우일이 중원에서 볼을 잡자마자 멕시코의 선수들이 일제히 그를 둘러쌌다.

‘압박이 전반보다 빨라.’

김우일은 볼을 끌면서 그들의 압박을 버텨냈다.

그는 넓은 시야로 빈 곳을 찾았다.

[김우일 선수가 오른쪽으로 길을 열어줍니다!]

[패스를 차선호 선수가 올라오면서 받아줍니다! 그리고 원터치로 유지우 선수에게 연결!]

유지우는 압박을 따돌린 후, 볼을 잡고 멕시코 진영 쪽으로 돌아섰다.

앞을 막은 선수는 두 명.

그는 그들을 상대로 멈추지 않고 볼을 몰고 들어갔다.

발등으로 밀고 들어오는 유지우를 보자, 그를 상대하는 선수들은 잔뜩 긴장했다.

후우.

세계 최고의 드리블러로 손꼽히는 선수.

전반전에 그를 상대해봤기에 집중력을 끌어올려 어떻게든 막고자 했다.

‘지금이다.’

수비수는 유지우의 스텝을 유심히 보다가 발을 뻗어보았지만.

툭, 타닷!

유지우는 라 크로케타로 두 명의 선수 사이를 돌파해냈다.

마지막 수단으로 유니폼도 잡아보았지만, 그들로서는 피지컬적으로도 우위에 있던 유지우를 넘어트리지 못했다.

- 오오오오오오!!!

압박을 뚫어낸 유지우의 눈에 수비진이 포진해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비수들이 나오지 않고 페널티 에어리어 쪽을 지키고 있는 걸 보자.

뻐---엉!

유지우의 발에서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쏘아졌다.

골대 구석을 노린 궤적.

그러나 슈팅은 이를 악물고 날아오른 골키퍼의 손에 맞고 굴절되고 말았다.

코너킥이 선언됐다.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는 슈팅-!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비록 득점에 실패했으나 좋은 기회를 가져오는 대한민국! 유지우 선수가 키커로 자리합니다!]

“유지우-!”

코너 플래그 근처는 팬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라 환호하는 소리가 엄청났다.

그런 소리에 유지우는 웃음을 지어준 뒤, 골대 앞쪽에 모인 선수들을 보며 사인을 맞췄다.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까요?]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차선호가 가깝게 와서 받아줄 것처럼 움직여 멕시코에 혼란을 준 점이었다.

뻐---엉!

수비수들이 혼란스러워하던 찰나.

타이밍을 재던 유지우는 약속한 코스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걸 본 한국 선수들이 일제히 골대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연습한 것처럼 최남일은 황우식을 마크하는 선수를 막아주며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

[수비수들을 비집고 날아오른 황우식 선수 점프-! 아아아! 골키퍼의 펀칭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눈치채고 있던 골키퍼의 빠른 대처로 무산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멕시코는 위기에서 넘어갔다.

아니, 넘어갔다고 생각만 했다.

뻐—엉!

그가 펀칭해서 쳐낸 볼은 후방에 있던 김우일의 발아래로 정확히 향했고.

김우일은 지체하지 않고 잡은 채, 훤히 비어있는 왼쪽 골대 안으로 슈팅을 때렸다.

철렁.

[수비수들이 밀집된 곳에서도 김우일 선수의 슈팅이 정확히 멕시코의 비어있는 골망을 가릅니다!]

[끝까지 집중하며 세컨볼을 완벽하게 득점으로 만듭니다! 이걸로 2 – 1! 다시 대한민국이 앞서기 시작합니다!]

경기의 균형을 깨는 득점이, 또 다른 유럽파 김우일의 발끝에서 나왔다.

* * *

멕시코는 수비보다 공격에 특화된 팀이었다.

지고 있는 바람에 공격 전개에서 마음이 조급해질 법했으나 아르빙 산토스가 중심에서 잘 이끌었다.

“계속해서 돌려! 공간이 나오게!”

그는 자만심이 컸지만, 그만큼 승부욕도 컸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다.

대한민국에 절대로 지기 싫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적절하게 지시하며 자신이 생각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오! 이걸 제쳐내고 반대 사이드로! 탈압박도 그렇고 패스도 정확합니다!]

[확실히 보고 있으면 멕시코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뛰어납니다.]

남미 국가답게 그들의 볼을 다루는 스킬은 대단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압박을 적절하게 벗어나는 장면은 적이지만,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탈압박 능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

두 가지 능력을 갖춘 아르빙 산토스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침투하며 패스를 받고 강현오를 스텝 오버로 제치려고 했다.

스윽.

그의 눈에 강현오의 균형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르빙 산토스는 강현오가 역동작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걸렸다.’

상대방을 제쳤다는 생각에 아르빙 산토스는 왼쪽 구석을 보고 슈팅을 때렸다.

“으아아아아아!!!”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강현오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지니고 있었다 걸.

[강현오 선수!! 넘어진 상태에서 몸을 날립니다--!]

아직 공격수의 발에 볼이 있다면, 그게 어디라도 쫓아가서 막아낸다는 게 그의 특기였다.

퍼---억!

그는 얼굴로 아르빙 산토스의 강슛을 막았다.

그 바람에, 그의 고개가 뒤로 확 꺾였다.

모두가 당황한 순간.

강현오는 고통스러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뻐—엉!

그는 떨어지는 볼을 멀리 걷어낸 후에야 얼굴을 감싸 쥐었다.

주르르륵.

코피까지 흘리는 그를 보고 선수들은 다가왔지만, 그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특히, 그는 유지우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안 먹힌다고 했죠?”

후반전을 위해 터널로 나오는 길.

그곳에서 했던 막내의 말을 기억한 유지우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무식한 놈.”

“주장만 할까요.”

“어쭈.”

“헤헤, 그러니까 골이나 시원하게 넣어주세요!”

플레이는 거칠었으나 해맑게 웃는 건 영락없는 막내의 모습이었다.

* * *

국가대표 막내의 헌신적인 수비에 선배들의 의욕은 불타올랐다.

“우리 막둥이가 저렇게 해주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사람이냐!”

“다 박살 내자!”

“못 잡을 거 같으면 넘어트리기라도 해!”

그들은 멕시코를 상대로 이기고 있음에도 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60분.

70분.

후반전의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의 체력은 소진되어갔다.

[2 – 1로 이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습니다. 1점 차이의 승부는 언제든 따라잡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앙 달루트는 수비적으로 교체를 감행했다.

멕시코의 공세를 막아보는 동시에, 여러 수비 전술을 시도해보기 위함이었다.

그 의도는 적절했지만, 멕시코는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여러 차례 슈팅이 나왔고, 코너킥까지 내주게 됐다.

[강인우 선수의 선방이 동점을 막아냅니다!]

[아르빙 산토스가 가장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어야 했기에 코너킥 상황에 라인을 올렸다.

혹시라도 세컨볼이 나오면 소유권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그 뒤.

뻐---엉!

코너킥이 진행됐고 정교하게 올라온 크로스는 강현오의 이마에 맞고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쪽으로 흘렀다.

세컨볼을 위해 대기 중이던 멕시코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볼을 잡은 건 라인을 내려 수비 중이던 스트라이커, 황우식이었다.

“달려--!”

[멕시코의 코너킥이 실패로 되면서 대한민국의 역습 기회-!]

[볼이 흘러서 황우식 선수에게! 그리고 황우식 선수가 백힐 패스로 차선호 선수에게 내줍니다!]

타다다다닷-!

차선호가 볼을 잡자마자 양 날개처럼 달리는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강예수 선수와 유지우 선수-! 멕시코의 수비 백업이 늦은 틈에 전력으로 올라갑니다!]

[두 선수의 엄청난 속도! 대한민국의 역습-!]

멕시코 수비진은 전력으로 백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속도에 자신이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로서는 대한민국 공격진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뻐---엉!

차선호는 하프라인까지 볼을 몰고 와선 왼쪽 공간으로 패스를 찔러줬다.

강예수는 볼을 받고서 앞으로 밀어놓고 달렸다.

[차선호 선수가 선택한 쪽은 강예수 선수입니다!]

[강예수 선수가 잡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추가 골 기회!!! 여기서 골이 들어간다면 승리를 확정을 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반대 사이드에서 달리는 유지우의 위치를 봤다.

그리곤 자신에게 수비수들의 시선을 잠깐 가둬놓고선.

뻐---엉!

패스를 뿌렸다.

회전을 머금은 볼은 유지우의 앞으로 정확히 향했다.

스윽.

유지우는 슛 자세를 잡았다.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원터치로 빠르게 처리하려고 한 거였다.

그런데 죽어라 달린 풀백이 거리를 좁혀 태클을 시도했다.

‘슈팅 방해라도-!’

그런데 유지우는 백숏으로 슛이 아닌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풀백은 그제야 눈치챘다.

자신이 유지우의 슛 페이크 동작에 속았다는 것을.

그리고 이어지는 유지우의 슈팅은, 달려 나오던 골키퍼를 역동작에 걸어놓은 채.

철렁.

가볍게 밀어 넣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환호성.

완벽한 역습을 통해 득점을 만들어내자.

부르르르.

벤치에 지켜보고 있던 주앙 달루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떨었다.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것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역습 플레이가 교과서처럼 펼쳐졌다.

황우식 - 강예수 – 유지우 – 차선호.

이 네 선수가 만든 역습을 보고 주앙 달루트는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대한민국 3 – 1 멕시코]

차이는 벌어졌고 남은 시간은 5분.

이론적으로면 동점을 만들 시간이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삐익-! 삐익-! 삐---익!

대한민국 3 – 1 멕시코.

대한민국은 월드컵에 출전하는 멕시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4강 신화.’

국민의 가슴 속에 생겨나는 희망.

그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2002년의 기적을 다시 한번 일으켜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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