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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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견대대장 다나까 대위는 일본제국 육군 장교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진 자였다. 오늘도 다나까는 솔선수범한다며 부하들을 제치고 직접 망루에 올라서 쌍안경을 이용하여 끝없이 펼쳐져 있는 남쪽 바다를 관측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같이 관측을 하고 있던 미야모토 군조(일본군 중사)가 뭔가를 발견한 듯 소리쳤다.

“대장님 서귀포 쪽을 보십시오. 하늘에 이상한 것이 떠 있습니다.”

하지만 다나까 대위는 느긋했다.

“미야모토 군조! 뭐 때문에 그리 호들갑인가. 우리가 살필 곳은 바다야, 바다. 하늘에 떠 있는 게 새밖에 뭐가 더 있다고 이리 호들갑인가?”

“그게 아닙니다. 이상합니다.”

다른 때와 달리 호들갑을 멈추지 않는 미야모토의 행동에 하늘에 있으면 뭐가 있겠나하며 몸을 돌린 다나까는 자신들을 향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회전날틀 편대를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도대체 저게 뭐지?”

그때 회전날틀에서도 망루의 움직임이 관측되었다.

부기장 정성용 준위가 그 모습을 알아보았다.

“기장님, 저놈들이 우리를 발견했나 봅니다.”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는 이기만 소좌는 정성용 준위의 보고에 서슴없이 공격을 지시했다.

“그렇군. 일단 망루에 한 방 먹이고 시작하자.”

지시를 받은 정성용도 두말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기관포를 사용하겠습니다.”

정성용은 작전 때 되도록 당분간 재보급이 어려우니 미사일을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을 지키며 침착하게 망루를 향해 기관포를 조준했다. 그러다 망루가 잡히자 서슴없이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두르르륵.

다나까 대위가 생전 처음 보는 회전날틀을 보고 넋을 놓고 있을 때 시작된 기관총 사격에 순간적으로 온몸이 그대로 찢겨져 나갔다.

퍼버벅…….

수리온에 장착된 기관포가 발포하자 망루에 있는 다나까 대위와 미야모토 군조를 비롯한 일본군 관측병은 손쓸 틈도 없이 그대로 몸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피가 튀겼고 그와 동시에 나무로 만든 망루도 걸레가 되어 버렸다.

이기만 기장은 처음으로 사람에게 직접 사격을 지시했지만 이상하게 흥분되지도 않고 냉정함 또한 잃지 않았다.

곧이어 일본군 주둔지 상공에 도착했다.

“작전상공 도착, 편대는 모셔 온 손님을 내려라.”

“부대, 하강 준비.”

이기문의 지시가 있자 4대의 회전날틀 문이 활짝 개방되었고 곧이어 하강 밧줄이 내걸렸다. 

이미 기관포로 망루를 산산조각 낸 것을 알고 있던 특수부대원들은 모두들 긴장했다. 프로펠러 소리가 시끄러운 탓에 민정수 대위가 헤드셋으로 소리쳤다.

“하강과 동시에 별도의 지시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한다. 부대 하강.”

명령이 떨어지자 조장들이 먼저 하강을 시작했다.

조장들의 하강과 동시에 회전날틀의 기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두르르륵!

“으악!”

“적이다!”

최초 공격에 지휘관을 잃은 일본군 분견 대원 쉰 명은 갑자기 당한 공격에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총도 꺼내 보지도 못하고 쏟아져 내려오는 기관포 총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다.

타탕! 탕! 타탕! 탕!

조장들이 지상에 착지하면서 그 뒤를 이어 밧줄을 타고 내려온 대원들은 재량껏 반자동 사격을 실시했다.

그렇게 서른 명의 대원이 모슬봉 일본군 분견대를 장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분견대를 장악한 민정수는 1조 대원들에게 열 명의 포로들로 하여금 사상자를 수습하도록 지시고는 나머지 대원들에게 주둔지를 수색시켰다. 

수색결과 남아 있는 일본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민정수 대위는 곧바로 본대에 보고했다.

“작전 완료, 모슬봉을 완전 점령했습니다.”

“수고했다. 현지 대기하라.”

“알겠습니다.”

“일본군 사상자를 한 곳으로 수습하라.”

지시를 받은 대원들은 포로들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렇게 모슬봉 분견대를 접수하는 동안 또 다른 편대는 제주 관아의 진위대대가 주둔해 있는 제주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한반도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기 시작한 일본은 러일전쟁이 승리로 기울었다는 판단이 들자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대한제국군을 강제로 축소했다.

한국군 감축 계획은 제주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본래 제주목에는 대대 병력인 1,000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고 아직은 대대장인 참령(參領, 소령)이 지휘를 하고 있으나 감축 계획에 따라 겨우 200명의 병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병력 감축을 하는 데에도 일본은 간교한 술책을 자행했다. 그것은 병력 유지 비용이 적게 드는 병졸들을 먼저 줄이도록 조치하는 바람에 비록 병력이 줄었다는 하나 대한제국 재정財政에는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더구나 하사관과 장교들을 그대로 근무하게 하면서 군 지식이 많은 간부 출신들이 의병과 같은 자신들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중 효과도 보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1,000명의 병력을 지휘하던 제주 진위대 대장인 참령 양근모는 일본군의 농간에 800명의 병졸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손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병력이 감축되고 난 후부터 양근모는 영주협당(瀛州協堂, 제주 관아에 있는 군관들의 근무처)에서 두문불출하고 거의 매일 술로 울분을 달래고 있었다. 이날도 점심 때부터 시작된 술은 언제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대대부관이 양근모 혼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영주협당으로 뛰어들어 왔다.

“영감(참령의 품계가 정3품이라 대한제국은 아직도 영감이란 존칭을 쓰고 있다), 영감, 큰일 났습니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양근모는 술잔을 손에서 놓지도 않고 부관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인가. 일본 놈들이 이제는 우리까지 그만두라고 하던가?”

“그게 아니고 하늘에 이상한 것이 떠 있습니다. 빨리 연병장으로 나가 보십시오.”

“크으~.”

탁, 쪼르르~.

양근모는 부관의 호들갑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들고 있던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다시 술을 따르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 허! 땅에서도 일본 놈들의 농간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휘하 병력까지 잃어버린 힘없는 지휘관이 무슨 힘이 있다고 하늘을 방어한다는 말이냐.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물러가라.”

양근모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술을 들이켜려 할 때였다. 

타! 타! 타! 타! 타!

갑자기 들려오는 회전날틀 소리에 양근모가 놀라서 부관에게 물었다.

“응? 이게 무슨 소린가?”

“소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부관도 처음 듣는 소리에 모른다고 하자 양근모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옆에 놓인 모자를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보자. 내가 그래도 아직까지는 제주 진위대장 아니냐. 아무리 힘이 없다고 해도 밖이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지.”

아까부터 속이 타들어 가는 부관은 그런 양근모를 부축하고는 문을 나섰다. 양근모는 하늘에 떠 있는 수리온 회전날틀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니? 저게 뭔가?”

하지만 그가 어떠한 대응을 하기도 전에 사단이 나 버렸다. 그가 서 있는 곳에 회전날틀에서 최루탄이 쏘아져서 터진 것이다.

슈~~욱 펑! 

“우욱.”

“으악! 이게 뭐야! 콜록 콜록.”

“아이고 메워라. 콜록 콜록.”

양근모는 처음 맡아 보는 최루가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양근모뿐이 아니었다. 하늘에 떠 있던 회전날틀이 제주 진위대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쏘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슈~~욱 펑, 펑, 펑, 펑.

제주 진위대대 주둔지에 일순간 아비규환이 연출되었다.

하늘에서 다가오는 회전날틀을 보느라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한 진위대대원들은 이전시대 어느 나라 최루탄보다도 강력한(동남아의 어느 나라는 최루탄의 독한 최루가스에 자국민이 죽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최루탄이 터지자 진위대대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물콧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우욱, 콜록 콜록.”

“우 웩”

“으악! 숨 막혀~~~!”

대대장인 양근모를 비롯해 진위대대원들이 연병장 바닥을 뒹굴며 눈물 콧물을 쏟고 정신을 못 차릴 때 그들 위로 방독면을 착용한 특수부대원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회전날틀에서 하강한 대원들은 진위대대원들이 반항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퍽! 퍽! 

“으악!”

“악!”

대원들은 최대한 빨리 작전을 끝내야 하므로 조금은 가혹할 정도로 진위대대원들을 제압해 나갔다. 

이렇게 특수부대원들이 진위대대를 제압하고 있을 때 회전날틀에서 하강한 부대원 중 황윤식 중위는 열 명의 조원들을 이끌고 제주 시내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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