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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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진 대위는 나이가 자신과 비슷한 의친왕이 아주 자연스럽게 반 공대를 하며 분위기를 이끌자 과연 일국의 친왕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깨에 걸린 손전등을 빼서 손에 쥐었다.

깜빡 깜빡.

한성진이 한강을 향해 정해진 신호를 보내자 곧 한강에서도 동일한 신호를 보내 왔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모터 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부르르릉…….

모터 소리는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고속 침투 함정이었다. 침투 함정은 미끄러지듯 강변에 다가왔고 곧이어 타고 있던 네 명의 대원 중 두 명이 보트에 내려서 다가왔다.

“헉”

박 내관은 물론 의친왕도 대원들 모습에 깜짝 놀랐다. 대원들은 한성진 대위 일행과 달리 머리에 헬멧을 썼고 온 얼굴은 위장 크림으로 위장을 하고 있어서 눈만 반짝거렸다.

의친왕은 대원들을 흑인으로 착각하면서 혹시 서양 세력이 아닌가하고 덜컥 의심이 들었다. 박 내관이 몸까지 부들거리며 목소리가 떨면서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오귀자! 오귀자(烏鬼子, 흑인을 뜻하는 조선 시대 별칭)다!”

한성진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이들은 흑인이 아니라 위장한 것입니다. 걱정 마시고 저 배에 오르십시오. 대원들은 이분들의 짐을 옮겨 실어라.”

“예!”

배에서 내린 대원들은 신속하게 의친왕의 짐을 들어 배로 가져갔고 한성진 대위는 주춤거리는 의친왕을 재촉했다.

“빨리 오르십시오. 혹 다른 사람들 눈에 뜨이면 모두가 곤란해집니다.”

의친왕은 내친걸음이었다. 한성진이 재촉하자 두말하지 않고 바로 침투 함정에 올랐고 그 모습을 본 박 내관도 서둘러 따라 탔다. 두 사람이 타자 한성진과 다른 팀원도 승선을 마쳤다.

“출발하라.”

부르르릉~.

고속 침투 함정은 처음에는 반쯤 물에 잠겨서는 천천히 소리를 죽여 움직였다.

주변의 눈을 피해 그렇게 조심스럽게 운항하던 침투 함정은 파주 오두산성을 지나고 임진강 합류 지점을 지나 황해로 접어들면서 차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의친왕은 자신이 타고 있는 침투 함정을 보고 아주 크게 놀라고 있었다. 외국을 많이 다닌 의친왕은 증기 기관에 대해서는 대한제국의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 의친왕에게 굴뚝도 없이 배를 움직이는 기관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경이로 다가왔다.

의친왕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게 신기했다.

‘어떻게 굴뚝도 없고 석탄도 때지 않고 기관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저 총은 또 뭐고 또 저 군복은 도대체 뭔가. 왜 군복을 저렇게 얼룩무늬가 들어있는 것을 착용한 것인가?’

특수부대원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는 의친왕이 지금껏 보아왔던 나무 몸체에 총신을 얹어 있는 방식의 소총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거기에 고어텍스로 제작된 화강석 무늬가 들어간 군복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의친왕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성진 대위는 의친왕이 처음 자신들을 봤을 때 당황해하는 모습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침착함을 잃지 않자 과연 일국의 친왕답다고 생각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시간이 흘러 한강을 완전히 벗어나자 한성진이 바로 지시했다.

“속도를 높여라.”

“알겠습니다.”

부아아앙~~~~.

속도를 높이자 고속 침투 함정은 몸체를 물 위로 띄우고는 수면을 스치며 날아갈듯 물살을 가르며 황해원양으로 달려갔다.

텅~ 텅~.

의친왕은 시속 100km의 속도를 내며 달리는 속도감과 함께 선체가 수면에 부딪치면서 내는 충격에 움찔거리며 놀랐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흐트러지는 것을 보이기 싫어 두 주먹을 움켜쥐고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그러기를 30여 분 지나자 속을 뒤집어 놓을 듯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고속정이 드디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부릉 부릉 부릉~~~~~.

속도를 조정하느라 기관이 약간의 울림을 울리는 사이 한상진이 눈을 감고 이를 악문 모습을 하고 있는 의친왕을 불렀다.

“배를 옮겨 타셔야 합니다.”

한상진의 부름에 눈을 뜬 의친왕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온통 불을 밝히고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몸체의 배를 보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대기하고 있던 함정은 바로 임계윤집함이었다. 

의친왕은 수많은 나라를 돌아보면서 크고 작은 전함을 많이 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형태를 한 거대한 전함에 의친왕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정말 엄청난 크기로군.”

그때 한성진 대위가 재촉했다.

“오르시지요.”

“알겠소.”

윤집함에서는 의친왕의 승선을 위해 이미 철재 사다리가 내려져 있었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의친왕은 자신과 달리 떨리는 다리를 주체 못 하는 박 내관을 부축하고 갑판에 오르자 갑판에는 이미 함장인 공성기 대좌와 열 명가량의 간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성기도 한성진과 마찬가지로 구호를 하지 않고 거수경례로 의친왕에게 인사했다.

“우리 윤집함 방문을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의친왕은 나이가 있는 공성기를 보자 반 공대를 하지 않고 말을 높이며 답례를 하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공성기 대좌는 악수를 나눈 후 대기하고 있던 간부들을 일일이 소개시켰다. 황족이었기에 의전儀典이 몸에 베인 의친왕은 대기하고 있던 간부들과도 자연스럽게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치자 공성기는 의친왕을 함교로 안내했다.

전함이라고는 양무함揚武艦밖에 올라 보지 못한 의친왕은 갑판까지도 철판으로 되어 있는 윤집함의 위용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대단한 전함입니다. 밤이 늦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제국이 보유하고 있는 양무함보다 훨씬 커 보입니다.”

“양무함이 아니라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어떤 전함보다 크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 윤집함은 일본 연합함대 기함인 미카사보다 길이는 더 길고 폭은 조금 좁았다.

“아! 그렇습니까?” 

공성기의 설명에 의친왕은 거듭 감탄했다.

그러면서 부황의 군함 구입에 대한 열망을 떠올리며 부러운 심정도 감추지 못했다. 

일본의 함포 외교로 강제 개항을 당한 고종은 군함 구입에 대한 열망이 아주 대단했다. 청일전쟁 이전부터 서양 군함을 구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일본의 계획적인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마침내 승려 이동인에게 비자금을 내주면서 신식군함을 구입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렸지만 이동인이 암살당하고 막대한 비자금도 함께 종적을 감추면서 좌절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고종은 계속해서 군함 구입을 시도했지만 일본의 교묘하고 악랄한 방해 공작으로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만다.

더구나 근대 해군 양성을 하겠다고 1893년 영국의 교관까지 초청해 강화도에 설립했던 해군사관학교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의 연안 방어를 책임지겠다는 강권에 밀려 해군을 아예 해산하면서 문을 닫고 만다. 

비록 해군이 해산되었지만 고종의 전함 구입 열망은 그치지 않았고 결국은 호랑이 아가리나 다름없는 일본에게 전함구입을 의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은 수송선을 개조한 전함을 대한제국에 넘겨주게 되고 자신의 꿈을 이룬 고종은 이를 크게 기뻐하며 친히 양무호라는 선명까지 친히 지어 내렸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간 것에 불과했다. 양무호는 본래 일본의 미쓰이 물산에서 석탄 수송을 위해 영국에서 도입해 운항하던 화물선이었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운용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 폐기하려던 것을 고종의 요청이 있자 못 이기는 척 온갖 생색은 다 내며 구식 함선에 있던 구형 함포 6문을 떼어 장착하고는 당시 대한제국 1년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대금을 받고 양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출발부터가 기구했던 양무함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양무함은 도입된 후 석탄을 비롯한 전함 운용 재원이 부족하여 거의 대부분을 제물포항에 정박된 채 운항조차 제대로 못 했다. 

그러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이마저도 이듬해 도입된 광제호와 함께 강제 징발된 것이다. 이렇게 자국 함정을 강제 징발해도 제대로 반발을 못할 정도로 이 당시 대한제국은 거의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함교에 들어선 의친왕은 사방에 널려 있는 전자 장비들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모두 뭡니까?”

“전함을 운항 관리하고 탑재된 무기들을 관리하는 장비들입니다.”

“배를 관리하는 장비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공성기 대좌는 의친왕이 또다시 질문을 하려 하자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지금은 돌아가야 하니 자세한 것은 기함에 가서 사령관님을 뵙고 난 후 사람을 붙여 우리의 전함 운용 체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의친왕은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으나 공성기의 제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본 함 귀환한다. 목표는 제주도 남단의 선단 정선 지역이다. 함속 20노트로 출발하라.”

함장의 지시가 있자 윤집함은 서서히 기동하다 곧바로 힘차게 파도를 가르며 선단이 정선해 있는 제주 남단으로 항진을 시작했다. 

의친왕을 태운 윤집함은 하루 동안 남진 끝에 제주도 남단 해상에 정선해 있는 선단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의친왕은 정신이 없었다. 가장 먼저 윤집함에 탑재된 회전날틀을 타고 하늘을 날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섭고 놀라서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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