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3화
트로피를 들어 올린 후, 선수들은 필드에 가족들을 데려와 우승의 순간을 함께 즐겼다.
“들어오세요.”
유지우도 어느새 관중석의 제일 앞까지 내려온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경호원들이 문을 열어주자, 가족들은 안으로 들어왔다.
와락.
어머니 서설희는 필드로 들어오자마자 유지우를 꽉 안아줬다.
“정말 고생했어, 아들.”
그 따뜻함에 유지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시상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본 경기였지만, 유지우의 입으로 그것을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유지우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길게 이야기를 하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그는 신이 난 채로 무용담을 자랑하듯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가족들은 그렇게 웃으며 경기에 대한 소회를 풀었다.
“와, 이걸 내 손으로 만져보게 된다니.”
이야기가 끝날 때쯤, 선수들 사이에서 돌던 월드컵 트로피가 유지우 가족 쪽으로 왔다.
유민하는 월드컵 트로피를 이곳저곳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맨날 TV나 너튜브로 봤던 걸 들어보니까 되게 신기하긴 하네. 이거 무게는 어느 정도야?”
“6kg 정도 할걸?”
18k 순금으로 만들어진 트로피.
축구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얻고 싶지만, 얻지 못하는 물건.
허락받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물건이 한국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형님, 저도 트로피 구경 좀 해도 될까요?”
강현오가 다가와서 묻자 유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건 혼자서 얻은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뛰어서 얻은 결과니까.
강현오는 신나서 트로피를 들고 자기 가족들에게 갔다.
유지우는 시상대에 누워서 하늘을 봤다.
“시원하지?”
아버지 유한우의 말에 유지우는 웃었다.
“네, 속도 시원하고 머리도 시원해요.”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유지우는 제대로 밥을 먹은 적도, 제대로 잠을 잔 적도 없었다.
그만큼 부담감이 엄청났다.
혹시라도 실수 때문에 지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하며 이곳까지 온 거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은 순간.
속에 있던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 돌아가면 푹 쉬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저 갈비찜 먹고 싶어요. 매운 걸로.”
“아주 한 솥으로 해주마.”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족들과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한참 경기장을 돌던 중, 그는 관중석에서 아는 얼굴들을 발견했다.
아르헨티나 국기를 두른 그들을 보자 유지우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서설희는 웃으며 등을 밀어줬다.
“다녀오렴.”
가족들은 아르헨티나가 유지우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지우는 관중석 쪽으로 다가갔다.
“유! 축하해!”
“우리를 탈락시킨 건 괘씸하지만! 그래도 우승 축하한다!”
“진짜 멋진 결승전이었어!”
“마지막에 골 넣은 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야!”
유지우가 지인에게 말을 걸기 전, 먼저 말을 걸어오는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있었다.
유지우는 안면이 없는 그들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유! 우리는 브라질 이기고 3위 했어!”
아르헨티나는 3위로 월드컵을 종료하게 됐다.
비록 결승이 아닌 4강에서 만나긴 했지만, 아르헨티나가 3위로 마무리했다는 것에 유지우도 기뻐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에는 더 높은 곳에서 만나요.”
유지우는 그렇게 그들을 지나쳐, 아는 얼굴들 쪽으로 다가갔다.
“세바스티안 감독님, 로드리고.”
바로 보카 주니어스 시절.
자신을 보듬어준 사람들이었다.
“조용히 보고 가려고 했는데 다 실패했군.”
“감독님처럼 무섭게 생긴 분이 조용히 보고 간다니, 안 어울려요.”
“하하, 축구 실력만이 아니라 농담하는 실력도 늘었네.”
“좋은 분들이 옆에 있어 줘서요.”
“그거 다행이야.”
억울한 누명으로 축구의 꿈을 접을 뻔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을 믿지 않게 됐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보카 주니어스에 처음 입단했을 때도 말이 많았다.
‘웃지 않는 선수.’
이런 이미지였던 선수가, 지금은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선수가 됐다.
“로드리고.”
유지우는 세바스티안 란첼라와 인사하고선 그의 옆에 있는 로드리고를 봤다.
“오랜만이구나.”
“은퇴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다 늙었으니까 이제는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살려고.”
“그렇군요.”
“한국에서 처음 봤을 때는 완전히 어렸는데 어느덧 한 나라를 대표하게 됐구나.”
“로드리고가 저를 선택해주셔서 가능했죠.”
“흙 속에 파묻혀 있던 보석을 주운 것뿐인데, 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석이라고 생각하질 않았는걸요.”
“…그래. 이젠 네가 보석이란 건 모두가 알지. 넌 내 자랑이다.”
처음 한국에서 유지우를 발견했을 때, 로드리고는 그를 보석이라고 여기고 어떻게든 아르헨티나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듯.
유지우는 이른 시간에 제 몫을 펼치며 지금은 세계 축구계를 든든히 지탱하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고맙다. 이렇게 잘 성장해줘서. 그리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줘서.”
유지우는 은인 같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포옹을 했다.
와락.
“고마워요, 두 사람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어요.”
이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는 그에게 첫발자국을 내딛게 해준 곳이었으니까.
“가서 충분히 즐겨. 이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네, 연락드릴게요.”
두 사람은 유지우를 돌려보냈다.
다시 필드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선,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엄청난 선수를 발굴했군요.”
“엄연히 따지자면 내가 발굴한 거지.”
“제가 키웠죠.”
“하하하하! 그러면 각각 지분을 반씩 나눠 가지지 뭐.”
“합리적이네요.”
두 사람은 멀어져가는 유지우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
.
.
.
다시 필드로 들어오자, 이제 정리할 시간이 됐다.
“사진 찍자!!!”
“좋지! 남는 건 사진뿐이야!”
“지우야! 넌 가운데!”
“감독님도 지우 옆에서 같이 트로피 들고 있어요!”
유지우와 주앙 달루트가 가운데에 트로피를 가지고 앉았다.
선수들은 그 주위에 모이며 자리를 잡았다.
선수들이 자리를 모두 잡고 나자, 그들의 가족들이 바깥쪽으로 자리를 잡아 섰고, 그렇게….
찰칵.
역사가 기록되며 2034 호주 월드컵이 종료됐다.
* * *
대한민국의 월드컵 우승 소식이 전 세계로 퍼졌다.
세계 각국에서는 대한민국의 우승 소식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그건,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부로 호주 월드컵이 종료됐습니다. 우승팀은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는데요. 다들 결승전은 어떻게 보셨나요?”
영국 방송국에서는 패널들을 초대해 토크쇼를 진행했다.
“대한민국이 우승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맞아요, 저는 스페인의 승률이 더 높다고 봤거든요. 사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랬겠죠”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 스페인의 전력이 대한민국을 압도했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확률을 부수고 우승했죠.”
“그것을 이룰 수 있던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당연히 유의 존재죠.”
모인 6명의 패널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7경기 출전 12골 2어시스트…. 그냥 혼자서 대한민국을 우승시켰다고 볼 수 있는 수치죠.”
그의 대회 성적은 어마어마했으니까.
“저는 유의 존재도 존재지만, 대한민국의 수비진 또한 빼놓을 수 없다고 봅니다. 세리에 듀오라고 불리는 두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랬다.
사람들이 유지우에게 초점을 맞춰서 그렇지, 대한민국의 수비진에 스타들이 있었다.
유벤투스의 김재민.
AC밀란의 강현오.
두 선수가 수비를 지탱해줬기 때문에 유지우가 조금 더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저는 그 두 선수에게도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뛰어난 공격수가 필요하지만, 우승하기 위해선 뛰어난 수비수가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이야기는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거의 끝나갈 무렵.
MC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23세의 유가 이룰 건 이제 뭐라고 보십니까?”
패널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유지우는 이미 클럽에서 트레블을 거뒀고, 월드컵까지 우승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록이죠.”
“기록이라면 정확히 어떤 기록을 말씀하시는 거죠?”
“축구 역사에 남은 레전드들의 기록 말입니다.”
이제 유지우가 도전해야 할 것은 레전드로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다.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자.
EPL 역대 최다 득점자.
국가대표 역대 최다 득점자.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 등….
한 시대를 풍미했을 뿐만 아니라 펠레와 마라도나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유지우는 앞으로도 계속 도전을 해야만 했다.
“유는 충분히 그 기록들에 도전할 만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나이는 아직 23세.
젊은 나이라 역대 기록들을 다 갈아치울 가능성이 컸다.
지금도 여러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으니까.
“네, 그는 늘 위기를 이겨내며 증명해왔으니까요.”
“한 명의 해설위원을 떠나, 저는 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저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줘서 고맙다고요.”
그렇게 유지우의 시대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월드컵이 종료된 후, 다음 날.
한국 시각으로 오후 2시.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한국 대표팀이 입국하는 날.
인천공항 일대는 새벽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 국민의 이목이 이곳에 집중되는 순간.
- 와아아아아!!!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게이트를 통과해 들어왔다.
경호원들은 철저히 선수들을 지키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그 덕분에 선수들은 안전하게 밖으로 이동했다.
“수고하셨어요!”
“정말 행복한 한 달이었어요!”
“멋진 경기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팬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에 따라서 나간 곳에는 퍼레이드 카가 준비되어 있었다.
태극 문양으로 디자인된 퍼레이드 카에는 월드컵 우승 상징인 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선수들은 오르기 전, 플래카드 문구를 봤다.
[대한민국의 영웅들이여, 조국의 품으로!]
선수들이 퍼레이드 카에 오르자 곧이어 차가 출발했다.
도로로 나가자마자 몰린 수많은 인파.
경찰들이 미리 통제해둔 덕분에 퍼레이드 카는 수월히 지나갈 수 있었다.
국민들은 움직이는 퍼레이드 카를 보며 환호했다.
거리마다 태극기에 휘날리는 모습.
선수들은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우야, 이러지 말고! 자!”
김재민은 트로피를 유지우의 손에 넘겨줬다.
“주장이 먼저 들어 올려주셔야 다른 선수들도 들어 올릴 수 있지!”
다른 선수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유지우는 잠시 퍼레이드 카가 멈추자.
번쩍.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일대에 폭풍이 몰아치듯.
-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폭발했다.
선수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퍼레이드 카가 도착한 곳은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이었다.
그곳은 이미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서 대표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선수들의 준비가 끝나고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시작되며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입장해 인터뷰했다.
관중들은 선수들이 입장할 때마다 엄청난 환호로 맞이해줬다.
-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이자! 월드컵 골든 부츠와 골든볼의 주인공!”
이 정도만 해도 다음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있었다.
- “유지우 선수-!”
- 와아아아!!!
폭발하는 함성 속에 유지우가 필드로 입장했다.
가운데에 있는 장내 아나운서 옆으로 가서 마이크를 받았다.
“우승 소감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질문을 받은 유지우는 관중석에 앉은 팬들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출정식을 할 때, 트로피를 가져오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트로피를 가져와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다들 환호하며 유지우에게 박수를 보내줬다.
유지우는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박수 소리가 살짝 줄어들자 이어서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다음 대회도, 그다음 대회도 저는 우승을 목표로 뛰겠습니다.”
월드컵 우승 한 번이면 선수로서의 축구 커리어는 완성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유지우는 여기서 더 한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축구 역사 전체에 이름을 새길 선수였으니까.
그런 국가대표 주장의 포부에, 다들 뿌듯해했다.
“유지우 선수.”
장내 아나운서는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
모두가 궁금해했다.
과연 월드컵 영웅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을까.
유지우는 그 질문을 받고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잘 겁니다. 정말… 이대로 되나 싶을 정도로 잠 좀 자고 싶습니다.”
지난 월드컵 기간에 유지우는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그가 얼마나 큰 부담감에 사로잡혔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생각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있었을 거라고.
짝짝짝짝짝!
그렇게 기립박수를 쳐주는 팬들.
그리고 코치진들의 소감도 모두 듣고 나서야.
펑!
펑!
펑!
하늘에 폭죽이 터지며 국가대표 일정이 마무리됐다.
2034 월드컵 우승.
필드에 있는 영웅들은 필드를 한 바퀴 돌며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