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5화
전반 30분이 지나갔다.
양 팀은 나란히 슈팅 수 4개를 기록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보여줬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팀들인데도 엄청나네.”
“1위가 무엇보다 중요하잖아.”
“하긴 지면 16강에서 프랑스랑 만나는데 무조건 이겨야지.”
두 국가는 16강 티켓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후보 선수들을 내보내며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해 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국이 역습을 전개하기 전에 반칙으로 끊어!”
“무리해서 전진하려고 하지 마! 템포를 늦춰도 돼!”
양 팀 감독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상대를 무너트려 전승으로 16강에 올라가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삐---익!
경기가 거칠어지며 휘슬은 쉴 새 없이 울렸고.
“헤이!”
선수들도 감정을 실어 항의했다.
그들이 흘리는 땀이 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대한민국 수비진이었다.
[수비에 성공하는 강현오 선수-! 김재민 선수가 옆에서 받쳐주니까 강현오 선수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수비에 관여해줍니다!]
[포백이지만, 스리백처럼 변화하고 강현오 선수가 살짝 올라가며 김우일 선수와 같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서 있는 장면이 많이 보입니다!]
주앙 달루트는 하나의 전술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많은 나라에서 한국의 전술을 분석할 것을 예상한 그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한 수를 늘 준비했다.
그 효과는 벨기에전에서 제대로 나타나는 중이었다.
“들어오지 못하게! 공간 비우지 말고!”
대한민국의 강한 수비에 벨기에가 공격력을 올리며 서서히 라인을 올렸다.
그리고 그 뒤를 노리는 건 유지우의 역할이었다.
그가 볼을 잡자.
“마, 막아--!”
벨기에 선수들은 일제히 당황했다.
그런데 그다음 유지우가 취한 행동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그는 드리블로 돌파하지 않았다.
뻐---엉!
이미 사이드에서 깊숙하게 올라가는 선수가 있었으니까.
[유지우 선수가 왼쪽으로 패스를 찔러줍니다! 강예수 선수! 강예수 선수가 받아서 마크하는 선수를 제치는데요!]
역습의 정석은 앞선 선수에게 빠르게 볼을 전달해주는 거였다.
그것을 잘 아는 강예수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타이밍을 잡곤 벨기에의 측면을 달리고 있었다.
볼을 잡고선 스텝 오버로 압박하는 선수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투—욱!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며 측면을 열었다.
뻐---엉!
그리곤 침투하는 조정후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조정후는 볼에 시선을 고정했으나.
‘…젠장!’
수비수들에게 밀려 위치를 빼앗겼고, 결국 볼의 소유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으아아아!”
골 기회를 놓친 조정후가 답답함에 소리를 질렀다.
아쉽긴 했지만, 고개 숙일 시간이 없었다.
“형, 포지션으로! 아쉬워하는 건 상관없는데 다리는 쉬지 마! 압박해야지!”
유지우는 선수들을 다독이며 다음 플레이에 집중했다.
* * *
전반 43분.
스코어는 0 – 0.
대한민국의 공격 상황에서 유지우는 여러 시도를 했지만, 모두 한 끗이 모자라 성공하지 못했다.
비록 실패에 그쳤으나 이는 벨기에 선수들에게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쟤는 대체 언제 멈추는 거야?”
그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필드 곳곳을 누볐다.
중앙, 사이드, 가리지 않고 뛰며 볼을 받아주고 패스를 찔러주며 벨기에의 뒷공간을 집요하게 노렸다.
‘유를 통제하지 않으면 결국에 오늘 경기가 힘들어지겠지.’
벨기에 감독도 그런 유지우를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유지우 선수가 다시 전방으로 로빙 패스를 넣어줍니다. 이때… 황우식 선수가 쫓아갑니다!!!]
전반전의 끝자락.
유지우의 발끝에서 결정적인 기회가 만들어졌다.
황우식은 마무리를 위해 강하게 때려보았지만.
[아아아아! 이게 골대를 넘겨버리고 맙니다!]
슛은 아쉽게 빗나가고 말았다.
나올 듯 나오지 않는 득점.
한국이 그렇게 공격에 실패하자 벨기에도 곧장 반격에 나섰다.
45분.
추가 시간 4분 중, 2분이 지나간 시점.
대한민국이 왼쪽 측면으로 공격 전개를 한 사이.
벨기에는 오버래핑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대 풀백의 빈틈을 노렸다.
타다다다닷.
그 공간을 노린 건 마루앙 카라스코였다.
발아래로 오는 패스를 길게 터치해놓고선 그대로 스피드를 살리며 치고 나갔다.
[놀라운 스피드의 마루앙 카라스코!!! 장기현 선수의 뒤늦은 백업이 돌파를 허용하고 맙니다!]
[이어지는 벨기에의 역습! 모든 선수가 올라오는데요!]
벨기에의 이 공격이 전반전의 마지막 공격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벨기에도 라인을 공격적으로 올려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살리고자 했다.
[김우일 선수가 중앙으로 방향을 바꾼 마루앙 카라스코의 앞을 막아서는데요!]
탓.
그를 본 마루앙 카라스코는 바디 페인팅으로 김우일의 타이밍을 빼앗고 왼쪽으로 치고 나가며.
뻐—엉!
한국 수비 밸런스가 무너진 틈에 패스를 찔렀다.
그 패스를 본 김재민은 몸을 날려 볼을 막으려고 했지만, 패스 속도가 빨라 아쉽게도 발이 닿지 못했다.
그대로 흐른 볼은.
철렁.
벨기에의 스트라이커가 침착하게 마무리를 지으며 오늘 경기 첫 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삐익-! 삐익-! 삐---익!
이후에 휘슬이 울리며 전반전 종료를 알렸다.
[여기서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아쉽게 1점 실점을 했지만, 괜찮습니다! 후반전에 충분히 뒤집을 수 있어요.]
대한민국 0 – 1 벨기에.
종료 직전에 뼈아픈 실점을 한 대한민국에겐 여러모로 아쉬운 전반전이었다.
* * *
대한민국 라커룸 안.
전반전을 끝낸 선수들은 앉아서 체력을 보충했다.
전반전에 실수한 부분을 되짚어보는 가운데, 주앙 달루트가 들어오자 라커룸은 조용해졌다.
“마지막에 실점하긴 했어도 좋은 움직임이었다. 다만, 우리가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게 된 요인은.”
쾅.
“득점력 부재다.”
작전판을 강하게 치며 가리킨 곳.
바로 최전방 스트라이커 라인이었다.
“여러 위협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정확하게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 있었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에, 조정후와 황우식은 고개를 떨궜다.
“그걸 마무리 짓지 못했지.”
“…….”
“기회가 있다면 득점을 만들어주는 게 스트라이커들의 역할이다. 미국과 가나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면서 왜 이렇게 굳었어? 벨기에가 강팀이라서?”
그의 말처럼 스트라이커들의 움직임은 1, 2차전과 미세하게 달랐다.
무언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듯이.
그래서 주앙 달루트는 여기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후반전에는 조가 빠지고 우가 들어간다.”
주앙 달루트가 언급한 선수는 우현식으로 K리그 득점왕 출신이었다.
“…예.”
조정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실수하지만 않았다면 쉽게 풀어갔을 걸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조, 머리 좀 식혀.”
그 뒤에 주앙 달루트는 후반전에 사용할 전술을 설명해줬다.
“우리가 해야 할 건 명확해, 벨기에의 틈을 찾고 그것을 공략하는 것.”
선수들을 보다가 유지우를 손으로 가리켰다.
“유, 후반전에서는 욕심을 좀 부려. 1, 2차전에서도 넌 양보를 너무 많이 해.”
양보해도 예선전에서 많은 골을 넣었지만, 사실 그가 다른 선수에게 패스를 넣어주지 않았다면 그는 더 많은 골을 기록했을 수도 있었다.
주앙 달루트는 기회가 왔을 때는 양보 말고 욕심을 부리며 직접 골 사냥에 나서라고 했다.
아스날에서 뛰던 것처럼.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캡틴이 어떤 선수인지 모두에게 보여주고 와.”
결국 오늘 경기의 승산은 유지우에게 있었다.
* * *
삐---익!
후반전이 시작되자 대한민국은 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볼을 돌리며 벨기에 진영을 살폈다.
‘흐음.’
특히 유지우는 쉴새 없이 상대 팀을 쫓으며 전반전과 다른 부분이 없는지 파악했다.
‘아직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여.’
5분이 지나자 본격적인 전쟁이 재개됐다.
벨기에는 대한민국의 빌드업을 막으려고 중앙 쪽에서 타이트한 압박을 가져갔다.
그러나 유지우는 그것에 당해주지 않았다.
“패스해!”
그림자처럼 붙은 마크를 따돌리며 빈 곳으로 달려가 볼을 잡아내는 그의 움직임을, 벨기에 선수들은 번번이 놓쳐버렸다.
탁.
압박하는 선수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낸 후, 옆으로 달려서 제치려고 했는데.
삐---익!
벨기에는 영리하게 반칙으로 유지우의 공격을 끊어냈다.
[전반전에도 그렇고 후반전에서도 반칙으로 공격을 끊어내는 벨기에!]
[아아아-! 하지만 전반전과 다르게 카드를 받습니다!]
벨기에 선수는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유지우는 묵묵히 축구화 끈을 정리하곤 일어났다.
‘두 번은 안 당하지.’
전반전에는 그들의 반칙이 절묘하게 이뤄졌다면.
후반전에는 그걸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유지우는 그들이 소극적으로 움직이게끔 미끼를 던진 거였다.
“괜찮아?”
차선호가 다가와서 유지우를 일으켜줬다.
“괜찮아.”
“여기 프리킥 거리가 멀어서 직접은 안 될 거고…. 어떤 플랜으로 갈래?”
대한민국은 세트피스 전술도 많이 연구했다.
같은 위치에서도 여러 개의 패턴을 다르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우는 일어나서 골대와의 거리를 살폈고, 금방 결정을 내렸다.
“D로 가자.”
“내가 라인 정리할 테니까 넌 킥만 준비해.”
“알았어.”
키커의 결정이 나오자 차선호가 그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골대와 멀긴 하지만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서는데요!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서 동점 골이 나와주지 않으면 힘들어질 수 있어요!]
유지우는 서서 킥을 준비하며 선수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곤.
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유지우는 천천히 걸음을 떼며.
뻐---엉!
크로스를 올렸다.
수비벽의 키를 넘기며 올라간 날카로운 크로스.
센터백이 점프를 뛰며 막아보려고 했지만, 볼은 그대로 뒤로 흘러갔다.
일제히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
볼의 궤적은 그중에서도 한 선수에게 정확히 향했다.
[우현식 선수가 다이빙---!]
우현식은 벨기에 수비수들 틈을 파고들며 몸을 날렸다.
그는 날아오는 볼에 이마를 맞췄고.
철렁.
골대 안으로 볼을 집어넣었다.
- 와아아아아아!!!!
[우현식 선수의 다이빙 헤디이이이잉! 이게 벨기에의 골대를 뚫어냅니다!]
[패스와 침투!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그림입니다! 벨기에 수비가 전혀 막지 못했어요!]
골을 넣은 우현식에게는 국가대표 데뷔골이기도 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수들을 뿌리치며 유지우에게 달려갔다.
그리곤 한쪽 무릎을 꿇더니, 유지우의 오른발을 올려 신발을 닦는 세레머니를 했다.
“하나 더 부탁해!”
그렇게.
대한민국 1 – 1 벨기에.
균형이 맞춰졌다.
* * *
7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유지우를 중심으로 공격을 풀어나간다면 벨기에는 마루앙 카라스코였다.
그는 특유의 순발력으로 대한민국의 압박을 따돌리며 위협적인 장면을 여러 번 만들었다.
[지금 한국 선수들이 마루앙 카라스코를 자주 놓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합니다.]
다행인 건 김재민과 강현오.
이 두 명의 선수가 태산처럼 골문을 지키고 있다는 거였다.
그 덕분에 마루앙 카라스코의 슈팅도 번번이 골대를 벗어나거나 골키퍼 정면으로 가며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70분.
75분.
80분.
선수들의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다다른 시간대.
타다다닷.
그런데도 양 팀 선수 중,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선수들의 유니폼은 너덜너덜했고 호흡은 목 끝까지 차올랐다.
간절한 그들의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중계됐다.
[제발! 선수들이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에서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
무승부로 끝나도 상관없었지만, 이기고 싶은 간절함.
그 간절함이 담긴 패스가 유지우의 발아래에 안착했다.
“유를 막아!”
두 명의 선수가 붙어 그의 돌파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한 선수가 멈칫했다.
아까 카드를 받은 선수였다.
그는 다시 카드를 받으면 퇴장을 당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했고 유지우는 그 부분을 공략했다.
투—웅.
볼을 살짝 띄운 채, 이어서 머리 위로 볼을 보내는 솜브레로 플릭을 선보이며 그들을 제쳐냈다.
- 오오오오오오!!!
[더 안으로 들어갑니다! 유지우 선수! 지금 후반 85분! 여기서 골만 나와준다면 결승골이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골대.
우현식과 황우식은 유지우가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실을 이뤘다.
페널티 에어리어 근방에 유지우가 도달했을 때.
삐---익!
벨기에 선수가 무리하게 태클을 걸며 프리킥을 얻어낸 것이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이 나옵니다!]
[유지우 선수가 경기 막판에 좋은 기회를 얻어냈는데요! 이 거리면 골까지 노릴 만합니다!]
넘어진 유지우는 양말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동료 선수들이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강예수가 손을 뻗어 막았다.
“지우, 집중 중이야.”
유지우를 잘 아는 동료들은 유지우가 집중하는 순간을 잘 알았다.
그럴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후우.
유지우는 호흡을 크게 내뱉고 일어나 볼을 위치에 놓고 킥을 준비했다.
“…제길.”
벨기에 선수들은 수비벽을 세우며 긴장했다.
유지우가 누구인가.
프리킥 성공률 64%대의 괴물이었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도 가장 정확한 킥을 자랑하는 선수를 마주하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
삐---익!
휘슬이 울리자 유지우는 루틴대로 세 걸음 반을 디뎠다.
머릿속으로 어느 코스로 찰지 이미 정한 뒤라.
뻐---엉!
거침없이 왼발로 킥을 했다.
코스는 거리상 가까웠던 오른쪽 상단이 아닌, 정반대인 왼쪽 상단이었다.
당연히 오른쪽 상단 코스를 경계하고 있던 골키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볼이 날아오는 궤적을 보고는 몸을 다시 날리려 했지만.
멈칫.
역동작에 걸려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골대 안으로 볼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밖에는 없었다.
철렁.
볼은 그렇게 그대로 구석에 꽂혔다.
[이, 이걸 성공시키는 유지우 선수-! 떨지 않고 그대로 벨기에 골대 안으로 볼을 꽂아 넣습니다!]
[하하하하하하! 2 – 1! 대한민국이 역전에 성공합니다!]
유지우는 프리킥을 찬 후에 볼이 들어가는지 보지도 않고 세레머니를 하러 달려갔다.
완벽한 발의 감각.
골키퍼가 역동작에 걸린 모습.
이것만으로도 확실했고 무엇보다.
- 와아아아!!!
득점이라고 아는 건 함성이면 충분했으니까.
촤---악!
그는 무릎 슬라이딩을 한 후, 가슴에 있는 태극마크에 키스 세레머니를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삐익-! 삐익-! 삐---익!
벨기에의 역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최종 스코어 2 – 1.
대한민국이 D조 1위를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