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회: 1권-24화 -->
무관이 되기 위해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하고 나서 처음 들었던 말이 대한제국 군대는 황제를 위해 존재하고 황제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지금 의친왕은 나라를 위한 군대가 되라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나라와 황제를 동일하게 인식하던 양근모에게 황제와 나라를 따로 놓고 말하는 의친왕의 말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양 참령.”
“예, 전하.”
“지금은 과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지금부터 새로운 훈련을 받고 나면 정확히 알게 될 것이오. 그러니 일단 과인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강명철 소장이 양근모에게 물었다.
“이번에 해산된 병력은 모두 제주에 있는 것이오?”
“다시 복귀하라는 명이 떨어질지 몰라 대부분 제주에 있으라고 지시해 두었소이다.”
“모두 불러들일 수 있소?”
그 물음에 양근모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의친왕을 바라봤다. 양근모의 시선을 받은 의친왕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모두 불러들이도록 하시오.”
“예, 전하.”
“그리고 이분들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우리 대한제국을 위해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오. 그러니 앞으로는 무조건 이분들의 말씀에 따라야 할 것이오. 알겠소?”
양근모는 처음 보는 사람들을 따르라는 말에 내심 완전 수긍은 하지 못했지만 황제와도 같은 친왕이 지시하는 일이었기에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차준혁은 양근모가 어쩔 수없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며 삼족오군이 대한제국에 정착을 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의친왕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제주도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제주를 장악한 삼족오군은 가장 먼저 관아 관속들을 통해 제주도 행정 확인을 먼저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국유 재산 조사와 일본인 재산 현황이었다. 일본인 재산 현황 조사는 이틀에 걸쳐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박충식은 차준혁이 보고한 내용을 확인하면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이렇게나 많다니 참으로 놀랍군.”
“제주도가 조선 시대 내내 실시한 출륙금지령으로 본토보다 경제 발전이 아주 늦게 진행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인구가 10만이 넘는 제주도 주민이 가진 것보다 3,000명도 안 되는 일본인들이 가진 재산이 어떻게 거의 열 배나 많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야.”
“제주 주민들의 경제관념이 없기 때문에 악덕한 일본 상인들의 농간에 놀아나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조사를 하면서 살펴보니 일본 상인들이 제주도에 들어온 것이 벌써 20년이 넘은 1880년대 초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제주 경제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재산을 만들었다니 참으로 독한 놈들이로군. 일단 하나도 남김없이 몰수해서 상가같이 제주 주민들에게 불하할 수 있는 것은 불하해 주도록 하고 나머지는 전부 국유화하도록 조치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일본 상인들이 보유한 증기선도 있다면서?”
그러자 옆에 있던 비서실장 이현호 소좌가 박충식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렇습니다. 군산에 있는 마루야마丸山 상회 소속 500톤 급 증기선이 제주항에 정박해 있는 것을 압류해 두었습니다.”
“흠! 500톤이라니 꽤나 큰 상선이로군.”
“군산 인근에서 생산되는 건어물과 양곡 그리고 제주도에서 나는 해산물을 일본 본토로 실어 나르던 상선이라고 합니다.”
“500톤이나 되는 배가 이곳에 올 정도라면 이놈들이 엄청나게 훑어갔겠군. 어쨌든 잘 되었어.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다른 증기선은 없는가?”
“없습니다. 그 이외에는 목선들이 전부입니다.”
“지금부터 한 달간은 어선이라고 해도 함부로 바다에 나가지 못하도록 단속을 잘해야 해.”
“아예 그 기간 동안 출어를 금지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바다에 생계를 걸고 있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입출항 단속만 철저히 해도 충분할 거야.”
그러자 차준혁이 나섰다.
“그래도 육지와 연결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의친왕께 말씀을 드려 주민들에게 공표할 포고문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사령관님, 그거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육지와 접촉하지 말라고 단속을 하는 것보다 의친왕의 교지 한 장이 더 위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바다에 나가 있을 때 제주로 들어오는 배를 발견해 신고하면 포상을 하겠다고 하면 주민들도 적극 호응해 올 것입니다.”
이현호까지 거들자 박충식이 바로 동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 제주 주민들에게는 우리가 가진 힘보다 의친왕의 말 한마디가 더 영향력이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소형 목선들은 레이더에도 감지가 잘되지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어민들을 활용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배를 감시할 수만 있다면 일거양득이 될 수도 있겠군. 의친왕께는 내가 말씀드리겠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듣고 있던 차준혁이 나섰다.
“사령관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제가 상해를 다녀오도록 해 주십시오.”
“응? 상해를?”
“그렇습니다.”
“갑자기 상해는 무슨 일로 다녀오려고 하는가?”
“우리가 본토 진출에 성공을 한다면 부국강병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대한제국이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곧바로 투입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마침 증기선도 있고 하니 그 배를 이용하여 상해로 가서 서양 세력과 접촉을 하였으면 합니다.”
“서양과 접촉을 한다고?”
“그렇습니다.”
“그들과 접촉을 하려면 통역을 써야 하는데 상해에 한국말을 하는 통역관이 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제가 영어는 충분히 대화할 정도가 됩니다.”
“그곳에 가면 당연히 일본과도 접촉을 해야 하는데 일본어는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제주 주민 중 일본어를 하는 사람을 찾아 통역관으로 대동하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없겠네만.”
설명을 듣고도 걱정하는 박충식에게 차준혁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상해에는 서양 각국의 조계지가 있고 각국의 영사관도 있습니다. 그들과 접촉하여 경제 개발에 필요한 기자재와 공작기계들을 수입해 온다면 경제 발전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국과 미국은 지금 일본의 손을 들어 주고 있는데 그들과의 접촉이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상해에는 일본의 조계지도 있는데 그들이 방해를 하지 않을까?”
“지금이야 당장은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일본은 몰아낸다면 그들도 무한정 일본의 뒤를 봐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은 지금 대한제국이 자신들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전함이나 총기류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면 별다른 방해는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저는 영국과 미국보다는 독일 측과 접촉을 먼저 할 계획입니다.”
“독일을?”
“그렇습니다. 독일은 영국과 미국과는 달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지금 독일의 기술이 상당히 발전해 있다고 하니 독일의 우수한 공작 기계와 제철 기술을 도입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이현호가 나섰다.
“차 비서의 제안이 아주 좋습니다. 가능하면 승낙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실장도 동의를 하니 자네 문제를 오후에 있는 지휘관 회의 때 안건으로 상정하겠네. 그런데 어떻게 상해로 들어가려고 하는가?”
“제가 의친왕으로 분장을 해서 들어가려고 생각합니다.”
“자네가 의친왕으로 분장을 해?”
“네, 그렇습니다.”
의외의 제안에 박충식이 새삼스럽게 차준혁을 바라보자 의외로 의친왕과 닮은 구석이 많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의친왕과 참으로 많이 닮았었구나. 안경만 쓰면 키가 큰 것을 제외하면 의친왕 측근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겠어.”
이현호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맞습니다. 제가 봐도 차 비서 인상이 의외로 의친왕과 비슷합니다.”
두 사람의 말에 차준혁이 자신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