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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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는 아직 20만이 넘는 대군이 주둔해 있다. 비록 우리가 이번에 일시 항복한다고 하더라도 육상 병력이 거의 없는 조선으로서는 만주 황군을 절대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치욕을 참고 남은 전력을 넘겨준 후 육군이 승리한 후 다시 되찾도록 하자. 사무라이로서의 할복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

“크흑!”

사토는 참모장으로서 도고 제독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통한의 눈물을 흘렸고 다른 참모들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도고의 불호령이 그들을 울고만 있게 하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위대한 황군이 잠시 몸을 굽힌다고 해도 의연하게 대처해서 대일본제국 해군의 의기를 높이도록 하라.”

“예! 각하.”

잠시 후 기함 미카사에서 항복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갔고 기함에서 항복하라는 수기신호를 받은 다른 함정들의 마스트에도 항복 깃발이 전부 올라갔다.

이현호 실장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드디어 미카사에 항복기가 올랐습니다.”

이현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황실은 엄청난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이겼다!”

“대한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50명의 지사들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눈물 범벅으로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고 의친왕 또한 체면도 잊은 채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마라도함 승조원들도 이들처럼 만세를 부를 정도로 흥분된 것은 아니었지만 승리에 대한 기쁨은 당연히 깊고 컸다.

“비록 적이 항복했다고는 해도 아직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니 잠시 진정해 주십시오.”

박충식의 말 한마디가 상황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곧바로 송의식을 호출했다.

“송 참모장, 적 함대 무장해제를 실시하게.”

“도고 제독을 모셔 오도록 이현호 소좌를 보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박충식이 수화기를 그대로 들고 옆에 있던 이현호에게 지시했다.

“이 실장, 자네가 유길준 선생과 함께 가서 도고 제독을 모셔오게. 비록 적장이기는 하지만 정중히 처신하도록 하고.”

“조심해서 모셔 오겠습니다.”

잠시 후 마라도함의 선미가 열리면서 공기 부양 상륙정(LCAC) 2척이 빠져나왔다. 마라도함을 빠져나온 상륙정은 40노트의 빠른 속도로 미카사와 동급 전함 아사히로 달려갔다.

가토 참모장은 빠르게 달려오는 상륙정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각하, 적이 보유한 함정의 속도가 엄청납니다.”

“그렇군. 그런데 어떻게 함미에서 함정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지?”

“소관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흠!”도고 제독이 침중한 신음을 토해 내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상륙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아키야마 중좌의 목소리가 들렸다.

“각하, 욱일승천기(일본 해군기)를 하기下旗하였습니다.”

도고 제독이 뒤를 돌아보자 아키야마 중좌가 일본 해군기를 격식대로 접어서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자네가 보관했다가 저들에게 전달해 주게.”

“예, 각하.”

잠시 후 공기 부양 상륙정이 도착했고 이현호가 이미 내려진 철제사다리로 미카사의 갑판에 올랐다.

하얀 해군제복을 갖춰 입은 이현호가 기다리고 있던 도고 제독에게 다가섰다.

이현호는 도고 제독의 키가 겨우 160센티가 넘을 정도라는 것에 내심 놀랐다.

‘도고 제독 사진의 반신상을 보면 아주 커 보이던데 직접 보니 이거 완전 사기잖아.’

그러면서 뒤에 도열해 있는 일본 해군 장교들을 훑어보자 그들도 대부분 도고 제독과 비슷했다.

‘키가 작아 왜놈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군.’

이현호는 머릿속의 생각을 지우려는 듯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도고 앞에 서서는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제국 해군 소좌 이현호라고 합니다.”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하는 이현호와 뒤에서 호위하고 있는 특수부대원들의 커다란 몸집은 도고 제독이 위압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반갑네. 본관은 대일본제국 해군 중장 도고 헤이하치로라고 하네.”

“제독님을 우리 함대 기함으로 모시겠습니다.”

“부탁하네.”

도고 제독은 그러면서 이현호에게 고개를 숙였고 뒤에 있던 지휘부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수십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이현호는 도고 제독과 일본군 지휘부에게 당당했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이현호가 몸을 반으로 돌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나자 도고 제독과 함대 지휘부는 물론 미카사에 승선한 장교 전원이 그 뒤를 따라 사다리를 내려갔다. 

유길준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역하면서 너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본 해군의 중장이 일개 소좌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그동안 일본에 대한 부러움과 경외감을 씻어 버리기 충분했다.

잠시 후 도고 제독 일행과 전함 아사히朝日의 함장 일행은 마라도함의 갑판에 도열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박충식과 삼족오군 지휘부 그리고 의친왕이 대한제국 부장 군복을 입고 참석했다.

50명의 지사들은 흥분하여 혹시 불상사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상황실에 그대로 머무르게 조치하였다.

입을 먼저 연 것은 박충식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박충식이 먼저 인사를 하자 도고 제독은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본관은 대일본제국 해군 중장 도고 헤이하치로입니다.”

“대한제국 대양 함대 사령관 박충식 대장입니다.”

“1905년 5월 28일 지금 시간부로 대일본제국 연합함대는 귀 함대에 항복을 청원합니다.”

“큰 결심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항복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도고 제독이 자신의 옆구리에 차고 있던 지휘도를 풀어 항복의 의미로 두 손으로 박충식에게 내밀었다. 

“항복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천황 폐하께서 본관에게 직접하사하신 연합함대 지휘도입니다.”

“잠시 맡아 두겠습니다.”

박충식이 두 손으로 연합함대 지휘도를 받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키야마 중좌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대일본제국 해군의 욱일승천기입니다.”

그러자 이현호 소좌가 앞으로 나서서 두 손으로 욱일승천기를 받았다. 이어서 아키야마 중좌는 러시아 함대 사령관의 지휘도와 함께 러시아 해군기도 정중히 건넸다. 

두 함대지휘관의 지휘도와 군기를 받는 것으로 형식상의 항복 의식이 끝났다. 

항복 의식이 끝났어도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에 항복을 받은 자리에서 만세를 불렀던 것과는 달리 대양 함대는 상대에 대한 예우를 생각해 전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역을 담당하고 있던 유길준은 벌어진 입을 주체하지 못하고 싱글벙글거렸고 그런 유길준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고 제독을 모셔라.”

박충식의 말에 이현호가 도고 제독 앞으로 나섰다.

“이리로 오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부탁하네.”

도고 제독은 비록 항복은 했지만 끝까지 기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이현호의 뒤를 따랐고 그런 제독의 뒤로 두 전함의 지휘관들도 나름대로 절도 있는 자세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이렇게 항복 의식이 진행되는 사이 일본 함대의 각 함정으로 대양 함대에서 내려진 고속정들이 빠르게 왕래하면서 함정 지휘관들을 모두 하선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하선시킨 일본 함정 지휘관들은 미리 원양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송선을 불러 옮겨 태웠다.

마라도함을 내려온 도고 일행도 이 수송선으로 옮겨 탔다.

대양 함대가 일본 함정은 물론 러시아 함대 장악을 모두 끝내자 해가 저물어 버렸다. 박충식의 지시로 그 자리에서 하루를 머문 대양 함대가 전장을 벗어난 것은 다음 날 새벽 여명이 밝으면서였다. 

이날 새벽 여명은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전 함대 출발하라!”

박충식의 지시로 대양 함대가 제주를 향해 기동을 시작했다.

“아! 참으로 대단합니다.”

의친왕은 뒤를 따라오는 나포함정을 바라보며 거듭해서 감탄사를 남발했다. 박충식도 옆에서 감탄사를 날리는 의친왕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나포한 함정은 그야말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1만 5,000톤 급의 일본 전함 미카사를 아사히, 그리고 러시아 전함 니콜라이1세와 오렐 등 4척의 전함을 비롯하여 최신예 순양함인 카스가와 닛신日新을 포함한 7척의 순양함, 그리고 구축함 네프를 포함한 8척의 구축함과 1척의 병원선, 거기다 이미 포획한 러시아 보급함 등 보조선 10척까지 포함하면 일본이 그토록 자랑하던 연합함대 전력과 거의 맞먹을 정도의 전력인 것이다.

차준혁의 제안으로 입안된 전함 나포 작전은 이렇게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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