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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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독님, 앞으로의 상황을 고려하여 민관을 통합 지휘하는 합동 지휘부를 구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같이 어정쩡한 지휘 체계는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션프린스 선장 김기태도 바로 동감을 표시했다.

“맞습니다. 김 장군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장병들과 선원들의 의견이 취합되고 나면 모두를 이끌어 갈 합동 지도부 구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를 이끌어 갈 지도부 구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는 나도 동감이네.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보네.”

박충식까지 동의하고 나서자 합동 지휘부 구성에 대한 의견은 바로 의견 통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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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혁은 병장으로 이번 파병에 자원하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군에 입대한 차준혁은 전공 때문에 화학지원대에 배치되어 복무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미르 부대가 파병하며 육군에서 화학대가 지원 부대로 파병이 결정되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자원하게 되었다. 그러자 복무 주특기를 살려 화학지원대에서 네이팜유와 네이팜탄을 현지에서 직접 제작, 생산할 수 있는 장치인 M2 혼합 장치의 조작원 보직을 맡게 된 것이다. 화학지원대는 밀림을 소각할 목적의 네이팜유와 네이팜탄의 현지 제조는 물론이고 반군 출신 해적들이기는 하나 불필요한 인명 살상을 피할 목적으로 인체에 무해한 가스탄도 현지에서 직접 제조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제조할 가스탄은 수십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던 최루탄 등이 있었다.

미르 부대가 현지 생산할 유지油脂 소이탄인 네이팜탄은 주재료가 알킬가솔린으로 황린黃燐을 이용하여 발화되는 폭탄이었다. 단 한 발로 축구장 서너 개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서 ‘빈곤한 나라의 원자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탄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위력의 네이팜탄은 1980년 유엔에서 무차별 인명 살상과 자연환경 파괴를 우려하여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었다. 하지만 유엔은 이번에 특별히 선박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소말리아 반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열대밀림을 완전히 소각시킬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부 특별 허가를 내주었다.

하지만 무차별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3국 출신 감독관이 현지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다.

화학지원대는 대대 규모였으나 대부분이 간부들이고 일반사병은 차준혁을 포함하여 부사수인 고준일 일병과 행정병인 조민수 상병 등 몇 명이 전부였다. 

차준혁은 오전에 방송된 함대 사령관의 담화를 듣고는 하루 종일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부모님과 동생, 군에 자원입대 전 헤어진 여자 친구, 초, 중, 고, 대학 동안 내내 친구였던 상진이, 준호, 그리고 앞으로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갖은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던 차준혁은 자기 옆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부사수 고준일 일병을 불렀다.

“고 일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차준혁의 목소리에 자세를 바로 한 고준일의 입에서는 바로 관등성명이 튀어나왔다. 

“일병 고준일.”

“햐, 너 왜 이렇게 군기가 들었어? 무슨 일 있어?”

차준혁의 물음에 스스로도 평상시와 달리 이상하게 군기 든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고준일 일병은 자세를 풀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렇습니다.”

“머릿속이 와글와글하지?”

“후~ 정말 와글와글 부글부글합니다.”

“그래. 뭐 정리는 되고 있어?”

“대충 생각이 정리되고는 있지만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 병장님은 정리되셨습니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솔직히 적어 내려고 해. 그런 것이 모여 큰 틀이 맞춰질 것이고 맞춰진 큰 틀은 다시 지휘관들께서 정확히 잡아 가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면 지금 시대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지 않겠습니까?”

차준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부자가 되어 보려고?”

차준혁의 웃으며 묻는 말에 고준일도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러면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전역하고 나서 돈이나 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준일의 웃음에 차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들 중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닐 거야. 하지만 혼자서는 그게 절대 쉽지 않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네가 전역해서 네 지식을 이용하여 사업을 한다고 하면 다른 나라에서 너를 가만 둘 것이라고 생각해? 절대 그대로 놔두지 않을 거야. 힘도 없는 사람이 지식만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당장 납치해서 머릿속의 지식을 쏙 빼먹고 죽이거나 평생 노예처럼 가둬 놓고 죽어라 일만 시키지 않겠어? 더구나 무슨 돈으로 사업을 할 거야? 너 돈은 있어?”

고준일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렇겠습니다. 이전에 있는 돈은 지금은 종잇조각이니 완전 무일푼입니다.”

“그래, 통장에 돈이 있다고 해도 그건 이제 숫자에 불과해. 여기선 우리 모두가 무일푼이야.”

“그렇군요. 전부가 완전 거지입니다.”

“그래, 우리 모두 거지야. 땡전 한 푼 없는 완전한 거지.”

차준혁의 말에 고준일이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차준혁이 시무룩한 고준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야, 고 일병. 우리 같은 군바리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까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해.”

“차 병장님은 걱정되지 않습니까? 전역하고 난 후 앞으로 뭘 해 먹고 살지 정도는 미리 생각해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넌 걱정도 팔자다. 앞으로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 문제야. 지금 당장이.”

“당장이 문제라뇨?”

“생각해 봐라.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당장 한반도로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반도에 가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어떻게 되기는요. 다 같은 민족인데요.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지금이 1905년이라니 일본 놈들이 문제인데 그건 우리가 힘으로 몰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네 생각일 뿐이지. 지금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이방인일 뿐이야. 그저 적당히 말이 통하는 이방인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넌 몇 년 후에 먹고 살 것을 걱정한다는 놈이 바로 앞의 문제도 이해를 못해서 어떻게 하겠어? 잘 생각해 봐, 지금 우리가 뭐가 문제인지.”

차준혁의 말에 한참을 곰곰이 생각을 하던 고준일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겠습니다. 지금 대한제국 사람들이 우리들 선조라고 해도 그분들에게 우리는 외국인과 다름없는 또 다른 이방인 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알았어? 그분들에게 우리는 외국인이나 다름없어. 아니 외국인일 거야. 그래서 내 생각은 우리 개개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전부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해야 된다고 생각해. 더구나 1905년 4월이라면 러일전쟁의 거의 막바지로 지금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거의 넘어가 숨을 꼴깍거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야. 그러니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해.”

“우리가 보유하고 전력이라면 일본을 힘으로 몰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거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지상군 병력이래야 겨우 미르 부대가 전부잖아. 내가 기억하기로는 러일전쟁 당시 만주에서 러시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일본군 병력만 수십만 명이라고 알고 있어. 더구나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대해야 할 한반도에서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도 상당한 규모야. 비록 우리 무기가 저들보다 앞서 있다고는 해도 군수물자가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라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물자가 소진되면 재보급이 바로 문제가 되지 않겠어?”

차준혁이 차분한 설명에 고준일의 얼굴이 더 한층 심각해졌다.

“그렇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저들도 화기로 무장한 군대라 병력면에서도 우리들만으로는 일본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울 거야.”

“…….”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전력을 다해 일본을 몰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아? 과연 일본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우리가 대한제국에 쉽게 정착할 수 있을 거 같아? 난 지금부터 대한제국을 상대할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한반도에 정착하기가 정말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차준혁의 차분한 설명들 듣자 상황이 그냥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고준일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정말 지금 상황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무엇도 장담할 수 없겠습니다.”

“그래, 내 생각에 지금 당장은 우리와 대한제국과의 관계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그래야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거야.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남태평양의 주인 없는 섬을 개발해서 정착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

“섬을 개발해요? 어떻게 말입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부대를 건설할 모든 장비들이 있잖아. 그리고 군수물자도 1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있고 말이야. 석유가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건 어떻게 풀어나가지 않겠어?”

“아! 맞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올 수 있겠습니다.”

“우리 같은 군바리야. 그럴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와 같이 온 민간 선박 아저씨들은 지금 오만 생각 다하고 있을 거야. 그 아저씨들이야 민간인인데 구태여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야.”

“정말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차준혁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고준일의 등을 두드리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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