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회: 2-8화 -->
“방탄복 덕분에 생명을 구했군.”
“하지만 갈비뼈가 상했을 겁니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아니야. 임무가 있지 않네. 내 직접 확인해야지. 나를 좀 부축하게.”
“그럼 기대십시오.”
“으윽.”
김영문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격통에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구기주 원사에게 지시했다.
“후, 이정도면 뛰지는 못하더라도 걷는 데는 지장 없어. 구 원사, 빨리 가자고.”
“그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부탁하오, 구 원사.”
김영문이 구기주의 선도로 걸음을 옮겼을 때 이미 창고 주변을 모두 정리한 박인호가 다가왔다.
“대대장님, 전방 정리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래? 그럼 창고로 가지.”
창고로 가는 복도에는 박인호에 의해 사살된 승조원의 시신이 늘어서 있었다. 세 사람이 대원들과 함께 창고 입구에 도착했으나 입구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해체하게.”
그러자 뒤에서 대원 한 명이 뛰쳐나와 소지하고 있던 C4 폭약을 주물러 자물쇠를 뒤덮고는 뇌관을 연결했다.
“피하십시오. 폭발합니다.”
김영문을 비롯한 모든 대원들이 피신하자 대원은 곧 기폭장치를 눌렀다.
콰앙~!
강한 폭발의 후폭풍을 피해 잠시 대기하던 김영문 상좌가 가장 먼저 창고 입구로 다가갔다. 창고문은 C4 폭약의 강한 폭발력으로 철문이 반쯤 날아가 있었다.
“입구를 개방하라.”
김영문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대원 한 명이 뛰쳐나와 발로 문을 걷어찼다.
캉!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방금 전 발로 문을 찬 대원은 앞으로 몸을 한 번 구르며 창고로 들어갔고 그 뒤를 두 명의 대원이 몸을 구르며 뒤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김영문 상좌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전의 폭발로 창고 안의 조명이 나가 있었다.
“조명을 밝혀라.”
잠시 후 두 명의 대원이 소지하고 있는 비상 전등의 바닥을 때리자 창고 안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러자 모두의 앞에 고풍스럽게 만들어진 상자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음! 이건가?”
김영문은 앞으로 다가가 상자에 걸린 작은 자물쇠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타악!
순간 김영문은 가슴에서 강한 격통으로 숨이 턱 막히며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윽!”
‘이거 구 원사 말대로 갈비가 나간 것 같군.’
구기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아! 괜찮네.”
격통으로 심호흡을 크게 한 김영문이 상자를 열었고 상자 뚜껑을 한 손으로 들고 있으면서 그는 기분 좋게 외쳤다.
“드디어 찾았다.”
“와~~~!”
순간 대원들도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김영문은 곧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구 원사, 물건을 찾았다고 보고하고 수송대 빨리 보내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박 대위.”
“예, 대대장님.”
“지금 즉시 각 중대 작전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김영문은 상자 뚜껑을 다시 덮고는 그 위에 올라앉았다.
돈스코이함의 통신장교였던 드미트리 해군 중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빛이 비추더니 엄청나게 정확한 소총 사격으로 갑판에 있던 거의 100여 명의 승조원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사살되었다.
그러자 곧이어 하늘에 떠 있던 이상한 기계에서 검은 옷을 입은 괴인(위장 크림을 발라서)들이 쏟아져 내려와서는 대항하는 승조원들을 무차별 사살하며 순식간에 배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 자신은 무기가 없어 개머리판에 맞아 정신을 잃어버렸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판으로 끌려와 보니 남아 있는 승조원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드미트리 중위가 특수부대원들에 이끌려 갑판으로 나왔을 때는 모든 상황은 종료된 뒤였다.
작전목표였던 러시아군의 군자금을 이미 윤집함으로 모두 옮긴 김영문은 300여 명이나 되는 포로들 문제로 고민을 하다 참모부에 건의해 이들의 생사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특수부대원들은 대부분 북한 출신이라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장교들이 몇 명 되었고 김영문도 그중 한 명이었다. 김영문이 러시아 승조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올라갔다.
아직 밤이 깊었으나 사방에서 비춰지는 서치라이트의 불빛으로 러시아 승조원이 김영문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대한제국군 특수부대 1대대장 김영문 상좌라고 한다.”
웅성웅성.
일본이 아니라 느닷없이 튀어나온 대한제국이란 말에 러시아 승조원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탕!
김영문이 하늘로 쏜 총 한 발에 갑판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귀관들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 포로가 되어 우리를 따라가든지 아니면 배에 남을지에 대한 결정을 귀관들이 직접 하라.”
웅성웅성.
포로 대다수가 승선을 하면 어떠한 일도 스스로 결정을 하지 않았던 일반 수병들이라 김영문의 말에 더욱 웅성거렸다.
그때 한구석에 있던 장교 한 명이 일어섰다. 그는 일본과의 교전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 전의 교전 때문인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나는 러시아 해군 중령 포템킨이라고 하오. 귀관에게 할 말이 있소.”
“말해 보시오.”
“배에 남으면 우리를 그대로 보내 줄 것이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소.”
“그럼, 이 배와 같이 수장된다는 것이오?”
“그렇소.”
김영문의 말이 너무 냉정했는지 포템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처음 계획은 돈스코이함을 그대로 침몰시키려 했으나 너무도 많은 승조원의 목숨과 귀관들의 명예를 생각해 선택권을 주려고 하는 것이오. 판단은 귀관들이 하시오.”
포템킨은 그 말에 한동안 생각을 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명예를 지켜 주려는 귀관께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우리에게 잠시 시간을 주시겠소?”
“우리도 작전 시간이 있어 오래 시간을 줄 수 없소.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시오.”
“알겠소이다.”
포템킨 중령은 김영문에게 인사를 하고는 승조원들에게 지시했다.
“위관급 이상 장교들을 모두 이쪽으로 오라.”
포템킨 중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0여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드미트리 중위도 따라 나갔다.
“귀관들도 들었다시피 우리의 선택은 명예롭게 죽는 길과 비굴하게 항복하는 길 두 가지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그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관이 입을 열었다.
“저는 어차피 부상이 심각해 항복을 해도 쉽게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차라리 배와 함께하는 명예를 선택하겠습니다.”
그러자 몇 명의 사관들도 배에 남겠다는 말을 했지만 대부분의 사관들은 항복하기를 원했다. 아무리 명예가 좋다고는 해도 죽음과 명예를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포템킨 중령은 사관들의 면담을 마치고 다음으로 하사관, 그리고 다음으로 일반 수병들까지 일일이 자신들의 의사를 물어 그들의 명예를 지켜 주려 노력했다.
김영문이 포템킨 중령과 마지막 악수를 하며 감탄했다.
“50명이나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차피 하선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부상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합니다. 역시 러시아 해군은 명예를 아는 군인입니다.”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남아 있는 승조원 명단입니다.”
“반드시 귀국에 여러분의 명예로운 죽음이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러시아어를 알지 못하는 박인호 대위가 재촉했다.
“대대장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알았네.”
박인호의 재촉으로 김영문이 대기하고 있던 윤집함의 회전날틀에 오르자 회전날틀은 그대로 이륙하여 모함으로 날아갔다. 특수 1대대는 본래 마라도함으로 귀환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 포로들 감시 때문에 대대장 김영문 상좌를 포함한 2개 중대 병력은 윤집함으로 옮겨 타게 되었다.
윤집함의 회전날틀 착륙장에는 함장인 공성기 대좌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대원들이 고생했습니다.”
“그래, 자네 부상은 괜찮은가?”
“저야 시간이 지나면 낳겠지만 최초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군인의 숙명이 그런 걸 어쩌겠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게.”
“후~ 그래도 이곳에 같이 온 동료이자 부하였는데. 제가 조금 더 확실한 작전 계획을 수립했어야 했는데, 참으로 속상합니다.”
김영문은 그러면서 눈물을 삼키려는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특수 1대대는 이번 작전을 전개하면서 안타깝게도 첫 사상자가 나왔으며 세 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