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소리소문없이
기적처럼 눈이 떠졌다. 보통은 내가 체력이 다 떨어져 기절하듯 잠에 들고, 사조가 일찍이 일어나 그런 나를 안아 일으키며 하루가 시작됐다. 그런데도 보통은 오후에 기력을 차려 느지막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루가 짧다고 느껴졌다. 밥을 먹으면 금방 해가 지기 시작했고 사조와 수다를 조금 떨다가 보면 오후 10시가 넘어갔다. 이후론 새벽까지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기 바쁘기 때문에 나나 사조나 백수 주제에 스케줄이 빡빡했다.
그렇게 산 지가 체감상 열흘은 넘었다. 몸으로 느끼기엔 열흘인데 실제 시간은 그보다 더 지났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가 보면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오랜만에 사조보다 먼저 일어나게 된 날이었다. 나는 나를 팔걸이로 쓰고 있는 사조의 팔을 조심스레 걷어 내었다. 어제 새벽녘까지 나와 엎어진 사조는 윗도리 없이 이불만 덮고 꿈나라 삼매경 중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아침 8시밖에 되지 않았다. 추정하기론 한 새벽 3시에서 4시쯤에 같이 머리를 감은 뒤, 곯아떨어진 걸로 기억했다. 그러니 나는 4시간밖에 자지 못한 것이었다. 실제로 몸 이곳저곳이 쑤셔왔다. 사조 옆으로 기어들어 가 더 자고픈 마음이 있었다.
“날씨 좋다…….”
하지만 오늘은 햇볕이 뜬 귀한 날이었다. 이 한창인 여름도 즐기지 못하고 방에서 썩는 기분이 들었다. 사조 없이 산책을 해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에 대충 바지만 갈아입고서 밖으로 나갔다. 신발장에서 사조가 준 새 운동화를 꺼내 신을 때까지만 해도 신이 났었다. 웃옷이 커서 바꿔입고 갈까 고민하며 거울을 봤는데, 웬 해쓱한 여자가 서 있었다.
“와……. 이게 뭐니.”
살이 훅 빠져 있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살이 이리 빠져 어떡하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보다도 더 마른 듯 보였다. 더욱이 편하다고 입은 사조의 반팔티는 헐렁하여 조금만 허리를 숙여도 안이 다 보였다. 가슴골부터 시작해 목 부근에 집중되어 있는 키스 마크는 애정의 상징이라기보단 매 맞고 사는 여자처럼 보이게 했다. 짧은 반바지를 입어 멍처럼 보이는 그것이 허벅지 쪽에 한둘이 아니었다.
“진짜, 하, 남사스러워서.”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툴툴거렸다. 사조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문을 닫고서 나오는데 강렬한 햇볕이 여름을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분하다며 발악하고 있었다. 여름이 절정일 때보다는 덜 습했다. 기지개를 켜며 햇볕을 온몸으로 받았다. 신선한 공기가 코를 통해서 들어오는 게 얼마나 끝내 주는 기분인지 잊고 살았다. 몸이 무거운 것 같아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섬의 언덕을 내려갔다.
비 때문에 오다 말다 한 산책로를 달리며 자유의 바람을 만끽했다. 섬에는 내가 뭘 하든 보는 눈이 없어 편했다. 팔도 휘저으며 운동도 하고 중간에 멈추어 서서 제자리 뛰기도 했다. 햇볕이 강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산책로를 반 바퀴 즈음 뛰었을 때였다. 뒤돌아보니 저 멀리에 나와 사조가 사는 집이 보였다. 벌써 이만큼 뛰어와서 돌아가긴 아까웠다. 사조가 일어나 빈자리를 보고 얘 어디 갔냐며 집안을 뒤엎진 않을까. 자기를 두고 어디 갔었냐고 화내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 아닐까. 혼자 있을 때 생기는 문제와 둘이 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차원이 달라서 가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우선 이왕 여기까지 나왔으니 산책을 평소보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겠다.
‘정인아.’
짤랑, 짤랑, 울리는 방울 소리가 평상시와 달랐다. 방울이 우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바람이 불었구나, 하면서 그 소리를 감상할 테지만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연로한 목소리가 더해져 있었다. 달리느라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 허리를 펴고 별난 현상을 일으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음에도 팔찌에 달린 방울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기우인가. 나의 착각인가. 가면서 생각해 보자고 고개를 들 때였다. 이 섬에 있는 내내 보지 못한 것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하얀 배 한 척이 섬 가까이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 그 아저씨일지도 모른다. 나를 여기로 데려다준 앞니가 까만 어부. 하지만 사조는 자고 있었다. 사조와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집과 항구를 번갈아 보던 나는 하나를 골랐다. 사조는 나중에 부르기로 하고 달리자는 생각뿐이었다. 정신을 놓고 항구 쪽으로 달려갔다. 산책로에서 벗어나 아랫동네 쪽으로 뛰어가고 있는데 하늘이 번쩍했다. 우르릉거리는 하늘에서 번적번적 번개가 쳤다.
해가 까만 먹구름에 삼켜져 사위가 깜깜해지고 있었다. 아침 8시인 것을 보고 왔는데도 해가 없는 것처럼 어두침침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산책로에서 빠져나와 항구로 가기 위해 아랫동네에 들어섰을 때는 일이 더욱 심해졌다. 주황색 전구는 밤에만 켜지는 줄 알았는데 낮인 지금도 캄캄해졌다고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불들이 마치 소방차 사이렌처럼 천둥벼락이 내려치는 아랫동네를 흔들었다. 언덕을 가로질러 뛰어내리는 게 무서워졌다. 비가 심하게 오려는지 비를 동반한 바람이 모든 대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난장을 피우고 있었다. 주인 없는 대문들이 바람에 떠밀려 벽에 쾅 부딪히는 소리가 천둥과 맞먹었다. 이래도 내려가 볼 테냐며 나를 겁주는 것만 같았다. 도착이 임박한 배 한 척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까만 돌멩이 하나를 찾아내었다. 그것을 쥐고서 언덕을 내려갔다. 바람이 내 편이었다. 달리면서 내려가면 바람이 귀신을 쫓을 거라고 믿었다.
언덕길에서 하는 뜀박질은 평지에서 하던 달리기보다 빠른 대신 앞구르기 하며 넘어질 위험이 컸다. 불빛이 하도 요란스러워 내 눈을 멀게 했다. 이렇게 뛰어가며 내려가니 아랫동네에 씌인 두려움도 한 꺼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항구에 정박하려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덕 중반에 있는 슈퍼를 지나쳤다. 그런데 그 슈퍼 안에 사람의 형태가 있었다. 시선과 시선이 만났다. 사조와 키스할 때 보았던, 그 빨간 눈이 슈퍼 매대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먹에 쥔 돌을 꽉 잡았다. 달리는 것을 강제로 멈추면 앞으로 고꾸라져 구를 게 분명했다. 슈퍼에서 우당탕 깨지는 소리가 났다. 거기에 불이 났다고 해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발소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쫓아오는 진동의 크기가 두려움에 가속을 붙였다. 언덕을 타다타다 울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상대는 맨발이라서 속도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발이 미끄러져 구르기라도 할까 봐 종아리에 힘이 빡 들어갔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도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 주듯이 여자는, 아니, 여자처럼 들리는 목소리는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건 본능이었다. 나와 그녀의 거리가 얼마만큼 좁혀졌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실핏줄이 터져 동공까지 빨간 눈, 허리까지 기른 머리카락, 그리고 외발이었다. 발 하나로 콩콩 뛰며 내려오는 집념이 광기를 띠었다.
나는 할 수만 있으면 퍼질러 앉아 울고 싶었다. 돌을 던졌으나 비껴가고 말았다. 설상가상 다리를 중간에 삐끗하는 바람에 한 번 멈추기까지 했다.
“싫어, 정말, 정말 싫어!”
이 섬 어디에서 저런 괴상망측한 것들이 기어 나오는지 모르겠다. 배가 빵- 하면서 경적을 울렸다. 유일한 구명보트가 저기에 있었다. 나는 비명 지르듯이 손을 흔들어 나의 존재를 알렸다. 제발 나를 싣고 이 악몽에서 꺼내어 주었으면 했다.
시큰거리는 발목을 놀려 아랫동네 언덕에서 벗어날 때였다. 항구에 정착하고 있는 배에 사람이 보였다. 젊은 남자였다. 나를 여기로 데려온 그 어부 아저씨는 아니었다. 하얀 가운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어서 타라며 손을 흔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중화루를 지나 평평한 평지에 닿자마자 비가 분무기 뿌리듯 질금질금 뿌려졌다. 남자는 빨리 오라는 듯이 내게 손짓했다. 그러나 긴장이 풀어져 자꾸만, 자꾸만 발이 늦어졌다. 체력이 다해서 무릎을 집고 헉헉거렸다. 언덕 아래까지 나를 쫓아오던 그 여자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막연히 귀신은 바다를 건널 수 없으려니 할 뿐이었다. 배가 깜깜한 항구를 밝히듯이 노란 전조등을 켜고 있었다. 그 전조등 불빛이 해를 가린 먹구름의 노력을 흐지부지로 만들었다. 안심하면서 선착장으로 뛰어갈 때 남자가 당장 출발할 것처럼 배에 올라타는 게 보였다. 남자는 어서 오라며 내게 윽박질렀다. 남자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언덕 끝에 있는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 집에서 얌전히 자고 있을 사조를 생각하자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배는 이 섬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소리쳤다.
“어서 타요!”
안 돼. 사조를 이렇게 버리고 갈 순 없었다. 나는 잠시만 기다리라는 뜻으로 그에게 다가갔으나 이미 배는 선착장에서 떠난 후였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잠시 배를 멈추었다. 나는 떠나는 배가 야속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룻밤 자고 가라는 것도 아니고 삼십 분만 주면 사조를 깨울 수 있는데 뭐 저리 급하담? 그럼 사조한테 인사도 없이 얼렁뚱땅 도망가라는 말이야? 깨어난 사조가 내가 없는 집, 그리고 내가 없는 섬에서 어디 갔냐며 절규할 게 분명했다. 떠나간다고 협박한들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뿔테 안경을 쓴 남자는 냉정히 고개를 저으며 배를 출발시켰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사람 둘을 싣기에 충분해 보이는 통통배는 노을처럼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선착장 끝에 서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지만 배는 뒤로 회전하지 않았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듯이 발 빠르게 바다를 가르며 떠나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파도가 철썩 튀어 올라와 내 뺨을 갈겼다. 무심한 배의 뒷모습은 금세 비가 만들어 낸 안개 속으로 꺼지고 말았다. 배를 타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았다. 배 한 번 타 보겠다는 일념으로 산책로부터 언덕까지 뛰어온 게 헛수고가 됐다. 선착장에 털썩 주저앉아서 아이처럼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는 모르겠다. 드디어 떠날 수 있었는데 바보처럼 기회를 놓쳐서? 이상한 게 나를 쫓아와서? 두 번 묻지도 않고 떠나는 저 배가 원망스러워서? 정인아, 부르면서 방울로 배가 온다고 알려 준 할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 나는 선착장에서 비와 한 몸이 되어 주저앉아 있었다. 하늘은 섬에 비를 내리고 사람은 섬에 눈물을 내렸다.
나 나름 행복한 것 아니었나. 사조와 함께 있어서, 사조 덕분에 살 만했던 것 아니었나. 그런데 왜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처럼 떠난 배를 아쉬워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섬에 사는 저 안개처럼 가려져 있어 보지 못할 뿐이었다. 감기가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경각심 없이 비를 맞으며 앉아 있었다. 저 마을을 가로질러 다시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화려하게 불빛을 올리기 시작하는 아랫동네의 전경이 모형 블록 같았다.
오늘은 날이 궂어 일찍 떠난 것일 터다. 이번 주에 날이 개면 나를 데리러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희망 사항이었다. 아마 배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다. 초등학교 때처럼 무릎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그때 갑자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뜸해졌다. 젖은 몸에서 떨어져 나간 빗물만이 나무 선착장을 물들였다. 고개를 위로 쳐들자 까만색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까만색 하늘을 쥐고 있는 손도. 사조가 우산을 들고 집 나간 나를 마중 나왔다. 자기 전에 입은 까만 티셔츠와 회색 바지 그대로였다. 사조는 무표정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울고 있는 나를 남인 양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낮으로 간호해 준 공을 이런 식으로 갚냐는 얼굴이었다.
“가려 했어?”
사조는 이 섬에 무엇이 오는지 아는 것처럼 싸늘히 말했다. 얼이 빠진 나는 선착장을 더듬으며 일어났다.
“알고 있었, 알고 있었구나. 아까 배 온 거.”
“그게 아님 네가 여기서 울고 있을 이유가 뭐야.”
다그치듯 화를 내는 사조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빗물 한 바가지를 마루에 부어도 이보다는 덜 화낼 것 같았다. 사조는 허리를 숙여 우산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나를 버리고 가는 사조의 뒷모습을 주춤주춤 따라갔다.
“사조야!”
언덕길로 가고 싶진 않지만 사조의 뒤를 쫓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란한 주황색 조명 때문에 속이 매스꺼웠다. 헛구역질을 참으며 사조의 이름을 불렀다. 사조의 화난 뒷모습은 그 어떤 사과의 말로도 풀어 줄 수 없을 것처럼 견고했다. 이대로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떠나간 그 사람들처럼 나에게 차가워질 사조를 생각하니 욕지기가 나서 벽을 붙잡고 웩웩댔다. 아까 그 배를 보내 버렸어야 됐을까. 오든지 말든지 나는 사조하고 살 테니 어서 가라고 말한 뒤 올라와야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선착장에서 배가 그리운 것처럼 울지 말았어야 할까. 사조의 말이 맞았다. 저 바깥으로 가서 누구 하나 나 그리워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아빠도, 엄마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저 뭍에 나가서 무엇을 하고 싶다고 그를 버리려는 걸까.
언덕 오르기 도사인 사조의 걸음을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우산을 슈퍼 앞에 버리고 뛰었다. 하지만 아침에 온 전력을 미리 당겨서 썼기에 남은 에너지가 없었다. 다만 아직 머리를 쓸 힘은 남아 있었다. 뒤돌아서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언덕에 있는 마을 길은 사조 없이 혼자 가는 게 무서웠다. 거기서 별의별 것을 다 봤었다. 무서운 마음에 택한 길은 반대편으로 빙 도는 길이었다. 산책길을 이용해 집에 돌아가면 시간이야 걸릴 테지만 지금은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언덕 밑으로 굴러간 우산도 줍고, 집에 가서 슈퍼에서 사는 외발이 귀신이 쫓아온 이야기도 하고, 타기도 전에 네 생각이 나서 기다려 달라고 했더니 배가 떠나가 버렸더라고 설명하면 상냥한 사조는 웃으며 그랬냐고 해 줄 터였다. 그러나 언덕 중턱에 버려진 우산을 집자마자 몸이 붕 떴다. 따뜻한 팔이 내 허리를 감고서 하늘로 들어 올렸다. 차갑고 쌀쌀한 사조의 눈이 나를 느리게 훑었다. 잘못한 놈이 토라져 선착장으로 간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사조에게 도망가려던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으나 오해는 풀릴 길이 없어 보였다. 사조가 인정사정 안 봐준다는 듯이 나를 제 어깨에 들춰 맸다. 우산이 있으니 두 사람 다 비를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그가 안은 손에 힘을 넣어 허리를 조였다.
사조는 나 하나를 매고도 거친 숨소리 한번 없이 언덕길을 무사히 올라갔다. 대단한 체력에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조에게 짐처럼 들려 가는 건 내가 원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래도 나를 데리러 온 사조는 원래 따듯한 사람이니까 도착하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겠지, 오해를 풀고 전처럼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하면서 담을 지나치고 현관문을 열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마룻바닥에 내려 둔 사조와 눈길이 오가는데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사조의 눈은 악의로 똘똘 뭉쳐있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내가 질렸다고 말하던 수많은 사람의 눈이 사조에게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하고 피가 날 때까지 거스러미를 뜯었다. 그러자 사조가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거칠게 잡아챘다.
“하지 마.”
사조가 왜 화를 내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착한 사람이 표정을 굳힐 정도면 나만큼이나 그의 마음도 지옥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사실 이해보다는 격정적인 설움이 고개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 삼아 산책만 다녀오려고 했는데 일이 꼬이고 꼬여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도망자로 낙인찍고 싸늘해진 사조가 미웠다. 나는 저 보기 전엔 안 간다고 그 배도 타지 않았다. 그런데 전후 사정도 모르면서 정색하기는.
“송정인.”
“응…….”
“저 바깥에 뭐 있는 줄 알긴 알아?”
사조의 말에 귀신이 있더라고 비꼬고 싶었다. 사조는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나를 다그쳤다. 취조하듯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화가 난 그의 얼굴은 네가 나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무감정했다. 지금까지 내게 보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이를 바드득 갈던 사조는 차분하게 저주를 퍼부었다.
“네 어미, 아비, 연인, 전부 너를 버렸지. 나가자마자 몇 달 안 돼서 술 취해 막살고, 넌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들한테 몸 버리다가, 그러다가…….”
내 인생의 전반을 아는 것처럼 막힘 없이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할아버지에 관한 얘기만 꺼냈지 그에게 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전 연인들에 관해서 말했던 적이 없었다. 거기까지 들으니 오히려 나는 끊어진 그의 말이 궁금했다. 그 배를 타고 밖으로 나갔으면, 고독한 인생이라 술에 취해서 막살다가, 나를 뜨겁게 안아 줄 사람을 찾아다니며 고생하다가, 그다음엔 어떻게 된다는 걸까.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사조야.”
떠오르기 싫은 기억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을 보듯 스쳐 지나갔다. 밥도 먹지 않고 방에서 틀어박혀 앉아 울기만 하던 날들이. 남들은 다 있는 가족이 왜 없냐며 하늘을 원망한 날들이. 마지막 보루였던 우리 할아버지가 가시고 얕게 얕게 버티던 날들이. 사조한테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보이나 보다. 어깨 흔들던 손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사조는 냉철함을 되찾으려는 것처럼 마른 입술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손금 같은 거 보면 그런 것도 나와?”
사조는 내 손금을 보고서 외로운 생이라고 단언했었다. 나는 멀리 있는 사조의 손을 잡아서 왔다. 꼭 잡고서, 엉엉 울었다. 보냄 없이 모으기만 해서 용량 초과한 설움을 그를 통해 풀고 싶었다. 무기력하게 손을 내주던 그가 참던 숨을 뱉고서 양손으로 마주 잡아 주었다. 손가락을 엮은 뒤 제 품에 안기도록 했다. 비로소 나는 그 배를 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 때문에 배까지 포기했는데 나를 서럽게 해? 그게 오늘치 설움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마. 엄마, 아빠, 애인……. 다 나 버렸다고 말하지 마. 지나간 일을, 사실을 말하면 상처가 아닌 줄 알아? 왜 그거를 생각나게 해.”
어슷어슷 썰린 마음은 사조의 입술이 미안함을 담고 쓸어 주어야 아물었다. 나를 안아 준 사조의 품이 없었다면 사흘 밤낮을 혼자서 울었을 거다. 사조가 나를 버리는 줄 알았다. 우유부단하게 굴어 그에게 버려지는 줄 알았다. 사조의 숨에서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사조는 포옹 따위로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래서는 약발이 약했다.
“아까 무서운 거 봤어. 그래서 도망갔어. 그리고, 그 배가 바로 떠난다고 그래서 너 안 보면 안 된다고, 그랬더니 그냥 가 버렸단 말이야.”
“그랬어.”
“넌 화만 내고 가고. 앞으론, 다신, 절대 나 버리고 가지 마.”
“응.”
“나, 너…….”
사랑하고 있다. 여전히 면역도 없는 주제에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을 입에 담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앞으로 누구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 그리고 만에 하나 사랑을 하게 된다면 사랑한다는 고백만은 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원칙이었다.
사조는 삼십 분째 울고 있는 나의 손을 잡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물기는 질색이라던 사조가 비 맞은 생쥐 꼴인 나를 이 층에 들이는 건 파격적인 대우라 할 수 있었다. 그랬다. 나는 예전부터 대우, 특별, 한정, 독점 같은 단어가 좋았다.
사조는 제 방으로 들어가 비단 이불을 폈다. 주름지지 않게 펴서 깐 이불 위에 나를 앉혔다. 서랍에서 새 수건을 꺼내와 머리까지 탈탈 털어 주었다. 사조의 이불에선 사조의 냄새가 났다. 이 방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냄새로 꽉 차 있어서 안정을 돕는 데는 최고였다. 눈물이 잦아들 무렵 사조는 서랍에서 새 옷을 꺼내어 갈아입었다. 내 앞에도 윗옷과 바지 하나씩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뒤돌아서 옷을 갈아입었다.
사조가 불을 끄고 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섹스 없이 손을 잡고 누워서 자는 게 오랜만이라서 더 어색했다. 사조는 지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나는 그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누워 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찔렀다. 걸려든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보았다. 화가 덜 풀린 것처럼 유머러스한 면이 없어진 게 싫었다. 나는 아무리 서운한 게 있어도 그가 안아 주고 입 맞춰 주면 다 끝이 나는데.
“정인아.”
하지만 저 낮고 다정한 목소리에 스피커를 키워가던 작은 불만은 찍소리도 못하고 꺼져 버렸다. 역시 끌어안고 잘까 싶은 차였다. 사조가 내 손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물었다.
“기억 지울 수 있음, 뭐부터 지울래.”
“기억? 그걸 지워 주게?”
“궁금하여서.”
그의 말에 고민을 하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헤어진 그 사람. 나는 베개가 아닌 사조의 어깨로 자리를 옮겼다. 잊고 사는 척하지만 잊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려면 수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사조의 어깨를 베고 누우니 그 용기가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박동섭이라고 있거든. 헤어진 남자친구, 그 사람에 관한 건 다 잊고 싶어.”
그때 사조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깃털처럼 사뿐히 날아와 앉은 그의 손이 박하사탕처럼 화한 기운을 줬다. 물파스 바른 머리를 냉장고에 넣는 기분이었다.
“왜 잊고픈데?”
“그냥.”
그냥. 자질구레한 사연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마법의 단어였다.
“왜. 너무 연모하여서?”
“하하, 아니.”
“얼마나 연모하였는데.”
유머 감각이 살아난 걸 보니 화가 다 풀렸구나. 하지만 사조의 눈은 차가운 분노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내 머리를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조의 눈동자가 진한 붉은색처럼 보이려고 했다.
“아파…….”
아프다는 소리에 사조의 눈은 갈색을 찾았다. 손에 힘도 풀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며 입을 맞추고 떨어진 사조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미소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얼마나 연모하였는데.”
사조의 질문은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난로를 삼킨 양 그의 전신에서 뜨끈한 열이 나고 있었다. 사조의 목소리는 알맹이 없이 장난스러움을 흉내 내고 있었다. 나는 사조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그의 얼굴이 상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박동섭.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로 사조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지, 나를 얼마나 멍청하게 볼지 벌써부터 겁이 났다.
“그냥, 남들 사귀는 것처럼 사귀었지. 연모는 무슨…….”
“말도 못 할 만큼 연모하였나 본데.”
“이야기하기 싫어서 그래.”
“떠올리기만 하여도 가슴이 아려서?”
“사조야.”
“나한테도 연모한단 말은 아끼면서 말이야. 그놈 잊지 못하여서 사랑이 싫다느니 그러고. 퍽 절절하였군.”
“그런 거 아니야.”
사조는 몸이 비정상적으로 뜨겁고 손은 비정상적으로 차가웠다. 시원하기만 하던 손이 빙수를 엎어 놓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폭발한 사조의 눈에 시린 냉기가 살고 있었다. 난로 정도의 온기는 시시하단 눈이었다. 연모라니 우습다. 잊지 못할 만큼 상처를 준 놈은 한 트럭이 나왔다. 하지만 잊지 못할 만큼 사랑한 놈은 한 놈도 없었다.
“아니라고 하잖아. 왜 안 믿어?”
“그놈 보고파서 기회만 보이면 바깥으로 어떻게든 나가려는 것이잖아. 나를 바보로 알아?”
“그게 아니야. 자꾸, 자꾸 목소리가 들려서.”
“오호라, 그놈 목소리가 들려?”
“이거 놓아 봐.”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나머지 손까지 잡혔다. 바닥에 손이 눌리고 그가 내 위로 올라탔다. 비에 가려져 안 보이던 그의 성마른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빠져나가려고 손을 비틀자 가만히 있으라고 말로 찍어 눌렀다. 그는 무얼 해도 마음에 안 차는 것처럼 이를 드러냈다.
“내가 정인이 너 얼마나 봐주는지 알아? 마음만 먹으면…….”
“나이도 많고, 돈도 없고, 얼굴도 별로고, 그래서 저 사람은 나 절대 안 버리겠지, 싶은. 그런 사람한테 가서 사귀자고 그랬어.”
손을 누르던 사조의 손힘이 서서히 풀려 갔다. 독불장군 같은 사조는 싫었다. 유들유들하게 웃으면서 산책할 때마다 따라와 주던 사조가 좋았다. 화가 달아난 사조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 얼굴이었다. 사조에게 저리 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속이 까맣게 타면 자기가 우는 줄도 모른다. 눈물이 타고 남은 재처럼 느껴지나 보다. 사조는 무너지듯 내 위로 쓰러져 안겼다. 목소리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미안해. 놀랐지.”
“무서워.”
“다 알면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면서 열이 끓어.”
나는 사조의 등을 마구 끌어안았다. 팔로 다 안기지도 않을 만큼 커다란 남자가 아이처럼 화내는 게 동정 때문일까. 그는 날 동정해서, 연민해서, 어쩌면 나와 살을 섞는 행위가 좋으니까. 여러 과정 거칠 것 없이 그의 마음을 단정 짓는 게 편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조의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조는 날 사랑한다. 날 사랑하니까 내가 선착장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을 때 불안했을 것이다. 사랑하니까 연모라는 단어에 울고 웃는다.
“나를 정말로 사랑하니?”
사조는 내가 아는 그 미소를 보여 줬다. 뺨에 입술을 대고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그 말 한마디면 되었다. 수많은 고민, 수많은 걱정이 나를 앞섰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걸어보려고 한다. 진심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너이기를 바라며 살련다.
“나도, 너를 연모해.”
“나를?”
“응, 겨울이 오면……. 그때는 마음 정리가 될 것 같애. 이 팔찌만 네게 주면 되지?”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는 나를 연모한다. 세상과 동떨어졌든, 그가 사람이 아니든,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살면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런 나를 책망하시겠지. 그렇지만, 그래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고, 여기서 새봄을 맞이하면서 그렇게 살련다. 그게 뭐 나쁜 거라고. 다들 그러고 사는데 나도 좀 그러고 살면 어때서. 그게 뭐 힘든 거라고.
소리소문없이 찾아온 나의 연모하는 그대. 너무나 나를 사랑한다던 사조는 나를 끌어안고서 한밤중까지 뒤척거리다가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잠들지 못했다. 처음으로 가져 본 내 사랑이 있어서 그러한가. 그냥 잠들기엔 무섭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나 같은 겁쟁이를 사랑하게 돼서 사조는 힘들 터다. 그런 내 감정을 아는 것처럼 사조가 나를 꼭 껴안아 주었을 때, 나는 사조와 마찬가지로 잠들 수 있었다. 이번 꿈엔 할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았다. 저세상에 계신 분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가 사조를 허락해 줬다고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