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저녁 한 끼
섬이라 날씨가 오락가락 변덕스러워서 초여름임에도 날이 쌀쌀할 줄 알았고 또 섬에 삼일 이상 머물 줄 몰랐기 때문에 가져온 옷은 더워서 못 입는 게 반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자 카디건은 제아무리 얇다고 하더라도 걸치기 싫었다. 그러나 챙겨 온 반팔은 한 벌뿐이라서 세탁기에 넣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카디건을 입고 있어야 했다. 반팔 같은 것이야 성별을 타지 않으니 사조에게 빌리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나는 그와의 만남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사말도 안 하기 위해서 쇼를 하는데 하물며 옷을 빌려 달라고 하다니.
“옷 없어?”
화들짝 놀래서 남쪽에 난 창문을 돌아보았다. 사조가 오징어 칩 봉지를 창틀에 올려 두고서 먹고 있었다. 엎드린 팔 위에 턱을 올려 둔 그가 과자를 집어 먹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잊고 있었지만 여기는 엄연히 내 방이었다. 머리를 감고 나와 아랍 스타일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던 나는 카디건을 등 뒤에 숨겼다. 속옷도 아닌데 그게 왜 부끄러운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있어.”
“빌려주까.”
과자를 먹느라 뭉개진 발음이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딴 사람 같으면 나이에 맞지 않다고 속으로 흉을 봤을 터였다. 나의 이중성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호기심이 그 나이까지 사그라들지 않은 사조는 옷이 있다는 거짓말에도 빌려주냐고 물었다.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처럼 구는 그를 볼 때마다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만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 때문이었다.
“배, 아직 안 오지.”
“어.”
“남는 거 있어?”
“있으니 물었겠지.”
“그럼…… 빌려줄래.”
속옷도 부족했지만 그건 생리적인 부끄러움을 떠나 남자인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불편함이 아니었다. 부탁을 접수한 사조가 몸을 일으켜 창가를 떠났다. 얼마 안 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방 앞까지 착, 착, 착 걸어오는 발소리엔 당찬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예의상 방문을 두드린 그가 대답도 하기 전에 미닫이문을 열어젖혔다.
“가자.”
“응.”
감정을 숨기는 것에 치중하다가 말이라도 더듬으면 어쩔까 싶었지만 다행히 나도 그렇게 바보는 아닌 모양이었다. 문밖으로 사조를 따라나서는데 머리를 싸맨 수건이 풀어져 턱까지 흘러온 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걸었다. 사조는 제 방으로 안내하는 동안 오징어 칩을 끝장 보겠다는 듯이 먹어치우는 데 열심이었다. 저렇게 산만하게 먹으면 보통 과자 가루를 떨어트릴 테지만 사조가 지나가는 길은 걸레질을 한 양 깨끗하기만 했다.
말리지 못한 머리에, 과자 먹는 소리에, 집중력이 분산된 나는 이 층에 처음으로 올라왔다는 중요한 사실조차 까먹고 말았다. 난으로 보이는 화병과 제사 지낼 때 쓰는 화려한 병풍을 보고 잠시 놀라긴 했지만 예스러운 집안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곧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만 방문에 덕지덕지 붙여 둔 부적 수십 장을 보고는 꺼림칙한 기운을 지울 수 없었다. 사조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게 옷장의 서랍을 열었다. 잘 말아 둔 하얀 티를 뒤적거리는 그의 행동에 특이점은 없었다. 문지방 너머로 그를 지켜보던 나는 아무 디자인이어도 상관없느냐는 그의 말에 방으로 들어섰다. 서랍장 안을 빼곡히 채운 하얀 반팔티 중에 무늬 없는 것을 고르자 그가 바로 비슷한 티셔츠 세 장을 빼주었다. 그때 티를 전해 주는 사조의 시선이 나의 발밑에 와 있었다. 머리에서 흐른 물방울이 한둘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얼마 전 사조가 정색하면서 제집이 치덕거리는 게 제일 싫다고 그랬었다. 양말로 재빨리 닦아 냈지만 거두어지지 않는 그의 눈길에 풀이 죽었다.
“미안해. 나갈게.”
“내가 싫다고 한 거 기억하지.”
“응.”
“왜 싫다고 했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개인의 사정이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서랍 안에서 하얀 티셔츠 몇 장을 더 꺼낸 그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생각 말라며 손빨래라도 시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조는 곱게 개어진 티셔츠를 내 손에 얹어 줄 뿐이었다. 사조의 눈은 화가 났다기보다 평온한 쪽에 가까웠다.
“비는 바깥의 것이잖아. 바깥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게 싫어 그래.”
“아… 그랬구나.”
나의 기계적인 대답에 분위기가 교회 설교 시간처럼 조용해졌다. 그의 손이 나가려고 틀어진 내 어깨를 잡아 세웠다. 약간의 충돌에 머리를 감싼 수건이 전보다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값은?”
“어, 무슨 값.”
“빌린 값. 맨입으로 먹으려고?”
물 흘렸다고 화내는 게 아니라 장사치처럼 옷 빌린 값을 내라며 유들유들하게 굴 줄은 몰랐다. 나는 그의 향기가 진득이 묻은 티셔츠 다섯 장을 옆구리에 끼고선 말했다.
“그럼 일 층에서 봐. 지갑 가지고 나올게.”
“더위를 돈으로 물리칠 수 있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옷을 받았잖아. 그런데 그걸 돈으로?”
그가 하는 말의 반이 억지인 것을 알았지만 딱히 그걸 지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에게 물러져 있었다. 정처 없이 그의 시선을 피해 돌아다니던 나의 눈에 옛사람들이나 쓸 법한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쌍팔년도 혼수 목록에나 올라갔을 것 같은 형광 하늘색의 비단 이불이었다. 사조의 취향이 사이버 시대와 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머릿속 그의 취향 리스트에 그것까지 적어 넣었다. 검은색 자게 옷장, 오래된 전통 시장 골목에서 파는 비단 이불. 그의 취향을 기억에 담아 두는 것을 보니 나도 갈 데까지 간 모양이었다. 외워서 어디에 쓸 데도 없는데 말이다.
“뭐해 줄까.”
그가 혹시나 거창한 것을 말할까 봐 나는 먼저 발을 뺄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마련해 두었다.
“나 근데 가진 거 없어. 알잖아, 너도.”
“그러니까 밥 먹자.”
서로의 이름을 교환한 후부터 그가 끊임없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게 적적하니 같이 밥 먹자며 끼니때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났다. 그에 맞서 나는 방에 없는 척하거나 배가 고파 먼저 먹었다고 하거나 하는 술수를 써서 빠질 수 있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걸 사조가 모를 리 없었다. 미련한 나는 그가 제안하는 게 덫임을 알면서도 수락했다.
내 고갯짓이 허락임을 안 사조가 사랑에 빠질 만큼 깊은 눈을 하고서 웃었다.
“이따 나와. 똑똑, 두 번 노크하면.”
“응.”
“똑똑똑, 세 번 노크하면 나오지 말고.”
“알았어.”
다른 사람 같으면 웃었을 그의 농담에도 나는 웃지 못했다. 아니, 웃을 수 없었다. 저녁 다 되면 부르겠다는 그의 말을 안고서 일 층으로 내려가는 순간까지 나를 자책하느라 바빴다. 배가 언제 오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매번 이 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신경 쓰더니 꼴좋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으면 뭐 하러 그렇게 뻔질나게 도망 다녔는지 모를 일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카디건을 벗고 사조의 하얀 반팔 티를 입었다. 치수가 커서 사조만큼 멋진 태가 나지는 않았다. 사조한테도 넉넉하던 하얀 티는 입고 나면 거의 원피스처럼 보일 정도로 밑이나 위나 헐렁했다. 팔을 두 번 접고 바지에 티를 끼워 입고 나서야 활동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새 옷을 입고 할 것이 없어 집 안 청소를 했다. 이 층에서 나오지 않는 사조를 구태여 부르지 않고 나 혼자 일 층을 열심히 청소했다. 사실상 무전취식 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가끔 이렇게 날을 잡고 일 층을 청소하기도 하는데, 사조가 이에 대해 따로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 말라거나 청소를 더 하라거나 하는 말이 없기에 그도 만족하는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부엌 청소까지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낮잠 아닌 낮잠에 들었을 때였다. 청소를 끝내고 개운해진 방안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와 몸이 저절로 웅크려졌다. 사조가 열어 놓은 창문을 닫지 않고 잠든 탓이었다. 잠 들은 상태에서 느낀 서느런 공기는 밤이 찾아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더위를 타지 않는 대신 추위는 쉬이 느끼기 때문에 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꺼내 놓고 살았다. 다리에 끼고 자든, 일교차가 심한 새벽에 덮고 자든, 하여간 이불이 두껍지 않으면 이불 같지가 않기 때문이었다.
이불을 찾아다니던 손이 시트 위에서 낭패만 얻었다. 그즈음 배가 고파서 잠도 깨어날락 말락 한 상태였다. 그때 사조가 약속한 노크 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똑똑.
자명종을 틀어 놓은 것처럼 그 별거 아닌 노크 소리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일어나 추저분한 입가를 정리하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었다. 이불을 털어 풀썩거리는 먼지를 정리한 뒤 미닫이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똑똑똑.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밤이었다. 커튼을 닫지 않은 창가에 달빛이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찌르르 우는 이름 모를 벌레의 노래가 음치인지 박치인지 어림잡아 보며 그의 호출을 기다릴 때였다.
똑똑똑.
더 이상 노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저녁 다 했으면 이만 나갈까, 물으려는 차였다. 문풍지로 된 그 문은 건너편에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여과 없이 보여 줬다. 그러니까 사람이 있는데 문풍지가 투명하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똑똑똑. 노크는 계속되었다. 나는 상대방의 재촉에도 문을 열어 줄 수 없었다. 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건 누구인가. 과연 사조가 맞을까. 무엇보다 사조에게 노크는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리는 용도일 뿐, 안에서 문을 열어 달라는 게 아니었다.
나는 깨금발을 하고 통통 튀어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틀에 손을 짚고서 발 하나를 밖으로 내뺐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노크 소리가 끝이 났다.
창틀에 옷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는데도 무식하게 뛰어내렸다. 겁을 먹은 사람의 눈앞엔 뵈는 게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바지 한쪽이 벗겨지든 말든 무작정 뛰쳐나와 현관문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어디 가.”
낮은 목소리가 줄행랑치던 나의 발을 붙잡아 주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쳐드니 사조가 있었다. 땀이 구슬구슬 맺힌 나의 이마를 황당하게 보는 눈빛이었다. 그의 손에 고기 굽는 집게가 들려 있었다. 평상 위에는 불판이, 밥상에는 하얀 막걸리가 담긴 노란 주전자가 보기 좋게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사조는 나를 불러 세워 놓고 고기를 한 점 집어 흔들었다.
“먹고 가.”
한 여름밤의 체취가 나의 놀란 가슴을 다스려 주었다. 말재주가 없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나는 헐레벌떡 그에게 뛰어갔다.
“방금 내 방에 노크하지 않았어?”
고기를 집게로 집어서 한입에 넣은 사조가 우물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저을 때 잇새로 신음이 새었다.
“아니.”
“진짜 안 왔어?”
“이제 가려고. 근데 왔네.”
사조는 상황의 심각성도 모르고 냄새를 맡았으면 바로 나오지, 라며 태평한 소리나 했다. 방금 겪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뇌를 점령하는 바람에 걸음이 엉거주춤해졌다. 평상 위에 털썩 앉아 보름달을 보고, 고기 굽고 있는 불판을 보고 있으면 내 신경이 조금 과민해진 건가 싶기도 했다.
“이거면 몇 시까지 먹을 수 있어?”
정말 말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왔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혼자 잠드는 게 걱정이라 공포 영화도 안 보는 사람이 나였다. 그 노크 소리는 바람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을 만큼 선명했다. 꼭 나하고 사조의 대화를 훔쳐 들은 것처럼 세 번 노크하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일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먹어.”
긴장이 풀리자 쥐가 난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앞접시에 노릇노릇한 삼겹살이 올려졌다.
“이따가.”
호랑이를 보고 기절초풍한 나머지 몸살로 앓아눕는 조상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기를 씹을 힘이 없는 터라 놀고 있는 빈 그릇에 술을 따랐다. 그릇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술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뜨끈한 게 속을 덥히며 들어가 가슴을 죄는 것 같기도 했다. 술을 더 따르기 위해 주전자에 손을 대는 순간 은색 집게가 나타나 주전자 뚜껑을 눌렀다. 집게의 주인은 내 행동이 터무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일부러 물 맥이려고 이러는 건지, 뭔지.”
“무슨 물?”
그 와중에도 나는 집게 밑에서 주전자를 꺼내 술을 따랐다. 사조는 내가 손을 떨면서 술을 마시자 집게를 물렸다. 고기를 만족할 만큼 구웠는지 가스 불을 끄는 소리가 났다. 그 사이 술 한 그릇을 또 비운 나는 술로 막힌 숨통을 트는 느낌에 중독됐다. 사조는 안 본 동안 주정뱅이가 다 됐다면서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어째 너랑 밥 한번 먹는 게 사람 멱 따는 것보다 어렵다.”
“멱을 왜 따?”
워낙 충격적인 것을 본 뒤라 으스스한 종류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발을 모으고 앉아 사시나무처럼 떨자 사조는 말을 하다가 말고 집게를 들었다.
“자.”
스텐 집게에 잡혀 온 삼겹살에서 사람의 위장을 뒤트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안주 없이 술을 들이킨 속에서 쓰라려 죽겠으니 고기 한 점 먹자고 아우성쳤다. 소심하게 입을 벌려서 집게 끝에 아슬아슬 달린 삼겹살을 물었다. 성격대로 대충 굽는 줄 알았는데 삼겹살 육즙이 퍼지지 않게 잘 익혔다.
“혼자 먹으니 좋단다.”
자기도 술을 따라 달라며 빈 그릇을 은근히 내 쪽으로 밀었다. 사조의 그릇에 주전자를 기울이자 쪼르르 하고 맑은 술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사조는 제 잔이 찰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거의 넘치기 직전에 됐다는 뜻으로 손 하나를 올렸다.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제 입으로 가져가서 보는 사람 속이 뻥 뚫리게 원샷을 했다. 그의 목으로 술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장면을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사조가 옆에 있으니 무서운 생각은 덜해지는 반면 식욕은 되살아났다. 나는 젓가락을 찾아내어 불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과 깻잎을 들었다. 구운 양파에, 구운 김치에, 이것저것 입맛에 맞게 찍어 먹어 보라고 쌈장에 기름장까지 만들어 두었다. 같이 저녁을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철저히 준비한 사조를 생각하니 고마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여름날 자기는 땀을 뻘뻘 흘리며 굽기만 하고, 나는 수고했다는 인사치레도 없이 술부터 들이켰으니 그의 입장에서 멱을 딴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사조는 술을 천천히 음미하듯 마시고 있었다. 나만 취하는 것 같은 느낌에 뒤늦게 술의 양을 조절하며 마셨다.
“나 싫으냐?”
술을 막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을 때 그의 물음을 들었다. 몰래 그를 구경하고 있던 참이라 눈을 돌리는 데에 차질이 생겼다. 술에 적셔진 그의 입술이 자기가 싫으냐고, 정말로 싫으냐고 물었다. 저녁엔 깜깜무소식이다가 새벽녘 부엌에 몰래 들어와 라면을 끓여 먹는 나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한테도 좋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기어코 오해를 오해로 내버려 두려고 하지 않는다. 잘생긴 그의 턱선이, 조금씩 벌어지는 입술이, 그의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나의 삶을 지루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사랑에 잘 빠져.”
제 대답에 딴소리를 하는데도 그는 중간에 끊는 법이 없었다. 어디 속이 풀릴 때까지 해 보라는 듯 미동 없이 있었다.
“혼자인 건 싫은데 남을 만나는 건 더더욱 싫어. 강아지는 내가 돌봐 줘야 해서 싫고, 너무 나이 든 사람도 싫어. 조금 있으면 세상 뜰 것처럼 너무 약해 보이는 사람도 싫어.”
사조는 무어라 대꾸하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그의 입술로 빨려 들어가는 술을 부러운 듯이 보고 있던 나는 무릎에 뺨을 기댔다. 편한 자세로 앉아 그를 마음껏 훔쳐보았다.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마음이 감정을 키우도록 두면 나는 설령 뭍으로 나가게 돼도 그를 그리워할 것이었다. 내가 보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면 보물을 본 것처럼 좋아하고, 내가 예전에 본 모습도 다시 보아서 기쁘다며 주책맞아질 것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사조라고 다를까. 그 전 남자들과 비슷할 것이다. 아닐 거라고 부정하다가 그 업보는 눈덩이처럼 굴러와 나를 이별 속에 파묻었다. 그러니까 이건 짝사랑이었다. 나는 눈알이 빠져라 상대방을 바라보지만, 상대방은 나를 그만큼 바라봐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의할 수도 없는 것. 그게 바로 짝사랑이었다.
“내가 여기에 이 팔찌 때문에 왔다고 했지? 그런데 그거 아니야. 나 갈 데가 없어, 네 말이 맞아.”
사조의 눈이 바쁘게 팔찌를 훑었다. 흥미가 생겼는지 손가락으로 팔찌에 달린 방울을 건드려 본다. 예민한 방울은 작은 움직임에도 흔들리며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사조의 손가락은 방울을 만진 후에도 떠나가지 않고 천천히, 마치 실수인 것처럼 나의 팔목을 은밀스럽게 만지고 있었다.
“사조야.”
나의 팔을 노닐던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느낀 건 내가 짝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순간에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거였다. 쌍방이 좋아한다고 착각해 내가 마음 놓고 사랑을 키워 갈 때 과거를 드높인 추억은 모조리 사장되고 말았다. 사조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가 이제껏 만난 남자 중에 가장 착한 애였다.
“이상한 말인 거 아는데. 해도 돼?”
“해 봐.”
“같이 밤 새우자.”
할아버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이 섬에 와서 가장 생각이 없고, 가장 들뜨고, 가장 우울하지 않을 때는 사조의 곁에 있을 때뿐이었다. 그는 나를 웃게 하고, 화나게 하고, 창피하게 하고, 마음을 다잡게 만들었다. 지금 이 말이 그에게 혼란을 야기할 것은 알고 있지만 저 방에 혼자 들어가기가 싫었다.
“혼자 자기 싫어서.”
고기는 식어 버렸지만 나는 안주 삼아 몇 개를 집어 먹었다. 사조는 주전자를 옆에 가져다 두고 술만 마시고 있었다. 다리 한쪽을 평상 위에 올려 두고 술을 마시는 폼이 멋있게만 보였다. 바람에 흩날릴 머리가 없는데도 그는 습관처럼 제 머리칼을 쓸어서 넘겼다.
“내가 짧은 머리 좋아한다고 머리 잘라 준 사람은 너 하나야.”
술기운을 빌어서 진심의 한 조각을 잘라 건넨 뒤 고개를 떨구었다. 언제 따랐는지 모를, 찰랑찰랑 술이 넘치는 밥그릇을 쥐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마주치는 그의 눈길에 심장이 뱃속으로 떨어져 갈 곳 잃은 것처럼 파닥파닥 뛰었다.
키스라도 하는 양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감정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코끝과 나의 코끝이 마주 닿았을 때 기대하는 것처럼 입술이 뻐끔거렸다. 닿아 있는 코끝으로 목소리의 울림이 전해졌다.
“나랑 잘래.”
그의 입술이 느림보처럼 시간을 끄는 바람에 윗입술끼리 부딪혔다. 거절하지 못하도록 그의 손이 부드럽게 내 턱을 쥐었다.
“너 골 아픈 거, 속상한 거. 다 잊을지도 모르는데도?”
“그걸 어떻게 잊어.”
“잊게 해 줄게.”
그의 손이 멀어지는 머리를 자기 쪽으로 돌리려 했다. 혀만 섞이지만 않았다 뿐이지 이건 입맞춤이나 다름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의 입술을 저항 없이 한입에 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행동은 같이 밥 먹고 자자는 남자에게 허락의 여지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막판에 가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까 무서운 거 봤어.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밤새워서 너랑 있고 싶었던 거야. 딴마음 있던 거 아니야.”
차마 본 대로 말을 할 순 없었다. 이 섬에 애정을 갖고 살아왔을 사조를 생각하면 내 말이 흉처럼 들릴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내 정신이 나약한 탓에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주알고주알 다 까발리면서 심신허약 상태라는 것을 광고하고 싶진 않았다. 사조는 뒤로 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네모난 갑을 꺼냈다. 갑이 하얘서 담배라도 꺼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의 크기가 담배라기엔 너무 작았다. 사조가 좋아하는 풍선껌이었다. 내가 하는 꼴이 보기만 해도 갑갑한 건지, 나를 씹을 수 없으니 껌이라도 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때도 슈퍼에서 산 풍선껌을 불었더랬지. 사조는 껌을 씹은 지 얼마 안 돼 요령 있게 커다란 풍선 하나를 만들어 냈다. 나를 곁눈질로 바라본 사조가 풍선을 터뜨리며 껌 하나를 권했다.
“할래.”
내가 모든 것을 너무 좋게 보려고 하는 것도 있겠지만, 사조의 말은 가끔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작 껌 하나 주면서 엄청 위험한 걸 주는 것처럼 말하는 게 재밌었다. 웃는 얼굴로 거절할 수가 없어 그가 내민 껌 하나를 받았다. 받고서도 껍질을 까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피식 웃은 사조가 도로 가져가 대신 까 버린 뒤 분홍 껌만을 돌려주었다. 포슬포슬한 가루가 묻어 있는 껌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그에게 대뜸 물었다.
“사조, 너. 여자 많이 만나 봤지.”
껌을 씹던 그가 제 발목을 주무르면서 킬킬 웃었다. 발 하나를 턱 하니 제 허벅지 위에 올려 두고 있는 폼이 자유분방한 그와 어울렸다. 썩 바른 자세가 아님에도 예쁘게만 보이는 건 내 중증이 시작됐다는 증거였다. 얘도 답답할 만하지. 누가 보아도 저한테 빠지는 기미가 보이는데, 손만 잡아도 화들짝 놀라면서 저질 취급을 하니 말이다. 사람 마음처럼 복잡한 것은 없다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나의 마음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나랑 자고 싶어?”
우스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습지 않을지는 잘 알지 못하였다. 사조처럼 대놓고 나랑 자는 게 어떠냐는 물음을 하는 애한테는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해야 우습지 않을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내 말에 깊은 고민을 하듯 한숨을 내쉰 사조가 눈 위를 손으로 부드럽게 긁었다.
“왜. 네가 먼저 물어 놓고 부끄러워서?”
“저랑 자고 싶으냐고 대답할 줄은 몰랐으니.”
“그럼 어떨 줄 알았는데?”
“네가 끄덕이면 입이나 맞추려 했지.”
제 속을 꾸밈 없이 이야기하는 사조를 보면서 나는 그가 미운 것도 아니고, 행실이 가벼운 남자라 싫은 것도 아니고, 오로지 그의 솔직함이 부럽기만 했다. 왜 나는 사랑하니까 떠나지 말라는 말을 못 했던가. 왜 나는 그 모든 사랑이 끝날 때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던가.
“나 할아버지 돌아가신 거 얘기했지? 술 취했나 봐.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여름밤 습기가 앉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막걸리 몇 그릇 퍼마셨다고 혀가 꼬이는 게 웃겨서 큭큭거렸다.
“건드리지 마. 꼬시지 마. 알았지?”
“꼬시지 말라며 우니까 더 동하네, 마음이.”
사조는 이 일에 심각성을 모른다. 내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일상에서 그 사람 하나만 없어진 줄 알았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되는 것. 주말마다 경로당에 가서 10원 내기 화투를 치러 가는 재미로 사는 할아버지가 손녀 배곯을 게 걱정돼 새벽같이 일어나 곰탕을 끓여 놓았다. 그걸로 당신이 없는 동안 세 끼를 다 때우라는 뜻이었다. 나는 곰탕을 좋아하지 않지만 몸에 좋은 국이니 남기면 혼난다는 말에 주말 아침 일찍부터 곰탕을 데워 먹어야 했다. 그게 어릴 적부터 이어진 나의 주말 코스였다. 하지만 이젠 주말이 와도 종교를 홍보하는 사람 외엔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는다. 남들과 다르게 회사를 쉬는 주말 아침이 나는 힘들었다. 내게 곰탕이 없는 주말은 주말이 아니니까 말이다.
전 남자친구는 자기가 곰탕을 대신 끓여 주겠다고 말한 지 며칠 만에 내가 웃지도 않고 기운 빠진 게 보기 싫다면서, 자신은 보모가 아니니 더 봐주기 힘들다고 떠나가 버렸다. 그때 나는 또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처럼 사람 사이에는 죽지 않아도 죽음과 같은 절차가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별을 할 때면 언제나 사람이 죽은 것처럼 아파했다. 그 사람이 바꾸어 놓은 나의 생활, 나의 습관을 다시 원상태로 돌릴 순 없었다. 그러니 나는 나하고도, 그하고도, 그 모든 것과 이별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불렀다.
“꼬신다는 말. 가볍게 말하지 마. 나는, 이제 더는 싫어.”
그에게 받은 껌을 밥상 위에 그대로 내려놓고 떠났다. 오늘도 잘 막아 내었다. 거절하는 목소리는 비굴하지 않았고, 나 좀 사랑해 달라고 그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거실에서 잘까 고민하며 있는데 나와 같이 들어가려는 듯이 사조가 평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위와 집게를 양손에 들고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내가 치울게. 들어가도 돼.”
“타고난 명이 짧아.”
“응?”
“너는 네가 산 것 같애?”
산 것. 타고난 명. 사조의 목소리가 바람, 나뭇잎, 풀벌레를 죽인 것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풍선껌을 부는 개구진 표정의 그는 사라지고 고요한 분위기가 나를 압박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채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지만 다리에 돋는 소름은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명이 길어. 어찌나 긴지 나중엔 세 보는 것도 잊을 정도라.”
네가 하는 말은 외계어 같아, 라는 말은 좁다란 목구멍에 끼어 나오지 못했다. 찬바람이 나의 옷소매 안으로 들어와 너울너울 파도처럼 물결을 만들어 냈다. 내쉬는 숨에 두려움이 실려 있다는 것을 아는지 벌려져 있는 가위를 딱, 소리 내며 가지런하게 모아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자꾸 헛것이 보이면 나한테 와 봐.”
헛것……. 진흙처럼 찐득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감겼다.
“버티다, 버티다가 와도 괘씸해 않고 재워 줄 테니.”
“나, 들어가 볼게.”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걸어가는데 현관 위에 달린 전등이 정전 난 것처럼 깜빡거렸다. 부엌에 수상한 그림자가 나타날 때에도 전등이 신호를 보냈었다. 혼비백산하여 몸을 다시 돌리자 가위를 들고 선 사조가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방관하듯 서서 나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야가 흔들려 사조가 두 개로 보였다. 다리부터 시작해 모든 관절의 힘이 탁 풀어졌다. 현관문이 등을 받쳐 준 덕분에 머리를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땅을 깔고 앉아 다리를 쫙 폈다. 도와달라는 중얼거림을 들은 것처럼 사조가 가위를 평상 위에 버리고 걸어왔다.
가물가물한 의식임에도 정확히 기억하는 게 있었다. 사조가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헛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이 섬에서 일어난 괴괴한 사건을 안다는 소리였다. 나는 대체 어디에, 어떤 사람과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던 걸까. 그의 손길을 피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