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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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거푸 술을 들이켜던 의친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감청을 하고 있던 이종경이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양광룡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의친왕이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이종경의 보고에 양광용이 시계를 보니 1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놀이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대부분 깊은 잠에 빠질 시간대라 작전을 펼치기 좋은 시간이지만 양광룡 대위는 신중했다. 

“혹 의친왕이 잠에서 깨어날지 모르니 잠시 더 기다린다.”

양광룡의 대기하란 지시에 이종경이 다시 감청을 계속했다. 그러기를 10여 분 정도가 흐른 후였다.

“의친왕의 상황은.”

“고른 숨소리에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완전히 잠이 든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이제 시작해도 되겠군.”

양광룡은 자신의 헤드셋을 열었다.

“각조, 지금부터 작전 계획대로 행동을 개시한다. 먼저 각조 위치 보고.”

“1조 정위치.”

“2조 정위치.”

…….

그렇게 5조까지의 보고를 받은 양광룡은 주변을 한번 살펴본 후 드디어 지시를 내렸다.

“작전 개시.”

양광룡의 명령이 떨어지자 침투팀은 헬멧에 장착된 야간 투시경을 내려 시야 확보를 하고는 주위를 살피면서 사동궁의 담장으로 달려갔다. 

사사삭…….

그들의 움직임은 아주 신속해서 만일 보통 사람이 봤다고 해도 잠깐 사이 형체를 놓칠 정도였다. 

턱~ 휙. 턱~ 휙. 

담장으로 달려가던 침투팀은 앞서가던 팀원 한 명이 벽에 기대 무릎을 굽히면서 두 손을 깍지 끼자 뒤따라오던 팀원들은 그의 손을 밟으며 그 반동을 이용해 순식간에 담을 넘었다. 

최초로 담을 넘은 팀원은 몇 걸음 앞으로 달려가 무릎쏴 자세로 사주경계를 했고 이어서 담장을 넘어온 팀원들은 경계하는 팀원을 그대로 지나쳐 빠르게 양관 쪽으로 달려갔다. 

사동궁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시절 황족 중 거의 유일하게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의친왕을 탄압하기 일본에 의해 본래 크기인 1만여 평(3만 3,00제곱미터)의 왕부를 갖은 명분으로 조각내는 바람에 지금은 제대로 위치조차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아직 일제의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 규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수많은 전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그야말로 왕궁이었다.

미르 부대 침투팀은 도청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이미 한번 다녀왔던 침투 경로를 따라 순식간에 양관으로 접근했다. 양관 앞에 있는 담장을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순식간에 넘으며 경계병을 배치한 후 양관에 도착한 침투팀은 모두 6명이었다. 

양관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팀원 2명은 손을 앞으로 내밀고 벽을 등지고 섰다. 양광룡과 이종경은 팀원의 손을 밟으며 바로 어깨로 올라섰고 뒤따라온 2명의 팀원은 벽에 최대한 붙어서는 무릎쏴 자세로 사주경계에 들어갔다.

두 팀원의 어깨에 올라선 양광룡 대위가 이종경 상사에게 손짓을 하자 이종경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4월 하순의 한성은 제법 날씨가 더워서 술을 먹던 의친왕은 당연히 창문을 잠그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덜컹 삐~걱.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고 해도 나무로 만든 창틀은 약간의 소음을 남기며 열렸다. 창문이 열리자 양광룡은 어깨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굴절 야광 투시경이었다. 양광룡이 능숙한 솜씨로 투시경을 끼워 맞춰 끝을 안으로 들이밀자 침대에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의친왕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양광룡은 투시경을 계속 이리저리 돌려 방 안의 동정을 살폈고 이윽고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이 확인되자 굴절 야간 투시경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이종경에게 손으로 안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휘익

이종경이 아주 자연스럽게 창문을 넘어 들어갔고 양광룡이 곧 뒤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간 양광룡은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을 벗었다. 

딸칵.

작은 소음이 들리며 이종경이 침투용 소형 랜턴의 불을 켜자 배낭 주변이 환해졌다. 

양광룡은 미리 준비해 간 서류를 술에 취해 한 잠이 든 의친왕의 머리맡에 올려놓고는 또 하나의 물건을 꺼내 의친왕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후 잠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술에 취한 의친왕은 입고 있던 대한제국 육군 부장(副將, 대한제국의 장성은 참장, 부장, 대장의 3계급 체제이며 부장은 지금의 소장에서 중장 정도 계급임) 군복 그대로 잠이 들어있었다.

양광룡은 오늘의 작전이 좋은 결과가 있기를 내심으로 바라면서 헤드셋으로 팀원에게 지시했다.

“임무 완수. 돌아간다.”

그렇게 부하에게 지시를 한 양광룡이 막 몸을 돌릴 때였다.

삐걱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의친왕을 시종하는 박 내관이었다. 의친왕이 한동안 자신을 부르지 않자 술을 먹고 잠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 박 내관은 술 먹던 것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던 박 내관이 이상한 불빛에 놀라 늘 숙이고 다녀서 평상시에는 거의 굽혀져 있던 허리를 펴는 순간이었다. 

퍽.

둔탁하게 자신의 뒷머리를 내리치는 느낌에 박 내관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방으로 들어올 것을 경계하면 문 옆에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이종경은 박 내관이 방으로 들어와 허리를 펴는 순간 그의 뒷목을 내리쳐 기절시키고는 쓰러지는 그의 몸을 받쳐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그러는 사이 양광룡은 신속하게 방문을 닫고는 문에 귀를 댄 체 잠시 동안 밖의 동정을 살폈으나 다행히 깊은 밤이어서 인지 아무런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양광식이 문에서 귀를 떼는 것을 본 이종경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할 수 없다. 죄도 없는 사람 죽일 수는 없으니 그대로 두고 간다.”

“알겠습니다.”

이종경과 양광룡은 박 내관을 서둘러 한쪽으로 끌어다 눕혀 두고는 들어왔던 순서의 반대로 신속하게 사동궁을 빠져나왔다. 방 안에서 이러한 사단이 벌어지는 것도 모른 채 의친왕은 정신없이 잠들어 있었다.

사동궁을 빠져나온 침투팀은 곧바로 서대문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얼마 후 한성 성벽에 도착한 침투팀은 이미 넘은 적이 있는 성벽을 골라 너무도 쉽게 성벽을 월장해서 한성을 벗어났다.

@

침투팀이 한성을 벗어난 것은 곧바로 박충식에게 보고되었다. 박충식을 비롯한 지휘부는 이날도 작전 계획 수립에 밤늦은 줄 모르고 있었기에 1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바로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사령관님, 침투팀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한성을 빠져 나왔다는 보고입니다.”

박충식은 1시가 넘어서 들어온 침투팀의 임무 완수 보고에 크게 기뻐하면서 보고하는 강명철 부대장에게 물었다.

“수고들 했군. 드디어 첫 발을 내딛었어. 강 장군, 침투팀을 데려올 안내팀은 어떻게 되었나?”

“이미 행주 인근 한강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충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무인정찰기가 그동안 수차례 정찰을 했지만 접선 지역 인근에 주둔해 있는 대한제국군과 일본군은 없었습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양 대위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고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하게.”

“알겠습니다, 충성.”

강명철은 양 대위에게 가는 칭찬을 마치 자신이 들은 것처럼 기분 좋게 인사하고는 돌아갔다. 

이 시대에 와서 좋은 것 중 하나가 감청 위험 전혀 없이 무선통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05년대의 무선통신은 모스부호만을 이용하여 송수신하는 초기 단계였으며 그것도 외교 공관과 해군 함정에 일부 적용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무선통신의 현주소였다.

당연히 주파수를 다양하게 이용한다는 것은 아직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더구나 삼족오군은 지금 사용되는 초기 무선통신의 교신 내용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감청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교신은 암호 전문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막 초기 단계라서 삼족오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산 장비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풀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장점을 살려 삼족오군은 특히 일본의 교신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감청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때 러시아와의 해전을 위해 해군 함정을 비롯한 육지 곳곳에 무선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일본이 구축한 무선망은 규슈와 본주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울진과 울산, 남해안의 제주도와 거문도,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를 잇는 무선망을 1904년 9월에 이미 구축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울릉도와 독도 1904년 9월 망루 설치와 함께 소대병력의 1개 분견대가 파견되어 있었고 일본 본토와는 통신 케이블까지 가설해 놓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대본영의 치밀한 계획하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다. 아직은 일본 전역에 무선 중계 시설을 설치할 수 없었던 일본으로서는 국운을 걸고 있는 러시아와의 해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동해를 중심으로 무선 중계망을 설치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내륙은 전부 유선 전화망이 연결되어 있었다. 러일전쟁 초기 일본이 한국에 진군해서 가장 먼저 장악한 것이 바로 유선 전신망이었다. 이 당시 한반도에는 약 5,000여 대의 전화가 보급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일본군 한국 주차군은 그들의 주 임무였던 만주에 진군해 있는 일본군의 병참 지원과 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신의주와 평야에 있는 대규모 병참기지는 물론 대한제국 유선 전신망 관리와 철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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