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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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의친왕을 직접 보고 저와 많이 닮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친왕으로 분장을 해서 상해로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화질이 아주 선명하지가 않아 제가 약간의 분장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거의 구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상해에는 지금 의친왕을 정확히 알아볼 한국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어차피 대한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외국에서 많은 것들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서서 그 일을 전담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의친왕으로 분장해서 외국과 접촉을 한다면 협상의 무게감을 더할 수도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충식도 차준혁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서인지 바로 동조해 주었다.

“알겠네. 내 의친왕께 포고문과 함께 자네의 의견도 함께 말씀드려 보겠네.”

“감사합니다.”

이날 오후 지휘관 회의에서 차준혁의 제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후 박충식은 의친왕과 면담을 가졌고 이 면담에서 포고문을 비롯한 차준혁의 제안은 두말없이 승인되었다.

의친왕의 포고문은 박충식의 면담과 동시에 시행되어 제주의 작은 포구까지 포고문이 내 걸렸다.

의친왕은 차준혁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었다. 더구나 한성을 떠나올 때 입을 옷을 많이 가져왔었기에 차준혁의 분장을 위해 빌려 줄 옷도 충분했다.

이틀 후 제주 관아의 정청인 연희각延曦閣에서는 차준혁이 삼족오군 지휘부와 의친왕을 앞에 두고 패션쇼를 하듯 의친왕의 제복을 이것저것 입어 보고 있었다. 의친왕은 그동안 삼족오군의 신지식을 배우기 위해 마라도함에서 두문불출하다가 자신의 옷을 입은 차준혁의 모습을 보기위해 특별히 제주 관아를 찾은 것이다.

의친왕이 자신의 옷을 입은 차준혁에게 물었다.

“어떤가, 옷이 몸에는 맞는가?”

키가 큰 차준혁에게 의친왕의 옷을 맞추기 위해 제주에서 유일하게 양복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양복 기술자를 차출해 지난 이틀간 몇 벌의 의복을 손보게 했다. 일본인 기술자의 솜씨가 제법이어선지 감쪽같이 수선된 대한제국 육군 부장(副將, 지금의 중장 계급)복을 입은 차준혁이 이곳저곳 둘러보며 대답했다.

“아주 잘 맞습니다.”

그러면서 동그란 모양의 안경까지 쓰자 의친왕이 그 모습에 감탄했다.

“아! 그렇게 입고 안경까지 쓰니 정말 과인과 흡사하구나.”

차준혁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전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의친왕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을 보고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의친왕이 차준혁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박충식을 보고 질문했다.

“그건 그렇고 사령관님께 여쭐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외국에서 신문물을 도입해 오려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텐데 자금 조달 계획은 세워 두셨습니까?”

박충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일단 서양과 접촉하고 난 후 자금 계획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삼족오군이 본토에 진군하고 나면 부황께 자금문제를 말씀 드려보십시오. 아마 자금 운용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황제께서 그 많은 자금을 준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정도는 조달이 가능하실 것입니다.”

박충식이 의친왕의 말이 맞는가 하는 표정으로 이현호를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이현호가 바로 대답했다.

“전하의 말씀이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황제께서는 지금 내장원(왕실 재산을 관장하던 내수사의 후신)을 통해 광산 허가권과 홍삼 전매권 등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 동원이 가능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는 삼족오군 총참모장이 된 송의식 소장이 나섰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내장원경(卿, 내장원의 책임자)인 이용익을 통해 막대한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리하는 자금이 얼마나 되기에 막대하다는 말을 쓰는 건가?”

그러자 송의식이 가지고 있는 서류를 잠시 찾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저희들이 밝혀낸 것만 해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은행에 50만 원과 상해 게젤샤프트(덕화) 은행에 100만 마르크 그리고 일본 제일은행 경성 출장소에 33만 원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많은 자산은 황금과 홍삼입니다.”

“황금과 홍삼?”

“그렇습니다. 역사에서 보면 황제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퇴위되자 나라를 되찾기 위해 민영익에게 홍삼 1만 근을 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용익에게 12개 항아리의 황금 85만 냥을 관리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송 참모장의 설명에 놀란 것은 의친왕이었다.

“홍삼 1만 근과 황금 85만 냥이요?” 

“그렇습니다.”

그러자 의친왕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부황께서 비자금을 그렇게나 많이 운용하고 계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이니 분명할 것이고 오히려 들어나지 않은 자금은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단하군요. 과인도 부황께서 많은 비자금을 운용하고 계시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계실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의친왕의 감탄에 박충식이 물었다.

“두 물건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이전시대 자산 가치로 대략 2조 원 정도 됩니다.”

“하~ 이거 상당하구나.”

그때 가만히 있던 차준혁이 나섰다.

“황제 폐하의 비자금도 좋지만 그것보다 러시아 함대를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충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러시아 함대를 어떻게 이용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송의식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짝!

“맞다. 돈스코이의 보물.”

박충식이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돈스코이의 보물이라니?”

차준혁이 설명했다.

“지금 올라오고 있는 러시아 함대에는 극동 함대를 재건하고 러시아 극동군을 재편하기 위한 막대한 자금도 함께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제야 박충식도 기억을 해 내었다.

“아! 그렇지 울릉도 보물선.”

“그렇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돈스코이호에는 금괴와 금화를 200톤이 넘게 실려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200톤이면 얼마나 되는 거야?”

이현호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한 돈에 20만 원으로 계산해도 10조가 넘는 금액입니다.”

박충식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됐어. 그렇지 않아도 자금 때문에 걱정을 했었는데 그 정도면 일단 숨통은 트이겠어. 우리 해적질 한번 해 보지 뭐. 나라를 위하는 일인데 뭔들 못 하겠어. 그렇지 않은가?”

박충식이 이렇게 말하며 모자를 비껴쓰자 참석자들이 파안대소했다.

“하! 하! 하!”

의친왕은 박충식 등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삼족오군이 참으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빨리 회의를 마치고 마라도함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 이제 차 비서, 출발해야지? 참모장, 차 비서와 동행할 사람들은 떠날 준비되어 있는가?”

“밖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가지.”

“박충식을 선두로 모든 사람들이 연희각延曦閣을 나서자 연희각 앞마당에는 네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하는 사람들은 삼족오군에서는 일본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본어 통역관으로 선발된 제주 주민 한 명과 특수부대원들 중에서 선발된 세 명의 경호팀으로 모두 대한제국 군복을 입고 있었다. 

참모장 송의식이 동행하는 제주 주민을 소개했다.

“이분은 제주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고진석 사장으로 이번에 의친왕 전하의 통역관으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박충식은 대한제국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민간인 행색이 역력한 고진석을 보고 크게 반가워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 그렇습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진석은 내심 크게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제주를 일본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준 부대의 최고 지휘관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라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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