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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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께서 우리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 주셔야 되는데 러시아 함대 전력이 우리를 앞선다니 참으로 걱정이로다.”

탄식하던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고 말을 거들려고 하던 참모장 오타니는 사령관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일본은 역대로 육군과 해군이 항상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 이유는 육군은 조슈번 출신이 장악을 하고 있는 반면에 해군은 사쓰마번 출신이 각각 장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지만 천 년 가까이 지속된 봉건제도인 다이묘大名 제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막부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막부의 쇼군을 섬기는 것을 제외하고는 봉건영주인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나라나 다름없이 대를 이어 통치했다. 

그런 일본에서도 본토인 혼슈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던 조슈번과 규슈 지역 최대의 다이묘였던 사쓰마번은 양 번 모두 손꼽히는 영지를 소유한 거대 영주로 군림하며 언제나 대립각을 세워 왔었다.

그런 두 지역 출신이 양분하고 있던 육군과 해군은 처음부터 경쟁 관계를 유지하였다.

일본 군부는 거의 전부가 정치군인들로,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일본은 군인이 곧 정치권력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런 탓에 조슈 번 출신인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로서는 사쓰마 번 출신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과는 개인적으로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도고 제독은 다른 일본의 군인들과는 달리 거의 유일하게 정치를 하지 않는 순수 군인이었다.

도고는 주변의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평생 군에만 몸담고 있어서 군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자신보다 몇 살 많은 그런 도고 제독을 내심 존경하기까지 했다.

“이보게, 참모장.”

“하이! 각하.”

“우리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를 과연 물리칠 수 있을까?”

참모장 오타니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신 도고 제독 각하의 지휘 능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 제국 연합함대가 늙고 병든 북극곰을 모조리 수장시키고 전승할 것을 확신합니다.”

참모장의 확신에 찬 대답에 내심 흡족해진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다.

“도고 제독이 반드시 승리해야 해.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전쟁에서 우리 대일본제국 육군이 총 60만 명이 넘게 투입되었지만 정예병들은 대부분 소진되고 지금 있는 병력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병력이라 전투력이 크게 부족해. 만일 러시아가 이를 눈치채고 병력을 기동한다면 우리는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어.”

“훈련은 전투를 하면서 받아도 됩니다. 더구나 몇 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력은 이제 예비병들이 아닌 정예병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참모장의 확신에 찬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말을 돌려 다른 질문을 했다.

“그나저나 조선군 감축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계획대로 아주 원만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화력 감축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가?”

“한성에 주둔하고 있는 시위대侍衛隊와 친위대親衛隊 병력이 보유하고 있는 실탄과 포탄은 최소한의 물량을 제외하고는 전량 용산 탄약고로 옮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진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탄환 물량도 대부분 이동 중에 있어 곧 용산 탄약고로 전부 수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실탄도 별로 없는 조선군은 이제 허울 좋은 군대일 뿐입니다.”

“병력 감축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각하. 조선이 보유하고 있던 3만 5,000여 명에 이르던 병력을 8개 대대병력인 8,000명 선으로 감축하는 계획도 이달 말이면 완전히 마무리될 것입니다.”

하세가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조선군 감축 계획은 앞으로 2, 3년 안에 시행될 조선군 폐지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은 참모장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잘 마무리 짓도록 하게. 특히 조선군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하고.”

“염려 마십시오.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겠습니다.”

참모장 오타니의 확신에 찬 대답에 흡족해진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도고 제독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

“진해만 인근에서 해상 기동 훈련과 포격 훈련 중에 있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고 제독께서 조선의 수군 장수였던 이순신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말씀하시더니 훈련도 본국이 아닌 진해에서 실시하는군.”

“그런가 봅니다. 소장이 듣기로도 도고 제독 각하께서는 이순신의 전략을 연구해서 새로운 진형陣形을 개발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세가와가 크게 감탄했다.

“새로운 진형을 개발하셨다니, 과연 도고 제독이시구나.”

“맞습니다. 과연 도고 제독 각하십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몸을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도고의 새로운 진형이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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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은 마음이 급해 서둘러서 짐을 쌌다.

서류의 날짜까진 이틀의 여유가 있었지만 스스로 급해진 마음에 서둘러서 짐을 싼 의친왕은 바로 당일 행주로 내려왔다. 

‘약속대로라면 이곳이 맞을 텐데.’

의친왕은 약속 장소인 한강 모래밭에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의친왕과 함께 길을 나선 박 내관은 의친왕을 수행해 외국을 나간다는 생각에 무척 신이나 있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제물포로 가서 상해로 가는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생뚱맞게 한강을 끼고 걸어 마포를 지나 행주까지 내려오자 내심 의아해했다.

하지만 따로 일이 있겠지 하며 부지런히 등짐을 지고 뒤를 따라왔는데 갑자기 한강변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의친왕의 행동을 보자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상해로 가려면 제물포로 가야 하는데 이곳에는 어인 거둥이시옵니까? 더구나 곧 날이 지려고 하옵니다.”

“이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

“예? 이곳은 아무도 없는 모래밭인데 누구를 만난다고 하시옵니까?”

“기다려 보면 안다. 박 내관은 그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

신경이 예민해진 의친왕은 쓸데없이 되묻는 박 내관을 호통 치려고 하다 그만두었다. 비록 신분은 천지 차이였지만 대궐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커 온 사람이 박 내관이었다. 

더구나 황족으로 자라 변변한 친구한 사람 없었던 자신에게 박 내관은 때론 친구 같은 존재였다.

늘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수족같이 보좌하는 박 내관에게 별거 아닌 일에 호통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의친왕이 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그를 안내할 팀은 이미 한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기 저 사람이 의친왕인가 보군.”

“복장을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해가 더 떨어질 때까지 잠시 더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의친왕은 아무리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자신을 맞이할 사람들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내심 초조했다.

‘이거 과인이 쓸데없는 짓을 한 건지 모르겠군. 분명 아침에 읽은 서류에는 분명 자신들이 지정한 신호인 붉은 천을 널고 서류를 태운 후 오늘과 내일 양일 중 아무 때나 해가 떨어질 저녁 무렵 이곳에 오면 과인을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서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이상한 기물(볼펜)에 대한 호기심과 황실은 물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언과도 같은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행주까지 내려왔지만 의친왕은 서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믿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호기심은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거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의친왕이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날은 이제 해가 완전히 떨어져 박명(薄明, 일출 또는 일몰 후에도 날이 훤해 있는 현상)이 되었을 때였다. 

자신과 같이 사방을 둘러보던 박 내관이 다급히 외쳤다.

“전하 뒤쪽을 보시옵소서. 누군가 이곳으로 뛰어오고 있사옵니다.”

의친왕이 박 내관의 말에 따라 황급히 뒤편 숲 쪽으로 몸을 돌리자 멀리서 자신을 향해 사주경계를 하며 쏜살같이 다가오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의친왕은 그들이 바로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때 갑자기 박 내관이 의친왕 앞으로 나섰다.

“전하, 뒤로 물러서십시오. 흉측한 무리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다가오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러 오는 것으로 생각한 박 내관은 항상 굽어 있던 허리를 활짝 펴고는 의친왕을 보호하려는 듯 앞을 가로막고 당당히 섰다.

‘하~.’

의친왕은 자신보다 약한 박 내관이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앞으로 나서자 기특한 생각에 내심 감탄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다. 나를 헤하려 하는 자들이 아니니 너는 뒤로 물러서라.” 

다른 때와 달리 박 내관의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송구하오나, 소인이 직접 확인을 하기 전에는 그리할 수 없사옵니다.”

박 내관이 이렇게까지 나서자 의친왕도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그사이 빠르게 그들 곁으로 다가선 안내 팀 중 선임인 한성진 대위가 의친왕을 보고 물었다. 

“의친왕 전하이십니까?”

그때 박 내관이 먼저 나섰다.

“무엄하오. 전하께 감히 예를 표시하지도 않고 물어오다니 그대들은 누군가?”

박 내관의 호통에도 한성진은 상대하지 않고 곧바로 의친왕에게 다시 물었다.

“의친왕 전하가 확실합니까?”

“그렇소.”

의친왕의 수긍이 있자 한성진 대위는 바로 거수경례를 했으나 경례 구호까지는 붙이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하를 모시러온 삼족오군 특수부대 대위 한성진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의친왕도 거수경례로 답례했다.

“과인은 대한제국 육군 부장이며 친왕인 이강이라고 하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소관이 모시겠습니다.”

“부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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