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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제독은 진해만에서의 포격 훈련을 연구 분석하여 개발한 집중 포격 전술은 함포를 이전과 달리 포술장의 지휘에 의해서만 포격하도록 했고 적선 1척을 여러 함정이 집중 포격하는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발트함대와의 해전에서 놀라운 집중 포격 성과를 나타냈고, 특히 이번 해전을 위해 일본이 개발한 시모세 화약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콰앙! 퍼~엉…….
시모세 마사치카가 개발한 시모세 화약은 프랑스 보르게르 화약 기술을 훔쳐내 자체개발하여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이 화약은 엄청난 고열과 연기를 뿌렸다. 철갑탄은 아니지만 흡사 네이팜탄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포탄이 폭발하면서 러시아 함대 표면에 칠해진 인화성 페인트를 삽시간에 불태우며 철갑을 녹아내리게 했고 갑판 위에 있는 것들도 모조리 불태워 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더욱이 러시아 함대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함대 진형의 갑작스러운 변경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진형 변경으로 기동 미숙이 드러나 집중 포격을 받는 수보로프대공과 오슬랴바 두 전함이 오히려 포격의 장해물이 되어 뒤에 있던 다른 전대가 일본전대와 포격전을 벌일 수가 없게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 된 것이다.
7척 순양함의 포격을 10여 분간 온몸으로 받아 내던 전함 오슬랴바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다.
“각하, 오슬랴바가 전열을 이탈합니다.”
부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눈에 오슬랴바가 선수와 우현에 포탄에 맞아 생긴 큰 구멍 때문에 선체가 기울어진 채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들어왔다.
쿵!
너무도 어이없이 당한 로제스트벤스키는 주먹을 벽에다 치고는 바로 부관에게 지시했다.
“2·3전대에 연락해 오슬랴바를 보호하도록 하라.”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부관은 깃발수를 불러 뒤에 있는 전대에게 신호를 보내게 했다. 하지만 오슬랴바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연합함대의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우현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전함 오슬랴바의 함장인 베르 해군 대령은 어쩔 수 없이 배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승조원은 하선하라.”
함장의 명령이 있자 승조원들은 구명정을 내리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승조원들이 어느 정도 내리자 배가 더 기울어져 버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함장님 이제 하선하셔야 합니다.”
베르 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다. 코친 대위, 난 이 오슬랴바와 함께 여기에 남겠다.”
“함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같이 하선하십시오.”
“코친 대위, 명령이다. 자네가 지금 즉시 하선해서 나머지 승조원들을 이끌도록 하라.”
코친 대위는 함장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미련을 버렸다.
코친은 함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럼 저 먼저 하선하겠습니다. 그동안 함장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베르 해군 대령도 굳은 표정으로 답례했다.
“그래. 나도 그동안 자네와 함께해서 행복했다. 다음 생에서 보자.”
코친 대위가 하선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슬랴바는 완전히 물에 잠겼고 함장인 베르 대령은 그렇게 자신의 전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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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 대령의 이 모습은 고스란히 마라도함에 전송되었다. 의친왕은 함장이 전함과 함께 수장되는 모습에 뭉클한 심정이 되었다.
“대단한 사람이군요. 전함과 함께 죽다니요.”
베르 함장은 전함의 완전히 물에 잠길 때까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소용돌이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박충식도 말로만 들어왔던 모습을 직접 확인하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장이 자신이 지휘하는 함정과 생을 함께하는 것은 해군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그렇군요. 비록 러시아 사람이기는 하나 그의 의기는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사령관님 말씀대로 공격 기회를 놓친 러시아 함대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휘관의 단 한 번 잘못된 판단이 저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저것 보십시오. 러시아 기함도 곧 무너질 것 같습니다.”
박충식의 말대로 집중 포격을 받고 있던 러시아 기함 수보로프대공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전투력을 상실하여 전열에서 이탈했다. 기함을 먼저 격침시킨다는 일본의 전략대로 러시아 함대는 지휘관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수보로프대공까지 전열에서 이탈시킨 연합함대는 더욱 기세를 올리며 이번에는 집중 포격을 전함 알렉산더3세에 퍼붓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속수무책이었다.
러시아 함대는 일본의 집중 포격을 피해 전함 알렉산더3세를 선두로 블라디보스토크 방향으로 전진하려고 시도였으나 일본 함대의 기동 속도에 밀려 진로가 차단되면서 제대로 된 대응 포격도 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기만 했다.
그러자 연합함대는 이번에는 어뢰정을 대거 투입시켰으나 아쉽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도고 제독은 곧바로 전열을 재정비시켰다.
“일본이 전열을 재정비합니다.”
이성진 작전참모의 설명대로 전열을 재정비한 연합함대는 도고 제독이 이끄는 1전대 6척의 함정이 계속해서 전함 알렉산더3세를 물고 늘어졌다.
이러한 집중 포격에 알렉산더3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알렉산더3세, 전열에서 이탈합니다.”
불과 15분의 포격으로 알렉산더3세를 전열에서 이탈시킨 연합함대는 다음으로 전함 보르디노까지 침몰시킴으로 해전초기 러시아 함대가 보유한 신형 전함 4척 중 3척(수보로프대공, 알렉산더3세, 보로디노)과 제2전대 기함 오슬랴바 등 4척의 전함을 수장시키는 대단한 전과를 올린다.
부상당한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과 그의 참모들은 이미 새로운 기함이 된 니콜라이1세로 옮겨졌지만 발트함대의 핵심 전력은 단 한나절의 전투로 대부분 상실되고 만 것이다.
일몰이 되어도 대양 함대는 송골매를 철수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대양 함대가 보유한 레이더로 양국함대 모든 함정의 위치가 파악되어 있어서 야간에도 관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본 함대의 공격은 일몰 후에도 멈추지 않았고 이때 러시아 함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그것은 전함 나바린 나히모프가 등화관제의 기초적인 상식도 무시하고 탐조등을 켜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일본 구축함의 집중 포격을 받고 어이없게 침몰되었다.
이날 밤 일본 구축함대의 밤을 새운 수색 작전으로 2급 전함 시소이 벨리키와 순양함 네히모프 등 3척의 주력 전함이 격침되고 말았다.
동이 트기 직전 가장 어두워지는 시기였음에도 마라도함은 사방에서 밝히는 강렬한 서치라이트로 마치 대낮같이 밝았다.
그런 마라도함의 상갑판에는 특수전 부대원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들 뒤로는 10대의 회전날틀이 힘차게 프로펠러를 돌리며 출격 대기 상태로 있었다.
대원을 인솔하고 출전하는 1대대장이 강명철 소장에게 출전인사를 하고 있었다.
“차렷, 경례.”
“충! 성!”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강명철은 도열해 있는 대원들 앞에 서 있는 1대대장 김영문 중좌와 인사를 나누고는 악수를 건넸다.
“김 중좌, 건투를 빌겠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기래 내레 자네만 믿갔어. 수고하라우.”
강명철의 격려를 받은 김영문 중좌는 몸을 돌려 대원들에게 큰소리로 지시했다.
“전원, 탑승.”
“탑승.”
대대장의 지시를 복창한 팀장들은 팀원들을 인솔하고는 미리 배정받은 회전날틀로 빠르게 흩어졌다.
타! 타! 타! 타! 타! …….
곧이어 모든 대원들을 탑승시킨 회전날틀은 힘차게 갑판을 날아올랐다. 마라도를 날아오른 회전날틀은 그대로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갔다.
박충식은 갑판에서 멀어지고 있는 회전날틀을 한동안 바라보다 자신을 향해 황급히 달려오고 있는 송의식이 눈에 띄었다. 참모장이 무선으로 알리지도 않고 직접 달려오는 것을 보니 작전 상황에 대한 중대 보고라는 것을 직감했다.
박충식은 송의식이 다가오자 먼저 물었다.
“제주 방면으로 달아난 러시아 보급함 나포 작전 보고가 들어왔는가?”
“그렇습니다. 달아난 10척의 러시아 보급함 나포 작전을 맡은 특수 2대대와 미르 1대대가 작전을 성공적으로 종료하였다는 미르 부대장님의 보고입니다.”
박충식은 장병들 안위를 먼저 물었다.
“사상자는 얼마나 나왔다고 하던가?”
송의식이 손에 든 서류를 보고 설명했다.
“러시아 보급함에 전투 병력이 거의 없어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부상자는 관통상을 입은 병사 한 명과 골절상 두 명, 적과 격투 중 타박상을 입은 경상자 다섯 명뿐이라고 합니다.”
박충식이 크게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주 잘 되었다. 정말 고생들 했어. 보급함 예인 준비는 어떻게 되었나?”
“보급함 예인을 위해 이미 제주에서 선박과 인력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박충식의 옆에서 보고를 듣던 강명철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