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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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 과연 삼족오군이다. 10척의 보급선을 공격하면서도 부상자가 열 명도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 말에 박충식도 아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송 참모장은 제주에 있는 김 장군에게 작전 성공을 축하한다는 전문을 보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이보라요, 송 참모장. 나도 축하드린다고 말씀을 전해 주시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송의식은 박충식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다시 마라도 함교로 서둘러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박충식이 지휘봉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자! 이제 돈스코이와 필리핀으로 달아나는 놈들이 문제로구나.”

강명철이 옆에서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마시라요. 전함 1척 접수하기 위해 우리 특수부대 대대병력이 출동했습네다. 분명 좋은 결과를 사령관께 보여드릴 수 있을 것입네다.”

강명철이 평상시보다 강한 사투리로 장담을 하였으나 박충식은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이 비록 노후한 순양함으로 전투력이 현격히 떨어진다고는 하나 함장의 뛰어난 지휘 능력으로 역사에서와 같이 벌써 몇 차례의 전투에서 일본 전함들을 격퇴하고 있다지 않은가. 절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잘못 다루다가 저들이 자침하는 빌미를 주게 될 수도 있어.”

“믿고 기다려 주시라요.”

“반드시 접수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군.”

두 사람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 마라도에서 이륙한 회전날틀 편대는 별빛 가득한 동해밤바다 위를 거침없이 날아갔다.

러시아 발트함대 전함 중 가장 노후한 순양함 중 하나인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불과 10문의 함포를 가지고 밤사이 일본 연합함대 최신구축함의 야간공격을 힘겹지만 몇 차례 물리쳐 냈다. 

이번에도 한동안 엄청나게 퍼붓던 포격을 멈추고 일본 연합함대구축함이 잠시 물러나자 돈스코이 승조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환호했다.

“적이 물러납니다.”

하지만 밤사이 연합함대와 몇 차례 포격전을 치룬 돈스코이는 거의 기동을 못 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함장 레데베프 대령은 팔의 부상으로 인해 피가 범벅이 된 몸을 추스르며 부함장 블로닌 해군 중령을 불렀다.

“블로닌 중령, 여기가 어디쯤인가?”

함장의 물음에 블로닌은 확신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별빛을 관측하며 대답했다.

“조선해朝鮮海 중간에 있는 섬인 울릉도 근방인 것 같습니다.”

불로닌 중령의 대답에 레데베프 대령은 다행이라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나마 항로는 제대로 잡은 것 같군.”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함의 피해가 너무 막심합니다. 이렇게 수리도 못하고 항해를 계속하다 적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더 받는다면 항행이 불가능한 사태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해 보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아직 포탄도 남아 있으니 말이야.”

블로닌 중령이 화를 버럭 내며 갑판 위에서 발에 걸리는 것을 걷어찼다.

깡!

“이런 젠장. 엄청난 전력을 보유한 우리 대러시아 발트함대가 동양의 조그만 일본 함대 따위에게 제대로 대항 한 번 해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정말 화가나 견딜 수가 없습니다.”

레데베프 대령은 팔에 난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리자 끈으로 다시 단단히 조이면서 대답했다.

“전투가 벌어지자마자 발생한 함대 사령관 각하의 유고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 아니겠나.”

“그게 더 화가 납니다. 사령관 각하의 유고는 피격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라고 해도 다섯 시간이 넘도록 지휘권이양이 이뤄지지 않고 허둥대고만 있었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함대 참모부 놈들은 평상시에는 그렇게 전술 전략에 대해 잘 안다고 떠들어 대더니만 실전에 들어서니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전황 분석도 내놓지 못하고 지휘권 부재만을 드러내다니 이번 전투가 끝나면 모조리 총살시켜야 합니다.” 

레데베프 대령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놈들 총살시키는 것보다 당장 우리가 문제 아닌가. 자네 말대로 적의 공격을 한 번 더 받는다면 우리로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블로닌 중령도 그 말을 듣자 굳은 표정이 되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자침(自沈, 스스로 배를 침몰시킴)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장도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경리함 나이모프에서 옮겨온 저 많은 군자금을 절대로 일본에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지. 그나저나 이 일본 놈들이 이렇게 비겁하게 싸워 올 줄은 정말 몰랐어.”

“그렇습니다. 첫 전투야 상호 간 직접 포격전을 벌여 우리가 패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만 밤이 되자 비겁하게 어뢰정들을 투입시켜 우리에게 충분히 휴식을 취할 시간도 주지 않고 치사하게 공격하는 것은 명예를 최고로 아는 해군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불로닌 중령의 강한 불만에 레데베프 함장도 동조했다.

“당연하지. 일본 해군이 뤼순 전투에서도 비겁하게 정면 대결을 하지 않고 기뢰를 풀어 제1태평양 함대의 기함과 사령관님을 폭사시켰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일본 해군은 바닷사람의 명예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나오는군.”

이들 두 사람은 비록 용감한 해군 장교들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정면에서 상대방에게 함포를 쏘아 대는 정직한 해전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기에 일본 연합함대가 함정을 동원해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입체적 작전에 대해 이해하려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오히려 조소를(물론 발트함대가 너무 허망하게 패한 것에 대한 변명이 대부분이었지만)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대화를 주고받던 레데베프 대령이 부함장 블로닌 중령에게 지시했다.

“적들이 물러났으니 잠시 동안은 도발하지 않을 것일세. 부함장은 함이 입은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부상병 구호 조치를 서둘러 승조원들에게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도록 해 주게.”

“알겠습니다.”

함장의 명령을 받은 블로닌 중령이 함교를 나서자 레데베프 대령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비로소 의자에 주저앉다시피 몸을 얹었다. 

발트함대의 경리함 니히모프가 연합함대의 포격을 받아 항해 불능이 되자 태평양함대의 재건을 위한 군자금을 옮겨 실은 돈스코이는 본대가 연합함대에 밀리자 주저 없이 구축함 1척을 대동하고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를 감행했다. 

필사의 도주를 하는 동안 돈스코이는 수차례 적과의 교전하면서 동행한 구축함까지 잃고 자신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나 돈스코이는 꿋꿋하게 북쪽으로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런 돈스코이를 처음부터 감시하고 있던 강이식함의 함장 강병익은 돈스코이가 지난 밤사이 일본과 벌인 전투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봐, 전 소좌.”

“예, 함장님.”

“돈스코이가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저런 고물이나 다름없는 순양함으로 어떻게 5척이나 되는 일본의 최신예 구축함 전대의 추적을 물리칠 수 있는지 저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함장의 지휘가 참 대단한 것 같아. 그나저나 온다던 우리 회전날틀은 언제 도착하는 거야?”

“마라도함을 이륙한 지 10분이 지났으니 앞으로 20분만 있으면 도착할 시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슬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그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일본 잠수함을 어떻게 요리할지 고심하던 전대장님은 별도의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건지 아직 연락이 없으십니다.”

그러자 ‘아차!’ 하는 표정으로 강병익이 설명해 주었다.

“아! 그거. 지금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이 비록 승조원 12명이 탑승하는 105톤짜리 눈먼 잠수함이라고 하지만 앞으로 해전에서 큰 몫을 하게 될 잠수함을 일본이 당분간은 도입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흔적도 없이 제거하라는 총사령관님의 특별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더군. 그래서 5척 전부 어뢰로 수장시킨다고 결정했다고 하네.”

“거참, 빈대보고 대포 쏴야겠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당분간은 동해는 물론 우리바다에 일본 잠수함이 돌아다니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사령관님의 특별 지시니 우리야 까라면 까야지.”

“그래도 가솔린 엔진에 잠함고도도 겨우 35미터이고 더구나 속도도 7노트에 불과한 깡통 잠수함에게 언제 재보급 받을지 모를 비싼 어뢰를 사용한다는 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아니야.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어. 들어간 비용이야 후일 전쟁 배상금으로 철저하게 받아내면 되겠지만 문제는 잠수함을 판 놈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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