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44화 (344/383)

제344화

아스날 1 – 0 레알 마드리드.

1점 뒤진 채로 전반전을 끝낸 레알 마드리드 라커룸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울, 그 자식은 진짜 지겹도록 달라붙더라.”

유니폼이 땀에 흠뻑 젖는 등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흔적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중앙도 견고한데 사이드도 들어갈 틈이 없더라.”

“간신히 기회를 만들더라도 그걸 막아내니까 점점 답답해지고.”

그리곤 전반전에서 아쉬웠던 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곧이어 라커룸으로 루카 모드리치 감독이 들어왔다.

“전반전 경기력은 너희도 알다시피 최악이었다. 미리 연습한 것을 하려고 하는 건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

분명히 레알 마드리드는 아스날전을 준비하면서 연습한 전술이 있었다.

그것이 전반전에 나오긴 했으나 완벽하지 않았다.

그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과 다름없었다.

루카 모드리치는 가장 먼저 그 부분을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페데리코, 너의 역할이 뭐라고 했지?”

“수비와 공격을 잇는 기점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아, 네가 해야 할 역할은 더 많이 뛰는 거야. 너의 활동량으로 공격과 수비… 모든 부분에서 아스날을 흔들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벨, 왜 골대 앞에서 머뭇거리는 거지? 단 1초라도 망설이는 순간 골을 넣지 못하니까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골을 노려.”

“네.”

루카 모드리치는 일일이 선수들에게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설명해줬다.

후반전에 사용할 전술 설명까지 끝나고 나서야 루카 모드리치는 선수들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요새 축구팬들이 아스날을 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축구의 신이 보살피는 팀이라고 하죠.”

계속되는 무패 행진.

33-34시즌 리그 무패 우승이 유력한 그들을 두고 팬들은 신에게 보살핌을 받는 클럽이라고 했다.

“그래, 아스날은 그만큼 믿기지 않는 성적을 내고 있고 우리의 홈 무패 기록을 뛰어넘었지. 하지만 난 말이다. 상대가 신에게 사랑받는 클럽이라도 반드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1%, 단 1%라도 90분 동안 죽을힘을 다해 그 1%를 찾는 게 프로가 해야 하는 행동이다. 그게 원정길을 함께 온 팬들에게 보여줄 예의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선수들은 일제히 루카 모드리치를 쳐다봤다.

프로로서의 마음가짐.

그들은 그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아야 했다.

지금도 본인들의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1차전에서 패배하면 기세를 아스날에게 넘겨주는 거다. 2차전이 우리 홈이라고 해도 아스날의 기세를 생각하면 1차전에서 패배는 절대 안 돼. 이 점을 명심하고 최선을 다해 승리를 가져와라.”

* * *

- 마드리드! 마드리드!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모인 원정석에서는 후반전 시작부터 응원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제라르-! 그냥 기회가 오면 때려!”

“아오! 프랭크 저 멍청이는 대체 슈팅이 왜 저렇게 뜨는 거야!”

“팬 서비스는 필드 밖에서 하라고!!!”

필드 안과 밖.

애슈버턴 그로브에 없는 마드리드 팬들까지 골이 간절했다.

그들의 간절함 속, 10분은 금세 흘러갔다.

초반부터 맹렬하게 밀어붙이던 레알 마드리드가 잠깐 주춤하자, 흐름은 아스날에게로 넘어왔다.

“가자-!”

중앙에서 볼을 조율하는 선수는 크리스티안 페레스였다.

그는 유려하게 볼을 터치하다가, 중앙으로 올라오는 선수에게 패스를 내줬다.

[다시 중앙으로 오는 유지우 선수-! 레알 마드리드의 타이트한 압박을 활동량으로 벗어나고 있습니다!]

후반전에는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이 유지우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나 유지우는 그 순간에도 활로를 찾았다.

중앙으로 올라와 볼을 받은 뒤.

스르르르륵.

물 흐르듯 부드러운 동작으로 돌아서서 정면을 응시했다.

1초.

2초.

찰나의 순간.

선수들이 어떤 포지션을 잡고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놓고선.

뻐—엉!

생각한 길 위로 패스를 뿌렸다.

[오른쪽으로 오버래핑하는 카를로스 로호-! 빠릅니다! 후안 나바스가 유지우 선수를 경계하는 순간! 그 틈을 파고듭니다!]

비어있는 곳으로 달려가던 카를로스 로호 앞으로 정확하게 향한 패스.

후안 나바스가 따라가서 막으려고 했으나.

뻐—엉!

한발 먼저 크로스가 올라갔다.

아드리안 로마오가 센터백에 막혀 움직이지 못할 때.

크로스는 반대 사이드로 흘렀다.

궤적만 보면 마틴 그라임스를 겨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레알 마드리드의 착각이었다.

카를로스 로호가 오버래핑을 했던 것처럼.

타다다다닷-!

왼쪽 측면에서 오버래핑한 선수가 마틴 그라임스의 뒤를 파고들었다.

[여기서 사울 키르키치가!!! 그대로 헤딩-!]

마틴 그라임스의 라인 브레이킹으로 흔들린 수비의 허점을 노린 약속된 플레이.

사울 키르키치가 이마에 맞춰 니어 포스트로 꽂아버린 헤딩은.

까—앙!

아쉽게도 골포스트에 맞고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게! 이게! 이게 왜 골포스트입니까!!! 사울 키르키치의 회심의 헤딩이 골망을 흔들지 못합니다!]

[근데 쇄도하는 것 좀 보십시오. 레알 마드리드가 전혀 대비하고 있지 못했어요.]

이건 폴 사르가 준비한 공격 전술 중 하나였다.

Y.M.C.A라인이 마드리드 수비진을 흔든 사이에 양 윙백들이 공격을 만드는 전술.

하지만 마무리가 되지 않아 폴 사르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워했다.

* * *

축구에서의 흐름은 90분 내내 끌고 가는 게 불가능했다.

한 번 가져오면 한 번 내줘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아스날의 흐름이 지나가자 레알 마드리드는 귀신같이 흐름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들은 동점 골을 넣기 위해 혈안이 됐다.

60분.

빌드업을 만드는 과정 속.

제라르 레오의 시선은 계속해서 아스날의 진영을 살폈다.

[마드리드가 신중하게 볼을 돌리면서 공간을 찾습니다!]

몇 차례 공격이 오간 뒤.

제라르 레오의 눈이 길을 찾아냈다.

‘…가보자.’

그리고 타이밍을 잡고선 찾아낸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페데리코!”

제라르 레오는 순간 반응속도로 마테오 크리스단테를 한 걸음 차이로 따돌렸다.

그 덕분에 빈 곳이 열리자, 페데리코 실바는 타이밍을 맞춰 그의 발아래로 패스를 줬다.

‘멈추지 말고 더 가야 해.’

무언가를 하려면 페널티 에어리어와 거리를 좁혀야 했다.

뒤에서는 무섭게 쫓아오는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있었기에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만 했다.

한 걸음 차이가 좁혀지지 않게.

타다다다닷-!

드리블하는 그의 눈에 들어온 이는 두 사람이었다.

그의 패스를 기다리는 아벨 페르난데스와 그를 마크하는 데릭 레드먼드.

정확히 그는 두 사람의 발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발이 어떤 방향으로 스텝을 딛는지 보고 그에 따라 판단을 내리려는 것이었다.

‘지금이다…!’

순간, 데릭 레드먼드의 스텝이 지면을 딛는 순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멈추는 듯한 찰나.

다른 이는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이 순간을 활용하면, 아벨 페르난데스가 수비수보다 한층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뻐—엉!

판단이 내려지는 즉시.

그는 마법 같은 패스를 뿌렸다.

[제라르 레오가 전방으로 패스를 뿌립니다-! 아벨 페르난데스가 데릭 레드먼드의 마크를 받고 있는데요!]

데릭 레드먼드는 그 패스의 방향을 보고 아벨 페르난데스를 마크하려 했으나.

탓.

아벨 페르난데스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볼을 잡아냈다.

[슈팅 기회를 잡은 아벨 페르난데스! 데릭 레드먼드가 바짝 붙는데요!]

그는 발바닥으로 볼을 잡고선 바디 페인팅으로 데릭 레드먼드의 균형을 흔들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데릭 레드먼드의 균형이 쏠리는 순간.

아벨 페르난데스는 반대 방향으로 볼을 툭 차며 볼만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냈다.

‘됐다.’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는 그에게는.

철렁.

볼만 지나갈 작은 틈새면 충분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골! 고오오오올! 아벨 페르난데스! 라리가의 골 사냥꾼이 아스날의 골문도 사냥합니다!]

[저런 디테일한 동작이 아벨 페르난데스의 장점이죠! 데릭 레드먼드도 속는 순간! 실점을 직감했을 겁니다!]

아스날 1 – 1 레알 마드리드.

균형의 추가 맞춰진 시간은 64분이었다.

* * *

“이걸로 동점이 됐군, 이렇게 되면 아스날이 쫓기는 입장인 건가?”

“무승부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다음이 마드리드 원정이라는 게 마음이 쓰이겠지.”

관중석에 있던 전문가들은 냉정한 시선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동점이었던 만큼 양 클럽의 상황이 비슷해 보였으나 전문가들의 시선에선 그렇지 않았다.

‘홈에서의 승리.’

이것이 토너먼트에서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아스날은 오늘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2차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 와아아아아아!!!

동점이 되자 더욱 치열해진 경기.

양 클럽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는 가운데 관중들의 함성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

.

.

70분.

[아벨 페르난데스가 살짝 옆으로 꺾어준 보오오오올! 그것을 논스톱으로 처리하는 데니스 클로스터만-! 아아아! 볼이 높이 뜹니다!]

75분.

[마드리드의 뒷공간이 열렸습니다! 마테오 크리스단테가 놓치지 않고 롱패스-! 아드리안 로마오가 들어가면서 헤딩으로 떨궈준 볼! 크리스티안 페레스 슈우우우웃! 하지만 오른쪽 포스트를 벗어납니다!]

80분.

[여기서 프리킥을 내주고 마는 아스날! 키커로 제라르 레오가 서는데요!]

[제라르 레오의 슈우우우웃! 하지만 다비드 바르트라의 선방! 그리고 레이턴 버트란드가 잽싸게 걷어내며 위험지역 밖으로!]

공방전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1 – 1 이라는 스코어.

한 골만 넣으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이 죽어라 뛰는 동기부여가 됐다.

“빠르게!!!”

85분.

기회를 잡은 건 아스날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오른쪽 측면을 이용해 크로스 플레이를 했으나 아스날은 그것을 막아냈고, 볼의 소유권을 가져와 역습을 전개했다.

[카이 베일로브가 흘러나온 볼을 잡고 오른쪽으로! 유지우 선수가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와 볼을 잡습니다!]

투---욱!

유지우는 압박하는 후안 나바스의 비어있는 옆공간으로 볼을 길게 차 놓고 달렸다.

유지우의 가속에 후안 나바스는 깜짝 놀라며 따라갔다.

‘이 미친놈은 무슨 로봇이냐고!!!’

좁힐 듯 좁혀지지 않는 거리.

타다다다닷-!

전반부터 쉬지 않고 뛴 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속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찌릿.

그러다가 후안 나바스는 허벅지에서 경련이 왔다.

그는 그것을 참고 이를 악물고 쫓아가 보았지만.

이미 거리는 두 걸음에서 네 걸음으로 벌어졌다.

[측면을 연 유지우 선수-! 멈추지 않고 중앙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센터백 디에고 산체스가 압박하려다가 빠른 방향 전환에 반 박자 늦고 말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 라인이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디에고 산체스가 유지우 선수를 마크하려다가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지친 나머지 작은 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스윽.

유지우는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하려는 아드리안 로마오를 쳐다봤다.

그 시선으로 인해 마드리드 수비라인은 섣불리 나오지 못했다.

[어? 아무도 붙어주는 선수가 없습니다! 크리스티안 플리크의 백업은 늦고!!!]

[기회입니다! 기회! 여기서 골만 넣으면 아스날이 승리할 확률이 커지는데요!]

시선만으로도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잡아두는 것은 유지우에게 쉬운 일이었다.

모두가 그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아이 페인팅으로 인한 작은 반응 차이는 곧 기회로 이어졌다.

뻐---엉!

아드리안 로마오가 들어가는 척 수비수를 끌어당긴 덕분에 슈팅할 공간이 비어있었다.

그 공간을 본 유지우는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슈우우우우우우웃!]

레이저처럼 뻗어가는 슈팅은 골키퍼의 손을 피해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골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동시에 아스날 선수들은 고개를 들며 기뻐했다.

- 와아아아아아!!!

두 클럽 선수들의 상반된 모습에 스타디움은 아스날 팬들이 일으키는 붉은 파도로 뒤덮였다.

[균형을 깨트리는 골을 터트리는 유지우 선수-! 이걸로 총 94개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며 자신의 기록인 93개 공격포인트 기록을 넘어섭니다!]

[100개까지 남은 건 단 6개! 6개만 더 기록하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86분.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나온 골에 아스날이 기뻐할 무렵.

“5분 정도 남았나?”

“추가 시간 포함하면 7분가량.”

“얼마 없군.”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허탈한 마음을 숨기고 전광판을 바라봤다.

남은 시간만 놓고 보면 이 골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때.

짝.

제라르 레오가 선수들을 다독였다.

“아스날이 이런 클럽이라는 건 다 알고 있었잖아?”

“...... 그렇지.”

“결국에는 집중력 싸움이야. 아스날의 홈이라고 기죽을 필요 없어! 우리가 준비한 것! 그것만 보여줄 생각으로 뛰어! 한 골 넣을 시간은 충분해!”

경기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축구는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스포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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