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장마
아침에 일어나 집 뒤편에서 찾은 산책로를 돌고 선착장을 지나쳐 슈퍼마켓에 들렀다. 속 빈 강정 같은 아이스크림 박스와 매대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와 자주 가던 태양 슈퍼와 비슷하게 생겼다. 편의점으로 바뀐 태양 슈퍼는 인테리어를 젊은 스타일로 바꾸고 사장님까지 바뀌었다. 편의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아파트 부녀회에서 편의 시설을 늘려 준 공으로 화환을 보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지만, 나는 옛날의 태양 슈퍼가 그리웠다.
새소리가 유일한 음악인 섬에서의 하루는 눈물 나게 지겨웠다. 잠들기 전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현대인의 습성상 섬은 형량 없는 감옥일 뿐이었다. 걷는 게 전부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집. 이 층 창문의 하얀 커튼이 바람에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내 머리 위층에서 살고 있구나.
나는 세상 무서울 게 없어 뵈는 그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서글펐다. 사람이 없는 섬에서 사는 그의 존재가 눈엣가시처럼 아팠다. 오늘 저녁도 냉장고를 뒤져 해결해야 할 판인데 저 남자는 돈도 대가도 받지 않고 있었다. 주민은커녕, 팔찌를 만든 사람은커녕, 이 섬에서 만난 사람이라곤 꼴랑 저 남자 하나였다. 정신은 온전치 않아 보이고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 마음 어지럽히는 헛소리만 한다.
그래도 나는 남자의 지붕 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 부는 바람도 비의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티브이가 없어 섬 바깥에선 무슨 뉴스가 뜨거운 감자인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왜 폭탄이 떨어지는지 모른 채 저 남자와 늙어 죽을 때까지 섬에 갇히겠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만나야겠다. 사람을.
“아.”
마당 돌담을 넘으려고 하는데 따가운 시선이 머리를 녹일 듯이 달라붙었다. 자연스레 시선의 주인을 찾고자 고개를 들었다. 하얀 커튼이 손을 흔들었다. 품이 넓은 하얀 티셔츠, 창가에 팔을 쭉 내민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 남자. 하얀 커튼에 동화되듯 서 있던 그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남자는 리듬 타며 손목을 까닥거렸다. 제 눈에 안경이라더니. 의미 없는 그 손짓이 안녕이라는 인사처럼 보였다.
“부지런한 게 꼭 두루미 같다.”
두루미. 예상치 못한 비유에 입이 벌어지는데 그 남자가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허리를 젖혔다. 커튼 사이로 사라진 그의 얼굴이 햇볕을 받아 빛이 났다. 커튼을 제 몸에 감싼 그가 잠이 덜 깨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점심은.”
“아, 간단히 먹었어.”
“하면 저녁은.”
“이따가…….”
“같이 하자.”
저 어린 게. 나보다 여섯 일곱 살은 어리게 생긴 게 꼭 작업 거는 남자처럼 굴고 있었다. 자의식이 넘치는 건가? 하기야. 쟤도 섬에서만 살아서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을 테니. 우연히 이 섬에 굴러들어 온 나에게 관심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 둘이 이 섬에 버려진 건지, 아니면 운이 지지리도 없는 두 명이 만나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가 뭍이었다면 그와 친분이 생기자마자 물었을 것을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그때, 젠장 맞을 여우비가 머리 위로 쏴아아 쏟아졌다. 속옷 속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나는 속눈썹에 매달리다가 미끄러져 눈으로 들어오는 빗물을 막기 위해 재빨리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창문을 닫지 않고서 제 입술을 뜯고 있었다. 이름 석 자가 무어라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괴롭힌 그가 마침내 그 귀한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사조.”
그의 이름의 울림이 빗소리보다 컸다. 지, 지, 지, 직, 땅에서 기름이 끓는 소리가 났다. 상체를 내민 사조는 창문틀에다가 턱을 괴었다.
“산책은 몸에 좋지. 걸으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그때 우연의 일치인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사조는 제집에 빗물이 들이치는 것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가 웃음기 밴 목소리로 경고했다.
“한데 멀리는 가지 마.”
하마터면 여부가 있겠냐며 대답할 뻔했다. 그래도 나이가 있다고 순순히 대답해 주긴 싫었나 보다. 나는 말을 빙빙 돌려 사조에게 통보했다.
“저녁 할 건데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떨어지면, 그때부턴 대충 물 말아서 먹어야 해.”
섬에서 나는 풀이라도 뜯으며, 언젠가 올지 모를 배를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아니면 사조가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듯한 배에 희망을 걸어 본다. 하나뿐인 슈퍼가 저 모양인데 식재료 떨어질까 봐 안달 나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거 하난 위안이었다. 사조가 나를 놀리느라 물자 든 배에 대해서 숨기는 걸 수도 있었다. 배가 오기는 오는 거냐고. 너희 부모님하고 뒤꽁무니에서 몰래 연락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말보단, 반찬 할 거리가 없으면 물에 밥을 말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여파가 있으리라 믿었다.
현관에 들어서며 젖은 옷을 손으로 훅훅 털고 양말을 벗었다. 맨발로 중문을 여는데 사조가 계단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나 빨리? 내가 바깥에서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많이 봐줘야 1분도 안 되었다. 그사이 이 층에 있던 사조가 뛰어 내려와 계단에 앉아 있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마땅히 거칠어야 할 숨소리가 양보다 순했다. 애초부터 일 층에 있던 양 사조는 계단에 뻐기듯이 앉아 있었다.
“내가 말했지.”
“응?”
옷에서 떨어지는 물기를 한 번, 곧게 뻗은 목을 자랑하듯 보이는 사조를 한 번.
“내 집 마루에 물기가 치덕거리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말했지?”
젖은 마룻바닥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물기 닦을 만한 것을 찾아 근처를 둘러보는데 하얀 수건이 머리로 날아왔다. 계단에 앉아서 내가 빗물을 흘리고 들어오는지 아닌지 감시하는 모양인가 보다. 사조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제 목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나는 내 말을 어기는 것을 가엽게 봐주지 않아.”
“어기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하물며 토를 달아?”
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말투만 영감탱이 같은 게 아니라 사상도 영감탱이 같았다. 나는 그가 건네준 수건으로 몸, 머리, 바닥을 박박 문질러 닦다가 서러움이 복받쳤다. 이래서 셋방살이의 설움에 관해 토로하는 글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흥하는 거다. 사조의 감시하에 바닥에 흘린 빗물을 모조리 닦았다. 이 집을 나서면 폐가에 누워야 한다는 진실이 험한 감정싸움을 막아 주었다.
머리를 말꼬리처럼 올려서 묶은 뒤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사조는 내가 마룻바닥을 찍어누르듯 저벅거리며 걷는데도 아무런 참견이 없었다. 정말 아래층까지 내려온 이유가 고작 마룻바닥에 흘린 빗물 때문이라는 것인가. 욕실에 들어가 발을 씻고 간단한 샤워를 하는데 열불이 치밀었다. 집주인이기 때문에 제집 더러워지는 건 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섬 날씨에 무지한 여행객에게 봐준다느니 마느니 으스대면서 무안을 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토를 달지 말라니.
“어이없어.”
욕실에 구비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내내 귀찮아 죽겠다는 그의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볼썽사납게 눈물이 나려 했다. 이 나이 먹고 섬에 갇힌 것도 한심해 죽겠는데, 얹혀살게 된 집의 남자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당장 배편을 잡아 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나한테 다정치 못 한 사람과 계속 얼굴 맞대고 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매사에 심약한 내가 남의 비위를 맞출 자신도 없었다. 꽁한 일을 적립해 두었다가 한방에 터뜨리는 내 기질로 보건대, 남자와 한 판 붙을 날이 머지않았다.
‘너 화낼 때마다 딴 사람 같아. 어떻게 지 남자 친구한테 그딴 말을 해. 뭐? 씨발 새끼?’
감정은 성난 파도와 같다. 잠잠할 때는 남이 나를 물로 볼 만큼 그렇게 잠잠할 수가 없다. 화를 낼 상황에도 좋게 가자며 화를 내지 않는데, 어느 날은 사람이 돌변한 것처럼 말 한마디에 눈을 뒤집고 달려든다. 한마디로 감정이 조절이 안 됐다. 평소라면 넘길 말실수, 행동, 거슬리는 습관이 불덩이로 변해 자기 직전까지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막상 누구나 화낼 법한 큰일에는 무덤덤했다. 승진의 기회를 뺏겨도 무덤덤, 남이 주식으로 경기 외곽 아파트 한 채를 살 만큼 벌었다고 해도 부럽지 않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미련이 없을 사람처럼, 인생은 고통이고 지겹다는 말만 못 해도 백번은 하고 살았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몰라’ 혹은 ‘글쎄’였다. 그런데도 사랑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해서 남자친구의 사소한 한 마디는 넘기지 못하고 가슴에 챙겨 두었다. 그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적금 넣듯이 마음 통장에 넣었다. 적금 만기 일이 다가오면 그건 그와 헤어진다는 뜻이었다.
머리를 다 말렸는데도 나가지 않고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사조의 한 마디에, 행동에 이만큼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그에게 어느 정도 정이 든 것이었다. 참 사람이 싫으면서도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에게 금방 마음을 주고 정을 주었다. 이름 두 자 알았다고 친근감을 느끼다가, 마루 더럽힌다는 욕을 먹자마자 울적해졌다. 밥상머리에 앉아 그에게 삿대질하는 나의 모습은 꼴불견일 것이다. 그렇게 화내고 난 후에는 항상 사람들이 나를 조용히 피해 다녔다. 영영 안 봐도 상관없는 사람이면 모를까. 섬을 나가기 전까지는 사조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감정의 널뛰기 속에서 웅크리고 있기를 한참, 저 여자가 욕실에서 쓰러진 거 아닐지 걱정하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다 마른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방으로 들어가 흙냄새 나는 옷을 빨래통에 넣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기름기 있는 음식과 목 넘김이 시원한 생맥주를 생각나게 했다. 간단히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마루로 나와 보니 아랫동네에 빛이 들어와 창을 밝혔다.
“우산…….”
우산이 없었다. 비를 맞으며 섬을 돌아다녔다간 그 성미 까다로운 남자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맞을 게 뻔했다. 화창한 날에 나갈까. 애써 감은 머리를 망칠까 봐 주춤했으나 청개구리 같은 마음은 겉옷을 챙겨 우산 대신 쓰자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기회가 있을 때 얼른 내려가 사람 좀 보고 물을 것도 물어야지. 그리고 만약 빈방을 빌릴 수 있다면 오늘 밤에라도 짐을 싸서 이 집에서 떠나서 있어야지.
한 번 빨 생각이었던 겉옷을 들고 나가 머리에 썼다. 그때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 내 머리 위로 검은색 하늘이 떠다녔다.
“나가게?”
까만 우산을 들고 있는 사조가 호쾌하게 웃었다.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린 양하는 사조의 눈엔 앙금이 없었다. 얘도 나처럼 감정이 한 번에 확 치솟는 타입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 둘 다 누군가한테 섞이지 못하고 버려졌을까. 앞뒤가 똑같은 단면 색종이처럼 단순한 사람이 있다. 사조가 그런 사람이었다. 얼굴이 밝아진 사조는 아가씨 대하듯 내 머리 위에 우산을 씌우고 걸어 나갔다. 마음 정리가 끝나지 않은 나는 겉옷을 손에 두르고 그의 옆에 섰다.
서로 기분이 상한 티를 내는 것처럼 말이 오가지 않았다. 사조 쪽에서 말을 걸어 줄 의무는 없었지만, 그가 아무 일이 없는 양 콧노래를 부르는 건 기분이 나빠지려고 그랬다. 나는 저 때문에 울적해져서 욕실에 앉아 한 시간 동안 타일 개수나 세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긴 나 같이 남의 기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기분이 풀리면 옛적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했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의 마음 농도도 그만큼 옅으면 좋으련만.
“속이 상하였어?”
언덕을 내려가는데 사조가 그렇게 물었다. 하마터면 딴생각에, 빗소리에 그냥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넘길 뻔했다. 사조의 눈이 나를 어시장에서 산 생선 찔러보듯 쳐다보기에 알 수 있었다. 내숭쟁이인 나는 섭섭했으면서도 아닌 척 고개를 저었다.
“안 속 상했어. 집주인이니 그럴 수도 있지.”
“너 참 까다롭구나.”
멀대같이 큰 그가 우산을 드는 바람에 빗물이 내 쪽으로 제법 튀었다. 그런데 내 사정은 댈 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의 왼쪽 어깨가 까맣게 젖어 있었다. 사조는 피식 웃으면서 할 말을 다했다.
“속이 상하였다고 해야 내가 그러했니, 하면서 말이라도 해 보지.”
“속 안 상했어.”
“하면 팔짱이라도 껴 주든가.”
뜬금없는 말에 그를 올려다보자 사조가 젖어 버린 자신의 팔 한쪽을 내게 보였다.
“보이지? 아끼는 옷이 빗물에 먹힌 게.”
“아, 우산 내가 들까?”
“그럼 내 허리가 가엽지 않겠어?”
은근히 팔 하나를 내미는 그를 보고 복숭아 껍질처럼 싸고 있던 내숭이 벗겨졌다. 아무리 어리다고 하지만 성인이고 남자였다. 함부로 팔짱을 끼는 게 어색해 머뭇거리자 그가 작정한 듯이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나랑 친하게 보이면 얻을 거 많아.”
“저기, 간지러…….”
“한 번 해 봐. 빗물에 떨고 있는 네 몸에도 좋으니.”
기름 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손가락 관절을 움직여 그의 팔뚝을 거의 꼬집는 양하듯이 잡았다. 사조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언덕을 쑥쑥 내려갔다.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의 팔을 무심코 꼭 잡고 말았다. 언덕에서 슬리퍼가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 적에 그의 팔로 쏘옥 들어간 나의 팔이 엉키고 엉켜 팔짱을 끼는 것처럼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팔짱을 끼는 꼴이 이성에 눈을 뜬 청년들의 것이라기보다, 싸우고 화해하기 싫어 자존심 부리는 초등학생 같았다. 우산을 든 그의 팔에 걸쳐진 나의 팔은 팔짱이라기 보다는 바닷바람에 건조하는 생선처럼 걸려 있을 뿐이었다. 조용히 키득거리고 있는 나를 사조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가 우산을 반대편 손으로 가져가 버린 뒤 팔짱 끼고 있는 왼팔을 뺐다. 피차 팔짱은 불편한 것이라고 말하려는 차에 남자다운 팔이 내 허리에 둘려졌다. 쑤욱 제 품으로 데려가 우산을 씌운 그는 내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무심하게 툭툭 털어 주었다.
“이래야 따듯하지.”
나는 허리에 둘러진 그의 손을 언제든 밀어낼 수 있게 불편한 자세를 고수했다. 기대지 않고 지지대처럼 잡고 있었지만 그는 우산을 편히 나누어 쓰기 위해서라는 듯이 개의치 않아 했다. 그의 샌들과 나의 슬리퍼가 내는 소음이 빗소리를 넘어 귀에 들려왔다.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보다 주황색 전구를 켜고 밤을 밝히는 마을보다 허리띠처럼 차고 다니는 그의 손이 신경 쓰여 죽을 뻔했다. 흑심은 없다는 양 얌전히 있는 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비탈이 가파른 언덕 중반을 지나는 길이었다. 노란색, 주황색 전구가 깜빡깜빡. 사람을 인식하는 것처럼 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파스스 떨면서 꺼진 전구는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기가 산 듯이 환해졌다. 전구마다 성격도 다양했다. 약하게 불을 트는 소심한 것이 있으면, 장난이 심한 아이처럼 정신 사납게 깜빡거리는 것도 있었다. 대문에 달려 있는 전등과 고동색 가로등이 다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가슴 울리게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마냥 좋아할 건 아니었다. 언덕 중턱에 선 나는 더 이상 광경 따위에 감탄할 수가 없었다. 우산 아래서 벗어나 슈퍼 앞까지 비를 쫄딱 맞으며 걸어갔다. 암만 길을 밝혀봤자 섬 안에 사람은 없었다. 이 섬에 살고 있는 것은 사조라는 남자 하나뿐이었다. 섬에 코가 꿰인 게 확실시되자 부아가 치밀었다. 언덕길에 흐르는 비가 슬리퍼 안으로 넘나들었다. 주황색 불빛이 점령한 섬을 원망스레 보고 있을 때 뒤에서 천천히 따라온 우산이 내 머리 위에 씌워졌다.
“저기.”
옆에서 우산을 내어 주고 있는 사조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씨익 웃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저건 웃는다. 지금 살길이 막막한 무인도에 갇히고 만 것이나 다름없는데.
“여기 너만, 그러니까 혼자 살아?”
“아니거든요.”
그때 놀리듯 말을 마친 사조의 손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까만 우산의 손잡이를 손에 쥐여 주고 그는 손등 그늘로 비를 막았다. 빗물에 머리가 젖은 사조는 빈 슈퍼 쪽으로 달려갔다. 우산을 들고 멍하니 서 있던 나는 그에게 목청껏 소리쳤다.
“거기 아무것도 없어.”
정신이 아픈 남자. 이 섬에 홀로 산 지 너무 오래되어서 말투가 정상을 비껴간 남자. 이 섬에 사는 게 맞는지, 아니면 뭍에서 죄를 짓고 여기에 숨어 사는지. 알 수 없는 의문들이 무한한 상상으로 펼쳐져 무서웠다. 저 남자와 단둘이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은 절망감이 아랫배를 지그시 눌렀다. 사조는 슈퍼에 전세라도 낸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탈탈 털어도 라면 부스러기조차 나오지 않는 슈퍼를 뒤져서 어디에 쓰겠는가. 타일러서라도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산을 접고 슈퍼 쪽으로 뛰어갔다. 물방울 코팅이 된 우산을 털면서 슈퍼로 들어섰을 때였다. 윙, 돌아가고 있는 아이스크림 박스가 슈퍼 안에 버젓이 들여져 있었다.
“이럴 리가…….”
사조는 전기가 들어와 노란 조명등이 켜진 아이스크림 박스를 뒤지고 있었다. 그의 손에 잡힌 아이스크림은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초코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사조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내 앞에서 아이스크림의 상표를 눈으로 읽어 내렸다.
“아니야?”
진심으로 이 아이스크림이 아니냐고 묻는 눈치였다.
“이것 맞을 텐데.”
슈퍼 안은 다른 사람이 인수해서 오픈한 것처럼 달라져 있었다. 우산을 유리가 깨진 출입문에 세워 두고 슈퍼 안을 조사하듯 돌아다녔다. 비어 있던 판매대에 라면이 볶음류, 국물류, 회사별로 놓여 있는 데다가 파와 양파, 마늘까지 들여놓은 게 보였다. 하다 하다 아이스박스와 정육점 코너 같은 곳까지 발견한 나는 묶은 머리를 풀었다가, 묶었다가를 반복하며 이 황당한 심경을 표현했다.
“챙길 것 있으면 챙겨.”
내가 버린 우산을 주운 사조는 한 손으로 껌 껍데기를 벗기며 나갔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라면 몇 봉지와 소주, 그리고 삼겹살로 보이는 것을 챙겨 나왔다. 정신이 반쯤 나간 와중에도 다신 이런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람의 욕심이란 게 일었다. 바리바리 가슴에 안고서 밖으로 나오니 슈퍼 담벼락에 서 있는 사조가 보였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그는 분홍색 풍선껌을 씹고 있었다. 껌으로 커다란 핑크 풍선을 분 사조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빵, 하고 풍선껌이 터졌다.
“많이도 챙겼다.”
손이 모자라서 주머니에 대파를 꽂은 게 우스울 만도 했다. 웃고 있는 그의 옆으로 걸어간 나는 얼이 나간 채로 물었다.
“언제 배가 왔지? 나 못 봤는데.”
“네가 못 본다고 배가 안 뜨나.”
“왜 왔다고 말 안 해 줬어. 나, 나가 봐야 해.”
“왜.”
“뭐가 왜야?”
“나가서 어디로 가시려고.”
그의 말에는 뼈가 숨겨져 있었다. 그 뼈는 보통 사람의 가슴에 꽂혔다.
“갈 데도 없으면서.”
내 손금을 보고 외로운 삶인 걸 어찌 알았나 본데 그게 그렇다고 나를 무시할 까닭은 되지 못한다. 라면 봉지, 삼겹살, 소주 이런 것을 그에게 던지듯이 떠밀었다. 뿔난 얼굴로 던진 물건을 받아 든 그가 본인은 너그러운 척 웃기만 했다.
“나도 갈 데 있어.”
내 오기 어린 말에도 그는 생글생글했다. 도마에 올린 생선을 어찌 손질해볼까 하듯이 재밌는 얼굴이었다.
“네가 갈 데가 있음, 배도 뜨겠지.”
말장난. 남은 심란해서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데 저는 만사에 통달한 것처럼 까부는 것도 재수 없었다.
“됐다. 내가 지금 이 어린애랑 뭐 하고 있는 거야.”
일부러 그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해 비꼼을 가득 담아 말한 뒤 우산을 펼쳐 들었다. 우산을 독차지하고 올라가는데 뒤에서 아무 근심 없이 태평한 발소리가 들렸다. 찰박, 찰박. 화가 나지도 않나 보다, 쟤는. 나는 정곡을 찔려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왜 사조가 불편한지를 말이다. 저런 사람들을 싫어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에 목마른지 알고 있는 사람들. 한 대학 선배가 어쩌다 내 집안 사정을 알게 됐다. 소득 분위 때문이었나. 학교 장학금 때문이었나. 입 가벼운 고등학교 동창 때문이었나. 여하튼 다른 학과의 한 다리 건너 아는 선배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합석한 술자리에서 깔깔대며 웃는 나를 콕 집어 말했다.
‘정인이 밝아 보이려고 너무 애쓴다. 안 그래도 돼.’
그날 술자리에서는 분위기에 휩쓸려 유야무야 지나간 말이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 선배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사흘 밤낮을 고민하다가 따로 그 선배를 불러내어 자초지종 내막을 들었을 때는, 아,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이 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신이 뭔데 나보고 밝으라 마라 하는 거냐며 따지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엄마, 아빠 없는 애는 어둡다고 단정 짓는 그 해맑음이 치가 떨렸다. 설령 그래 보인다고 한들 모른 척 좀 해 주면 안 되나.
물웅덩이서 노는 저 발소리에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어차피 나한테 손 내밀어 줄 것도 아니면서 그냥 좀 모른 척해 주면 안 되나. 아는 척해야 배배 꼬인 제 속이 풀리는 사람들. 다들 왜 그런지 모르겠다.
༺♥༻
섬을 비에 재울 것처럼 퍼붓는 빗소리엔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효과가 있다. 이 섬이 무인도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집에 틀어박혀 밥만 먹는 식충이로 변했다. 이러면 뭍에 있을 때와 다른 게 없었다. 그때도 할아버지의 옷, 신발, 모자를 담은 박스 옆에 베개를 두고 종일 누워만 있었다.
누구 한 명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나긴 장마는 사람을 절인 오이처럼 생기 없게 만들었다. 이런 날에 배가 올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따금 우산을 들고 선착장으로 나가 보았다. 바다는 매일 무서우리만치 높은 파도를 만들고 있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 장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토도, 토도, 내리는 빗소리가 익숙해져 밤에 비가 그치면 잠이 깼다. 그만큼 비에 익숙해졌단 소리였다.
사조는 그날 슈퍼에 들른 뒤 헤어진 이후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이 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챙길 만큼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와 언짢은 일까지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배가 왔다는 것을 일러 주지 않아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일 터였다. 배 소식이 아쉽지 않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내가 사조를 피해 다니는 건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
요즘처럼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고요한 강물 같은 내 마음이 남하고 같이 있으면 이게 정상은 아니구나 싶으면서 달리 보일 때가 있다. 사조는 자꾸 나를 자극한다.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를 피하는 것은 여린 살을 지키기 위해 세우는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것이었다.
오늘도 오지 않는 배를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길이었다. 우산을 접으며 빗물을 탁탁 털고 있을 때 이 층 창문이 열렸다.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후다닥 놀라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벌써 사흘째 우리는 같이 살되 따로 행동하는 중이었다. 현관에서 빗물을 털고 우산꽂이에 우산을 꽂았다. 슈퍼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을 차였다. 삐걱삐걱, 계단 밟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났다. 라면 물 올리는 소리를 듣고 사조가 나타난 것이겠거니 했다. 저녁이 시간이 되면 부엌을 기웃거리는 게 사람의 본능이었다.
“사조…….”
부엌과 마루 사이 단차에 그림자가 있었다. 낡은 부엌의 전등이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면서 그네를 탔다. 천장에 연결된 전등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흔들거리며 한 발, 한 발 가까워졌다. 바닥에 누워 있던 그림자가 깨어나듯이 바닥을 짚고 일어나면서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가 방출하는 냉기에 손이 얼어가는 차였다. 전등이 제자리로 돌아와 멈추자 그림자는 기교 부리듯 사라지고, 다리 한쪽이 올라간 남색의 팬츠가 부엌에 들었다.
“하아…….”
털썩, 주저앉음과 동시에 사조가 냉장고 앞으로 왔다. 사조는 턱을 긁으며 냉장고 문짝에 기대앉아 있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눈이 약한 것처럼 바투 얼굴을 갖다 댄 뒤 허리를 굽혔다.
“넋이 나갔네.”
“있잖아.”
“기력이 없는 건가. 아님…….”
말을 하다가 말고 히죽 웃은 그가 아무렴 어떠냐는 듯이 내 눈길을 피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서 그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초록색 소주병을 집었다. 잔도 없이 손목에 힘을 줘 뚜껑을 까고 병째로 벌컥벌컥 마신 그는 반을 비우고 나서야 입에서 소주병을 떼었다. 입가에 흐른 소주를 아무렇지 않게 손목으로 닦아 낸 그가 마시다 남은 것을 내게 권했다.
“먹을래.”
“아, 아니.”
“잡숴 봐. 정신 확 깨.”
그림자가 자아를 가진 것처럼 흐느적거리던 장면이 충격적이라서 그런지, 눈코입 달린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내민 술을 두 손으로 받았다. 몸이 허약해진 건지, 정신이 허약해진 건지. 냉장고 그림자가 문어처럼 한들거리는 걸 보다니. 입에 난 통로로 술을 들이붓자마자 목이 불타올랐다.
“윽, 아으.”
미미한 단맛 끝에 따라오는 알코올 특유의 맛이 끔찍했다.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려 하자 사조가 허리를 아래로 숙여 받아 내었다. 그는 소주 몇 모금에 당한 내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안주가 없어 호되게 당했는데도 빗소리 때문인지 한 잔 더 마시고 싶었다. 그가 불량한 자세로 앉아 나를 훤히 들여다보듯 보았다. 나는 몸에 쫙 달라붙는 그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나갈래.”
“뭐, 어디를.”
“밖에.”
손에 든 소주병을 흔들며 그가 씨익 웃었다.
“이슬이랑 같이.”
“나…….”
혼자 있기 싫었다. 그냥, 얘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얘는 사람이었다. 싫음 말고라는 태도로 허리를 펴서 나가는 사조의 걸음이 빨랐다. 나는 취한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리의 힘이 풀려 부엌 바닥 위에서 스케이팅 타듯 헛발질했다. 널찍한 등이 부엌을 떠나갈까 봐 입안이 바짝 말랐다.
“야.”
냉장고 문을 지팡이 삼아 무게를 지탱하고 배에 힘을 줬다.
“사조야.”
사조는 그 문어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조명 아래서 나를 돌아보았다.
“나 불러?”
“다리 힘이 풀려서 안 움직여.”
사조는 식탁 위에 소주병을 두고서 나에게 협조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에게 손목을 잡아 달라는 의미로 팔 한쪽을 내밀었지만 그의 손이 향하는 방향은 다른 곳이었다. 손이 내 팔뚝 안쪽으로 들어왔다. 간지럼을 타서 주저주저하다가 쿡쿡 웃었다. 팔 밑에 단단한 손을 넣은 그가 힘을 주자마자 몸이 위로 올라갔다.
“고마워…….”
“나가려고?”
“응, 그러려고.”
“겉옷. 걸치는 게 나은가 아닌가. 더우면 말고, 추우면 네가 가서 가져오고.”
사조의 그림자가 우산처럼 내 머리 위에 졌다. 볼일이 끝났음에도 내 팔 밑에서 빠지지 않고 있는 두 손 덕분에 안정을 찾았다.
“이제 일어설 수 있어.”
나는 그의 팔뚝에 힘을 가해 밀어냈다.
“서 봐.”
대답을 넙죽넙죽하는데 손이 빠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 물에 빠졌다가 건져진 것처럼 몸이 무겁긴 했으나 다리를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따끈한 사조의 손이 나의 팔 밑에서 빠져나와 허리를 스쳤다. 나는 숨을 토하는 행동조차 조심스러워졌다. 가까이서 본 그의 눈동자 가운데에 새초롬한 갈색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흠, 흠.”
줄넘기 넘듯이 사조를 넘어서 걸어 나왔다. 식탁에 올려 둔 소주병을 챙기고 현관으로 나가 슬리퍼를 신었다. 현관문을 여는데 뒤에서 그의 샌들이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는 건 어찌나 빨리 신는지, 문 열고 나오는 나보다 한걸음 빨리 밖으로 나갔다.
도심 야경처럼 쓸쓸한 아랫동네의 불빛이 섬에 번져가고 있었다. 이 섬의 주인, 혹은 나처럼 갈 데 없어서 이 섬에 머물고 있는 외톨이. 걸음 빠른 사조가 평상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거지 같은 상황도 마냥 나쁘진 않았다. 역성을 들자면 나 혼자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 생존기를 찍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살고 있었다. 그게 사조라서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조가 없었다면 이보다 가혹한 여름을 보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니까. 나는 평상에 다리를 내놓고 앉아 소주병을 기울였다. 잔에 따라 마시면 쓴맛이 역한데 목으로 바로 들이부으니 알코올 냄새가 중간중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도.”
“음?”
“다 먹지 말고, 나도.”
다 먹을까 봐 불안했는지 불쑥 나온 손이 얼른 달라며 앙탈이었다. 나는 건네받은 병을 자연스레 제 입술로 가져가는 사조에게 눈길을 뒀다. 고작 한 병을 나누어 마셨는데 벌써부터 목이 간지럽고 눈알이 홧홧했다. 모기 물린 듯 간지러운 눈가를 문지르고 두 다리를 모아서 끌어안았다. 무릎에 얼굴을 베고 누워 있는 사이 그에게 배신을 당했다. 다 마시지 말라던 사조가 술이 간당간당 고인 소주병을 저 혼자 마시고 있었다.
잘 마시고 있는 사람한테 나누어 달라고 할 배짱이 없어 술 마시는 사조의 목선이나 훔쳐보았다. 저 머리는 자르기 귀찮아서 기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넘기던 사조가 의식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너도 원하냐는 뜻으로 소주병을 꿀렁꿀렁 흔들었지만 이만하면 기분 좋을 만큼 마신 것 같아 거절했다. 이 이상 취해서 헛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벌게진 눈가를 손등으로 비비며 잠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부리고 있을 때, 하얀 손가락이 끼어들었다. 입술에 찹쌀처럼 붙은 머리카락을 빼준 그의 손등이 나의 턱을 쓸면서 떠나갔다. 자연히 나의 눈길은 그의 손을 따라가다가 가을 들판 같은 눈동자에 닿았다. 혀로 제 입에 묻은 술을 슬며시 핥은 그가 입꼬리를 당겼다.
“허리 아프다.”
“아, 내가 너무 붙잡아 뒀나 보다. 들어갈래?”
허리가 아픈 사조는 집에 들여보내 놓고 나는 바깥서 바람을 더 맞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조는 기가 차다는 듯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피해서 몸을 굼벵이처럼 말아 버리자 그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누웠다. 나의 허벅지 위로 떨어진 그의 머리에서 사과 향이 났다. 머리 무게에 눌린 허벅지 모양이 베개처럼 퍼졌다. 나는 사조의 머리를 밀기 위해 손을 올렸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평상에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졌다. 그 무렵 사조는 편안히 드러누워 별을 감상했다. 이렇게 누워 있음에도 화사한 미색을 잃지 않는 것을 보니 사조가 뭍에 나왔다면 꽤나 여자들 울렸을 듯싶었다. 조용히 허벅지를 빼내기 위해 슬금슬금 무릎을 붙이는데 사조가 움직이지 못하게 머리에 힘을 주어 꾹 눌렀다.
“너, 눈치코치도 모르는구나.”
그의 머리를 밀어내기 위해 준비된 손목이 붙들렸다. 서서히 그의 입술로 끌려가는 손목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조의 눈이 이상했다. 보기만 해도 무더운 열망이 그 무심함 속에 녹아있었다.
“이상해.”
“무엇이.”
“지금 꼭, 나를 꼬시려는 것 같이 굴고 있잖아.”
심각해지고 싶지 않아 꺼낸 말이지만 사조는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가져간 나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의사처럼 만져 보고 있을 뿐이었다. 손가락 사이 움푹 패진 곳마다 그의 엄지와 검지가 돌아다니며 진찰하고 있었다. 내 손을 가지고 노는 일에 푹 빠진 그는 순진한 시골 청년 같았다.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조금 힘을 주어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쑤욱, 빠지는 손을 놓친 사조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내.”
“안 돼.”
“얼른.”
“내 손이야.”
“한데?”
“내… 손이라니까.”
눈빛으로 나를 책망한 사조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제자리로 가면 좋으련만 그는 일어난 자세로 내 어깨에 턱을 올렸다. 졸지에 그를 안게 된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나 들어갈래.”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고. 우리 죽이 잘 맞을 듯하지 않아?”
빗소리가 그의 말에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외롭다는 말이 그만큼 이해가 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작은 섬에, 내가 오기 전까지 안부를 묻거나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었을 텐데. 그의 코끝이 나비 날갯짓처럼 사뿐히 어깨에 문질러지는 게 느껴졌다. 심장에서 북이 울렸지만 이것은 사랑이라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외로움에 중독되면 작은 관심을 던져 주는 사람에게도 사랑과 비슷한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사귀어 왔던 남자친구들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저 사람이 좋아, 가 아니라. 이 사람이라면 나의 외로움을 채워 줄 수 있겠구나. 그래서 만났다. 그래서 실패했고. 남자들은 나의 외로움을 채워 주고, 채워 주다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쳐 버렸다. 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여러 번 받고 나서야 나의 외로움은 아무도 채워 줄 수 없음을 깨우쳤다. 이건 이번 생에 내가 가져가야 할 지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혼자 있으나 둘이 있으나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지만, 딱 한 가지, 혼자 있으면 적어도 타인으로 인하여 지옥을 경험할 일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남자친구 같은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네가 어려서 싫어.”
어린 만큼 혈기 왕성할 테고, 그만큼 실패해 본 적도 없을 테고,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싱그러워 탐이 날 테고, 그리고 나에게 두 번 다시 잊을 수 없는 상처도 줄 테다. 그에게서 상처를 받는다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바다뿐이었다. 나는 아예 옆으로 기듯이 걸어가 평상을 버렸다. 빗물 묻은 슬리퍼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커다란 팔이 내 허리에 휘감겼다. 그의 팔은 매듭이 되어 나를 다시 평상에 앉았다.
한층 대담해진 사조가 내 허리가 아닌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에게서 달콤한 알코올의 냄새가 났다.
“전부터 궁금하였는데.”
“팔도 막 올리지 마…….”
어깨에 올려진 손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등 근육을 썼다.
“내 나이가 몇으로 보이기에 그래?”
이런 식으로 물을 줄은 몰랐기에 나는 죄인처럼 손을 모았다.
“그럼 스물한 살이니?”
사조가 터지려는 웃음을 참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기가 생긴 나는 침을 삼키며 퀴즈 풀기 삼매경에 빠졌다.
“스물둘?”
“…….”
“스물다섯?”
점점 숫자가 커져 내 나이 근처로 오고 있었다. 손바닥에 난 땀을 닦으며 그의 눈길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의 눈에는 어디 더 해 보라는 듯한 웃음만이 걸려 있었다.
“그럼, 서른이라고?”
“더 해 보지 그래.”
“안 믿겨. 민증 줘 봐.”
“호패 같은 것?”
“호패?”
한국사 시험에서나 등장할 법한 말에 이번엔 내 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반달 같은 웃음이 걸려 있는 그와 눈길을 교차하고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꼬리를 시원하게 올리며 웃었다. 술의 힘이 별말 아닌 것에도 웃음 나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웃음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눈앞에 초록색 병이 들이밀어졌다. 주저주저하다 받아 든 뒤에 목으로 술을 넘겼다. 술에서 정종 같은 단맛이 났다. 쌀을 오래 씹을 때 나는 달큼함이 술에 풀어져 있었다. 내가 알던 소주가 맞나 싶어 천천히 술로 입을 헹구는데, 내 반응이 신통했는지 사조는 저가 만든 것처럼 우쭐거리며 말했다.
“맛이 어떠하냐.”
“그게… 달아.”
“그보다 더 단 것을 아는데. 줄까?”
이때다 싶어 다가오는 그의 입술이 한입 깨물어 보고픈 빨간색으로 보였다. 뺨이 미어터지도록 넣고 와드득 깨물면 새콤달콤한 씨가 통통 터지는 산딸기 같았다. 하지만 그 산딸기는 뱀독이 묻어 있기에 함부로 주워 먹어선 안 됐다. 내 눈빛에서 거부 의사를 확실히 읽은 사조는 입술 대신 술을 마셨다.
“미안해.”
“미안?”
연인 사이에도 사과할 일이 아닌데 하물며 집주인과 하숙쟁이 관계에서는 서로의 머쓱함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하지만 사조는 머쓱하지 않은 양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평생 우리는 손을 마주 잡을 일이 없을 것이다. 사조 같은 사람도 만나 보았다. 저도 외로워서 나같이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토끼 잡고 꿩 잡는 줄 알았던 사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사랑을 받고만 싶어 하지 줄 줄은 몰라서,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를 원망하는 말만 골라서 하다가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는 말할 것도 없다.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그 길이 사랑으로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걷고 싶지 않았다.
“나 꼬시지 마.”
“하.”
하하, 보기 좋게 벌려지는 사조의 입술을 보면 시니컬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부류의 남자를 멀리하는지도 모르면서 잘만 웃는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꼬시려는 거 다 알고 있어. 한두 번 몸을 섞고 난 뒤 엉겨 붙으면 귀찮아할 거면서. 이쪽 분야에선 무당 뺨치게 잘 알고 있어. 수도꼭지 틀어진 눈을 손으로 막았지만 물이 새어 나왔다. 이래서 적당히 마셔야 하는데 술이 달게 넘어가면 그러지를 못한다. 내가 훌쩍이며 울고 있자 사조가 평상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떠나는 게 마음이 편해 가는 길을 막지 않았다. 그때 훅, 당기는 손힘에 의해 눈구멍을 막던 손이 떨어졌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조가 보였다. 울음 뚝 그치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내 눈물샘을 말린 건 그가 처음이었다.
“만져 봐.”
끈끈한 목소리가 바라는 대로 그의 뺨을 스윽, 스윽,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손바닥에 털이 돋아나는 양 간질간질했다.
“부드럽지.”
“응…….”
“이것도.”
나의 손바닥 위에 그의 손바닥이 올려졌다. 알딸딸한 정신으로 그의 손바닥을 뺨 만지듯 만져 보았다. 손바닥에 밀고 비벼지는 내 지문에서 끈적이는 땀이 배어났다. 목 끝까지 차올랐던 서러움과 슬픔이 그의 손바닥 위에 실뭉치처럼 뭉치는 느낌이었다. 중독성 강한 그의 손바닥이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쓰다듬을 것이 없어진 나는 섭섭한 눈빛으로 줬다 뺐냐고 물었다. 사조는 떼쟁이 달래듯 손을 내주었다.
“이걸로 네 뺨을 쓰다듬으면 기분이 더, 더 좋을 텐데.”
“내 뺨?”
“해 볼래.”
반강제로 사조의 손을 받았다. 그의 손바닥은 상한 눈자위와 뺨을 감쌌다. 오싹한 기분이 내 뺨으로 넘어와 뒷덜미까지 덥혔다. 그 죄 많은 손이 나의 뺨을 스윽, 스윽 어루만져 주었다. 손 모양의 베개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럼 밤마다 사랑이 고파 울 일도 없었을 텐데. 사조의 엄지가 눈물이 고인 내 눈가를 쓸었다. 뚝, 떨어진 눈물방울이 신명 난 듯 그의 손목 위에서 굴러다녔다.
더디고 차분한 그의 눈길이 어지간한 키스보다 나았다. 서너 살 아래로 보였던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어리게 보이지 않았다. 왜 스무 살로 착각했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그의 자상한 면모에 심장은 솔깃하고 있었다. 가벼우기론 따라올 데 없는 심장이 또 일을 치르려나 보다. 코는 오뚝 섰고, 눈은 고상하고, 입매는 볼수록 귀염성이 있었다. 그는 양지에 피어난 양귀비처럼 위험하게 웃었다. 내 눈물을 가지고 놀던 손이 아래로 내려와 입술을 매만졌다. 입술을 꾹, 꾹 누르다가 벌려진 틈으로 제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를 슬며시 집어넣었다. 혀에 느껴지는 그의 손가락에서 따듯한 맛이 났다.
“내 말이 맞지.”
“으.”
“달큼하지.”
아까 술보다 더 단 것을 알려 주겠다는 게 이것이었나 보다. 손가락을 밀어내려고 혀를 쓰자 그가 기꺼워하는 듯 눈웃음을 그렸다.
“당과처럼 넣고 핥고 싶구나. 안쪽까지 넣어 줄까.”
고개를 젓자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빼내고 아쉬운 듯이 내 입술을 눌렀다. 사조는 젖은 손가락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양 제 혀에 비볐다.
“다네, 달아.”
손가락을 찍어 먹어 본 그가 입맛을 다시며 전과 같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심장은 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중이었다. 졸음으로 회피하려는 차에 그의 눈짓이 더 아래쪽을 가리켰다.
“더 단 것이 있는데.”
“…….”
“맛볼래.”
마구 고개를 흔들다가 쓰러지는 몸을 그가 받아 내었다. 원래라면 가녀린 여주인공처럼 옆으로 픽 쓰러져야 할 몸을 그가 받은 것이다. 달팽이관이 뽑힌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오늘따라 일이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 때 사조가 허벅지를 잡아 들었다. 팔다리의 힘이 쫙 풀리는 와중에 등이 얼굴을 받쳤다. 그의 뒤통수와 이어진 예쁜 목선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들어 흰 목을 콕 찍자 그의 눈이 흘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자는 척을 하면서 그의 등에 얼굴을 숨겼다. 그는 허술한 내 거짓말을 알아차렸으면서도 내려 줄 테니 걸어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등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맡는 사람의 마음을 양지로 데려가는 냄새. 맡는 사람의 마음을 무두질하여 자백하고 싶게 만드는 냄새. 아무도 모를 만큼 천천히 그의 등에 뺨을 문댔다. 허벅지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 꽉 조여지는 게 느껴졌다. 그의 뺨을 보고 싶은데 남자치고 긴 머리카락이 방해였다.
“난 짧은 머리가 좋아…….”
그래야 네 얼굴을 엿볼 수 있을 테니까.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장마철이 되면 비는 다른 계절보다 체력이 좋아졌다. 밤새 달릴 것처럼 기운차게 시작하는 빗소리, 그의 가죽 샌들이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 가슴이 얇게 저며져 목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 감정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는 너무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장마라서, 그래서 곁에 있는 너한테 울렁거리는 느낌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제 더는 이 장마와 같은 사랑이 싫었다. 한 번에 퍼붓고, 나를 감기에 걸리게 하고, 온 지도 모르게 떠나 버리는 사랑. 그런 장마 같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