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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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발트함대가 발견되었다는 전문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가?”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기함인 전함 미카사의 함교에서 정자전법丁字戰法의 최초 입안자로 자신이 가장 총애하고 있는 아키야마 시네유키秋山 莫之 해군 중좌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으로 두 번째 조직된 일본 대본영의 대해령大海令 제1호에 의해 연합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러일전쟁의 분수령이 될 이번 발트함대와의 해전을 위해 몇 개월 전부터 전 함대를 이끌고 한반도 진해만 일대에서 밤을 낮 삼아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다 러시아 함대와의 결전이 임박하자 도고 제독은 함대를 둘로 나눠 진해와 쓰시마 일대에 분산 배치해 놓았다. 

진해만 일대에는 도고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기함 미카사를 비롯한 30여 척의 일본 연합함대의 전함이 해상을 뒤덮고 있었다.

아키야마 중좌가 취합된 정보로 보고했다.

“상해항에서 러시아 함대 석탄 보급선이 석탄 보급을 마치고 출발한 것이 이틀 전이니 이제 곧 꼬리가 잡힐 것입니다.”

5월 14일 베트남 캄란만을 출발한 러시아 함대는 그동안 행적이 묘연해져 있었다. 다급해진 도고 제독은 러시아 함대가 열도를 돌아갔을 것으로 판단하여 대본영에 북해도로 함대를 이동시키겠다는 전문을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대본영에서는 잠시 더 기다리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다행히 북해로 기동하기로 정한 하루 전인 5월 24일, 러시아 함대 석탄 보급선 6척이 상해에 입항한 것이 일본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석탄 보급선이 상해에 입항했다는 것은 본함대가 바로 인근에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 발트함대의 위치를 어느 정도 확인한 도고는 전 함대에 발진 준비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음! 해상 경계 상태는 점검했는가?”

“지난 5월 19일부터 쓰시마 일대는 물론 쓰가루 해협 인근에 70여 척의 경비함정을 투입하여 물샐틈없는 경계에 들어가 있으니 적의 조그만 움직임이라도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도고 제독이 화가 난 듯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쿵!

“제주도의 통신망이 불통이 된 것은 아직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가?”

“대본영에 이미 원인 분석을 해 달라고 몇 차례 전문을 보냈지만 아직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답변만 듣고 있습니다.”

“육군의 정보력이 이렇게 허술한 지 미처 몰랐군. 이렇게 중요한 전투가 목전에 있는데 육군에서 그런 사소한 것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하고 뭐 하는 건가. 이렇게 육군과의 협조가 되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적과 교전을 할 수 있겠어.”

도고가 이렇게 화를 내고 있을 때 그가 승선해 있던 기함 미카사의 함장 이지치 히코지로伊地知彦次郎 해군 대좌가 나섰다.

“각하, 통신이 원활하지 않는 것은 일견 우려할 일이기는 하지만 황국(皇國, 일본인들이 일본을 자칭하는 말)의 명운이 걸린 결전을 앞둔 때입니다. 심기를 편하게 가지십시오.”

그러면서 이지치 대좌가 자세를 바로하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흥분했던 도고 제독은 이지치 대좌의 행동과 말에 저절로 흥분이 가라앉았다.

“내가 잠시 흥분했군. 이지치 함장, 지적해 줘서 고맙네. 하지만 대본영에 이번 전투가 끝나면 수시로 고장 나는 무선통신기기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시정해 달라고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도고 제독은 책상 앞에 펼쳐 놓은 해도로 시선을 돌리며 지시했다.

“아카야마 중좌.”

“예, 각하.”

“전 함대에 통신을 보내 현재 전 함대의 상황 보고를 받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도고 제독의 지시를 받은 아키야마 중좌는 곧바로 몸을 돌려 대기하고 있는 통신장교에게 도고 제독의 지시를 전달했다.

“각하의 지시다. 각 함대 기함에 함대별 상황을 보고하도록 전문을 보내라.”

돈. 쯔쯔. 돈. 쯔쯔…….

모스부호의 특유의 소리를 잠시 듣고 있던 도고 제독은 해도에서 고개를 들어 진해만에 떠 있는 함대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곧 있으면 결전의 시간이다. 아! 이 어려운 때 하츠세와 야시마가 있었다면 전력 증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는가. 그 두 전함의 유고가 정말로 아쉽구나.’

일본은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 열도에서 떠다니는 배란 배는 모조리 징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의 양무함과 광제함까지도 강제로 징발할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력을 기울여 전쟁에 임하고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연합함대의 전력이 그들이 보유한 마지막 해군력이었다. 그랬기에 도고 제독으로서는 여순 해전에서 러시아기뢰에 당해 침몰한 전함인 하츠세와 야시마의 부재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해전에서 전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6척 전함 중 2척의 전함이 손실된 것은 곧 일본 해군전력의 3분의 1이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고 제독의 상황 보고 명령은 연합함대의 분함대 기함으로 곧바로 전송되었다. 명령을 수령한 각 분함대 기함은 다시 또 예하 전함에 도고 제독의 명령을 하달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명령이 하달되자 진해만 주변 바다는 삽시간에 이들이 주고받는 무선 교신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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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합함대 전함들이 주고받는 무선은 연합함대만 수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시대같이 통신 주파수가 나눠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연합함대의 교신은 그대로 러시아 함대에 감지되었다.

러시아 발트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기함 수보로프대공호에서 통신사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각하, 일본 연합함대에서 무선이 갑자기 급증하고 있다는 우랄함의 보고입니다.”

우랄함은 세계 최초의 무선통신함이라 불릴 정도로 마르코니사의 라이선스를 갖고 있던 독일의 무선통신사에서 설계 생산한 이 당시로는 최신예 무선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다.

“적들이 우리를 먼저 발견했다는 것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관이 건의했다. 

“각하, 일본 해군이 무슨 내용으로 교신하는지는 몰라도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서 우랄 함에 지시해 적들이 교신을 못하도록 방해전파를 날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러시아 발트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부관의 건의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좋지 않아.”

부관이 놀라서 반문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해전파를 날리면 오히려 적들에게 우리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꼴이 되지 않겠나. 우리 함대는 적과의 교전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야. 그러니 방해전파를 날려 구태여 적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들의 무전이 적에게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지금부터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전 함대의 무선 교신을 중단하도록 지시하라.”

“알겠습니다.”

부관은 궤변과도 같은 이상한 명령을 내리는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곧바로 대답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이때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는 부관에게 통신 중단 지시를 내리고도 내심으로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9개월에 걸친 항해로 승조원들 피로는 극에 달해 있어서 이 상태로 적과 교전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 우선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해. 망할 영국 놈들, 그놈들이 수에즈운하만 열어 줬다면 우리가 힘들게 아프리카를 돌아서 항해하지 않았을 텐데, 빌어먹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끄는 발트함대는 일본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영국의 계략으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발트함대 소속 전함들이 너무 커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는 영국의 일방적인 통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영국은 협상의 여지도 없이 수에즈운하를 닫는 바람에 러시아 함대는 어쩔 수 없이 아프리카를 완전히 도는 항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발트함대는 38,000킬로를 장장 9개월에 걸쳐 항해해야만 했다.

이 바람에 러시아 발트함대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유능한 승조원 중 상당수가 병이 들어 하선해야 했고 9개월이나 되는 긴 항해로 인해 각 전함은 크고 작은 고장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구나 그동안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한 전함의 밑바닥에는 온갖 해산물들이 들러붙어 있어서 함선의 기동 속도를 대폭 제한시키고 있었다. 

‘이 상태로 교전은 절대 무리야. 제발 적과 교전 없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야 할 텐데 정말 걱정이로군.’

이런 저런 근심에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자신이 이끄는 발트함대가 일본 열도에 가까워지자 지난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었고 함대가 점차 대한해협으로 다가갈수록 온몸의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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