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
이틀 후.
리그 32라운드 당일.
“54, 54번이나 지지 않는다! 이것이 아스날이 축구 하는 방식!”
이슬링턴 거리에는 이러한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예전 아스날이 49연속 무패 행진을 했을 때 불렀던 응원가를 개사해서 다시 부르기 시작한 거였다.
홈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그들이 향하는 곳.
아스날의 홈, 애슈버턴 그로브.
55경기 연속 무패를 할지.
아니면 작년처럼 첼시가 무패를 끊을 수 있을지.
관중들이 관중석을 채우고 있을 때, 양 클럽 선수들이 워밍업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자.”
아스날의 라커룸 안.
폴 사르가 선수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말을 시작했다.
“오늘 경기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너희가 가장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워밍업 때만 해도 팬들이 응원하는 열기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지금부터 잘 들어라.”
폴 사르는 영상을 띄우며 오늘 사용할 전술을 설명했다.
선수들은 집중해서 폴 사르의 말을 경청했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흐르고.
“적절한 긴장감은 좋지만, 긴장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상대보다 우리가 더 강하니까 자신감을 가져.”
폴 사르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볼이 없을 때도 공격적이어야 해. 첼시도 공격적인 클럽이라 우리가 조금이라도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면 바로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 거다.”
“네.”
“좋아! 마지막에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어서 팬들과 함께 웃어보자!”
.
.
.
첼시 라커룸의 분위기도 아스날 라커룸과 별반 다른 게 없었다.
그들에게도 오늘 경기는 어느 경기보다도 더 중요했다.
그렇게 감독이 선수들에게 전술을 설명했고 주의할 점도 알려줬다.
그 뒤.
경기 입장 시간이 되자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는 아스날을 존중하러 온 게 아니고 싸우려고 온 것이라는 걸 명심해라.”
선수들은 의지를 불태웠다.
“작년, 우리가 아스날의 무패 행진을 멈추게 한 유일한 클럽이었다. 그리고 마침 작년과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졌지.”
감독은 작전판을 강하게 치며 짐승이 포효하듯 외쳤다.
“가서 아스날의 무패를 끊어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그거 하나뿐이다!”
작년의 좋은 기억이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무패 행진.
그것을 끊을 때 느꼈던 환희.
다시 한번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 와아아아아아!!!
양 클럽은 입장 터널에 나란히 섰다.
유지우는 기예르모 다린과 간단하게 눈인사를 한 뒤, 입장을 준비했다.
들어가기 전부터 귓가를 울리는 팬들의 함성.
그렇게.
저벅.
주심의 뒤를 따라 오늘의 전쟁터에 양 클럽 선수들이 입장하자.
‘와.’
스타디움에 지진이 왔다.
아스날의 붉은 물결과 첼시 원정 팬들의 푸른 물결.
두 갈래의 파도가 만나자.
삐---익!
경기가 시작됐다.
* * *
-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홈팬들의 응원 열기는 경기 초반부터 뜨거웠다.
아스날 선수들은 그 응원에 힘입어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툭.
마테오 크리스단테는 후방에서 볼을 돌리며 첼시 진영을 유심히 살폈다.
‘맨투맨 마크로 나왔어.’
첼시는 라인을 높여 압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맡은 지역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집중적으로 마크하며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수비 전술을 선택했다.
[첼시의 수비 간격이 일정합니다. 소통도 원활하고 뒷공간을 쉽게 내주지 않네요.]
[아스날에게 뒷공간을 내주면 안 되는 걸 알고 있기에 이런 수비 전술을 들고나온 것 같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본인의 지역을 맡았다.
만약 선수들이 들어오면 근처에 있는 선수가 협력 수비해주며 쉽게 전진하지 못하게 했다.
“다시 뒤로!”
유지우는 경기 흐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라인을 내려와서 볼을 받아주며 첼시의 빈 곳을 노렸다.
“유! 뒤에 조심!”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말에 그는 패스에 발만 가져다 대며 볼을 띄웠다.
그리고 압박하는 선수의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며 볼은 왼쪽으로 보냈다.
스르르르륵.
회전이 걸린 볼은 마치 자석에 붙듯.
잔디에 부메랑을 그리며 유지우의 발에 찰싹 달라붙었다.
- 오오오오오!
[센스있게 공간을 연 유지우 선수! 첼시 선수들이 아무리 준비했다곤 하지만 저런 스킬은 알고도 막지 못하죠!]
그가 외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런 번뜩이는 플레이 덕분이었다.
공간을 연 유지우는 시선을 옮겨 주위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패스할지.
드리블을 이어갈지.
그는 찰나의 시간에 결정을 내렸고, 행동으로 옮겼다.
[점점 골대로 접근합니다!]
유지우가 선택한 것은 드리블이었다.
첼시가 골대 앞쪽으로 버스를 세운 터라 섣부르게 패스를 했다가는 볼을 빼앗길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뻐---엉!
드리블로 수비 진영을 흔든 다음, 공간이 보이자 곧장 아웃프런트로 강하게 찔러준 패스.
[유지우 선수가 아드리안 로마오를 봅니다!]
라인 브레이킹을 하며 들어가는 아드리안 로마오를 겨냥했으나.
촤---악!
중간에 센터백의 태클로 막히고 말았다.
“젠장!”
그러나 몸을 억지로 틀며 막아낸 터라 센터백이 볼 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
발에 맞고 흘러나온 볼은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발아래로 갔고.
뻐—엉!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정확히 오른쪽 구석으로 꺾이는 궤적.
골키퍼는 다이빙하며 손을 뻗었고, 간신히 손끝으로 볼을 쳐내며 세이브를 해냈다.
“크리스.”
유지우는 아쉽게 기회를 놓쳤지만, 바로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며 크리스티안 페레스와 얘기를 나눴다.
“쟤네 맨투맨으로 나오잖아.”
“어, 스위칭을 하자는 거지?”
씩.
“역시 넌 굳이 말을 안 해도 다 알아들어서 좋아.”
“너라면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거든.”
“해볼까?”
“알았어, 주도적으로 이끄는 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네가 해줘. 네가 하지 못하는 부분은 내가 커버할게.”
두 사람은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 듯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스 듀오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첼시 감독은 턱을 쓸었다.
‘또 뭔가를 꾸미고 있군….’
* * *
3년에 걸쳐 증명된 아스날의 공격력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연속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들은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며 공격력을 인정받았다.
하나 놀라운 것은, 첼시의 공격력 또한 그들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만약 아스날과 다른 리그였다면 첼시가 우승했을 거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그들의 공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매서웠다.
[막심 코지엘로의 중거리-! 아~ 이게 골대를 넘어갑니다!]
기예르모 다린과 함께 공격을 이끄는 선수는 막심 코지엘로였다.
[조금의 공간만 나와도 정교한 슈팅을 때릴 줄 아는 선수죠!]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세계 상위 10위에 드는 그는 창의적인 플레이 메이킹이 가능했다.
폴 사르는 그 부분을 알기에 막심 코지엘로에게 타이트한 압박을 지시했다.
퍼---억!
마테오 크리스단테와 카이 베일로브가 번갈아 가며 계속 옆에 붙어서 방해했으나.
‘이것들, 모기처럼 귓가에 계속 윙윙거리고 있어.’
막심 코지엘로는 섣부르게 공격하지 않고 뒤로 볼을 보냈다.
[막심 코지엘로가 뒤로! 이번 시즌에는 유독 침착하게 플레이하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간혹 급발진하는 경우가 있지만, 막심 코지엘로는 코치진의 보살핌 속에 최대한 그 부분을 억눌렀다.
그런 그의 급발진을 필드에서 잡아주는 선수는 메이슨 브라이튼.
첼시가 33-34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려온 선수로 2부 리그 출신이지만, 뛰어난 빌드업 능력으로 첼시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였다.
[첼시의 중원에서 이 선수가 보여주는 안정감은 뛰어납니다.]
[볼 보호 능력은 첼시를 이번 시즌 3위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퍼—억.
그는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몸싸움을 견뎌내고 볼을 발바닥으로 끌었다.
그리곤 빠르게 전방 상황을 살폈다.
‘오른쪽으로 균형이 옮겨간다.’
그의 시야는 정확히 아스날의 빈 곳을 찾으며 패스를 뿌렸다.
첼시의 주공격 루트는 측면을 이용한 속공 전술이었다.
막심 코지엘로가 공격 중심을 잡아준다면 측면에서는 발 빠른 윙어들이 계속해서 공간을 노렸다.
[하비 모레노-! 사울 키르키치를 제치고 안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골대 앞.
첼시는 골을 넣기 위해.
아스날은 골을 막기 위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채, 선수들이 골대 앞으로 몰렸다.
그때, 하비 모레노가 컷백을 찔렀다.
‘기예르모!’
스트라이커 기예르모 다린에게 가는 패스.
데릭 레드먼드가 그를 마크하고 있었지만, 기예르모 다린은 순간 스피드로 마크를 따돌리며 볼을 받았다.
[득점 기회를 잡은 첼시-!]
기예르모 다린은 퍼스트 터치로 볼을 잡아놓은 뒤, 빠른 템포로 슈팅까지 이어갔다.
[한순간에 데릭 레드먼드를 제치고-!]
정확하게 니어 포스트를 노린 슈팅.
그대로 들어가는 줄 알았지만.
툭.
슈팅 경로에 나타난 다리에 걸려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어딜.”
슈팅을 막은 건 데릭 레드먼드였다.
넘어지면서도 볼을 걷어내는 그의 집념에 기예르모 다린은 헛웃음을 지었다.
‘빈틈이 안 보여.’
아스날의 수비는 항상 느끼는 거였지만, 뚫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오늘은 이따금 보였던 빈틈마저도 전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데릭!”
“…레이턴, 멍청하게 있지 말고 사이드에서 오는 녀석이나 경계해.”
“네!”
“실수하지 말고, 너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져.”
“알겠습니다! 보스!”
틈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스날의 수비 듀오가 보여주는 호흡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었으니까.
* * *
“이것들이!”
“좀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이게 반칙이 아니라고요?”
“제발! 저런 건 잡아줘야지! 안 잡아주면 뭘 잡겠다는 거야!”
경기가 치열한 나머지 선수들의 충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주심의 휘슬에 따라 양 클럽 선수들과 팬이 짓는 표정이 실시간으로 TV를 통해 중계됐다.
20분.
30분.
양 클럽은 공격력에 자신 있어 하는 클럽답게 서로의 골문을 집요하게 노렸다.
뻐---엉!
[막심 코지엘로의 패스를 기예르모 다린이 원터치로 처리-!]
[아!!! 하지만 다비드 바르트라의 반응이 빨랐습니다! 선방으로 위기를 넘기는 아스날!]
기예르모 다린은 어떤 자세에서든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현재 리그에서 36골을 집어넣으며 유지우, 디에고 로시와 같이 프리미어리그 3대장으로 불리는 선수.
디에고 로시 다음으로 아르헨티나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그의 퍼포먼스에 첼시 팬들의 엉덩이는 좀처럼 의자에 앉지 못하고 떠 있었다.
- 기예르모! 기예르모!
첼시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득점을 원했다.
그들에 맞서는 아스날은 유지우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잦은 스위칭을 보여주며 첼시 진영에 균열을 만들었다.
타다다다닷.
‘…유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첼시 감독은 불안한지 라인을 서성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촤—악!
때마침 좋은 타이밍에 태클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유지우는 급정지한 뒤, 드래그 백으로 볼을 지켜냈다.
그리곤.
툭.
전혀 예상하지 못한 힐패스로 첼시 수비진을 당황하게 했다.
드리블해서 중앙으로 올라올 줄 알았는데 오른쪽 측면으로 패스를 보낸 것이었다.
[유지우 선수가 댄 그랜트를 끌어당기면서 열린 오른쪽 공간! 그곳에는 어느새 카를로스 로호가!]
유지우와 호흡을 맞추며 오른쪽 공격력을 한층 올려준 선수.
그의 발아래로 간 패스는.
뻐---엉!
곧바로 크로스가 되어 골문 앞으로 올라왔다.
아드리안 로마오가 쇄도하며 머리를 가져다 댔다.
[그대로 헤디이이이이잉!!!]
까—앙!
살짝 빗맞았는지 골대를 맞고 나오며 골키퍼의 품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게 크로스바를 맞고 떨어집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쉬워하는 아드리안 로마오! 좋은 기회였지만, 정말 아쉽습니다!]
전반 종료까지 이러한 패턴이 반복됐다.
양 팀은 서로의 골문을 집요하게 노렸고, 기예르모 다린과 유지우는 지켜보는 팬들의 기대감에 충족시켜주듯 눈이 즐거운 플레이를 보여줬다.
삐익-! 삐익-! 삐---익!
마지막으로 유지우의 중거리 슈팅이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며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양 클럽이 나란히 골문을 위협하며! 치열했던 전반전이 종료됐습니다!]
[0 – 0! 오늘 경기력을 보고 있으니, 선제골이 결승 골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아스날 0 – 0 첼시.
런던 더비의 전반전은 무승부로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