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외계인-371화 (371/383)

제371화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

월드컵 4강에서 만나는 두 국가는 각자 지정된 훈련장에서 연습에 몰두했다.

그 시각, 아르헨티나 현지.

팬들의 입에선 대한민국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가 핫한 주제였다.

그중 빠지지 않은 건 유지우의 이름이었다.

“난 한국팀에서 유가 제일 무서워.”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거야. 그는 혼자서 경기 자체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잖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는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 시기에는 국가대표 유니폼과 그들의 소속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유지우 이름이 마킹된 보카주니어스 유니폼과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만큼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유지우의 인기는 여전했다.

“저번 대회에서 만날 때보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지?”

“아무래도 그렇지, 그때랑 지금이랑 선수들의 위상이 달라졌으니까.”

2030 남미 월드컵 때 유지우와 디에고 로시, 양 국가 에이스들은 촉망받는 유망주에 불과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2034 호주 월드컵에서 두 선수는 세계 최고라고 불리고 있었다.

“유랑 디에고가 최고가 돼서 월드컵에서 만나다니.”

그들은 추억에 잠겼다.

과거 보카 주니어스에서 호흡을 맞추며 뛰었던 선수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설을 쓰고 난 뒤, 이적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것까지.

그들의 머릿속에 좋았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디에고가 리그에서는 유한테 계속 지던데, 이번에는 어떨까?”

“그래도 우리가 이기겠지? 한국이랑은 전력 차이가 있잖아.”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에 우세가 있다고 예측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한민국이 역대급 대표팀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내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세계 무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전력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당연하지,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차랑 강이 있다곤 해도 혼자서 경기 흐름을 바꾸기에는 무리지.”

“맞아, 그들에게는 유만큼 경기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어.”

“그에 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많아.”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로시, 기예므로 다린 등 황금세대를 중심으로 팀을 짰다.

“한국이랑 유에게 미안하지만.”

“우리가 이길 거야.”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전 세계 축구팬들이 볼 때도 의견은 비슷했다.

【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 “이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 】

【 승률 8할의 아르헨티나! 】

【 전문가 일동, “대한민국이 이기기 위해선 유지우가 어떤 활약을 할지 중요하다.” 】

그렇게 여러 기사가 나오며 4강에 대한 관심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팬들은 월드컵 4강 대결 날이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 * *

7월 5일.

월드컵 4강 경기 날이 되자 스타디움 일대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관중석이 서서히 채워질 때쯤, 선수들은 필드에 나와 워밍업을 하기 시작했다.

뻐---엉!

취재진은 그들이 몸을 푸는 장면을 찍었다.

한편, 관중석에서는 익숙한 얼굴들 몇몇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한국이랑 만났네요, 로드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지우를 발굴한 로드리고였다.

“내가 다 긴장이 되는군.”

“유가 정말 대단하네요. 높아도 16강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다니요.”

“저 녀석은 항상 상상 이상의 결과를 보여줘, 그래서 모든 감독이 사랑하는 거지.”

“여전히 세바스티안 감독이 그리워한다는 게 정말이군요.”

“인터뷰도 자주 하잖아. 그리워하면서도 또 유가 큰 곳에 가서 성공한 것을 자랑스러워해.”

로드리고는 유지우를 처음 봤을 때부터 빛나는 보석이라고 여겼다.

그 보석의 빛이 마침내 세상 전부를 비추게 되었다.

그렇게 로드리고가 유지우에 관한 칭찬을 한창 늘어놓고 있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있었네요. 로드리고.”

보카 주니어스 1군 감독, 세바스티안 란첼라였다.

“오셨군요.”

“보러와야죠, 저랑 인연이 깊은 선수들이잖아요.”

여전히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하는 하비에르 카세로, 앙헬 몰리야, 파우스토 바르코나 다른 클럽으로 이적한 유지우, 디에고 로시, 기예르모 다린.

다 인연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 뒤, 은퇴한 에르네스토 게레라까지 합류하며 유지우와 인연이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 와아아아아!!!

그들을 비롯해 관중석에 모인 모든 시선이 필드 위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을 향했다.

‘세계 최고의 라이벌.’

특히 관심을 받는 건 두 선수였다.

유지우와 디에고 로시.

두 선수는 최고의 라이벌리를 자랑하는 선수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후.

양 국가 선수들이 몸을 다 푼 뒤 라커룸으로 향했다.

.

.

.

“오랜만이다, 유.”

워밍업을 하고 들어가는 길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보카 주니어스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선수들이었다.

“안 본 사이에 주름이 늘었네요. 하비에르, 앙헬.”

“보자마자 놀리냐!”

“요새 리그에서 득점이랑 도움왕 둘이서 독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뭐, 네가 없으니까. 빈집털이하는 기분이긴 하지만.”

하비에르 카세로.

앙헬 몰리야.

파우스토 바르코.

보카 주니어스 시절부터 늘 함께 뛰어온 동료들이었다.

경기 시간 때문에 길게 얘기할 시간이 되지는 않았다.

짧게 인사를 마친 뒤, 유지우는 팀 동료인 카를로스 로호와 디에고 로시, 기예르모 다린을 봤다.

“후회 없이.”

“즐겨보자.”

그들은 서로 웃으며 악수한 뒤에 헤어져 각자의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 * *

대한민국의 라커룸 안.

선수들은 장비를 점검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형은 긴장 안 되세요?”

막내인 강현오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걸 억지로 진정시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면서 갑자기 왜 긴장을 하고 그래?”

김재민은 강현오를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그야 4강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잖아요.”

월드컵 4강.

중요한 경기라 선수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긴장이 서려 있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

선수들은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긴장감에 구역질까지 하는 선수들도 몇 있었다.

베테랑들은 그 같이 긴장하는 선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필드에 서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고 전장에 서야만 했다.

베테랑들의 도움으로 선수들이 하나둘 마음을 진정시키는 가운데, 주앙 달루트가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다들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주앙 달루트는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완벽하게 수행해주지 못했다면, 이곳까지 오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목표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마지막까지 집중하자. 이제부터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이어서 주앙 달루트는 전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클럽이다. 특히 양쪽 윙포워드인 디에고 로시와 앙헬 몰리야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지.”

디에고 로시가 유럽 무대를 지배하고 있다면 앙헬 몰리야는 남미 리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인 앙헬 몰리야는 남미 리그에서 42경기 출전, 14골 40어시스트라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선수는 그 둘만이 아니었다.

“기예르모 다린.”

첼시 스트라이커로 프리미어리그 득점 3위의 선수.

“카를로스 로호.”

아스날 주전 풀백으로 유지우와 활약을 맞추며 놀라운 공격력을 보여준 선수.

“파우스토 바르코.”

어느덧 보카 주니어스에서 남미 최고의 수비수로 우뚝 선 선수.

“에두아르도 구아린.”

남미 최고의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 임박한 선수.

“그리고 하비에르 카세로.”

보카 주니어스가 낳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33-34시즌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에 오른 선수.

모든 포지션이 월드 클래스급으로 맞춰진 아르헨티나에는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아르헨티나에는 지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멤버들이 많이 있다. 아마 오늘 경기가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경기가 될 가능성이 커.”

그런 말에도 선수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아르헨티나가 어려운 상대라는 걸 인식하고 있던 것이었다.

‘일부러 불안한 부분을 말했는데도 흔들리지 않는군, 각오를 단단히 했어.’

주앙 달루트는 선수들의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전술 설명을 이어갔다.

아르헨티나는 단점이 없는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100% 완벽한 팀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리고자 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비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선수들은 주앙 달루트가 말해 준 지시사항을 집중해 들었다.

“이곳에서는 섣부르게 나갈 필요는 없어…. 특히 이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상대와의 대결도 주앙 달루트의 설명을 들을 때면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들과 그들의 감독이 이제껏 이뤄온 기적은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설명은 여기까지, 다들 알겠나.”

“네, 감독님!”

선수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술 설명을 마친 주앙 달루트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기 시작했다.

“결승까지 남은 건 단 한 걸음이다.”

대회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결승이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듯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가 정말로.’

시작까지만 하더라도 우승을 노리겠다는 목표를 믿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모두가 우승을 꿈꾸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강한 상대라고는 하지만 축구는 승률대로 흘러가는 스포츠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올 일도 없었을 테지.”

“…….”

“저들보다 부족하면 한 걸음 더 뛰면 된다. 한 걸음이 부족하면 두 걸음 뛰면 되고, 두 걸음이 부족하면 세 걸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강팀들을 꺾어왔다.”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제일 자신 있는 것은 투지였다.

그것만큼은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가자! 가서 우리가 가장 잘하는 축구로 결승 티켓을 가져오자!!!”

* * *

7만 석의 관중석이 모두 채워지고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을 때.

선수 입장 터널에는 양 국가 선수들이 나란히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주장 유지우와 나란히 선 것은 아르헨티나 주장은 하비에르 카세로였다.

“너랑 이렇게 나란히 서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앞으로 자주 볼 거예요. 그만큼 한국은 강해졌으니까.”

“그래… 그래도 오늘은 우리가 이겨야겠어.”

“제가 할 소리인데 뺏지 마시죠.”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낸 뒤, 유지우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대회에서 우승했으나 월드컵은 차원이 다른 부담감을 주는 대회였다.

그래도 유지우는 그러한 부담감을 애써 숨기고 버텨냈다.

그것이 플레이 중, 실수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김재민의 손이 어깨에 올라왔다.

“수비는 내가 책임지고 막아볼게, 그러니까 체력 아끼면서 공격에 집중해.”

“알겠어.”

대기 시간이 끝났다.

선수들은 주심의 뒤를 따라 필드로 걸어갔다.

입구에 다다르자 유지우는 뒤를 보며 소리쳤다.

“가자-!”

“아아아!!!”

“이기자아아아!”

“화이팅-!”

선수들은 다 같이 기합을 내지르며 필드로 입장했다.

- 와아아아아아!!!

그러자 엄청난 환호성이 귓가를 울렸다.

16강.

8강.

4강.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환호성 또한 더욱 뜨거워졌다.

그리고 문득 선수들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

‘결승에서의 환호성은 어떤 느낌일까.’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는 더욱 선명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결승을 향한 강한 열망이.

-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붉은 악마들이 내뿜는 열기가 선수들의 피부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양 국가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 오늘 아르헨티나를 넘어 아시아의 새로운 역사를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건 한국만이 아니었다.

모든 아시아 국가들 또한 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월드컵에서 남은 아시아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이란은 예선에서.

일본은 16강에서.

지금까지 토너먼트에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 시선이 쏠리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먼저 대한민국의 국가가 연주되겠습니다!]

음악이 들리자 선수들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큰 소리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관중석에서도.

한국 현지에서도.

한마음 한뜻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떼창이 시작되자 다른 외국인들은 이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미 대한민국의 경기를 봤던 외국인들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찍었다.

그 뒤, 아르헨티나의 국가까지 연주가 끝이 났다.

선수들은 악수하며 각자 진영으로 갔다.

씩.

마지막에 디에고 로시와 웃으며 인사한 유지우는 진영으로 가서 선수들을 모았다.

그들은 원 모양으로 모여 얘기했다.

“중요한 얘기는 감독님이 다 하셨으니까 저는 짧게 얘기할게요.”

“좋아.”

“길게 해도 되는데.”

선수들은 긴장을 날리려고 농담도 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유지우의 입이 열렸다.

“전 여기서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선배들이 만든 2002의 전설… 이제 우리가 새롭게 전설을 만들어보는 게 어때요?”

유지우는 선수들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며 이어서 말했다.

“4강 신화가 아니라 우승 신화를요.”

결승 신화도 아닌 우승 신화.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주장을 보며, 선수들은 그와 같은 목표를 보게 됐다.

마냥 허황한 목표라고 보였던 것이 이제야 눈앞에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목숨 걸고 이겨보죠.”

주장의 담담한 말에.

“당연하지!!”

“다 박살 내보자!”

“저번 대회에서 당했던 걸 이번에는 갚아야지!”

“선배들의 기록을 넘어보자!”

선수들의 의지도 더욱 불타올랐다.

그렇게 잠시 후.

삐---익!

월드컵 4강.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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