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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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연히 나라를 위해 개혁을 해야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며 또 누가 주도하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대한제국은 일본의 노골적인 방해로 비리를 척결하지 못해 부패한 관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들 부패 관리들은 지금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친일파들과 연계하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들을 모조리 몰아내야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엄청난 정국 혼란이 닥칠 것입니다. 바로 이 혼란을 슬기롭게 넘겨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당면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지 못한 충성심 가득한 관리들의 기득권 문제, 최익현 선생 같은 재야인사들을 어떻게 설득하여 개혁에 동참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 또 일반국민들은 또 어떤 방법으로 협심 단결시킬 것인지 하는 문제, 그리고 가장 큰 문제인 삼족오군을 어떻게 하면 대한제국에 연착륙시킬 것인지 하는 것들을 지금 우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유길준의 긴 설명을 들은 의친왕이 물었다.

“그래서 공公께서 입헌군주제를 거론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지식인들 사이에는 공공연하게 공화정을 거론하는 불충한 자들까지도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미국과 같이 공화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같이 사회가 발달하지 않은 혼란의 시기에 공화정을 도입한다면 황실에 불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정치인들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어 결국 공화정은 또 다른 전제 권력을 낳을 뿐입니다.”

박충식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 유길준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바로 삼족오군에서도 우려하고 있던 사안이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모든 권력이 군주에게 집중되는 전제군주제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군주 밑에 나라를 이끌어 갈 내각이 구성되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자는 것이고 그것이 일본을 몰아내고 난 후가 바로 적기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 욕구도 해결할 수 있고 국론도 황제 폐하를 정점으로 쉽게 하나로 모을 수 있어 정국 혼란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길준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한 후련한 표정으로 의친왕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생각지도 않은 아니 의친왕의 의도적인 질문으로 시작된 유길준의 말은 객사에 있는 지사들에게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의친왕의 질문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의친왕은 이미 유길준이 지나온 길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정치 성향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그 자신이 삼족오군을 정국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는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황실을 지켜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의친왕은 유길준이 이미 입헌군주제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이용해 입헌군주제를 수면 위에 부상시킨 것이었다.

유길준도 처음에는 의친왕의 의도를 몰랐지만 말을 하는 도중 의친왕이 왜 자신에게 유도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강력하게 입헌군주제를 주장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남궁억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훈장교가 나서서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지금까지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 알려 주신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만 앞으로야 달라지겠지만 저희도 사람인 이상 이전에 우리들 개개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았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정훈장교의 말은 단호했다.

“죄송하지만 그것은 절대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훈장교의 단호한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나타났다. 그들도 내심 자신들의 이전에 살았던 삶에 대해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훈장교는 단호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오는 바람에 앞으로의 역사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게 됩니다. 아니 처음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전의 여러분의 삶이 어땠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건 무슨 이유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세상이라는 것이 여러분 한 사람만의 삶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전 역사에 없던 우리들이 이곳에 옴으로 인해 여러분의 삶은 벌써부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여러분의 변화는 바로 여러분의 옆 사람의 삶부터 바뀌게 만듭니다. 이렇게 삶이 바뀌는 현상은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되지만 결국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꿔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삼족오군이 오는 순간부터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전에 우리가 살았던 기록들은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또한 다른 사람의 삶의 연속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지금부터 세상은 우리와 여러분들로 인해 이전과 달리 엄청나게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자신의 앞일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더 잘해 보려고 지금과 전혀 다른 방법을 쓰게 된다면 분명 누군가는 반드시 그에 따른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 인과율의 법칙입니다. 지금 내가 바르게 살고자 하는 방법이 꼭 남에게도 나와 똑같이 옳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매국노와 애국자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지향점이 결코 같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앞일을 안다고 해서 물론 똑같이 흐르는 것도 절대 아니겠지만 그로 인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훨씬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희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이전의 삶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함으로 인해 혹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확실한 미래 예측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정훈장교의 말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삼족오군은 앞으로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달라질 여러분의 이전 삶에 연연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꼭 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참석자들은 눈을 빛내며 정훈장교를 바라봤다.

“지금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는 일본이 생명의 위협을 해도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으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민족의 지도자들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여러분들 중에는 총을 들어 목숨으로 일제에 맞서신 분,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평생을 보내신 분, 또 정론직필로 일제에 절대 굽히지 않으신 분, 비타협 항쟁을 하며 국민 계몽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 대대로 내려오던 집안의 모든 가산을 정리하면서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 등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개인의 영달은 뒤로 한 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대 굴하지 않았던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정훈장교는 그러면서 바로 차렷 자세를 했다.

“비록 제가 다른 세상에서 왔지만 같은 민족의 한 사람으로 민족의 영웅들이신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 우국지사님들을 모시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사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50여 명의 지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존경의 뜻으로 거수경례를 올리는 정훈장교를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대한독립 만세!”

한명의 선창이 있자 다른 모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을 하늘로 벌리며 크게 소리쳤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만세!”

…….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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