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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방면으로 정찰 나온 황유식 준위입니다. 지금까지 해상에는 어떠한 선박도 보이지 않습니다.”
박충식이 바로 참모장에게 지시했다.
“정찰 헬기를 강정기지까지 올라가 보라고 하게.”
“황 준위 헬기에 식별 번호 1번을 부여한다. 그리고 지금 그 속도로 강정까지 올라가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1번 아웃.”
교신이 끝나는 것을 본 박충식이 김성태 함장에게 질문했다.
“그나저나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가?”
“e로란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하루 동안의 정전으로 좌표 기준점이 아직 획정되지 않고 있어 우리 함대의 정확한 좌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항로를 역추적하면 제주도 남단 300~350km 정도 해상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의 모든 항로와 항로 규칙을 관장하는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와 항해 능률 향상을 위해 인공위성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지구상의 모든 항만 상황은 물론 해상의 상황과 바다를 운항하는 민간 선박의 이동경로 등 항해와 관련된 위험 요소들의 자료를 위도와 경도를 활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마라도함 컨트롤 타워의 메인 컴퓨터에는 이 정보를 활용할 초정밀 해도가 내장되어 있었기에 GPS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민간 선박들은 선박의 위치를 알 수 없었지만 e로란 시스템을 가동한 마라도함은 좌표 기준점 한 곳만 정확히 알게 되면 다른 장비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함대의 위치를 정확히 산출해 내는 것은 물론 항해에도 기존의 전자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의 정전으로 위치를 정확히 획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모든 시스템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그것밖에 내려오지 않았나?”
“어젯밤 21시경 충격으로 모든 선박이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나마 선박에 남아 있던 추진력이 선박을 이정도 이동시켰을 것으로 추정하여 산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함대의 위치가 동중국해의 거의 중심이겠군.”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함대 지휘부가 있는 마라도함의 함교의 장교들은 다른 선박들과 계속 교신을 하면서 상황을 관리하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헬기들이 정찰을 나가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때였다. 통신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는 황유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둥지, 여기는 1번 기, 둥지 나와라.”
“말하라. 1번 기, 여기는 둥지다.”
“전방에 제주도가 보입니다.”
“그런가! 그럼 동영상 전송기를 켜라.”
“알겠습니다.”
교신과 동시에 함교에 설치된 화면에 정찰 1번 기에서 보내오는 동영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1번 기가 보내오는 화면을 보고 미르 부대장 김종석이 김성태에게 물었다.
“김 함장, 1번 기가 전송하는 것이 제주도가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전방에 나타난 육지는 제주도가 분명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1번 기가 저렇게 접근하고 있는데도 강정기지 항공 관제소에서 어떻게 아무런 관제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함대 참모장 송의식이 나섰다.
“혹, 어제 그 폭발에 강정에까지 전파 교란이 발생하여 교신이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바다에 떠 있던 우리도 이제 거의 정상을 회복했는데 육지가 우리보다 회복이 늦어진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박충식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서늘함을 느꼈다. 잠시 후 그의 느낌은 현실로 다가왔다.
황유식의 놀라서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지형지물로 봐서 강정기지가 분명한데 지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황유식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함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황유식의 말보다 먼저 비춰지는 화면을 보고 놀라서 경악하고 있었다. 본토와 백령도 등지에서 내려온 미르 부대원들은 모를 수 있다고 해도, 강정에 둥지를 틀고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여 년 동안을 주둔하여 지리를 잘 알고 있는 해군 출신들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믿기 힘든 상황에 누구 한 사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분명 지형은 강정 일대가 분명했지만 항만은 물론이고 해군기지 그리고 주둔지가 완전히 사라진 화면이 보여지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지휘관은 달랐다. 너무도 놀라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중 박충식이 입을 열었다.
“1번 기에게 남아 있는 연료를 확인한 후 가능하다면 제주도를 전부 둘러보도록 지시하게.”
박충식의 지시가 있자 김성태는 서둘러 수신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항공 정찰은 계속되었지만 처음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비를 마친 송골매까지 동원되어 확인한 상황은 처음 그대로였다.
대양 함대가 이상 현상을 경험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아침이었다. 마라도함의 회의실에는 대양 함대와 미르 부대의 모든 지휘관은 물론 만간선박 선장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고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들이었다.
참모장 송의식의 간략한 설명과 함께 그동안 정찰한 동영상을 시청하는 내내 참석자들 중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미 현재 상황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믿기지 않은 현실 탓인지 정찰한 동영상의 시청이 끝나고 난 후에도 한동안 누구한 사람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특히 특전 연대가 제주도에 침투해 납치해 온 사극에나 나올 법한 복장을 입은 제주 대정관아의 아전과 일반 양민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하는 증언을 직접 들을 때는 기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들릴 정도로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무거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무거워진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도 바뀌어 지지 않자 박충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보신 대로 제주도와 본토는 물론 오키나와와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 둘러보았으나 시간대는 모두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그 시간대가 100년을 훨씬 넘긴 과거라는 것입니다. 나도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본 것은 모두 사실이고 지금까지 정황을 분석한 결과는 오늘이 광무 9년인 서기 1905년 4월 15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민간 선박 선장 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는 질문했다.
“성기균입니다. 제독님의 말씀은 우리가 정말 과거로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솔직히 동영상을 직접 보고 증언을 들어 봐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박충식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후! 믿기지 않지만 지금 보신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한 현실이고 믿으셔야 합니다.”
웅성웅성.
박충식의 단정적인 말을 듣자 그동안 입을 열지 않던 민간 선박 선장들은 순간적으로 웅성거렸다. 그때 대양 함대 참모장 송의식이 일어서자 선장들의 웅성거림이 잦아졌다.
“사령관님의 말씀을 들은 선장님들의 황당한 심정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전에 보신 장면은 수리온과 송골매는 물론 잠수함까지 동원해 정찰하고 미르 부대원들이 직접 침투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1905년 4월15일의 시간대로 온 것은 분명합니다.”
성기균이 물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입니까?”
송의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는 군인입니다. 군인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자신 있지만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는 솔직히 저희들은 모르겠습니다. 아마 며칠 전 초자연 현상이 우리들에게 닥친 것이 원인이 된 것으로 추측은 합니다만 이 또한 저희들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럼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의 여부도 불분명하군요.”
“선장님께 이런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솔직하게 그렇습니다.”
참모장 송의식의 대답에 회의장 분위기가 다시 납덩이같이 가라앉자 박충식이 민간 선박 선장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고 물었다.
“정 선장님, 혹시 직원 분들 중 지금의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연구해 보실 분이 계십니까?”
정하영은 현대중공업 소속으로 이번 대양 함대에 동참한 까닭은 현대중공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 대금의 대물로 받은 원유를 채굴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이 자체 보유하고 있던 원유 시추선(DrillShip)을 사우디 해상광구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정하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를 포함하여 시추선에 함께 온 기술자들은 전부 원유 관련 기술자들입니다. 차라리 원유 채굴이나 처리 시설을 만들라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지만 초자연 현상 같은 물리적 현상은 저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후, 그럴 줄 알았습니다만 혹시나 해서 여쭤 본 것입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송구합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정하영의 솔직한 대답에 감사를 표시한 박충식은 다른 참석자들 모두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