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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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모항으로의 항해를 최우선 임무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한해협과 쓰가루해협(대마도와 일본 본토 사이의 해협), 그리고 라페루즈해협(사할린과 북해도 사이의 해협) 중 가장 빠른 항로인 대한해협 항로를 선택했다.

일본 열도를 크게 돌아 라페루즈해협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항로이기는 했지만 9개월을 항해해 온 발트함대 상황으로 연료 재보급 없이 일본 열도를 돌아가는 것이 상당해 어려웠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한해협 항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대한해협 항로를 선택하면서 당연히 일본과의 교전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해전에서와 같이 함대가 도주하려고만 마음먹는다면 큰 피해 없이 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일본과의 해전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해전에서는 상대 전함이 전투를 피해 도주하려고 회피 기동을 하면 이를 확실히 제압할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보유한 전함이 거의 없었다.

물론 몇 척의 함정 손실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으로서는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력을 재정비한 후 일본 연합함대와 결전을 벌인다면 당장 당하는 몇 척의 손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러시아 함대는 전 함대에 등화관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명령은 거의 대부분 어디선가 꼭 새기 마련이었다. 

1905년 5월 27일 2시 45분, 규슈 서쪽 지점에서 일본 연합함대 소속 지원 순양함 시나노마루信濃丸는 등화관제가 되어 있지 않은 러시아 함대의 병원선 아리욜의 조타 불빛을 발견했다. 

시나노마루는 이 사실을 즉각 상부에 보고하고는 은밀히 병원선 아리욜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난 4시 45분, 마침내 시나노마루는 러시아 발트함대의 모습을 발견한다.

함대를 발견한 시나노마루는 지체하지 않고 무전을 타전했다.

“적함 발견 203지점 0445.”

무전을 타전한 지원 순양함 시나노마루는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는 정규 순양함 이즈미와 임무 교대를 하고는 본대로 귀대하기 위해 자리를 이탈한다. 

시나노마루의 무전은 거문도에 있는 무선통신 분견대를 거쳐 진해만의 연합함대에 즉각 보고된다.

연합함대 전부는 이미 2시 45분에 병원선 아리욜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대기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따닥, 따닥, 딱, 딱…….

기함 미카사의 통신장교가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하는 무선 통신기에서 토해 내는 전문이 찍힌 띠를 황급히 집어 들고는 큰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적함 발견. 203지점 0445!” 

통신장교가 소리치자 함교는 순간 긴장해졌다.

“적함 발견. 203지점 0445!” 

다시 한 번 통신장교의 외침이 있자 모두의 시선이 도고 제독에게 몰렸다. 

도고 제독은 시계를 한번 들여다보고는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드디어 러시아 함대가 발견됐다. 지금 시간 05시 05분. 전 연합함대는 즉시 출전하라.”

애앵~~~~~~.

도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사이렌이 울려 퍼지면서 함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호수는 점등신호를 각 전함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연합함대는 러시아 함대의 병원선이 발견되자마자 적에게 함대 기동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신 체계를 무선 교신에서 깃발과 점등 점멸 신호로 바꿔놓았다.

기함의 점멸 신호와 함께 사이렌 소리를 들은 각 전함들은 자신들도 똑같이 사이렌을 울리며 다른 전함에게 점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속 전함 전부가 출전 신호를 접수했다는 보고를 점멸 신호로 되받은 기함 미카사는 15,000톤이나 나가는 육중한 몸으로 바다를 가르며 서서히 기동하기 시작했다. 미카사의 기동을 시작으로 진해만에 머물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의 나머지 함정들도 차례로 진해만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연합함대의 움직임은 바닷속에서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삼족오군 잠수함에 바로 포착됐다. 

“저놈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잠함 강이식의 함장 강병익은 며칠 전부터 감시하고 있던 연합함대가 드디어 기동하기 시작하자 부함장 전이성 소좌에게 지시했다.

“전이성 소좌, 연합함대가 지금 시각 기동을 시작했다고 둥지에 보고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함장님.”

강이식함의 연합함대 기동 보고는 곧바로 마라도함에 접수되었다. 

“드디어 이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군.”

삼족오군 대양 함대도 동해 해전의 개전 날짜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남해 원양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박충식은 마라도에 마련되어 있는 상황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박충식이 머물고 있는 상황실은 한 면 가득 한반도 일대의 해도가 걸려 있었고 또 다른 한 면에는 10여 개의 화면이 각 함정과 송골매 등에서 보내오는 영상을 상영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박충식이 연합함대의 기동을 보고하는 송의식 참모장에게 질문했다.

“참모장, 러시아 함대는 지금 어디까지 올라와 있는가?”

박충식의 질문에 확실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참모장 송의식이 함교로 교신한 후 해도에 러시아 함대의 위치를 자석으로 만든 표식으로 표시했다. 해도에는 진해만을 출발한 연합함대 위치가 이미 표시되어 있었다. 

“규슈 서쪽 200킬로 지점에서 시속 10노트의 속도로 북상 중에 있습니다.”

박충식이 해도를 보고 거리를 계산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두 함대의 기동 속도로 봐서는 역사에 나온 대로 오늘 오후 대마도 인근에서 최초의 전투가 시작되겠군.”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우리 대양 함대도 1차 대기 지점으로 출항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송의식이 무전기를 들었다.

“전 함대 1차 대기 지점으로 출전한다. 공군은 지금 바로 송골매를 띄우도록 하라.”

출전 지시를 받은 대양 함대는 격전이 벌어질 대마도를 향해 순항을 시작했다.

대양 함대 소속 전함 중 2척은 이미 울릉도 인근 해상으로 올라가 대기하고 있었기에 남해 원양을 출발한 전함은 모두 8척이었다. 

함대가 출발하자 바닷속에 있던 잠수함들도 기동을 시작했다. 고선지함의 함장인 김필규 대좌는 이 시대로 오면서 대좌로 승진한 것은 물론 7척의 잠수함을 지휘하는 잠수함 전대장이 되었다.

그는 일본군에게 잠수함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것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 중에 있었다. 

이전 시대와는 달리 통신 보안의 걱정이 없던 터라 김필규는 주저 없이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고선지함이다. 1번함 윤민호 함장 나와라.”

그러자 곧바로 답신이 날아들었다.

“윤민호 중좌입네다. 말씀하시라요, 전대장님.”

윤민호 중좌는 북한산 잠수함의 1번함 함장으로 아직도 강한 사투리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일본 잠수함이 너무 작아서 우리 어뢰가 아깝지 않을까?”

“기러티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걱정입네다. 우리가 보유한 어뢰가 얼마 되지 않은데 200톤이 겨우 넘는 놈들에게 사용하기가 너무 아깝기는 합네다.”

“그럼 해상 함정에게 폭뢰를 사용하라고 할까?”

“그건 아니됩네다. 최초의 잠수함 간 전투인데 해상 함정에게 양보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습네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뢰가 어디 한두 푼 해야지. 더구나 어뢰를 재보급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고 말이야.”

“그래도 아니됩네다. 정 아까우면 내래 기냥 디리박갔습네다.”

“그냥 들이박는다고?”

“예, 전대장님.”

“허 참, 아무리 소나도 없는 장님 잠수함이라고 해도 그래도 장갑 능력은 상당할 거야. 자칫 자네 함정에 손상이라도 간다면 그건 더 큰일이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게.”

윤민호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기는 합네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적을 어떻게 상대할지 좀 더 연구해 보도록 하세.”

“알갔습네다.”

무선을 끈 김필규 대좌는 윤민호와의 교신이 오히려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좀 쉬어야겠다. 부함장은 함의 지휘권을 인수하라.”

“지금 이 시간부로 본 함의 지휘권을 인계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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