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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부대는 물론 해군도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에서는 지난 사흘 동안 전 장병의 인사 기록부를 샅샅이 뒤지면서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인재를 찾았으나 불가사의한 현상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보시다시피 우리에게는 며칠 전과 같은 초자연 현상을 밝혀 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현상의 원인을 알아냈다고 해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알아낸다고 해도 그것은 먼 후일의 일일 것이고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참모장 송의식이 다시 나섰다.
“사령관님의 말씀대로 지금 우리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장병들은 물론이고 민간 선박의 선원들도 지금의 상황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참모장의 말에 참석했던 군 지휘관은 물론 선장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난관에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자칫 실기를 해서 구성원들이 동요라도 일으킨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성기균 선장이 다시 나섰다.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앞으로의 일을 우리 군이 임의로 결정하는 것보다 이곳에 같이 넘어온 모든 분들과 함께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판단이 들어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입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부터 참석자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의 논의 끝에 중지를 모은 것은 현재의 상황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아무 조건 없이 서면으로 제출하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이렇게 의견을 서면 제출하도록 한 이유는 대대적인 토론을 할 경우에 분위기가 격앙되며 발생할 혼란이나 분파 조장 등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의도와 여러 사람이 토론을 하다 보면 직급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그냥 덮어두는 사람들도 나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출된 내용은 비록 작은 제안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소홀하게 처리되지 않도록 기명 제출자인 경우 결과를 반드시 통보해 주는 것은 물론 공정한 결정을 위해 인원을 선발하여 취합하기로 했다.
그리고 취합한 결과는 누구도 열람할 수 있게 전부 공개하고 혹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라고 해도 절대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다음 날 오전 10시 대양 함대를 비롯한 모든 선박은 상황발표를 위해 공용 주파수가 맞춰졌고 승조원은 물론이고 미르 부대원과 민간인 등 모든 탑승자들은 모든 선박이 미리 준비한 대형 화면 앞에 모였다.
상황 발표는 박충식 사령관이 모두를 대표하여 해군 정복 차림으로 발표장에 섰으며 그 장면은 실시간으로 모든 선박에 전송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양 함대 사령관인 박충식 제독입니다. 국군 장병 및 민간 선원 그리고 이번 항해에 동참하고 있는 민간인 여러분에게 이런 발표를 하게 되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면한 현실을 정확히 알려야 하는 것이 지휘관의 임무라 지금의 상황을 가감 없이 알려 드리게 되었음을 미리 알려 두는 바입니다.”
목이 탄 박충식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부관이 건네준 물을 조금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너무도 큰일을 겪었습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한 또 상상 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바로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겪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박충식의 담화는 10여 분간 계속되었다. 이어서 정찰 결과를 편집한 동영상이 20여 분간 방영되었다.
부대 지휘관을 비롯한 선장들은 혈기 방장한 젊은 장병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누구도 예상 못 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국군 장병은 물론이고 수송선의 민간 승무원 대부분에서 경악할 내용의 담화와 동영상을 시청하고 나서도 놀랍도록 차분한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이미 대부분 상황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별다른 동요도 없이 대부분은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또 몇 몇은 차라리 잘되었다며 누가 지시도 하지 않았는데도 미리부터 자신과 의견이 맞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갖고 있던 의견을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장병들의 이상 반응을 가장 걱정한 사람 중 하나인 미르 부대장 김종석은 장병들이 놀랍도록 침착하게 반응을 나타내자 대견스러웠고 다행스러웠다.
자칫 원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비관한 몇 몇 장병들이 젊은 혈기에 난동을 부릴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분위기에 휩쓸린 일부 병력이 동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자칫 수습하기 어려운 엄청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병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차분한 모습에 김종석이 한시름 덜었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 의외로 모든 장병들이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김종석 장군의 말에 특전 연대 연대장 강명철 대좌가 나섰다.
“솔직히 저는 지금 시간대로 온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같이 오지 못한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왔다고 해서 국방에 큰 허점이 노출되지는 않을 것이고 가족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크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은 정부에서 보살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강명철의 말에 모두가 마음이 무거웠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힘을 얻었는지 강명철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장병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외로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처럼 표준말을 쓰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강명철의 말에 박창식을 포함한 지휘관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마음은 무거웠지만 자신들이 엄청난 일을 겪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당황하지도 않고 또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명철의 말이 끝나자 모처럼 마라도함에 승선한 차세대 군수 지원함인 백록함의 함장 유성훈 대좌가 입을 열었다. 차세대 군수 지원함(AOE-2)인 백록함은 만재배수량 25,000톤에 전장 220m, 전폭 25m, 높이 40m로 10,000톤의 유류와 2,000톤이 넘는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대형 함정으로 대양 함대 지원함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하며 2020년 실전 배치된 함정이다.
백록함의 함장인 유성훈은 마라도함장 김성태의 1년 후배로 대양 함대 함장들 중 최고참이다.
“지금 장병들이 현 상황을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병들의 개별 면담을 통한 충분한 상담과 관심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80% 이상이 부사관 이상 간부들이고 파병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정신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자칫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고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충식이 즉각 동의했다.
“유 함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네. 이번에 장병들 의견을 취합한 즉시 전 장병들의 심리 상담을 즉각 실시하도록 하는 게 좋겠네. 김 장군의 생각은 어떤가?”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장병들 의견 개진에 주어진 시간이 이틀이므로 사흘째부터 저희 미르 부대 전 장병들 심리 상담을 즉각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비록 같은 해사 출신이고 후배이기는 하나 김종석이 해병으로 병과를 바꾼 후 책임지고 있는 임무와 부대가 다르기에 박충식은 김종석에게 의견을 물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김종석이 박충식에게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