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회: 1권-18화 제주수복 -->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라도함에 오른 의친왕은 삼족오군 지휘부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이번에 확대 개편된 사령관 비서실에 새로 배속된 차준혁 병장의 안내로 선단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의친왕은 먼저 마라도함에 실려 있던 40대의 회전날틀과 15대의 흑표 전차, 20대의 장갑차와 20대의 군용 트럭 그리고 15대의 K-9 자주포 등 마라도함에 탑재되어 있는 수많은 장비를 보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각 함정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수리온을 타고 하늘을 날자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큰 민간 수송선과 대양 함대 함정들이 온 바다를 가득 메우고 떠 있는 모습에 수없이 많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의친왕이 놀란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유학한 미국도 자동차가 막 보급되기 시작되어 그가 있던 오하이오도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더구나 대한제국에는 황제의 어차御車로만 유일하게 들어와 있던 자동차가 승용차는 물론 화물차와 버스 등 수많은 자동차들이 하나 가득 세 척의 배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는 질려서 아무 말도 못했다.
물론 전시 물자 및 전자 제품 등 수송선에 선적된 수많은 물품을 보았다면 더 놀랐겠지만 하역을 위해 차곡차곡 선적되어 있는 컨테이너를 구태여 열어 보일 필요가 없다는 박충식의 지시에 선단만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것만해도 강렬함을 심어 주기에는 차고 넘쳤다.
이윽고 선단을 모두 둘러본 의친왕은 마라도함으로 돌아온 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삼족오군에 대한 본격적인 브리핑을 받기 시작했다.
*제주 수복
이 브리핑에도 의친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상황 설명을 위해 사용된 동영상은 물론이고 참고 자료를 보여주는 빔 프로젝트 등 하다못해 설명을 간략하게 정리한 칼라 복사된 서류와 너무나도 깨끗한 복사 용지까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점심을 먹고 시작된 삼족오군에 대한 브리핑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설명이 계속되는 시간 동안 잠깐의 휴식은 있었지만 돌아가며 설명을 하는 이현호와 차준혁은 물론이고 의친왕도 지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모든 설명이 끝이 났어도 뜨겁게 달궈진 열기는 바로 식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을 겪고 들은 의친왕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한나절 동안 의친왕은 무지막지한 주입식 설명을 들어야 했다. 의친왕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일 정도로 주입식 설명을 한 이유는 삼족오군이 보유한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처음부터 일일이 전부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모든 물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다 신문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대한제국 사람의 동경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주입식 설명을 한 것이다.
이러한 주입식 설명 계획은 비서실에 배속된 차준혁이 입안한 것으로 의친왕에게 이러한 기획 의도가 완전히 먹혀들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집어넣은 의친왕으로서는 머릿속이 당연히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이라 설명이 끝나자 지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잠시 넋을 놓듯 쉬고 있던 의친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말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모두가 사실이오?”
의친왕의 물음에 이현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대들이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 사실이란 말이오?”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면서 전하를 속이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오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소이다. 그건 그렇고 설명대로라면 그대들은 우리의 후손이 되는 것이오?”
옆에 있던 이종훈 박사가 나섰다.
“이전 시대에는 당연히 그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맞으면 맞는 것이지 이제는 아니라니요.”
“그건 시간의 인과율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간의 인과율이라니 그게 뭡니까?”
“우리가 초자연 현상으로 인해 이곳에 옴으로 인해서 저희들에게 흐르던 시간의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쉽게 설명을 드리면 이전 시대에 있던 우리들은 분명 지금 시대를 사시는 분들의 후손들이었지만 우리들이 이 시대로 오면서 이전 시대와의 인연은 끝나고, 우리들 개개인은 전혀 별개로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대들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산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만일 지금 시대 우리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 우리로 인해 죽거나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그 상황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온 우리들은 그로인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시간의 인과율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우리가 이곳에 온 그때부터 이전의 인연과는 전혀 관계없이 새로운 시작점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이해는 못 하겠지만 무슨 말씀인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이종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절반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조금 곤혹스러워하던 의친왕이 이현호를 보고 물었다.
“조금 전 설명에 의하면 삼족오군의 해군 전력이 전함 10여 척과 대형 수송선 20여 척이라고 했는데 맞소?”
이현호가 다시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함정은 기함인 만재배수량 27,000톤의 마라도함을 비롯해 만재배수량10,000톤의 이지스함 2척, 만재배수량 5,500톤인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4척과 호위함 2척, 그리고 차세대 군수 지원함 1척 등 10척이 삼족오군 대양 함대 편재입니다.”
의친왕이 크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조금 전 설명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군함이 배수량이 15,000톤이나 되는 전함 미카사를 비롯해 60여 척이나 된다고 했는데 삼족오군이 보유한 10척으로 과연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오?”
“전혀 걱정 마십시오. 지금 우리의 해군 전력은 일본의 연합함대는 물론 러시아 함대도 동시에 격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의친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러시아 함대도 동시에 격멸할 수 있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의친왕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삼족오군의 화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그건 무리라 생각되오. 양국의 두 함대 전력을 합치면 무려 100척이 넘는데 불과 10척의 병력으로 저들을 모두 물리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소?”
의친왕이 의심스러워하자 이현호가 의심을 불식시키려고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우리가 보유한 해군 전력으로 충분히 저들을 격멸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을 것이요. 아무리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10:1의 전력이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제가 백번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직접 한번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럴 기회가 있겠소?”
“잠시 기다리면 사령관님께서 주최하시는 만찬晩餐이 있을 예정입니다. 만찬이 끝나고 난 후 그 문제는 사령관께서 직접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알겠소.”
이현호의 설명대로 잠시 후 박충식의 주최로 만찬이 열렸다. 다른 때의 만찬에는 민간 선박 선장들도 항상 참석했으나 오늘은 만찬이 끝나고 이어질 의친왕과의 면담 때문에 주요지휘관만이 합석했다.
비록 만찬이기는 하지만 식사자리는 의외로 일찍 끝났다.
“그래, 오늘 설명을 들으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만찬이 끝나고 자리를 회의실로 옮기고 박충식의 질문첫마디에 의친왕은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토로했다.
“후! 솔직히 말하면 모든 것이 아직은 얼떨떨합니다.”
“그러실 것입니다. 저희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상황을 수습하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의친왕은 설명을 들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말을 드디어 입 밖으로 꺼냈다.
“삼족오군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과인(寡人, ‘덕이 작은 사람이라는 뜻’, 왕이 자신을 이르는 말로 친왕의 지위에 있는 의친왕은 자신을 과인이라 자칭했다.)에게 삼족오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력을 모두 공개하신 것을 보면 우리 대한제국을 도와주실 것으로 보입니다만.”
의친왕이 묻는 말투을 들으며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박충식은 역시 현실과 이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