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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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십시오. 최대한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과인이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인데, 먼저 귀국에 파견하는 기술 연수생들의 숫자를 두 배로 늘려 주십시오. 물론 그에 따르는 비용은 전부 우리 대한제국이 부담하겠습니다.”

“추가되는 연수생은 어떤 기술을 배우고자 하십니까?”

“솔직히 저희는 군사 무기 제작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군사 무기 제작 기술 전수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바대로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 아닙니까? 과인의 생각으로는 일본과의 관계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을 생각됩니다만.”

잠시 생각하던 바이페르트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만일 일본이 강력히 항의를 하면 그 문제는 귀국이 책임지고 풀어 준다는 조건이면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차준혁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우리 대한제국이 전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두 번째 부탁은 무엇입니까?”

“귀국의 우수한 공작 기계를 수입하고 싶습니다.”

“그건 제가 충분히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공작 기계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건설도 필요한데, 같이 도입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제철소 건설에는 발전소 건설이 필수적으로 따라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발전소 건설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귀국의 과학자들을 초빙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 문제는 개인의 일이라 제가 무어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과 접촉하여 그들이 한국으로 가겠다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말리지 않도록 조치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협상이 끝나자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였다. 두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각국을 대표하여 양해 각서(MOU)를 체결하였다. 

이는 구두상 이뤄진 협상을 정식 계약을 맺기 전 문서화하자는 차준혁의 제안에 바이페르트가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뤄졌다.

제철소 건설에 관한 정식 계약은 대한제국 관리가 기술 연수생을 인솔하고 독일을 방문하여 독일 황제를 알현한 후 그 자리에서 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의 농간을 우려하여 이날의 양해 각서 체결은 당분간 비밀을 지키기로 서로 합의하고는 차준혁은 바로 호텔로 돌아와 독일과의 협상 내용을 제주에 보고했다.

차준혁이 이렇게 상해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동안 제주에서도 여러 일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의친왕의 포고문을 앞세워 민심 장악과 함께 행정 장악을 실시했다. 삼족오군은 제주에 당분간 군정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는 제주군정청을 제주 관아에 세우고 행정 현황 파악에 들어갔다. 그러자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항한 지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제도가 생겨났으나 바닥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중 조선 시대 내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던 아전들 문제는 제주라고 해서 비껴나지 않았다. 

박충식은 제주군정청장으로 임명된 김진후 소좌의 보고를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아전과 향반들의 비리가 심한가? 은전(숨겨진 토지)은 물론이고 삼정의 비리에다 방납 비리까지 이건 완전 비리 집합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것을 보면 수차례 민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한제국 행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단 말이잖아.”

미르 부대장 김종석도 침통한 표정으로 거들었다.

“조사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비리가 많이 나온 것을 보면 조사를 완전히 끝내고 나면 문제점이 엄청나겠습니다.”

김진후 청장의 행정 보고 자리에는 의친왕도 참석해 있었다. 

의친왕도 서류를 읽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하! 이건 아예 대놓고 분탕질을 해 먹은 것 아닙니까? 정말 과인이 얼굴을 들지 못하겠군요.”

성격이 곧은 김진후 청장이 바른 말을 했다.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를 보면 아전들은 거의 모두가 주민들 등골을 빼먹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친왕이 얼굴까지 붉히며 물었다. 

“그동안 부임했던 목사나 군수 등 수령들은 행정이 이토록 곪아 터지도록 도대체 뭐 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동안 본토에서 파견되어온 수령들은 이들의 비리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들을 건드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제주의 특성상 이들을 잘못 건드리면 행정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행정은 완전히 마비될 것이고 그것은 곧 수령이 모든 잘못을 고스란히 덤터기 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수령들은 재직 기간 동안 그저 적당히 지역 아전들과 타협을 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과인도 전라도 수령들의 수탈로 백성들이 수시로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전라도에 비교할 바가 아니지 않소이까.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박충식이 군정청장에게 굳은 표정으로 지시했다.

“김 청장.”

“예, 각하.”

“이런 부패한 탐관오리들은 우리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자들이네. 부패에 연루된 자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발본색원하여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하게.”

그러자 의친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모조리 잡아들이면 행정이 마비되어 백성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별적 처벌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김진후 청장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각 관아의 문서는 모두 압수하여 정리를 마쳐 두었습니다. 더구나 저희들은 제주 지리는 물론 특산물 등에 관한 정보 등 제주도의 거의 모든 자료를 전산 자료로 충분히 확보되어 있습니다. 사령관님의 말씀대로 부패 관리를 일소한다고 해도 행정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의친왕도 그제야 김진후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어떻게 조치할 것이오?”

“일단 사령관님 말씀대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전들은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행정 관리는 주민을 위해 성실히 일할 사람들로 주민들 중에서 선발하고 있으니 곧 모든 게 정상화될 것입니다.”

박충식이 김준후에게 물었다.

“아전과 결탁해 주민들을 착취하거나 시류에 영합하여 일본인들과 결탁해 주민들을 수탈하며 호가호위하고 있던 토호들도 상당수 있을 것인데 그들은 어떻게 조치하고 있는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관리들과 다르게 그들은 일반 주민들인데 너무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과오는 오히려 아전들보다 더 문제가 많습니다. 아전들이야 그동안 정부에서 전혀 호구를 마련해 주지 않았으니 살기 위해서 백성들 등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었지만 토호들은 자신들의 부귀영달을 목적으로 백성을 수탈한 자들이라 저는 비리토호들을 아전들보다 더욱 철저히 색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준후의 말은 너무도 단호해 지휘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김진후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희가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비리 척결을 밀어붙인 덕분에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징병제를 준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친왕이 물었다.

“3년 복무로 군역을 완전히 면제시킨다는 징병제를 제주에서 실시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징병제를 하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징병할 수 있는 것이오?”

그 말에는 참모장 송의식이 설명했다.

“지난번에 말씀 드린 대로 제주에서 실시할 징병의 대상자는 19세에서 30세 사이의 남녀입니다. 그중 신체검사를 거쳐 징병을 실시하고 부적격자는 남녀 모두 군수 산업체에서 3년간 대체 복무를 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이번에는 박충식이 물었다.

“참모장 제주의 예상 징집 병력은 얼마나 되겠는가?”

“제주 주민의 5분의 1인 2만 명 정도가 신체검사 대상자가 될 것으로 추정되며 이중 3분의 2 정도가 결혼 등 각종 사유로 인해 대체 복무로 전환될 것을 예상하면 7,000명 정도가 징집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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