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66화 (366/383)

제366화

203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벨기에와 조별 예선에서 만났었다.

그때는 아쉽게 1 – 4로 패배하며 2승 1패로 조 2위로 올라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겼다.’

삐익-! 삐익-! 삐---익!

경기가 종료되고 유지우는 동료들과 승리를 만끽했다.

지고 있던 상황에서 얻어낸 결과라 더욱 짜릿했다.

“마지막 프리킥은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궤적으로 넣냐?”

“연습했거든요. 형들도 연습하면 다 할 수 있어요.”

“그게 연습한다고 다 되면 누가 안 하겠냐… 네가 우리 팀이어서 진짜 든든하다니까!”

조별 예선 전승.

3전 전승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대한민국은 16강에서 프랑스가 아닌 카메룬과 만나게 됐다.

필드를 떠나기 전, 유지우는 벨기에 선수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마루앙.”

그는 팀 동료, 마루앙 카라스코와 만나서 포옹을 했다.

“1위 축하해.”

“전반전에는 지는 줄 알았어.”

“말이라도 고맙다.”

“그래도 둘 다 16강에 올라가니까 이겨도 마음이 아프지는 않네.”

만약 벨기에가 16강 진출을 하지 못했다면 유지우는 이렇게 웃으면서 마루앙 카라스코를 대하지 못했을 거다.

“슬슬 가봐야겠다.”

“다음에는 결승에서 보자.”

두 선수는 웃으며 헤어졌다.

유지우는 그대로 믹스트존으로 걸어갔다.

한국 취재진을 비롯해 전 세계 외신 기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향해 가던 중, 유지우는 반가운 얼굴과 마주칠 수 있었다.

“기하 형.”

전 국가대표 주장, 김기하였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 해설위원으로 합류해 선수들의 활약을 매 경기 보고 있었다.

“수고했다.”

그의 짧은 말에 유지우는 웃음을 지었다.

“주장이라는 게… 참 힘든 일이더라고요.”

주장이 되고 나니 중압감은 더욱 심해졌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자리.

그렇기에 유지우는 이를 악물고 주장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잘하고 있던데?”

김기하는 그를 위로해줬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보면, 절로 응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너 정도면 대한민국 최고의 주장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거야.”

다음에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약속하며,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자 대화가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들이 달려오며 질문을 쏟아냈다.

“조별 예선 전승이라는 기록을 세우셨습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출전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인데요. 주장으로서 기분이 어떠신가요?”

조별 예선 전승.

늘 경우의 수만 따지다가 확실히 거둬낸 승리에 다들 표정이 밝았다.

“그동안 선수들이 노력한 결과가 나온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어서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지난 월드컵에서는 벨기에에 패배하며 아쉽게 조 2위로 16강에 올랐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결과를 거뒀습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조 1위로 올라가게 되어 기쁘지만, 토너먼트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최대한 집중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지우는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그렇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나자, 유지우는 남은 경기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월드컵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 * *

【 대한민국, 조 1위로 16강 진출! 】

【 태극 전사를 이끄는 유지우, 조별 예선에서만 4골 2어시스트 기록! 】

【 주앙 달루트, “우리는 아직 부족하다.” 】

【 유지우,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 】

한국의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

그것도 조별 예선 전승 진출이라는 타이틀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 와… 우리나라가 월드컵 예선에서 전승은 처음 있는 일 아님?

- 가슴이 웅장해진다 ㄹㅇ

- 새벽에 사람들 소리 지르고 난리 났음.

- 저번 대회에선 지우 체력 아낀다고 빼서 1 – 4 패배…. 이제는 2 – 1 승리 ㄷㄷ

- ㅠㅠㅠ 이런 그림을 원했다고!

- 갓지우가 괜히 갓지우가 아님, 진심 혼자 축구하는 줄 ㅋㅋㅋ

- 이렇게 되면 우리 16강 카메룬이네?

- 나이스-! 프랑스 피했다!

- ㄹㅇ 프랑스만 아니면 됐어 ㅋㅋㅋㅋ

- 카메룬이면 8강 올라갈 가능성이 확 올라간다.

- 4강 신화 재현하는 건가?

- 16강 이기고 8강 올라가면 누구랑 만나게 되는 거냐?

- 잉글랜드랑 스위스 중에 이기는 팀이랑.

-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16강 이길 생각만 하자!

D조 1위 대한민국.

D조 2위 벨기에.

2030 월드컵 때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대한민국은 16강에 올라가게 됐다.

* * *

16강을 앞두고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호텔 회의실에 모여 미팅을 가졌다.

“다들 알다시피 다음 상대는 카메룬이다. 조별 예선에서 포르투갈을 이기면서 16강을 확정 지었지.”

카메룬의 16강 진출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대회 시작 전, 상대적 강팀으로 꼽히는 포르투갈이 프랑스와 함께 16강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는데, 예상과 달리 카메룬이 포르투갈을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속도를 앞세운 축구로 포르투갈을 무너트렸다.”

카메룬에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없었다.

4대 리그에 소속된 팀에서 뛰는 선수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몇 되지 않았다.

다만 선수 대부분이 자국 리그의 주전선수들로 구성된 만큼, 그들의 합은 여느 팀들보다도 뛰어났다.

그들의 포르투갈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높은 조직력 덕분이었다.

“우리의 승률이 더 높다고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토너먼트는 그야말로 전쟁터니까.”

대한민국과 카메룬.

이 두 경기를 두고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에 승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얘기했다.

하나 주앙 달루트는 그런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승률로 하는 숫자놀음 따위, 집중하고 있어 봐야 아무런 영양가가 없었으니까.

“잘 봐라.”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됐다.

회의실 대형 화면에선 카메룬의 경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카메룬의 공격 패턴은 다양하지 않아. 하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겐 속도가 있으니까.”

카메룬의 주로 쓰는 전술은 선수비 후역습이었다.

특히, 텐백을 유지한 끝에 갑자기 샷건처럼 퍼져나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여기서 포르투갈은 당황해서 사이드 수비를 약하게 했다. 그 점을 카메룬이 정확하게 파고들어 골을 만들어내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지.”

선수들은 영상을 유심히 살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의 역습에 대비해 수비진을 촘촘히 짜는 거다.”

주앙 달루트는 카메룬의 역습에 대비한 수비 전술을 얘기했다.

선수들은 경청했다.

그렇게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전술 설명이 끝났다.

“드디어 16강에 올라왔다. 하지만 난 이걸로 만족하지 않아, 우리가 보는 목표는 더 높이 있기 때문이지.”

“…….”

“우승까지 가는 길은 험난할 거야.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겠지. 하지만 난 우리에게 우승할 힘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주앙 달루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향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 선수들의 투지.

그것을 가장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그였으니까.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후회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자!”

.

.

.

6월 30일.

모든 조별 예선이 종료되고 본격적인 토너먼트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스타디움에 모인 인파.

대한민국과 카메룬 팬들을 비롯해 타국의 팬들도 모인 이곳에서.

삐---익!

월드컵 16강.

대한민국 vs 카메룬의 경기가 시작됐다.

* * *

카메룬의 축구는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대부분은 한국이 여유 있게 리드를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카메룬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뛰어난 공격으로 도리어 한국을 몰아붙였다.

[다시 올라오는 크로스-! 이번에는 낮게 올라오는데요!!!]

[하지만 김재민 선수가 헤딩으로 컷! 위기를 무사히 넘깁니다!]

전반 30분 동안 카메룬이 위협적인 기회를 만든 것은 총 4번.

그 모든 게 대한민국의 공격을 막고 만든 역습이었다.

[카메룬의 역습 템포가 상당히 빠릅니다. 최대한 막아내고는 있지만, 위태위태하네요.]

과연 16강에 올라온 팀답게 그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을 꺾고 올라왔다는 이름이 허명이 아니듯, 그들은 제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저 녀석이 문제군.’

유지우가 보는 곳에는 카메룬의 10번, 아마두 부팔이 있었다.

그는 아약스에서 뛰는 선수로 최근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선수였다.

그리고 생각을 마친 그는.

타다다다닷.

카메룬의 역습 타이밍을 보고 움직였다.

역시나 아마두 부팔에게 가는 볼.

장기현이 바짝 붙어서 수비해보았지만, 스피드가 워낙 빨라 그를 잡기는 무리였다.

[또 돌파당하는 장기현 선수-!]

하지만 결과는 전과 달랐다.

역습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그를 쫓아가는 한 명의 선수가 있었으니까.

[아아아아! 어느새 뒤에서 유지우 선수가!]

세계 최고의 속도를 가진 축구선수라는 별명에 걸맞게 유지우는 단숨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드리블하는 선수와 순전히 달리기만 하는 선수.

두 선수의 격차는 좁혀졌고.

촤---악!

유지우는 태클로 정확하게 볼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넘어지는 아마두 부팔! 반칙을 어필해보지만, 정당한 태클이었습니다!]

볼은 아직 라인 아웃이 되지 않은 채였다.

유지우는 그것을 살려 역습을 감행했다.

단숨에 하프라인을 넘으며 카메룬의 수비가 흔들리는 사이.

뻐---엉!

반대 사이드로 공간을 열어줬다.

[오른쪽으로 길게! 차선호 선수를 봅니다!]

[차선호 선수가 안전하게 잡아놓고서 바로 안으로!!! 그리고 크로스-!]

물 흐르듯 전개되는 역습.

차선호는 타이밍을 보고 크로스를 올렸다.

침투하는 조정후는 수비수들을 따돌리며 헤딩을 했다.

그런데 코스가 골대 쪽이 아니었다.

툭.

그의 머리에 맞은 볼은 침투하는 황우식에게 흘렀고.

뻐—엉!

황우식은 논스톱으로 슈팅을 때렸다.

모두가 조정후에게 신경을 빼앗긴 사이에 온 완벽한 찬스를.

철렁.

황우식은 득점으로 연결했다.

- 와아아아아아!!!

[전반 38분에 대한민국이 마침내 답답한 흐름을 깨며 득점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역습입니다! 조정후 선수와 황우식 선수의 완벽한 호흡! 대한민국이 1 – 0으로 앞서기 시작합니다!]

카메룬의 역습을 끊고 단번에 역습을 전개하는 모습에 모두 놀랐다.

특히 사람들이 놀란 부분은 아마두 부팔이 따라잡힌 거였다.

조별 예선에서 그의 스피드는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극찬할 만큼 뛰어났다.

그런데 그것을 유지우가 한 번에 무너트린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속도를 가진 선수.’

이러한 별명을 가진 유지우에게 아마두 부팔의 속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 * *

전반전이 종료되고 시작된 후반전.

대한민국 1 – 0 카메룬.

카메룬은 동점 골을 빠르게 만들고자 전반보다 공격적인 움직임을 더 활발히 가져갔다.

“지우야!”

그리고 유지우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아마두 부팔을 꽁꽁 묶었다.

후반 내내 그런 플레이가 나오자, 카메룬의 주 전술인 역습 전술도 먹히지 않았다.

[카메룬의 역습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유지우 선수가 수비 가담을 깊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메룬의 역습은 사실상 아마두 부팔을 중심으로 이뤄지니까요.]

대한민국 수비진은 안정을 찾으며 카메룬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기회를 잡았다.

60분.

65분.

70분.

[유지우 선수의 중거리 슈팅을 막아내는 카메룬! 하지만 코너킥이 주어지며 대한민국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코너킥 상황에서 짜놓은 전술을 시도했다.

수도 없이 했던 연습.

그 연습 덕분에 선수들의 플레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툭.

[짧게 내주는 김우일 선수! 차선호 선수가 흘려주고! 그것을 유지우 선수가 잡습니다!]

유지우를 마크하고 있던 선수가 있었지만, 황우식은 일시적으로 그를 커버하며 유지우에게 자유를 줬다.

[이건 슛 기회죠! 완전히 열렸습니다!]

찰나의 순간이긴 해도 동료 선수들이 막아준 덕분에 유지우에겐 시간이 주어졌다.

아주 짧은 시간.

하지만 유지우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스윽.

왼쪽으로 볼을 한 번 밀어놓은 뒤.

뻐---엉!

파 포스트를 향해 감아 찬 슈팅.

수비수들이 몸을 날려 코스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볼은 지나간 뒤였다.

발에 맞은 감각.

제대로 된 코스.

유지우는 이내 웃음을 지었다.

철렁.

볼은 골키퍼가 반응도 하지 못한 완벽한 코스로 들어갔다.

오늘 경기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골이 신고된 순간이었다.

[71분에 나온 고오오오올! 유지우 선수가 차이를 더 벌리며 카메룬의 골망을 흔듭니다!]

[이걸로 8강 진출 가능성이 더 커지며! 대한민국이 리드를 잡습니다!]

이 골로 인해 경기 분위기가 대한민국 쪽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카메룬은 포기하지 않았다.

힘든 조별 예선을 치르고 올라온 16강.

아무것도 못 해보고 패배하긴 싫었다.

적어도 한 골.

그들이 원하는 건 역전 골도 아닌 분위기를 가져올 한 골이었다.

‘제발.’

타다다닷.

‘한 번만.’

그들의 간절함은 플레이에서 느껴졌다.

그들의 간절함이 담긴 볼은 에이스인 아마두 부팔에게 갔으나.

촤---악!

유지우의 압박에 결국 헌납하고 말았다.

다시 볼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아쉽게 따라잡지 못했고 그렇게.

삐익-! 삐익-! 삐----익!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대한민국이 지난 대회에 이어 다시 8강에 오릅니다!]

[2 – 0으로 카메룬을 이기며 8강에 오르는 태극 전사들! 그들의 발걸음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길 바랍니다!]

엄청난 환호성이 스타디움을 뒤덮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환호하는 팬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해냈다.’

16강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8강에 오르다니.

그들의 벅찬 감정이 표정을 통해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8강 진출.

대한민국 국민들을 축구에 미치게 하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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