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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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스코이함의 임시 함장이 된 포템킨 중령은 김영문이 이함 하자 곧바로 자침을 시도했다. 

“배수용 판을 열어라.”

포템킨 중령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관은 배 바깥의 바닷물을 선내로 끌어들이는 킹스톤 밸브를 열었다. 

그러자 바닷물이 급격히 선내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돈스토이는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돈스코이가 결국 자침하는 군요.”

하늘을 바라보던 김영문은 박인호의 말에 고개를 돌려 급격히 기울어지는 돈스코이를 바라보았다.

5,800톤의 무게 탓인지 돈스코이는 급속히 기울어졌고 윤집함의 함장인 공성기 대좌는 같은 바닷사람으로 포템킨의 명예로운 죽음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거수경례를 했다. 그런 공성기의 옆에서 김영문과 박인호 대위도 같이 경례를 했다.

포템킨 중령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 명의 지휘관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이군.”

그렇게 독백하며 포템킨은 배의 난간을 잡으며 답례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급격히 기울던 돈스코이는 시간이 흐르자 커다란 소용돌이를 남기며 바다 속으로 완전히 잠겨 버렸다.

윤집함의 승조원들은 처음으로 본 자침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간 표정들이었다. 그 모습을 본 공성기는 분위기를 털어 내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우리도 이만 출발하자. 전 승조원 정위치!”

“승조원 정위치.”

승조원들도 분위기를 털어 내려는 듯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각자의 자리로 뛰어갔다. 잠시 후 공성기의 항진 명령을 받은 윤집함은 제주항을 향해 서서히 기동을 시작했고 곧이어 속도를 높여 바닷물을 힘차게 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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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마라도함에서는 작전에 나갔던 1대대 병력들이 귀환하느라 갑판은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회전날틀의 착륙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박충식에게 비서실장 이현호가 윤집함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윤집함이 임무를 마치고 제주로 항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영문 상좌의 1대대가 고생을 많았겠군.”

“이번 작전에 최초의 전사자가 나왔다는 보고도 들어왔습니다.”

박충식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래! 피해가 얼마나 나왔다고 하나?”

“전사자 한 명에 부상자 세 명입니다.”

박충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

전사자가 나왔다는 보고에 놀랐던 강명철도 침중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첫 전투부터 전사자가 나와서 대원들 동요가 있을지 걱정입니다.”

박충식이 옆에 있던 송의식을 보고 지시했다.

“앞으로는 오늘과 같은 적과 직접 교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야. 참모장은 이번 전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해서 앞으로의 전투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적의 전투 지침을 수립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마라도함은 회전날틀 착륙을 마치고 육중한 몸체를 기동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양 함대 전함정도 마라도함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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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27일이 지나고 28일 날이 밝았다.

도고 제독은 미카사에 마련된 사령장관 집무실에서 기함 미카사와 동급 전함인 시키시마에 승선해 있던 영국 해군 관전무관 페케넘 대령의 예방을 받았다.

페케넌은 전날의 승리에 대한 축하인사를 먼저 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사령장관 각하.”

도고는 답례를 하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귀관의 축하는 고맙네만 아직 적을 완전 격멸한 것은 아니니 진짜 축하는 후일 다시 받겠네.”

“지난밤에도 어뢰정과 구축함 전대의 대활약으로 2척의 전함과 1척의 순양함을 격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날 낮의 교전 때 격침된 전함을 포함하면 이 정도 피해라면 발트함대는 공격력을 완전 상실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그렇지가 않네. 러시아 함대는 아직 2척의 전함과 다수의 전투함이 건재해 있으니 전투가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라네. 우리 연합함대는 적을 완전히 격멸하기 위해 이 해전을 시작했지 단순히 승리를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귀관은 분명히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만주에서의 전투가 예상 밖의 엄청난 소모전 양상이 되면서 전비 고갈로 진퇴양난에 처한 일본의 급박한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영국 관전무관 페케넘 대령은 도고 제독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각하께서 함대를 이끄신 전술은 정말 기상천외하였습니다. 반항침로(적과 반대 방향으로 항해함)로 항해를 하다 어떻게 그렇게 급격한 변침 명령을 내리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런 급격한 변침 기동은 자칫 잘못하면 적에게 엄청난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비록 우리 함대가 러시아보다 함정 수에서는 앞서 있을지 모르지만 전함의 수를 비롯해 전력의 절대평가에서는 뒤지는 것이 사실 아닌가. 이런 불리한 전력을 가진 우리 연합함대가 막강한 전력의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멸시키기 위해서는 것은 적의 방심을 유도하는 기상천외한 전법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네.”

“그렇다면 각하께서는 러시아가 연합함대에 대응하지 않고 무조건 블라디보스토크로 항해하는 방어 전략을 펼치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셨다는 말씀이군요.”

도고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그렇다네. 귀국의 도움으로 러시아 함대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희망봉을 돌아 9개월이나 되는 긴 항해 끝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러시아 승조원들의 사기는 보나마나 형편없었을 것이네. 만일 내가 러시아 함대 사령관이라고 해도 함대 상황이 최악의 상태에서는 교전보다 방어를 우선 선택했을 것이 분명하네. 나는 그 점을 미리 예상하고 정자전법을 채택한 것이라네.”

“그렇기는 해도 너무 위험한 전법이었습니다.”

도고 제독이 페케넘 대령에게 탁자 위의 해도를 보며 설명했다.

“이 해도를 보게. 우리가 이렇게 반항침로를 잡고 적과의 거리를 좁히며 기동하다 급격한 회선 명령을 내린 것은 러시아 함대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함이네. 거기다 우리가 이렇게 급격 변침을 하게 되면 우리의 허점이 노출되기도 하지만 단종진으로 올라오는 러시아 함대는 함포 방위각을 제대로 잡을 수 없어 본 연합함대를 정확히 포격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지는 장점도 있다네.”

페케넘 대령이 해로에 그려진 양국 함대의 항로를 바라보다 감탄했다.

“그랬습니다. 그 때문에 어제 초기 교전에서 러시아 함대 전함들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포격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모든 상황 예측까지 해내시다니 각하께서는 정말 대단한 전략가십니다.”

하지만 도고 제독은 겸손했다.

“물론, 적장이 그 순간 정말 다행스럽게도 함대 전열을 재정비하려고 귀중한 시간을 흘려 버린 것이 우리에게 결정적 승기로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네.”

“그때는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어떻게 제독께서 급속 변침을 시도할 때를 맞추듯 러시아 함대가 전열을 풀어 각 전함 스스로 시계를 가로막는 자충수를 두었는지 말입니다.” “동양 격언에 ‘일은 사람이 만들지만 하늘의 뜻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네. 어제 본관은 그 뜻을 정말 통감했을 뿐이네.”

페케넘 대령은 도고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말을 한동안 곱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페케넌과 대화를 마친 도고는 참모장을 불렀다.

“참모장.”

“하이, 각하!”

“최후의 결전이 남았다. 참모장은 전 함대에 전문을 보내 최대한 빨리 울릉도 방면으로 모든 함대가 집결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각하.”

연합함대 참모장 가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郎 소장은 도고 제독의 지시를 받고는 무전실로 가기위해 황급히 사령실을 나섰다.

잠시 후 기함 미카사에서는 도고 제독의 명령을 타전하는 무전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 무전은 고스란히 삼족오군에게도 탐지되었다. 

“드디어 도고가 최후의 결전을 벌이려고 함대를 전부 집결시키고 있군.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준비를 해야겠지? 참모장, 함대 준비 상황은 어떤가?”

송의식이 전력 배치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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