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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군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항상 대두되었던 문제는 지금 사람들이 과연 자신들을 어떻게 보겠느냐는 것이었다. 나이가 있던 지휘부는 크게 별 문제없이 융화되리라는 생각들이 주를 이루었고 젊은 중간 간부들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제국의 지도자들은 절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늘 대립됐다.
박충식 또한 토론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다른 지휘부와 같이 큰 문제없이 정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내심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쉽게 합일점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대한제국 지도부 중 가장 민족의식이 강한 의친왕을 이용하자는 방안이었다.
그래서 의친왕을 대양함대로 데려온 것이다.
하나 의친왕은 삼족오군이 비록 다른 시대에서 왔지만 대한제국의 어려움을 당연히 같이 헤쳐 나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도와줄 용의가 있느냐는 물어오자 박충식은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충식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보십니까?”
묻는 의도를 알지 못한 의친왕은 의아해하면서 되물었다.
“당연히 같은 민족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십니까?”
쿵.
의친왕은 순간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그건…….”
“우리가 비록 인과율로 인해 다른 삶을 살기는 하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은 진실인데 의친왕께서는 왜 우리를 남의 나라 사람처럼 도와줄 거냐고 묻는 것입니까?”
낮은 목소리지만 박충식의 질책을 듣자 의친왕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삼족오군을 마치 타국 사람같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뭐라고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건…….”
머뭇거리는 의친왕에게 박충식은 싸늘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들은 의친왕께서도 이런데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우리 삼족오군이 스스로 한민족이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대한제국 사람들은 우리를 자신들과 전혀 다른 이방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써 일본을 물리친다고 해도 이방인인 우리는 대한제국과 결코 융합되지 못하는 물과 기름의 존재가 되지 않겠습니까?”
“…….”
“지금 우리와 대한제국이 처한 상황이 바로 전하께서 말씀하신 ‘도와 줄 거냐?’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힘을 합쳐 일본을 물리치고 싶은데 그건 같은 민족으로서가 아닌 힘을 가진 또 다른 외세로서의 도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박충식의 질책성 물음에 의친왕은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생긴 삼족오군이 보유한 무력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과 대한제국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삼족오군에 대한 배타심이 자신도 모르게 말 한마디 속에 함축되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도 한심스러웠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의친왕은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먼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들어나는 의친왕을 보며 박충식의 마음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친왕의 말 한마디에서 삼족오군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가 그대로 나왔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에 잠시 말을 거두었던 박충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대한제국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나 지도자들 대부분은 나라가 망한다고 해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일본에 허리 한번만 숙이면 모든 권력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본도 그들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국가관도 전혀 없이 개인과 집안의 영달만을 위해 일본에 충성하려는 그런 자들을 앞세워 대한제국을 장악하는 것이 더없이 편하고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지금 대한제국에서는 무수히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서슴없는 매국 행위는 이전 역사에서도 자행되었던 것으로 대부분의 대한제국 정치인들과 지도자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
역시나 사실 그대로의 설명이었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의친왕에게 박충식이 질문했다.
“그러한 지도자들 중 가장 문제가 많았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대한제국 황족들입니다.”
의친왕은 깜짝 놀랐다.
“예? 황족들이요?”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황족들입니다.”
의친왕이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적인 힘이 없어 나서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황족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마십시오.”
의친왕의 반발에 박충식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길게 볼 것도 없이 지금의 상황을 둘러보십시오. 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는 지금 황제를 제외하고 황족들 중 누구 한 사람 나서서 일본에 맞서서 난국을 헤쳐 나가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의친왕이 다시 반발을 하려고 하자 박충식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지금 대한제국 황족들 중 의친왕 전하를 제외하고 누구 일본에 맞서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히려 일본의 농간에 휘둘리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고개 숙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전 시대 역사도 이렇게 흐르다 나라가 망해도 황족들 중 누구 한 사람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개인의 영달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안위나 나라의 굴욕을 도외시하며 친일파로 변신하여 일본이 내려 주는 금전과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한 사람들이 바로 황족들입니다.”
의친왕은 반발을 하려했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에 창피하고 부끄러워 더 이상 반발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일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말해 지금 일부황족들이 하고 있는 친일적인 처신은 신랄한 비판을 들어도 마땅히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대한제국 황족 중 일제에 대항하고 있는 사람을 솔직히 찾을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처음의 반발과는 달리 박충식의 통렬한 질책에 의친왕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회의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그렇게 무거운 정적만이 감도는 회의실에서 입을 먼저 연 사람은 의친왕이었다. 의친왕은 결심에 찬 어조로 물었다.
“과인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과인이 어떻게 해야 여러분들이 대한제국 아니 우리 민족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겠습니까?”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라를 구하자는 말입니다. 만일 필요하시다면 과인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을 것이고 친왕의 작위도 버리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려는 듯 의친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충식이 서둘러 그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됐습니다. 그런 각오만 있으시면 됩니다. 부디 앞으로도 지금의 그 마음 바뀌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과인은 오늘 사령관께 드린 말씀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과인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내려놓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의친왕은 그러면서 박충식에게 고개까지 숙였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의친왕의 결의에 찬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바뀌면서 모든 사람들은 한 고비를 넘겼다는 표정들이었다. 박충식이 다시 한 번 더 다짐을 받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전하의 용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동안 과인이 일본에 대해 너무나도 안온하게 대처했습니다. 단지 일본의 힘이 너무 강하다는 핑계로 과인 스스로가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무기력하게 일본에 끌려다녔던 것을 생각하니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바로 잡으면 됩니다. 우리 삼족오군은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전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의친왕의 눈에 눈물을 샘솟듯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지신명께서 우리 민족을 굽어 살피셔서 여러분을 이곳에 보냈나 봅니다.”
주르르.
의친왕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저 박충식의 두 손을 잡고 흔들고만 있었다. 박충식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의친왕을 보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회의실에 있던 지휘관들도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거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기 급급했다.
이날 회의실은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친왕의 다짐을 확인한 덕분인지 아주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