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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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박충식은 기분 나쁠 정도로 머리가 아픈 것을 느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음~.”

“사령관님, 정신이 드십니까?”

귓가로 부관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충식은 깨질 듯 아픈 머리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힘겹게 눈을 떴다. 하지만 너무도 밝은 빛을 정면으로 받은 탓인지 잠시 동안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흘러 초점이 잡히자 부관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박충식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마라도함 의무실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빛 때문에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보군.”

“하루 동안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잠시 말을 멈춘 박충식은 잠시 후 두통이 진정되자 이현호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가?”

“어젯밤의 초자연 현상으로 선단의 모든 인원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저희들은 몇 시간 뒤 정신을 차렸지만 사령관님께서는 조금 더 누워 계셨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난생 처음 경험한 일이었어. 인명 피해는 없는가.”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함대와 민간 선박들 모두?”

“그렇습니다. 민간 선박은 물론 수중에 있는 잠함까지도 모두 무사합니다.”

피해가 없다는 이현호의 보고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박충식이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더 누워 계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걱정하는 말에 박충식은 자신의 몸을 훑어보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몸은 이상이 없는 것 같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게 아니었다.

휘청~.

이현호가 황급히 박충식을 부축했다.

“사령관님.”

“괜찮아. 잠시 어지러웠을 뿐이야.”

“조금 더 누워 계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내 몸은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함교에 올라가자.”

박충식을 부축한 이현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의무장교 남효만 대위에게 물었다.

“남 대위, 지금 움직이셔도 문제없겠나?”

“잠시 정신을 잃으셨을 뿐 신체에 별다른 이상은 없으십니다.”

박충식이 의무장교의 말을 들으며 의무대를 나서려고 할 때 이현호가 보고를 시작했다.

“그런데 함대에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무슨 문제인가?”

“어제까지 모든 함정의 전원이 아웃됐었습니다.”

박충식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 모든 함정의 전원이 나갔었다고?”

한 척의 전함의 전원이 나가도 해군 전체가 발칵 뒤집혀질 일인데 모든 함정의 전원이 나갔었다는 말에 박충식이 깜짝 놀란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이상하게 모든 전원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조금 전부터 전원이 들어와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습니다만 그것 말고 문제가 또 있습니다.”

박충식이 또 문제가 있다는 보고에 걸음을 멈추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또 문제가 발생했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 보다 자세한 것은 올라가서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네.”

박충식이 서둘러 함교로 들어서자 실내 분위기는 늘 정제된 모습이 아닌 아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박충식이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쳤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어수선한가.”

박충식의 호통에 어수선한 분위기는 일순 정리되었고 그 사이 참모장 송의식이 급하게 다가왔다. 

“사령관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 이상 없네.”

“다행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GPS(위성항법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GPS가 작동하지 않다니. 전원이 나갔었던 것 때문에 그런 건가?”

“그건 아닙니다. GPS가 마치 재밍(전파 교란)이라도 당한 것 같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고 않습니다.” 

박충식이 깜짝 놀라 소리치다시피 되물었다.

“재밍이라니? 남북한이 통일을 앞두게 된 지가 언제인데 재밍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 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전파 교란을 시도했단 말인가?”

“그것은 아직 전혀 파악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 대양 함대는 물론 민간 선박의 항법 및 통신 시스템을 대체 항법 체계인 e로란 시스템 운용 체계로 긴급전환 해 두었습니다.”

박충식이 그제야 한숨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선조치 잘했네. 수고했어.”

GPS가 작동불능이 된 급박한 상황에서 작전수칙에 따라 신속하게 선조치한 참모장에게 박충식이 칭찬해 주었다. 

송의식이 박충식에게 보고한 e로란 시스템이란, 위성항법장치(GPS)가 적의 도발로 전파 교란(Jamming)을 당해 GPS가 작동불능에 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개발된 항법 방식이다. e로란은 로란-C(Long Range Radio Navigation-C) 방식의 차세대 방식이다. 

로란-C 방식이란 지상에 설치된 전파 송신국을 주국과 종국 등 임의로 3개로 나누어 각 송신국에서 발사된 전파를 각 전파가 각각 도달하는 시간 차를 계산, 위치 정보를 얻는 항법 방식이다. e로란은 이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모든 송신국을 주국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로란-C 방식의 문제점이었던 400m 이상의 오차 범위를 20m 이내로 낮춰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방식이다.

해군은 미국에서 먼저 개발된 e로란 시스템을 세계 최고의 IT 기술을 활용, 더욱 발전시켜 오차 범위를 5m 이내로 줄여 2020년부터 육군의 단위 부대는 물론 모든 함대에도 적용해 놓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운용 체계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중심축이 되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하는데 대양 함대의 컨트롤 타워는 마라도함에 장착되어 있었다.

참모장의 보고는 이어졌다.

“그런데 더 문제는 e로란 시스템을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단을 제외하고는 해상은 물론 지상의 아무 곳하고도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간 상선에서 보고해 온 바로는 인터넷은 물론 이동 통신망도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아마도 어제 있었던 폭발 충격이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금 현재로는 어느 곳과도 전혀 교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대양 함대와 수송 선단에 포함된 함정을 제외하고는 아무 곳하고도 교신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상의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 일부 미약한 전파들이 수신되고 있기는 하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송수신 방식과는 전혀 다른 아주 초보적인 방식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박충식이 되물었다.

“아무것도 말인가?”

“그렇습니다.”

“본국과도 말인가?”

“본국과 모항인 강정은 물론이고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도 교신은 물론 전파조차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이 동중국해는 상선은 물론이고 어선 천지인데 전파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박충식은 이상한 고립감에 순간적으로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렇다면 우리 함대를 제외하고는 통신상으로는 완전히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단 말이군.”

“아마도 어젯밤의 초자연 현상이 우리에게만 덮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상황이 심각합니다.”

참모장의 설명을 듣던 박충식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곧바로 다음 지시를 했다.

“일단 민간 수송선의 항법 제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마라도함의 컨트롤 타워를 전면 개방하여 민간 수송선이 자동항법장치를 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활성화하게.”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참모장이 지시를 받고 움직이자 박충식은 바로 마라도함의 함장에게 지시했다.

“김 제독, 비행단장을 호출하게.”

박충식의 명령은 즉각 이행되어 수신기가 곧 그의 손에 건네졌다.

“비행단장인가?”

“충성, 대좌 최경석입니다.”

최경석은 본래 공군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마라도함의 비행단장이 된 것은 순전히 해리어기 때문이었다. 최경석은 어릴 적부터 함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가 처음 공사에 입교할 당시만 해도 해군에는 수리온 헬기조차 변변하게 배치되어 있지가 않았다. 

어쩔 수없이 최경석은 조종사가 되기 위해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임관 후 군복무에 충실했었다. 그런 그였기에 몇 년 전 해군에서 해리어기가 도입되면서 공군 조종사를 지원받을 때 가장 먼저 해리어기 조종사를 자원한 것은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어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영국까지 가서 필요한 조종훈련을 받고는 해군으로 보직까지 옮겼다.

그런 최경석이 대령(대좌)으로 승진하면서 마라도함에 탑재되어 있는 8기의 해리어기는 물론 수리온 헬기를 총괄 관할하는 비행단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송 작전에는 8기의 해리어기는 제외되었다. 그것은 이번 미르 부대 파병에 헬기 항공대도 같이 파병되었기 때문이다. 헬기 항공대는 총 20기의 수리온이 배속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해리어기를 이함시켜야 했고 지금 마라도함에는 기존의 탑재기를 포함 총 40기의 수리온 헬기가 상하 갑판에 나뉘어 탑재되어 있었다. 

“최 단장, 지금 상황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니 바로 묻겠다. 항공 장비들 상태는 이상이 있는가?”

“항공 관측 장비들은 아직 상태 점검 중이라 정확한 답변을 드리지 못합니다만 무인정찰기 송골매Ⅱ와 수리온은 점검결과 이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즉시 출격 가능한가?”

“모두 출격 가능합니다.”

박충식은 작전 반경 200km의 송골매Ⅱ형인 무인정찰기를 띄우려고 하다 마음을 바꿔 항속 거리가 600km에 달하는 수리온을 띄우기로 했다. 

“그럼 지금 즉시 수리온을 띄워 전 방위 정찰을 실시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마라도의 상갑판에서는 4대의 수리온 헬기가 연속하여 떠올랐다.

타! 타! 타! 타! 타!

힘차게 회전익이 날개 짓하며 부상한 헬기들은 곧 사방으로 날아갔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보내 왔다. 그러나 동영상에 보이는 바다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찰을 나간 헬기 중 가장 먼저 북쪽 제주 방향으로 정찰을 나간 기장의 무전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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