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9화
아스날 vs 맨체스터 시티.
프리미어리그 정상 대전 당일.
원정 경기에 앞서 유지우는 나갈 준비를 했다.
“아들, 죽은 먹고 가야지.”
1층으로 내려오자 서설희가 죽이 든 그릇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경기 끝나고 먹을게요.”
“한 입만 응? 부담 가지 않을 만큼 곱게 갈았어.”
“알았어요.”
서설희의 부탁에 유지우는 죽을 한 숟가락 먹고 집을 나섰다.
밥을 먹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민하는 한숨을 쉬었다.
“쟤 저 버릇 언제 고칠까요?”
경기 당일만 되면 유지우는 아침부터 물만 마시고 나머지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
그나마 유한우가 만든 특제 죽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것조차 안 먹어 가족들의 걱정이 늘었다.
“그러게 말이다.”
다만 그들은 그 같이 생각할 뿐,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유지우가 겉으로 표현을 안 할 뿐이지, 그만큼 기록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점심 먹고 출발이죠?”
“차 막힐 수도 있으니까 일찍 가야지.”
“아빠는 바로 경기장으로?”
“오전 장사만 하고 오후에 같이 갈 거야.”
두 모녀는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었다.
서설희는 유지우가 먹다 만 죽 그릇을 하염없이 바라봤지만, 유민하는 그 그릇에 든 죽마저 다 먹어 치웠다.
“지우 저렇게 안 먹어도 메디컬 팀이 다 관리해주잖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침을 먹지 않아도 팀 메디컬 코치들이 유지우의 영양을 관리해주는 덕분에 경기를 뛰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경기인만큼 밥을 먹고 힘을 냈으면 했다.
“넌 괜찮아?”
그 마음을 몰라주는 딸을 골려주려고 서설희는 슬쩍 농담을 던졌다.
“뭐가요?”
“이번에도 지우가 이기면 시티는 영원한 2인자가 되잖아.”
국을 먹던 유민하의 손이 멈칫했다.
“가, 갑자기 왜 그런 얘기를 꺼내요!”
“시티 팬들한테 미안하잖니, 우리 아들이 너무 잘나서.”
“…저도 지우 응원해요.”
“디에고를 더 응원하는 건 아니고?”
“아니에요! 지우가 있는 아스날이 무패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잖아요. 여기서 응원 안 하면 가족도 아니죠.”
딸의 반응이 좋아 하루에 한 번 놀리는 게 일상이었다.
더 놀렸다가는 삐질 우려가 있으니, 그만하고 다른 주제를 꺼냈다.
“다빈이랑 주현이는? 곧 도착하는 거 아니야?”
“한 시간 뒤에 도착이라 제가 공항으로 마중 나가면 돼요.”
오늘은 오랜만에 유민하의 친구들이 영국에 모여 직관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어제 왔으면 피곤하지도 않았을 텐데.”
“다빈이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죠.”
“다빈이는 쭉 쉬는 거지?”
“대회 끝났으니까 한 달은 쉴 수 있대요. 그래서 런던에서 일주일 정도 시간 보낸다고 했고요.”
“집이 북적이겠네.”
“호텔에서 지내도 되는데.”
“지우가 부탁했잖아, 왜 쓸데없는 돈을 쓰냐고.”
“그 녀석은 엄마 닮아서 오지랖이 넓어요.”
시간은 흘러 점점 경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맨체스터 거리의 인파는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급격히 늘어갔다.
영국 사람만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온 축구팬들도 여럿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곳곳에 경찰병력들이 배치됐고 잠시 후, 도로에 아스날 원정 버스가 나타났다.
삐---익!
“거기! 버스에 다가가지 마세요!”
사람들이 몰리자 경찰들이 버스 근처에 붙어 밀착 경호를 했다.
맨체스터 시티 팬들이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몰랐으니까.
그러자, 맨체스터 시티 팬들과 건너편 길가에 있던 아스날 팬들이 원정 버스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버스 안에 있는 선수들은 그 장면을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유.”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던 유지우에게 옆에 있던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에너지바를 내밀었다.
“또 아침 안 먹고 왔지?”
“난 괜찮아.”
“내가 뭐라고 했어, 밥 안 먹고 오면 이거라도 먹으라고 했잖아.”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잔소리는 엄청났다.
엄마보다 더 쏟아부었다.
“알았으니까 줘.”
“진작에 그럴 것이지.”
더 듣기 싫은 나머지 유지우는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내민 에너지바 하나를 다 먹었다.
씩.
웃는 크리스티안 페레스를 보고 유지우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나탈리아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알았어.”
“넌 나탈리아한테 잘하고.”
“매일 여왕처럼 모시고 있다.”
에너지바는 시중에서 파는 게 아니었다.
크리스티안 페레스의 아내인 나탈리아가 직접 수제로 만든 영양바였다.
경기 날에 유지우처럼 음식을 잘 못 먹는 크리스티안 페레스를 위해 간편식을 만든 거였다.
그걸 거의 경기마다 유지우도 얻어먹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너희 아버지한테 간편식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
“…죄송해서 그러지, 나 때문에 만든 죽도 잘 안 넘어가는데.”
작년까지는 특제 죽도 잘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번 시즌은 그것도 잘 넘어가질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부담감이 쌓였네.”
부주장이 된 시즌이기도 하고 아스날의 무패 행진, 최초의 트레블, 공격 포인트 100개.
이 모든 것들이 점점 가까워져 오자 부담감이 심해진 거였다.
“근데 넌 그 부담감 잘 이겨낸다?”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거야.”
“…….”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부담감에 짓눌려 땅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거든.”
그의 시선이 창밖에서 환호하는 팬들을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었다.
저 환호가 영원하길.
그는 발롱도르를 받고 최고가 됐음에도 여전히 부담감과 싸우고 있었다.
“유.”
“응?”
크리스티안 페레스가 부르자 유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그런 유지우의 입에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어줬다.
“잡생각이 많을 때는 단 거 먹어.”
“…….”
“네가 느끼는 부담감이 어떤 건지 난 감히 예상조차 못 해.”
“…….”
“그래도 한마디 해주자면, 넌 잘하고 있다는 거야. 누구보다도.”
진심 어린 그의 말에 유지우는 미소를 지었다.
“넌 잔소리가 심해.”
“너한테만 그러는 거야.”
크리스티안 페레스는 오지랖이 많아 동료들을 잘 챙겼다.
근데 유독 많이 챙기는 게 유지우였다.
파트너이자 에이스 듀오로 호흡을 맞추는 친구니, 마음이 더 가는 거였다.
“어쨌든! 네 말버릇대로 늘 그랬던 것처럼! 이겨보자.”
“고마워.”
“내가 더 고맙지.”
에티하드 스타디움.
그곳에 양 클럽 선수단이 모두 도착했다.
* * *
각 직종의 셀럽들도 대거 참석했다.
곳곳에는 태극기를 흔드는 한국 팬들과 너튜버들도 있었다.
“이 열기에 직관하지!”
“시작 전부터 미쳤다.”
한국 팬들은 이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프리미어리그 정상 대전의 티켓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 와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곳.
홈인 맨체스터 시티 선수단이 먼저 워밍업을 하러 나왔고 뒤이어 아스날 선수단도 필드로 들어왔다.
스윽.
필드 위에 있는 모든 카메라가 양 클럽 선수단을 찍었다.
가장 큰 비율은 유지우와 디에고 로시.
양 클럽의 에이스들이었다.
뻐---엉!
두 선수는 침착하게 각자의 방식대로 몸을 풀었다.
묘기를 부리는 디에고 로시.
정해진 틀대로 몸을 푸는 유지우.
상반된 두 선수의 모습은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까---앙.
몸 푸는 게 마무리될 때쯤.
유지우는 늘 하던 패턴대로 골대를 맞추기 시작했다.
오른발 10번.
왼발 10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골대를 맞추는 것을 보고.
- 오오오오오!!!
관중들은 감탄했다.
그리고 과르디올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컨디션이 좋군.’
감독으로서 상대 에이스 컨디션 체크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컨디션이 항상 좋은 게 문제였지만.
“몸이 가벼워, 스텝을 딛는 것도 빠르고.”
그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 아스날을 자세히 분석했다.
미리 아스날의 공격에 대비해 전술을 세워뒀지만, 경기 시작 전 워밍업에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해 즉각적으로 전술에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후보들은.’
과르디올라는 조금도 아스날 선수들의 워밍업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아주 작은 틈새라도.
공략할 공간을 찾으려고 집중했다.
30분 뒤.
먼저 워밍업을 마친 건 원정팀인 아스날이었다.
그들은 터널을 통해 들어갔고, 유지우는 들어가다 말고 시티 진영을 쳐다봤다.
씩.
눈이 마주친 두 선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를 지었다.
비록 적이지만, 필드 밖에선 둘도 없는 친구 사이.
누가 이기던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눈인사를 한 거였다.
유지우 vs 디에고 로시.
세계 최고의 라이벌리를 자랑하는 두 선수의 맞대결에 온 시선이 집중됐다.
워밍업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에티하드 스타디움 6만 석이 가득 채워졌다.
* * *
맨체스터 시티 라커룸 안.
선수들은 장비를 점검하며 경기에 나갈 준비를 했고 과르디올라는 그런 선수들에게 전술을 얘기했다.
“아스날의 공격을 통제하는 건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실패했으니까.”
선수들은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난 오늘은 달라지길 원한다. 우리는 최고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미친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을 모두에게 증명해야 할 때가 온 거다.”
아스날전을 준비하면서 했던 수많은 훈련.
비디오 분석은 기본 옵션으로 들어간 지난 여정은, 선수들의 머리만이 아닌 몸에도 저장되어 있었다.
“우리의 우승은 아직 없어진 게 아니다. 아스날과 승점 차이는 6점, 이론적으로 남은 경기에서 뒤집을 가능성이 있지.”
1위 아스날 32전 27승 5무 [86점]
2위 맨체스터 시티 32전 25승 5무 2패 [80점]
사실 맨체스터 시티도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그보다 위에 아스날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
그것을 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지난 3년, 우리는 아스날을 넘지 못했다. 늘 2위에 머물며 그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구경해야만 했지.”
선수들은 2위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
오로지 프리미어리그 우승뿐이었으니까.
“달리고 또 달려라!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 승리를 가져와라!”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준 뒤.
“디에고.”
“네.”
그의 마지막 말은 에이스에게 향했다.
“내가 전부터 너에게 한 말을 기억하나?”
“네.”
“무슨 말이지?”
“승리를 위해서는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고요.”
“맞아, 맞는 말인데 다른 말도 있었다.”
디에고 로시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던 중.
과르디올라가 먼저 말했다.
“너를 볼 때면 난 메시를 떠올린다.”
바로 리오넬 메시.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감독하던 시절 맡았던 최고의 선수이자 지금도 향수에 젖게 하는 이름이었다.
“플레이나 임팩트나 모든 면이 닮았지만, 그 녀석의 마인드와 너의 마인드가 많이 닮았거든.”
“…….”
“패배한다고 주눅 들지 않고 죽을 듯이 노력하는 건,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야.”
디에고 로시는 유지우 바로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안주할 생각이 없었다.
매일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다음에는 꼭 자신이 조명을 받기 위해서.
“오늘이 그 날이다. 패배를 교훈 삼아 승리를 거머쥘 때.”
“네.”
“가서 유를 짓눌러주고 와라!”
* * *
잠시 후.
선수들은 터널에 모였다.
양 클럽 모두 주전으로 구성된 선발진.
촬영팀은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압박감을 느꼈다.
‘분위기가 미쳤어.’
선수들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동료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게 다였는데, 압박감이 엄청났다.
정상 대전.
사람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수들은 주심의 뒤를 따라 필드로 입장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귀를 울리다 못해 땅을 울리는 함성.
선수들은 악수한 뒤.
각자 진영으로 갔고 포지션을 잡고 섰다.
후우.
심호흡하던 유지우는 전방을 바라봤고 디에고 로시와 눈이 마주쳤다.
당장 어제도 연락했던 친구.
이제는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이.
삐----익!
시작 휘슬이 울리며 선수들의 발이 떨어졌고.
리그 33라운드.
아스날 vs 맨체스터 시티.
우승의 향방을 결정지을 프리미어리그 정상 대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