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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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화면에는 이번에 항해할 항로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화면에 나타났다.

“이곳 강정기지를 출발한 본 수송 전단은 민간 수송선과의 보조를 맞춰 도착지인 스코트라 섬까지 15일의 일정으로 항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설명은 10여 분간 계속되었고 설명이 끝나자 박충식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은 이번 작전에 왜 대양 함대가 전부 투입되는지 의아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입을 연 박충식은 잠시 참석자들을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대규모 군사력 증강을 뒤쫓아 가기에 급급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통일 이후를 대비해 지상 군 병력을 감축했고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국방 예산으로 해군력 증강을 위해 대대적으로 투입하면서 이제는 어느 나라에도 부끄럽지 않을 명실상부한 대양 해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설명은 참석자들 모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일이라 전부 고개를 끄덕였고 박충식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더구나 통일을 앞두고 걱정거리였던 남북한 양군의 통합군 편성을 이번에 처음으로 실현하게 되어 한국군은 이제 명실상부한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 군의 강력한 군사력을 주변국들에게 알리기 위해 대양 함대의 전 함정을 이번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박충식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군은 국토를 보위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유 전력의 기밀 유지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당당히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알려 쓸데없는 도발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또한 전술 전략의 일환입니다. 각급 지휘관들은 그동안 충분한 정신교육이 있었겠지만 이번 보름간의 항해 기간을 적극 활용하여 휘하 장병들의 보안 교육은 물론 정신교육에도 힘써 주기를 당부합니다. 아울러 민간 수송선 선장님들께서도 선원들 보안 교육에 특별히 신경써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이 마치 합창을 하듯 대답하자 박충식의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민간 수송선 선장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오션프린스호의 선장 김기태였다.

“김기태 선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비록 후배이기는 하나 공식석상이라 말을 높이는 박충식 제독의 배려에 감사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김기태가 물었다.

“이번 항해에 투입되는 선원들을 전부 자국민으로 대체하게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이번에 수송하는 군수물자 중에 비밀을 요하는 물자도 다량 수송하는 일이라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타국국적의 선원들이 승선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김기태의 되물음에 잠깐 생각을 하던 박충식은 대부분이 해군 장교 출신인 선장들의 신분을 생각하고는 구태여 이들에게까지 작전에 대해 숨길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입을 열었다.

“참석하신 선장님들이 전부 군 출신이라 다행입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군사기밀 사항이니 당분간 비밀을 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 파병하는 미르 부대는 단순히 소말리아 해역을 방어하기 위한 부대가 아닙니다.”

“다른 임무가 있습니까?”

“이번에 파병하는 미르 부대는 소극적으로 해역을 방어하며 선박의 안전 항해를 책임지는 것이 주 임무가 아니라 소말리아 해적을 완전 섬멸하기 위해 해적들의 근거지를 직접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파병하는 부대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박충식의 설명에 김기태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 수송하는 군수물자에 전시 작전 물자와 동일한 각종 장비들과 보급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전의 외부 노출을 우려하여 각 민간 수송선의 타국 국적 선원들을 전부 하선시키도록 미리 조치한 것입니다.”

박충식의 설명이 있자 그제야 무언가 알았다는 듯 김기태 선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여단 병력이 5,000여 명으로 확대 편성이 되었고 각종 특수 장비도 저렇게 많이 선적된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래 남북한 양군 동수로 병력을 선발하려던 방침을 바꿔 적진 침투 파괴 등의 특수전의 임무를 수행할 북한군 출신 특수 연대를 새롭게 편제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특수전의 작전 수행 능력은 북한군 전력이 우리 군보다 절대평가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게 설명하며 박충식이 특전 연대 연대장 강명철 대좌를 바라보자 강명철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박충식에게 목례를 했다.

“저희들 전력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네다. 사령관 동지.”

특유의 강한 사투리로 인사를 하는 강명철의 말에 박충식이 웃으며 물었다.

“하하! 강 대좌, 이제 동지란 말은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순간 강명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네다. 동지란 말이 워낙 입에 붙어 나서리. 앞으로 조심 하갔습네다.”

“수십 년 동안 써온 말투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네. 하지만 지휘관이 솔선해야 휘하 장병들도 본받지 않겠는가?”

그 말에 강명철이 정색을 했다.

“사령관님의 말씀 명심 하갔습네다.”

남북한 양군이 통합훈련을 받게 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호칭 문제와 표준말 사용이었다. 남북 양군은 군 통합의 일환으로 반드시 표준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었지만 북한 지역 사투리가 워낙 독특하고 강한 터라 쉽게 바꿔지지 않자 우선 호칭 뒤에 붙이는 동지와 동무란 말을 일절 금지시켰다.

하지만 불과 3개월의 통합훈련으로 그것이 단숨에 고쳐지기는 어려웠던지 북한군 최고 지휘관인 강명철의 입에서도 동지란 호칭이 자신도 모르게 붙어 나왔던 것이다.

강명철의 대답에 박충식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남북한 군대가 아무 문제없이 통합 조직으로 구성된 것만으로도 이번 작전의 절반은 벌써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호칭과 사투리 문제로 너무 부담 갖지 말게.”

“아닙니다. 통일을 눈앞에 둔 지금 양군이 통합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통합에 문제를 일으키는 반동 에미나이들이 있다면 누구든 말씀하시라요. 내래 단단히 정신교육을 시키갔습네다.”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강명철은 말하는 도중 흥분하자 바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박충식은 웃으며 손사래 쳤다.

“하하, 되었네. 되었어. 내가 알기로 미르 부대 장병들 중 그런 불손한 생각을 품고 있는 장병들은 한 명도 없다고 들었네. 그렇지 않소, 김 장군?” 

박충식의 물음에 김종석 중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통합훈련에 불미한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병들이 기대 이상으로 상호 협조하며 훈련에 임해 훈련 성과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게 나왔습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 통일에 초석이 되어야 할 우리 군이 통합 문제로 불편해진다면 이는 나라에 얼마나 큰 누가 되겠나. 난 우리 장병들이 충분히 잘해 내리라 믿고 있었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어려운 회의는 이만 마치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여기 모이신 분들을 모두 모시고 여기 본부 앞 잔디 광장에서 작은 연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분도 빠짐없이 연회에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짝! 짝! 짝! 짝!

박충식의 초대의 말과 박수 소리를 마지막으로 이날 회의는 끝이 났다.

수송 작전을 최종 점검하느라 강정기지 전체가 바쁘게 사흘을 보냈고 드디어 출항 당일이 되었다. 

이 사흘 동안 민간 수송선박 몇 척이 안전 항해를 보장 받기 위해 이번 항해에 추가되면서 예상외로 많은 민간 수송선이 동참하게 되었다.

박충식은 이번 파병의 본래 목적이 수송선박들의 안전한 항해에 있었던 탓에 이렇게 뒤늦게 참여를 요청해 오는 선박들도 타국 국적 선원들의 하선을 전제로 모두 동행하는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드디어 출항 당일이 되었다. 

오전 9시에 진행된 출범식에는 대통령 대리로 참석한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남북한 군 수뇌부들과 미르 부대 장병 가족들 그리고 강정 인근에 거주하는 해군 전함 승조원 가족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부두 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미르 부대장 김종석 장군의 파병 보고를 시작으로 시작된 출범식은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예식을 마치고 파병 병력이 승선을 모두 마치자 시각은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대양 함대 참모장 송의식 대좌는 각 함에서 올라오는 승선보고를 모두 취합한 후 박충식 제독에게 보고했다.

“사령관님, 모든 병력이 승선을 끝마쳤습니다.”

“흠, 그래?”

“합참의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송의식이 수화기를 넘겨주자 박충식이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의장님, 박충식입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합참의장의 목소리가 반갑게 흘러나왔다.

“아! 박 제독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양 함대와 수송 함대를 이끌고 목적지까지 다녀오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모쪼록 무사히 잘 다녀오기 바라네.”

“걱정 마십시오, 선배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는 남한 합참의장은 해군 출신으로 박충식의 직계 선배였다.

“모쪼록 우리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도 전 세계에 뽐내 주고.”

“걱정 마십시오."

“다녀와서 술 한잔하세.”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충성.”

“알겠네. 무운을 비네, 충성.”

통일 기운이 무르익으면서 말이 많았던 각 군의 경례 구호도 ‘충성’ 하나로 통일되었다. 박충식은 합참의장에게 출항 인사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곧 송의식 참모장에게 지시했다.

“참모장은 함대 출항 준비를 점검하게.”

박충식의 지시가 있자 송의식 대좌는 통신사관에게 함대 공용 주파수로 주파수를 열라고 지시하고는 직접 각 전함은 물론 민간 수송선까지 일일이 점검을 시작했다. 함대는 이미 출항준비를 마치고 있었기에 수십 척의 준비 상황 점검은 10여 분을 넘기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 

“민간 수송선은 물론 대양 함대 모든 함정들이 출항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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