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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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식은 날이 서서히 밝아 오자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바다가 무척 험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일기가 별로 좋지 않아. 해상에 안개도 끼어 있고 파도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어.”

같이 밖을 내다보고 있던 송의식이 동조했다.

“이러니 도고 제독이 준비해 두었던 기뢰 작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기뢰 작전을 포기했어도 러시아 함대와 정면으로 대결해서 완전 격멸했으니 도고 제독이 대단한 건 인정해 줘야 해.”

“그렇기는 합니다만 도고 제독의 기동전술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습니다.”

“모든 작전은 다 때와 장소 그리고 지휘관의 지휘 능력에 따라 빛을 발하는 법이야. 더구나 아무리 좋은 전술 전략으로 적을 상대한다고 해도 천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역사에 남을 해전을 승리로 만들 수는 없어.”

“사령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도 지휘관의 판단 착오로 인해 전황戰況이 순식간에 바뀌는 전투戰鬪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렇지. 전투는 무기도 좋아야 하지만 지휘관의 지휘 능력이 결정적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 왕왕 생기지. 거기에 이 시대 해군의 경우 천운까지 따라 주어야 해. 그렇기 때문에 도고 제독이 대단한 지휘관이란 거야.”

송의식이 크게 동감을 표시했다.

“맞습니다. 천변만화하는 해상 날씨를 제대로 된 기상관측이나 적을 탐지할 레이더도 없는 상태에서 수십 척의 적과 정면 대결로 격멸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전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도고 제독을 칭찬하며 높여 주었지만 박충식의 말과 행동에는 여유가 넘쳐났다.

“자~! 우리는 실전은 처음이지만 앞으로 기대해 보자고. 러시아와 일본 두 함대가 과연 어떻게 싸우는지 말이야.”

“저도 기대가 됩니다.”

“하하! 그렇지?”

박충식의 자신만만한 웃음에 송의식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본 연합함대와 러시아 발트함대는 물론이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삼족오군 대양 함대 등 세 함대는 결전이 예상되는 대마도 인근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한 7시 무렵 드디어 러시아 함대도 일본 연함함대를 발견했다.

“적선이다!”

기함 수보로프대공호의 견시수가 소리쳤다.

“어디냐?”

“좌측 정면입니다.”

수보로프대공호의 갑판장인 페르포프 해군 중령은 견시수가 가리키는 곳을 망원경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망원경에 마스트에 일장기가 내걸린 순양함 1척이 들어왔다. 

페르포프 중령은 망원경을 내리고 함교로 급하게 달려갔다.

“제독 각하, 적선이 관측되었습니다.”

“어딘가?”

“기함 좌측 정면 해상입니다.”

로제스트벤스키가 함교를 나와 망원경을 들었다. 

“흠! 1척이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부관이 망원경을 들여다본 채 설명했다.

“순양함이고 함명은 이즈모出雲입니다.”

“이즈모라고?”

“그렇습니다. 구름을 가른다는 뜻입니다. 지금 적선이 우리 함대와 동일한 속도로 항진 하는 것을 보니 분명 연합함대의 감시선이 틀림없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도 망원경으로 이즈모를 관측하며 부관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군.”

“공격 명령을 하달할까요?”

“순양함 1척 잡아 봐야 뭐하겠나.”

“그럼 자진 후퇴라도 하게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부관의 이 말마저도 듣지 않고 망원경을 거두며 함교로 들어갔다.

“그냥 두게. 그것보다 우리 함대의 함대 대열을 재편해야겠네.”

부관은 이상하게 순양함 이즈모를 무시하는 제독이 못마땅했으나 어디까지나 자신은 부관에 지나지 않았고 제독의 말은 바다에서 법이었다.

“함대를 어떻게 재편하면 좋겠습니까?”

부관이 지시 사항을 적기 위해 만년필을 꺼내는 것을 잠시 지켜본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거침없이 작전 지시를 내렸다.

“먼저 전 함대에 내려진 통신 금지 명령을 이 시각부로 해제한다. 함대 재편은 첫째, 함대 주력인 전함 6척을 세 개의 편대로 나누고, 각 편대는 구축함을 포함 4척의 함정으로 구성한다. 둘째, 순양함은 순양함 편대와 정찰 편대로 나누고 마지막으로 수뢰정은 장갑함과 분함대를 따르던 운송선의 호위 임무를 맡도록 한다. 이상이다.”

“알겠습니다.”

“곧 적과 조우할 것 같으니 전통에 따라 기함에 사령관 깃발을 내걸도록.”

“알겠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명령은 곧바로 전 함대에 전달되었고 기함인 수보로프대공에는 로제스트벤스키의 사령관기가 게양되었다.

이런 러시아 함대의 재편 사실은 순양함 이즈모에 의해 고스란히 일본 연합함대에 알려졌다.

감시를 하고 있는 이즈모가 보는 앞에서 너무도 당당히 함대의 재편을 지시한 로제스트벤스키 러시아 함대 사령관의 이러한 이상한 행동은 일본 연합함대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순양함 이즈모의 보고를 받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도 곧바로 러시아 함대에 맞서기 위해 연합함대를 재편한다. 

오전 9시가 되자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함대 대열을 단종진單縱陣으로 재편성하여 전투태세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기함 수보로프대공호를 선두로 하는 제1전대가 전열을 인도했고 이어서 제2전대는 전함 오슬랴바가 제3전대는 전함 니콜라이1세가 함대를 이끌었다. 

10시가 되자 미리 본함대와 떨어져 대마도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 5·6전대가 러시아 발트함대를 발견했다.

하지만 포격을 먼저 시작한 쪽은 러시아였다.

11시 10분, 러시아 함대는 드디어 일본 연합함대의 5·6전대를 발견하고는 전함 오렐이 포문을 열어 위협 포격을 시작한 것이다. 

쾅! 쾅! 쾅! 쾅! …….

그러자 일본 연합함대 5·6전대도 이에 맞대응하면서 상호 포격전이 벌어졌으나 아직 본진이 도착하지 않은 탓에 더 이상 전투 상태로는 발전시키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위협 포격만을 계속했다.

이때 연합함대 5·6전대 일부가 발트함대를 앞지르기를 몇 번했다. 

그러자 발트함대는 전함 대열을 2개의 단종진에서 3개의 단종진으로 바꾸면서 순양함 함대를 후열로 밀어내려는 실수를 저지른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12시가 되자 안개 속에서 함대를 횡대로 재편성하려고 진형 변경을 시도했지만 그러나 안개가 곧 사라지면서 명령이 취소되어 일본 연합함대 주력과 만날 때까지 다시 2개의 단종진으로 운항했다.

이렇듯 러시아 발트함대가 쓸데없는 곳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진해만에서 출발한 연합함대 본진이 드디어 발트함대와 조우하게 된다.

“각하, 전방에 러시아 발트함대입니다.”

아키야마 시네유키秋山莫之 해군 중좌의 보고에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망원경을 들어 전방을 살펴봤다. 그러자 그의 망원경에 러시아 함대가 한가득 들어왔다.

도고는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전 함대 전투준비.”

도고가 망원경도 내리지 않고 명령을 내리자 아키야마 중좌는 바로 명령을 복명복창했다.

“전 함대 전투준비!”

땡 땡 땡 땡…….

시끄러운 종소리와 더불어 전투준비를 알리는 깃발이 마스트에 걸리자 연합함대의 모든 함정에 전투준비 깃발이 동시에 올라갔다.

5시 5분 진해만을 출발했던 도고 제독은 일곱 시간이 넘는 전속으로 항진한 끝인 13시 15분, 드디어 러시아 함대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쿵 쿵 쿵 쿵.

이미 5·6전대와 발트함대는 서로 위협사격을 하는 중이라 바다는 온통 함포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도고 제독은 거듭 지시를 내렸다.

“대본영으로 전문을 보내라!”

“어떻게 보내면 되겠습니까?”

도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안개가 잔뜩 끼여 있던 하늘이 너무도 맑아져 있었다.

“하늘은 맑고 파도는 높다. 적함 발견, 즉시 출동 격멸하겠음. 이상이다.”

“알겠습니다, 각하.”

아키야마는 도고가 불러 주는 지시 사항을 붓으로 적고는 바로 몸을 돌려 함교로 달려갔다.

도고 제독의 이 전문은 곧바로 대본영으로 타전되었다.

13시 40분, 드디어 연합함대의 모든 함대가 전장이 될 대마도 앞 바다에 집결하게 된다.

“각하, 연합함대 모든 소속 함정이 집결을 완료했습니다.”

아키야마 중좌의 보고를 받은 도고 제독은 굳은 표정을 하고는 명령을 내렸다. 

“전 함대 전투를 개시하라.”

“전 함대 전투를 개시하라.”

아키야마 중좌가 도고의 명령을 제창하자 드디어 기함 미카사에 전투 깃발이 내걸렸다.

땡 땡 땡 땡 땡…….

급박하게 전투 개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10분간 더 항진하던 도고는 아키야마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Z기를 게양하라.”

13시 55분, 드디어 기함 미카사에 Z기 게양되었다. 게양되는 Z기에는 ‘조국의 흥망이 이 전투에 달려있다. 전 함대 용전분투하라.’는 글이 도고의 자필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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