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7화
5월 20일.
월드컵까지 남은 날은 14일이었다.
이미 한국에서는 선수들이 모여 훈련을 진행 중이었고, 유지우와 김재민만 합류하면 됐다.
【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장, 유지우! 합류는 언제? 】
국내에 여러 기사가 보도되던 시각.
유지우는 집 마당에서 느긋하게 쉬는 중이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따뜻한 햇볕.
모든 것이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해줬다.
“또 누워있냐?”
가만히 쉬고 있는데 유민하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누나들이랑 놀러 안 나갔어?”
“슬슬 나가려고, 그나저나 밥 먹고 온종일 그러고 있으면 안 지겨워?”
“즐겁지.”
“…참, 이해를 못 하겠네.”
“얼른 놀러나 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거든, 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들어오면서 사 올게.”
“딱히?”
“그러면 대충 사 온다?”
“알아서 사와.”
그 뒤에 유민하는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나섰다.
이미 여러 번 다녔던 거리지만, 외국만이 주는 그 감성이 좋아 세 사람은 자주 나와 돌아다녔다.
세 사람은 쇼핑도 하고 관광지도 돌아다니며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자,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 유의 누나분이시군!”
때마침 찾아간 식당에서 유민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간혹 이렇게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최근에 그 비율이 늘어났다.
“유의 누나분이 오셨다면 아주 스페셜한 메뉴를 줘야지. 헤이! 맥클린!”
사장인 남성이 손짓하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미인 세 분이 드시는 거라면 이건 어떻습니까?”
사장이 가리킨 곳에 적힌 메뉴를 보는데.
‘히어로 유?’
동생의 이름으로 된 메뉴가 있었다.
“월드컵 기간에만 한정판매를 할 메뉴입니다. 어떻게 이걸로 준비해드릴까요?”
“네, 그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가격은 무료니까 편하게 즐기다가 가시면 됩니다!”
사장이 가고 세 사람은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던 중.
가게 안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 유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났잖아!”
“다음은 어떤 걸 틀어줘?”
“리그 32라운드! 첼시랑 한 거!”
“크으, 뭘 아는군!”
그들은 TV에서 나오는 아스날 경기의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유지우의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만.
“…민하야, 지우 이름으로 된 메뉴도 있고 지우에 미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나도 놀라는 중이야.”
아스날 팬들이 유지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런던에만 오면 그 열기가 피부를 뚫고 심장까지 전해지니까.
그런데 트레블을 이루고 난 뒤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히어로 유라는 이름의 메뉴는 코스 요리였다.
에피타이저로 감자빵이 나왔고 그다음으로 샐러드, 달짝지근한 소스에 버무린 새우튀김.
메인으로는 스테이크에 축구공 모양으로 올려진 소스.
빅이어 모양으로 디자인된 가니쉬가 나왔다.
“와.”
보자마자 감탄이 나올 만큼 디자인에 힘을 쓴 것이 보였다.
“부디 맛있게 드시기를.”
맛도 훌륭했다.
굽기의 정도, 소스와의 합,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즐거워 세 사람은 금방 먹었다.
“여기 음식 괜찮은 줄은 알았지만, 더 맛있어졌다?”
“다음에 또 오자.”
세 사람은 후식으로 나온 디저트도 먹은 뒤에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유민하가 지갑을 열어 계산하려고 하자 사장이 종종걸음으로 나와 손사래를 쳤다.
“이미 계산되었습니다!”
“네? 전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요?”
유민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사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유가 플레이로서 가격을 지불했으니까요!”
그 대답을 듣고서 유민하는 멍해졌다.
그러자 뒤에서 손님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그럼! 아주 평생의 값을 지불한 거랑 마찬가지지!”
“유의 가족이면 우리 가족이지!”
“계속 계산하려고 하면 제가 대신할 겁니다!”
그래도 같은 요리사 입장인 유민하는 어떻게든 값을 지불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의 고집도 완고했다.
결국 마지막 승자는 사장으로 정해졌다.
“유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들은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동생의 위엄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 * *
월드컵이 코앞으로 오자 FIFA 측에서는 세계적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월드컵 홍보 영상을 촬영했다.
“오셨군요! 유!”
유지우는 런던에 있는 촬영장에 에이전트 차명훈과 함께 갔다.
“네, 반갑습니다.”
“전 촬영팀 총괄을 맡은 브래드 우튼입니다.”
“규모가 꽤 크네요?”
“그럼요, 회장님 측에서 최고로 멋진 퀄리티로 뽑아내길 원하셨거든요.”
“이거 고생하겠네요.”
“하하하-! 아닙니다, 촬영은 길어도 한 시간 안에 끝낼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오히려 제가 드려야죠!”
브래드 우튼은 FIFA 협회에서도 나름대로 입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 촬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유지우에게 설명을 해줬다.
“…이상이고 영상이 모두 나오면 다른 선수들의 영상하고 편집해서 함께 찍은 것처럼 나오게 할 생각입니다.”
“그런 처리도 가능해요?”
“요새 기술이 너무 좋아져서요. 지금 당장 유의 옆에 제라르 선수가 서 있는 걸 찍을 수도 있어요.”
웅성웅성.
그러던 중.
주변이 소란스러운 게 느껴졌다.
촬영팀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준비하면서 유지우가 있는 쪽을 힐끔거리며 계속 쳐다봤다.
그것을 본 브래드 우튼은 활짝 웃으며.
“당신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유를 만난 건 좋겠지만! 무리한 부탁은 하지 말아주세요!”
“네!”
“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인이나 사진 촬영은 홍보 영상 촬영이 다 끝나면 가능합니다.”
“아이고! 이거 감사합니다!”
촬영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FIFA 촬영팀은 전문적이었다.
단숨에 스튜디오 하나를 빌려 그곳에 세트장을 만들었고 하루도 되지 않아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좋습니다! 더 활짝 웃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네! 지금처럼요!”
촬영은 순조로웠다.
여러 광고 촬영을 한 경험이 있어서 유지우는 피디가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다음은!”
한 시간 정도 걸릴 줄 알았던 촬영은 4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확실히 세계적인 선수들을 찍을 때가 편하긴 하네요.”
“그런가요?”
“예, 아무래도 그 정도 명성이 있는 선수들이면 카메라에 익숙하니까요.”
그렇게 촬영팀이 정리에 들어갈 때, 유지우의 발아래로 볼이 하나 굴러왔다.
아까 촬영할 때, 미처 치우지 못한 볼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스태프가 빠르게 와서 치우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투—웅.
“제가 치우면 되죠.”
유지우는 트래핑을 하다가 멀리 있는 정리 바구니 속으로 찼다.
볼이 그대로 쏙 안으로 들어가자 촬영팀은 모두 놀랐다.
브래드 우튼은 차명훈에게 다가갔다.
“유가 평소에 저런 것을 많이 합니까? 익숙해 보이네요?”
“아, 묘기를 부리긴 하죠. 대표적으로 워밍업 때, 크로스바랑 티키타카하는 거요.”
“…그건 충격이었죠.”
“저것도 놀랍죠?”
“네.”
“유는 생활하는 곳에서도 최대한 훈련을 하려고 해요. 저런 부분은 킥의 감각을 살리려고 하는 거죠.”
“저 자리에 올랐는데도 멈추지 않네요. 유는.”
그랬다.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 명성을 얻어도 유지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차명훈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 현재.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으나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늘 노력했고.
늘 성실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저 장면도 쓰지.”
고민하던 브래드 우튼의 말에 스태프 한 명이 대답했다.
“하지만 스토리 라인이 다 정해져 있어서 변경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흐음.”
그 말이 맞았다.
월드컵 홍보 영상의 스토리와 컨셉은 다 정해져서 섣부르게 장면을 변경시킬 수가 없었다.
그때 브래드 우튼의 머릿속을 맴도는 한 가지 생각.
“그러면 비하인드 영상은 어떤가?”
정식 영상으로 못 쓰면 다른 걸로 쓰면 되지 않나.
* * *
“3일 뒤에 귀국한다고?”
시즌 종료 후, 영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유지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쉬었고 이제 귀국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네.”
그래서 유지우는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폴 사르와 카페에서 만나 가볍게 티타임을 가졌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인데 긴장 안 되고? 네가 주장이잖아.”
“그런 거에 긴장했으면 트레블도 못 했죠.”
“하긴 네가 대회에 긴장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두 사람은 월드컵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이거 점점 사람이 몰리는군.”
“그러게, 집에서 만나자고 했잖아요.”
“가끔은 이렇게 바람도 쐬고 밖에서 보는 것도 재미있잖아.”
“그렇긴 하죠.”
“슬슬 갈까?”
“예.”
일어나기 전, 폴 사르는 유지우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조언을 해줬다.
“클럽에서 뛰던 것처럼만 하면 월드컵은 너의 무대가 될 거다.”
폴 사르는 기대가 됐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최고의 선수가 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낼 수 있을지.
.
.
.
다음날.
런던 히스로 공항.
유지우의 출국 날이 알려지자 공항의 인파가 몰려 마비 상태가 됐다.
“유가 출국할 때, 인터뷰를 받아준 건 드문 일이지?”
“예.”
“갑자기 취소할 가능성은?”
“없어요. 공항에서도 취재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줬잖아요. 확실해요.”
약속된 시간이 되자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왔던 사람들이 유지우를 보고자 몰린 모양이었다.
경호원의 도움으로 유지우는 간신히 취재진이 모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취재진에게 인사한 뒤, 약속된 자리에 서서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이루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스날의 레전드 반열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이름을 새긴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아직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꾸준하게 이어지면… 은퇴할 때쯤 레전드라고 불러주시겠죠?”
굉장히 겸손한 대답이었다.
실제로 아스날 팬 중, 모두가 유지우를 아스날의 레전드로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유의 동상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이미 계획해놨겠지!’
‘유를 타 클럽에 빼앗기면 안 돼.’
‘그는 우리 아스날을 구한 영웅이야. 레전드보다 더 위에 있어.’
지금도 유지우를 찬양하는 글이 클럽 커뮤니티에 올라올 만큼, 유지우는 아스날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수였다.
“엄청난 업적을 세우고 귀국해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월드컵을 치르게 됐습니다. 이러한 업적이 부담되지는 않으십니까?”
“오히려 든든합니다. 상대는 저를 더욱 견제할 거고 그렇게 되면 동료 선수들이 활약할 길이 열리기에 전 그것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입니다.”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는 건가요?”
“팀이 승리하기 위해서 미끼가 되라고 한다면 전 저에게 주어진 단 1분이라도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그의 태도에 기자들은 압도됐다.
세계 최고의 선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유! 마지막으로 월드컵을 앞두고 각오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질문을 들은 유지우는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월드컵은 모든 선수의 꿈과 같은 대회입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최선을 다해 제일 정상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당한 포부를 밝힌 유지우는 그렇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대의 아이콘.’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축구선수 1위.
그가 대한민국에 입국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와.”
인천국제공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발디딜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역대급 인파.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나라에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대피하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갓지우가 진짜 신이 되어서 돌아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