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회: 2-10화 -->
“지금 울릉도를 중심으로 6척의 전함과 김필규 전대장의 지휘로 고선지함을 비롯한 5척의 잠함 전대가 전투대기 중에 있습니다.”
“러시아 함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7시 현재 울릉도 남방에서 북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상하는 속도대로 올라온다면 9시경 울릉도 동남방에서 일본 연합함대와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대로 10시 30분에 항복하는 수순을 밟게 될 공산이 크겠군.”
“지금 상황으로는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필리핀으로 도망치는 순양함 3척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 본함대와 떨어져서 북상하고 있는데 아마 본함대가 항복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선수를 필리핀으로 돌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작전 계획대로 우리 대양 함대는 러시아 함대가 항복을 한 후 연합함대에 배를 넘겨주는 때를 기점으로 작전을 시행한다. 잠함 전대는 작전 지역 인근 해역을 철통 방어해서 도주하는 함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어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지시하게.”
“알겠습니다.”
박충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시를 내렸다.
“현재시간 7시 10분이다. 9시 정각부터 우리 대양 함대는 우리의 바다인 동해를 깨끗이 청소하는 작전명 ‘동해 작전’을 시작한다.”
기다리던 박충식의 작전명령이 떨어지자 마라도함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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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제독의 지시로 모든 전함들을 모은 연합함대는 러시아 함대보다 더 높은 기동력을 이용하여 맹렬한 기동을 한 끝에 발트함대가 북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울릉도 인근 해상에 미리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9시경 드디어 울릉도 동남쪽에서 느리게 항진하고 있는 발트함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땡! 땡! 땡! 땡! 땡! …….
“각하! 올라오고 있는 적 함대를 발견했습니다.”
도고 제독은 아키야마 중령의 보고를 받자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나갔다.
“동남쪽 방향입니다.”
아키야마 중좌의 말을 따라 동남쪽을 바라보니 러시아 함대에서 뿜어내는 시꺼먼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도고 제독이 망원경을 들어 적선을 살피자 그의 망원경에 7~8척의 러시아 함대가 확인되었다.
“흠, 적 함대의 잔당이군.”
도고 제독이 망원경을 내리며 참모장에게 바로 지시를 했다.
“전 함대, 공격 준비하라!”
명령을 받은 참모장 가토 소장은 마사카 함장 이지치 대좌에게 지시했다.
“전 함대에 공격 준비 명령을 타전하고 동시에 깃발도 게양하도록 하라.”
동해 해전에서 양측 함대가 극명하게 다른 전술을 구사한 것이 있었으나 그것은 무선통신이었다.
일본이 모든 명령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무선 교신과 깃발 신호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러시아 함대는 교신은 하지 않고 오로지 깃발 신호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차이점은 함포 사거리와 화약의 성능 차이보다 러시아 함대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일본 연합함대에 무참히 패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도고 제독의 명령은 전 연합함대로 타전되었고 깃발도 동시에 게양되었다.
연합함대 무전은 고스란히 마라도함에 탐지되었다. 통신사관은 감청된 무전 내용을 박충식의 원활한 지휘를 위해 수시로 보고되고 있었다.
“일본 함대가 공격 준비 명령을 내렸습니다.”
보고를 받은 박충식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전 함대 작전 기동을 시작한다.”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에 최후의 공격을 가하기 위한 함대 기동을 하는 것과 동시에 대양 함대도 작전 준비 기동에 들어갔다.
곧이어 도고 제독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함대는 진형을 갖춤과 동시에 적함을 공격하라.”
또다시 미카사에서 도고 제독의 명령이 연함함대 전 함정에 타전되었고 이번에는 공격 개시 깃발이 마스트에 내걸렸다.
러시아 함대도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자 포위를 마친 연합함대보다 전함 오렐과 순양함 1척이 먼저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
오렐 호의 주포인 305밀리 함포와 부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고 이어서 다른 함정도 포격을 시작했지만 연합함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
러시아 함대를 포위한 수십 척의 연합함대도 엄청난 화염을 온 바다로 방사하며 포격을 시작했다.
아직 거리가 있어 러시아 함대를 직접 타격하지 않았지만 바다에서 터지는 엄청난 포탄의 물보라는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10여 분이 지나자 드디어 한두 발의 포탄이 러시아 함대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러시아 함대를 주시하던 미카사의 견시수가 소리쳤다.
“적의 기함에서 항복 깃발이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견시수가 다시 또 소리쳤다.
“포격을 중지하라는 깃발도 올라왔습니다.”
러시아 함대는 상호 포격이 시작되고 10여 분 만에 연합함대의 엄청난 포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는 백기를 내걸고 만 것이다.
항복의 깃발을 내건 기함 니콜라이1세가 자국 함대에 수기신호로 항복하였으니 포격을 중지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강력한 포격을 하고 있던 전함 오렐을 시작으로 러시아 함대는 곧 포격을 중지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러시아 함대의 움직임은 곧바로 일본 연합함대에 감지되었다.
“적함에서 항복 깃발이 올라왔다. 포격을 중지하라!”
“포격 중지. 포격 중지.”
러시아 함대의 항복 깃발은 도고 제독의 확인을 거쳐 포격중지 명령이 연합함대로 타전되었고 명령을 받은 연합함대는 거의 동시에 포격을 멈추었다.
드디어 이틀간에 걸친 해전이 종장을 맞이한 것이다. 바다를 뒤덮던 시꺼먼 포연과 우레와도 같은 함포 소리가 일시에 잦아들었다.
자신의 함대는 물론 러시아 함대가 포격이 멈춘 것을 확인한 도고 제독은 참모 아키야마를 찾았다.
“아키야마 시네유키秋山莫之 중좌.”
“하! 각하.”
“귀관은 지금 바로 적 함대 기함으로 가서 항복한 러시아 함대 사령관을 정중히 모셔오라.”
“알겠습니다.”
곧이어 미카사에서 세척의 보트가 내려졌고 그 보트에 탄 아키야마 중좌는 부하들에게 러시아 함대 기함 니콜라이1세함으로 노를 젓게 하였다.
아키야마 중좌가 기함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고 있던 니콜라이1세에도 곧바로 사다리가 내려졌다.
이렇게 내려진 사다리를 타고 니콜라이1세함에 오른 아키야마 중좌는 기다리고 있던 네보카토프 제독에게로 다가갔다.
“대일본제국 해군 중좌 아키야마 시네유키가 제독님을 뵙습니다.”
그러면서 허리를 약간 구부리며 인사했다.
통역을 통해 아키야마의 인사말을 들은 네보카토프 제독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본관은 러시아제국 해군 소장 네보카토프라고 하네. 본관과 우리 함대가 귀 함대에 항복을 하려고 하니 귀관은 귀 함대 사령관 각하께 본관을 안내해 주게.”
“소관이 모시겠습니다.”
그러면서 얄밉게도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아키야마의 안내를 받은 네보카토프 제독은 참모장을 포함한 니콜라이1세에 승선해 있던 장교 전원을 대동하고 내려진 보트를 타고 미카사로 향했다.
잠시 후 네보카토프 제독 일행이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에 오르자 도고 제독은 참모진과 미카사의 장교들을 집합시켜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보카토프 제독은 미카사 갑판에 오르자 일본 장교들의 집중된 시선을 받자 항복을 한다는 치욕에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자신의 명예보다는 수천 명의 승조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 자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대일본제국 해군 중장 도고 헤이하치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본관은 대러시아제국 해군 소장 네보카토프라고 합니다.”
도고와 인사를 주고받은 네보카토프 제독은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본관과 대러시아제국 발트함대는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도고 제독 각하께 항복을 하려 합니다. 본관의 항복청원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항복을 하겠다는 네보카토프의 말은 처음의 당당함이 점점 사그라져 끝나 갈 무렵에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도고 제독은 가슴을 쫙 펴고 대답했다.
“제독 각하의 청원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보카토프는 두 손으로 제독이 되었을 때 차르(러시아 황제의 별칭)에게서 하사받는 자신의 지휘도를 도고 제독에게 건넸다. 해군 제독에게는 목숨과도 다름없는 지휘도를 도고 제독도 두 손으로 정중히 건네받았다.
이어서 네보카토프는 곱게 접힌 러시아 국기와 함대기를 도고에게 건네면서 항복 의식이 끝났다.
도고는 드디어 승자의 입장에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네보카토프 제독은 도고 제독이 내미는 손을 잠시 망설이다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