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회: 2-15화 -->
“네놈들의 쓸데없는 반항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게 해 주겠다.”
그 순간 잠함 고선지함에서 두 발의 어뢰가 발사되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꽈광! 꽝.
발사된 어뢰는 조금 전과 같이 일본 구축함 1척을 순식간에 격침시켰다.
가토 참모장은 이빨을 악물며 보고했다.
“각하, 구축함 옴바音羽가 적에게 당했습니다.”
도고는 조금 전 기관총난사 장면을 보고도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적대 행위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도고 제독을 바라보던 최경석이 공용 주파수를 열었다.
“아무래도 도고가 쓴 맛을 봐야겠다. 5대의 수리온은 지금부터 일본 수뢰정을 모조리 격침시키도록 하라.”
타! 타! 타! 타!~…….
최경석의 명령을 받은 수리온은 순간 하늘에서 기체를 사방으로 분산되며 공중곡예를 시작했다.
“각하! 저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키야마 중좌의 보고에 도고는 수리온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쐐액~~. 쾅!
수리온은 장착된 대함 미사일로 200~300톤 크기의 수뢰정 40여 척을 마치 표적 사격 하듯 너무도 간단히 격침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쐐액~~. 쾅! …….
1대에 4발씩 장착된 대함 미사일로 20척의 수뢰정을 격침시킨 수리온은 곧이어 다시 각 함정에서 발진한 회전날틀에게 임무를 인계하였다. 두 번째 떠오른 회전날틀은 처음의 수리온과 같이 연합함대에 접근하지도 않고 이륙을 하자마자 20킬로 전방에서 그대로 대잠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한 번의 임무 교대를 거친 회전날틀은 마치 표적지 사격을 하듯 일본 수뢰정 40여 척을 불과 20여 분 만에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모조리 전멸시켜 버렸다.
이제 바다에 떠 있는 일본 연합함대는 이제 기함을 포함해 전함 2척과 순양함 4척 그리고 구축함 10척뿐이었다.
물론 항복한 러시아 함대 7척이 있었지만 당장은 무용지물이었다. 러시아 함대는 이미 무장해제가 되었고 대부분의 러시아 장교를 부상자들과 함께 수송선으로 열도로 이송시킨 후라 남아 있는 승조원은 배를 움직일 필수 요원들뿐이었다.
불과 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연합함대 전력의 거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도고 제독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지만 40여 척의 수뢰정이 깨져 나가자 그제야 대양 함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놈들 이제 보니 나, 도고에게 항복을 강요하고 있구나.’
그렇게 집작한 도고 제독에게 최경석의 말을 통역하는 유길준의 말이 하늘에서 다시 또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고 제독,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귀관의 설마 하는 의심 때문에 40척의 수뢰정을 바닷속에 수장시킨 것이다.”
부들부들.
도고 제독은 유길준의 질책에 치욕감이 들어 두 손을 쥐며 떨고만 있었다. 그러나 유길준의 말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항복하라. 남은 승조원들의 목숨을 구하려면 조금 전 러시아 함대 사령관처럼 항복하라.”
드디어 항복을 권유하는 말이 떨어졌다.
도고 제독은 추측한 항복이란 말이 들렸지만 자신이 반발하면 또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몰라 주먹만 쥐고 몸을 떨고 있을 때 유길준의 말은 계속되었다.
“항복하라. 만일 항복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분에 1척씩 남아 있는 함정이 격침될 것이다. 부디 귀중한 승조원의 목숨을 귀관의 자존심과 바꾸지 마라.”
“이이이이…….”
도고 제독이 이빨을 악물며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포위되어 있던 연합함대 함정 중 1척이 갑자기 도주를 하기 위해 기동하기 시작했다.
아키야마가 도고 제독에게 황급히 보고했다.
“각하! 구축함 니이다카新高가 포위 돌파를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기동력이 빠른 구축함 1척도 다른 방향으로 도주를 시도했다.
“각하, 시라누히不知火도 도주를 시도하려고 합니다.”
도고 제독은 포위를 풀기 위해 기동하는 2척의 구축함을 내심 성공하기를 기원했고 이런 기원은 모든 승조원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연합함대 승조원들의 기원은 그저 희망에 불과했다.
꽝! 꽝!
2척의 구축함의 도주는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대양 함대가 쏜 포탄에 맞아 그대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전함 2척, 순양함 4척, 구축함 8척.
마라도함의 상황판에는 연합함대 전함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의친왕이 박충식에게 물었다.
“사령관 각하, 도고 제독이 언제쯤 항복할 것 같습니까?”
“아마 곧 항복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의친왕의 고개가 돌아갔다.
“절대 쉽게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추측하는 까닭이 있으십니까?”
“일본군 지휘관들은 막부 시대의 전통을 이어서인지 병사들 목숨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건 도고 제독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사무라이 출신 도고가 항복을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김종석도 의친왕의 설명에 크게 공감했다.
“전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앞으로 벌일 육상 전투를 위해 일본군에 대해 제주에 있는 일본 포로를 심문 자료는 물론 각종 자료들을 분석, 파악해 봤는데 저들은 지금도 전국시대와 다름없이 병사들을 소모품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종석과 의친왕의 설명을 들은 박충식의 목소리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설명을 들으니 도고 제독이 쉽게 손을 들지 않겠군.”
그때 이현호 실장이 끼어들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도고는 분명 항복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가 있는가?”
“우리 함대 전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6척입니다. 더구나 잠함은 아직 발견되지도 않았으니 도고는 분명 우리 전력을 6척이 전부라 오판할 것입니다. 이는 도고 제독 스스로에게 다음을 노릴 수 있다는 명분을 제공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박충식은 이현호의 말이 바로 이해되었지만 의친왕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자세하게 설명해 보시오. 과인은 이 실장의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소이다.”
“도고는 지금 항복 이외에는 별다른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분 없는 항복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란 생각을 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골수에 박혀 있는 도고 제독은 할복을 하면 했지 항복은 절대 생각하지도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도고가 어째서 항복을 한다는 것이오?”
“지금의 대한제국으로는 일본 승조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함대를 운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고는 이러한 대한제국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항복을 해도 대한제국이라면 함대를 쉽게 운용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을 한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포탄을 아끼기 위해 단발포격을 계속하고 있어서 저들은 우리의 전력을 오판할 것이 분명할 것이고 더구나 함대는 6척 뿐입니다. 분명 도고는 처음 보는 회전날틀만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다면 충분히 다음을 노려볼만 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입니다.”
박충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대한제국은 양무함도 운용 자금이 없어 운항을 못 하고 거의 세워 두고 있었으니 그런 생각은 더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말씀대로 도고 제독은 분명 그렇게 자의적 판단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현호의 이러한 판단은 구축함이 10분 사이 1척 더 격침되고 나서야 현실화되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도고 제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항복한다!”
도고 제독의 입에서 항복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 말에 사토 참모장이 펄쩍 뛰며 반대했다.
“각하! 항복은 절대 안 됩니다. 차라라 할복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항복은 대일본제국 해군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고 제독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할복하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만일 우리 전함이 모조리 격침된다면 그게 더 큰일이다. 남아 있는 연합함대 전함이 수장된다면 나 하나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앞날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선은 개조한 전함 1척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리고 적함이 6척에 불과하니 비록 일시 항복은 하지만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 한 저들은 쉽게 함대를 운용할 수 없을 것이다.”
도고 제독이 이현호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