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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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양 함대의 집중 포격을 받은 시키시마는 뭐라고 손쓸 틈도 없이 배가 순식간에 선체가 기울더니 그대로 침몰해 버렸다. 동급 전함 중 유일하게 3개의 연돌이 있었던 시키시마는 너무도 허망하게 900여 명의 승조원과 함께 동해 아래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너무도 허망한 종말이었다. 침착하기로 소문났던 아키야마 중좌는 이러한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울부짖듯 소리쳤다.

“으아! 무슨 함포가 20킬로가 넘는 거리에서 발사된단 말인가. 어떻게 1만 5,000톤의 전함 시키시마가 몇 발의 함포로 손쓸 틈도 없이 침몰한다는 말인가!”

참모 중 누군가 발악적으로 외쳤다.

“이건 꿈이야! 대일본제국 전함이 이렇게 허망하게 침몰 할 수는 없어!”

참모 중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도고 제독은 자신도 모르게 독백했다.

“그래, 이건 꿈이야. 어떻게 내 눈앞에서 이런 허망한 일이 벌어질 수는 없어.”

도고 제독의 독백과 달리 또 다른 전함인 하츠세初瀬가 대양 함대의 함포 집중 포격에 시키시마와 같이 삽시간에 침몰해 버리자 기함 미카사에 있는 지휘관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드디어 그들에게 누구라 할 것 없이 공포심이 심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박충식은 일본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의 지휘부가 정적에 휩싸여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장면을 보며 그들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드디어 공포심이 저들에게 심어지기 시작했군. 이제 다음 단계 작전을 벌일 때가 되었다. 참모장, 회전날틀을 띄워라.”

박충식의 지시가 떨어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라도함에서 1대와 각 전함에서도 6대의 회전날틀이 사방에서 떠올랐다. 

타! 타! 타! 타! 타!

공포심을 조장시키기 위해 사방에서 떠오르도록 연출된 회전날틀이 자신들 함대로 다가오는 장면은 일본군에 엄청난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하늘에 떠서 날아오는 회전날틀을 보고는 연합함대 승조원들은 모두가 경악했다. 일부 수병들은 공포심에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거나 또 다른 일부는 공포심을 이기지 못해 울부짖기까지 할 정도로 연합함대 승조원 중 누구도 공포심에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도고 제독도 경악해서 소리쳤다.

“하늘에 떠 있는 저건 또 뭔가?”

가토 참모장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소관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입니까?”

도고 제독은 불충스럽게 오히려 거꾸로 물어오는 가토 참모장의 말투도 지적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하였다.

그때 아키야마 중좌가 보고를 했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발명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저것은 그 비행기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비행기?”

“그렇습니다.”

가토 참모장이 아키야마의 말에 강하게 질책했다.

“아키야마 중좌 말을 삼가라. 미국의 비행기는 이제 겨우 몇십 미터를 날아갈 정도의 시제품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도 그것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허! 말을 삼가래도.”

이들이 이렇게 중언부언하고 있을 때 6대의 회전날틀은 각자 자신들의 목표물을 찾아 날아갔다. 

그중 한 대가 미카사의 바로 위로 날아왔다.

타! 타! 타! 타! 타!

“으웃!”

처음으로 듣는 프로펠러소리와 함께 기괴한 형상의 회전날틀이 자신의 위로 다가오자 도고 제독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분명 회전날틀이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왔다는 생각에 몸을 꼿꼿하게 세웠고 그러한 모습을 내려다보던 최경석 공군소장은 내심 최고지휘관 답다는 생각을 하며 통역을 위해 함께 동승한 유길준에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유길준은 처음 탄 회전날틀로 몸을 부들거리고 발바닥이 저리는 것은 물론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기절할 정도로 긴장되고 무서웠으나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 줄 알고 있던 유길준은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견딜 만합니다.”

“저 밑에 보이는 턱수염을 기른 사람이 도고 제독입니다. 보이십니까?”

유길준이 밑을 내려다보자 미카사의 갑판에 수십 명의 일본제국군복을 입은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턱수염을 기르고 몸집이 큰 지휘관이 온 가슴에 훈장을 걸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예, 보입니다.”

“시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유길준은 최경석이 건네주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후~.”

깊은 숨을 한번 내쉰 유길준은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길준이 이렇게 최경석과 동승하게 된 까닭은 삼족오군 중 의외로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에서 일본어 붐이 일어난 적도 있었지만 2030년 통일을 앞둔 한국은 일본의 계속된 통일 방해로 반일 감정이 팽배했다. 그 여파로 일부 외국어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 대학에서 일본어과가 폐지될 정도로 일본에 대해 아주 적대적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가 그대로 적용되어 삼족오군에서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유길준이 잠시 목을 가다듬은 후 수화기를 켰다.

“도고 제독과 일본 연합함대 지휘관들은 들으라.”

하늘에서 갑자기 확성기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도고 제독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도고 제독은 순간적으로 상황파악을 했다.

“아니? 저들이 어떻게 나를 아는 것이지? 그렇다면 저들이 지금까지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우리를 계획적으로 공격한 것이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유길준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는 대한제국 관리인 유길준이라 한다.”

순간 미카사에서 난리가 났다.

“뭐라고! 대한제국!”

도고 제독이 놀라서 소리치자 가토 참모장이 말을 정정하며 거들었다.

“각하, 조센징이라고 합니다.”

“아니! 곧 있으면 우리 식민지가 될 조선에서 어떻게 저런 것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이지?”

가토 참모장이 바로 부정했다.

“말도 되지가 않습니다. 미개한 조선이 어떻게 저런 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건 아마도 저들이 조선인을 가장하여 우리들을 기만하려는 술책 같습니다.”

가토 참모장의 말에 도고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술책? 그럼 자네는 저들이 누군지 알겠는가?”

“그건 아직 소관도 모릅니다만 조선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가토 참모장의 말에 도고 제독도 인정은 하였다.

“본관도 저들이 조선인이 아니라는 자네 말이 옳다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저들은 누구인가.”

이들이 이렇게 대한제국이 아니라고 확신할 정도로 1905년의 대한제국 상황은 아주 절망적이었다.

얼마 전 군대 축소로 남은 병력이 사단 병력보다 적은 겨우 8,000명에 불과했고 해군조차 없는, 그야말로 힘없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유길준은 밑에서 하늘을 보고 손짓을 하며 웅성거리는 도고 제독과 그의 부하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유길준의 처지가 바로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면 죽는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유길준은 그대로 호통을 내갈겼다.

“모두 조용하라!”

유길준이 냉정하게 소리치자 미카사는 순간 조용해졌다. 하지만 유길준이 대한제국을 거론하고 나자 일본군들은 처음의 공포심과는 달리 반발심이 생겨났다.

탕!

그 여파로 누군가 수리온을 향해 총을 쐈다.

팅!

갑판에서 총이 수리온에 맞고 튀기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장착되어 있던 기관총이 무섭게 불을 뿜었다. 

두르르륵……. 퍼버버벅!

강력한 화력의 기관총은 총을 쏜 승조원은 물론 주변 승조원까지 모조리 도륙 내며 나무로 되어 있던 미카사 갑판을 뚫고 들어가서 갑판 밑에 있던 승조원들까지 모조리 절단 내 버렸다.

“으악!”

“내 다리!”

“사람 살려~~~!”

순식간에 10여 명의 사망자와 또 그보다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그들이 내뱉는 신음 소리가 갑자기 갑판에 진동하자 대한제국이란 말에 잠시 생겼던 반발심이 곧바로 수그러져 버렸다. 

유길준이 갑판의 피 터지는 상황에 놀라 최경석을 바라보자 최경석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 저놈들에게 작은 틈도 보이면 안 됩니다. 지금 밀리면 아주 큰 희생을 치를 수가 있습니다. 반드시 강력하게 밀어 붙여야 희생을 최대한 줄일 수 있습니다.”

유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화기를 들고는 아주 냉정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고 제독에게 알린다. 쓸데없는 도발하지 마라. 경고하는데 만일 한 번 더 조금 전과 같은 쓸데없는 도발을 한다면 그땐 대화고 뭐고 기함 미카사부터 먼저 수장시켜 버리겠다.”

꿀꺽.

도고 제독은 물론 기관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리온에 장착된 기관총은 그가 알던 것과는 화력이 전혀 다를 정도로 아주 강력했다.

유길준은 이때부터 최경석이 하는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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