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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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일본 연합함대는 남서 방향으로 남하하고 있었고 러시아 발트함대는 침로를 북동방향으로 하여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북상하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양측 함대는 11,000m까지 접근했고 일본 연합함대는 러시아 함대의 항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함대가 급속 변침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맞부딪칠 상황이었다. 미카사 포술장이 도고 제독에게 긴급하게 보고했다.

“각하, 적함과의 거리가 8,500m라 곧 포격 거리에 도달합니다. 포격 준비를 우현과 좌현 중 어디로 해야 하는지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아니다. 잠시 더 기다려라.”

“하이!”

미카사의 포술 장교의 말을 일축한 도고 제독은 곧이어 들려오는 관측 장교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

“적함과의 거리 8,000미터.”

모두가 도고 제독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도고는 오른손을 들어 왼쪽으로 반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함장이 소리쳤다.

“조타수操舵手, 좌현전타로 침로를 급속 변침變針하라.”

함장의 명령을 받은 조타수가 황급히 키를 돌리자 미카사가 급격히 좌현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순항하던 항로에서 급속하게 변침을 시도하자 미카사는 엄청난 물의 저항을 받으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 냈고 뒤를 이어 다른 함정들도 미카사의 뒤를 따랐다.

촤아아~~.

이렇게 두 함대가 최초격전을 향한 숨 가쁜 움직임은 하늘에 떠 있는 송골매에 의해 실시간으로 마라도함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박충식이 기함 미카사가 급속 변침하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드디어 정자전법丁字戰法의 도고 턴이 시작되고 있군.”

해전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던 의친왕이 급속하게 물살을 가르며 변침을 시도하는 육중한 몸매의 미카사를 보고 감탄해 했다.

“하! 참으로 장관입니다. 어떻게 적을 바로 앞에 두고 전함을 저렇게 급격하게 변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박충식의 화면을 보고 설명했다.

“본래 저렇게 함대를 노출하면서 급격하게 변침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작전입니다. 적의 코앞에서 저런 위험한 변침을 시도하다가 만일 러시아 함대가 이때를 노려 연합함대를 공격했다면 고스란히 표적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송의식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만일 러시아 함대가 전투태세가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면 급속 변침으로 측면이 그대로 노출되며 함포사격도 하지 못하는 미카사를 비롯한 연합함대는 러시아 함포의 표적지나 다름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영상을 보고 있던 의친왕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지금 러시아가 공격해 들어갔다면 미카사는 꼼짝 없이 당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렇게 전함이 급속 변침을 하게 되면 잠시 동안 적에게 무방비로 노출이 됩니다. 더구나 지금 연합함대는 러시아 함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으니 만일 이때를 노렸다면 엄청난 전과를 올렸을 것입니다.”

의친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것은 일본의 함대 사령장관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저런 무모한 작전을 펼치는 까닭이 있습니까?”

“아마도 러시아 함대의 의도를 꺾기 위해서 저런 작전을 펼쳤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의친왕의 의문을 송의식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 해전을 벌이는 두 함대의 목적이 서로 달랐습니다. 러시아는 함대를 최소한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져가는 것이었고, 일본은 그런 러시아 함대를 이 해전으로 격침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 그러면 일본의 공격을 러시아가 수비하는 격이로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본래 해전이란 상대편이 피하려고 하면 적에게 타격을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발트함대가 해전을 피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가 전열을 재정비한 뒤 일본본토를 공격하거나 만주의 보급선을 저지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전비가 고갈된 일본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도고 제독으로서는 그렇기 때문에 무모할 수도 있는 저런 정자전법을 쓰면서까지 러시아 함대를 이 해전에서 격멸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송의식이 자세한 설명에 의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런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의친왕은 바다 가득 떠 있는 일본 연합함대를 보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대단한 전력입니다. 일본이 저 정도의 해군력이 있을 줄 과인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런 전력을 가진 일본에 비하면 우리 대한제국 군사력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만일 귀공들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대한제국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했을 것입니다.”

의친왕의 침통한 말투에 상황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마라도함의 상황실에는 의친왕뿐이 아니라 이상재와 유길준 등 50여 명의 우국지사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양국 함대의 전투 상황과 대양 함대의 활약상을 보여 주어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차준혁의 제안에 동승하였으나 대부분 의친왕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 표정이 무거웠다.

박충식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만 기분들 푸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왔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우리 대양 함대가 어떻게 하는지 잘 살펴보시면서 조국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 보십시다. 이번 해전은 우리들에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박충식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펴졌고 그동안의 교육 덕분인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옆 사람들과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박충식은 그런 모습을 살펴보다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영상을 보고 있던 함대 작전참모 이성진 대좌가 상황을 설명했다.

“러시아 함대가 단종진으로 또다시 함대 재편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질 급한 강명철 소장의 말이 튀어나왔다.

“저런! 바보 같은 것들이 있나. 일본 전함들이 항로를 급속 변침 할 때 포격은 하지 않고 진형을 재편하다니. 아이고, 공격할 수 있는 귀한 시간 다 날려 버리고 있구나. 초급 장교도 적 앞에선 진형을 바꾸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 러시아 제일의 제독이란 자가 왜 저러네? 아무래도 패전 귀신에 덮어 씌웠나 보다야.”

박충식도 강명철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명철의 지적대로 러시아 함대는 지는 전쟁을 하려는 듯 포격도 하지 않고 이상하게 기동부터 하고 있었다. 송골매가 보내오는 영상에는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의 선두를 포위하기 위해 급속 변침 후 순서대로 이전의 항로를 향해 회전하고 있는 장면이 15분 이상에 걸쳐 보여지고 있었다. 

이런 함대기동은 조금 전 송의식의 설명대로 매우 위험한 것으로 러시아 함대는 회전할 때 선두에 있는 미카사 함부터 차례로 집중 포격했다면 연합함대 주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러시아 함대는 포격을 하지 않고 진형 변화를 먼저 시도하는 것도 영상에 그대로 잡혔다.

그렇다고 해도 포격을 먼저 시도한 것은 진형 변화를 마친 러시아 함대 기함 수보로프대공호였으니 러시아가 귀중한 시간을 얼마나 허무하게 허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쾅! 쾅! 쾅! 쾅! …….

수보로프대공호의 함포가 미카사를 향해 수십 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그중 몇 발은 미카사에 그대로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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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우지끈!

“각하 괜찮으십니까?”

아키야마 중좌는 포격에 맞아 전함이 흔들리자 황급히 도고 제독을 부축했다. 

하지만 도고는 의연했다.

“나는 괜찮네. 자넨 어떤가.”

“소장은 아무 이상 없습니다.”

도고가 미카사를 살펴보니 후미가 포격됐는지 그쪽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미카사가 포격을 받는 동안에도 연합함대 함정은 정자 기동을 하며 계속 방향을 선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휘하는 1·2전대가 모두 선회를 마치자 드디어 도고 제독이 명령을 내렸다.

“1·2전대, 집중 포격을 개시하라. 목표는 적의 기함과 그 옆의 있는 전함이다.”

쾅! 쾅! 쾅! 쾅! …….

도고 제독의 명령을 받은 전대는 러시아 함대 기함인 수보로프와 오슬랴바에 집중 포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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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기함이 포위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우측으로 회전하면서 연합함대와 평행한 항로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처음으로 당하는 집중 포격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집중 포격을 받은 2척의 러시아 전함도 대응 포격을 시도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도 화력을 일본 기함 미카사 호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일본 함대 포병과는 달리 러시아포병은 하나의 목표를 집중 포격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 전함을 상대로 산개 포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쾅! 쾅! …….

그러나 연합함대의 전함 4척과 순양함 1척의 집중 포격을 받은 수보로프대공과 7척의 순양함의 집중 포격을 받는 또 다른 전함 오슬랴바로 인해 상황은 순식간에 일본 함대로 기울었다. 일본 연합함대의 이러한 집중 포격 전술은 진해만에서의 포격 연습 중 새로 개발한 포격 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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