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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식은 송의식의 보고를 받자 마라도함장인 김성태 대좌에게 지시했다.
“김 제독, 그럼 출항하지.”
비록 이번 작전을 마치고 진급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아직 대좌인 자신을 제독으로 불러 주는 박충식에게 목례를 한 김성태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마라도함, 출항하라!”
뿌앙~~.
김성태의 지시에 마치 대답을 하는 듯 마라도함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의 기적이 터져 나왔다.
박충식은 자신의 출항 지시를 각 함에 전하는 통신사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선교 밖으로 나갔다.
마라도함의 선교는 독도함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독도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기다란 직사각형 구조인데 반해 일반 항모와 같은 형태로 제작된 마라도함의 선교는 상당히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박충식이 밖으로 나가자 항구에서 가장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민간 수송선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단의 배들이 모두 상당한 규모였던 탓에 수송선들은 일정한 배치와 거리를 유지하며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간 수송선이 모두 항구를 빠져나가자 대양 함대기함인 마라도함이 운항을 시작했고 뒤이어 대양 함대 전함들도 운항 순서에 맞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속 함대 전함들이 기동하자 박충식은 난간을 돌아 항구 광장 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항구 광장에는 아직 합참의장을 비롯한 양군 수뇌부와 환송객들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박충식은 그들을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군 수뇌부가 답례가 이어졌고 그들이 손을 내리는 것을 확인한 박충식이 경례를 거두며 손을 흔들자 광장에 있던 많은 환송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
그런 환송객들에게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 준 박충식은 몸을 돌려 선교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항구가 제법 멀어질 무렵 옆에서 상황을 점검하던 송의식의 보고가 있었다.
“사령관님 함대를 비롯한 선단의 모든 함정들이 무사히 항구를 빠져나왔습니다. 운항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그런가? 그럼 모든 함정은 함정간 거리를 준수하고, 항로는 계획대로, 속도는 15노트로 정속 항진한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박충식은 잠시 사방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바다는 전부 선단 소속 배들로 뒤덮여 있었다.
박충식이 그 모습을 둘러보며 독백했다.
“온 바다가 우리들의 배로군.”
박충식의 독백을 김종석 중장이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야, 이거 온 바다가 전부 우리차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전부 우리 바다 같지?”
“그렇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같이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심정은 똑 같았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두 사람 중 자신의 심정을 먼저 꺼낸 사람은 김기태였다.
“선단 소속 배들이 전부 대양 함대 전함이라면 어마어마하겠습니다.”
박충식이 과거를 회상했다.
“초급장교 시절 미 7함대 기함에 승선해 7함대 기동훈련을 견습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바다를 뒤덮은 기동함대의 위용을 보고 정말 부러웠었지. 신라 때 장보고는 개인의 신분으로 이 바다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 후손인 우리가 1,000년이 훨씬 지금에서야 대양 함대를 운용하고 있다니 참으로 조상 보기가 부끄럽군.”
“그렇지 않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잃어버린 해상 영토를 되찾을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 비록 우리는 이루지 못하겠지만 지금같이 국력이 급속히 신장된다면 앞으로 남의 나라를 부러워하지 않을 날이 오겠지.”
그러자 옆에 가만히 있던 강명철도 거들었다.
“남북한이 완전 통일이 되고 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되고말고.”
박충식의 거듭되는 다짐에 처음 항구를 출발할 때와 달리 함교 안의 분위기는 조금 무거워졌지만 마치 마음속 굳은 다짐을 나타내려는 듯 모두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기동하는 선단은 기함인 마라도함을 중심으로 선단 전후에 이지스함인 율곡이이함과 임계윤집(해군은 신형 이지스함의 함명을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다 순국한 삼학사의 이름을 채택했다. 임계윤집함은 이지스함 2차 건조 계획에 따라 건조되어 2025년 실전 배치되어 있었다.)함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단의 중심에서 항진하고 있는 마라도함 주변으로 민간 수송선들이 모여 있었고 그 외곽을 대양 함대 전함들이 둘러싸며 호위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단의 선박을 사다리꼴 모양으로 배치하여 항해를 하던 수송 선단은 날이 어두워져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박충식이 미르 부대장 김종석과 송의식참모장, 그리고 특수연대 연대장 강명철과 마라도함장 김성태 등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항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은 후 다시 마라도함의 함교로 올라왔을 때는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박충식은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각 선박의 이상 유무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고는 이번에는 대양 함대에 배속된 2척의 잠함을 호출하였다.
대양 함대에 배속된 2척의 잠함은 대우조선해양에서 기획한 DSX-3000의 설계를 바탕으로 순수 한국 기술로 건조된 3,000톤급 최신예 잠수함이었다.
한국 해군의 본래 계획은 이 신형 잠수함 엔진에 한국형 원자로인 SMART형 원자로를 장착하려고 했으나 주변국들의 견제, 특히 한국의 군사력 증강을 극력 경계하는 일본의 반발이 워낙 심해 아쉽게도 디젤 엔진을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70일간의 작전 능력과 미사일 수직 발사관을 12기나 갖춘 무장 능력, 그리고 수중에서 20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최신예 잠수함이었다.
“사령관님, 잠수함이 호출되었습니다.”
“누군가?”
“강이식함 함장 강병익 중좌입니다.”
박충식은 통신사관이 건넨 수화기로 교신을 시도했다.
“강 함장인가? 사령관이다.”
“충성, 강이식함장 상좌 강병익입니다.”
“바다 속 상황은 어떤가?”
“일본의 오야시오 급 잠함이 조금 전까지 따라오다 돌아간 후로는 바다 속은 아주 잠잠합니다.”
“일본 잠수함이 따라 왔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놈들, 뭐 먹을 게 있다고 쫄쫄거리며 따라다니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두 시간 전 돌아가고 난 후부터는 바다 속은 아주 조용합니다.”
“내일 오전 중 오키나와에서 7함대 소속 잠함이 마중을 나온다고 했으니 미리 유념해 두게.”
“알겠습니다. 이상 상황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잠함 운항은 이상이 없는가?”
“걱정 마십시오. 마누라보다 더 소중하게 정비하고 있습니다.”
“하하! 알겠네. 수고하게.”
“예, 충성.”
강병익은 진주 강씨 시조인 고구려 명장 강이식 장군의 이름을 딴 강이식함의 초대 함장이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강병익과의 교신을 웃으며 끝낸 박충식은 두 번째 잠수함인 고선지함의 함장과도 교신을 마친 후 수화기를 통신사관에게 건네자 부관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사령관님 9시가 되어 갑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부관의 말에 벽에 걸린 시계를 본 박충식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그 순간 갑자기 참모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박충식을 불러 세웠다.
“사령관님 하늘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뭐라고? 이상한 현상? 어디인가?”
“저쪽 12시 방향입니다.”
참모장이 손짓하는 하늘에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함대 바로 정면에서 이상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뭔지 모를 현상은 박충식이 보고 있는 중에도 순식간에 커지면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의 밝기가 얼마나 밝았는지 달빛은 물론 밤하늘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고 차츰 크기가 커지면서 아주 강력해 보이는 번개 모양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발산하며 괴기스럽기까지 하였다.
박충식은 처음 보는 현상에 놀라며 되물었다.
“어! 저게 대체 뭔가? 저렇게 이상한 것은 처음 보는데? 저런 게 초자연 현상인가?”
“저도 저런 현상은 처음 봅니다.”
웅성웅성.
하늘의 이상 현상에 함교가 술렁였다.
그때 같이 하늘을 바라보던 이현호가 소리쳤다.
“어? 사령관님. 크기가 갑자기 커지면서 더 밝아집니다.”
하늘의 이상 현상은 처음에도 아주 밝았지만 그 중심은 크기가 작았으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크기로 점차 커지면서 이제는 온 사방이 대낮같이 밝게 보일 정도가 되었다.
처음 보는 이상 현상을 바라보던 박충식은 규모가 너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이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어 마라도함장에게 헬기를 출격시키라 하려고 할 때였다.
레이더를 담당하는 부 사관이 다급하게 함장을 불렀다.
“함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레이더가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 사관이 함장을 부르는 소리에 박충식도 고개를 돌려 레이더를 바라보자 레이더 전체가 이상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가?”
“저도 이런 현상은 처음 봅니다.”
“레이더의 오작동인가?”
“조금 전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빨리 레이더를 다시 점검해 보게.”
함장의 지시에 무선 담당 간부가 서둘러 기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현호가 조금 전 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사령관님, 하늘의 이상 현상이 엄청난 속도로 우리 함대 쪽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현호의 다급한 외침에 박충식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하늘에 있던 그 빛무리는 조금 전과 달리 엄청나게 커져서 함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어?”
그러나 박충식이 충돌에 대비하라는 말을 할 틈도 없이 엄청나게 무서운 속도로 쏟아져 내린 그 빛은 그대로 선단과 정면충돌했다.
쏴악~. 꽝!
박충식은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진 너무나도 하얀 빛이, 함교는 물론 자신의 몸 전체를 그대로 관통해 버리는 것을 느끼면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