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 회: 2-17화 결전 준비決戰準備 --> (52/268)

<-- 52 회: 2-17화 결전 준비決戰準備 -->

1905년 6월 1일 일본의 전시 작전 사령부인 대본영大本營 회의실에서는 명치일왕이 주재하는 어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연합함대가 연락 불통이 되었다는 보고에 불같이 노한 명치일왕이 탁자를 두드렸다.

쾅! 쾅!

명치일왕이 대본영 막료장인 참모총장 야마가타 아리모토를 강하게 질책했다. 

“참모총장, 승전보를 알리고 사흘이 지났는데도 연합함대행적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천왕의 질책에 야마가타 아리모토 원수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해군 대신이 마지막 교신 장소인 울릉도 인근 해상으로 직접 확인하러 나갔으니 곧 소식이 올 것입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폐하.”

“울릉도와 다케시마에 관측 망루 설치되었다고 하던데 거기에서 들어온 보고는 없소?”

“갑자기 통신 교란으로 추측되는 공격을 받아 28일과 29일 오전까지 무선통신이 먹통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만 별다른 이상이 관측된 것은 없다는 전문이 보고되었을 뿐입니다.”

명치일왕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 대장.”

해군 대장이며 청일전쟁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이토 스케유키는 해군 막료장인 대본영 군령부총장을 맡고 있었다.

“예, 폐하.”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오?”

“송구하오나 현재 상태로는 소장도 원인을 알 수 없사옵니다.”

“1~2척도 아니고 무려 60척이 넘는 대함대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니 어디로 증발하기라도 했다는 것이오?”

거듭되는 질책에도 이토 대장은 그저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야마가타 각하의 말씀대로 지금 해군 대신께서 직접 현지로 급파되었으니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잠시 기다리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쾅! 쾅! 쾅!

거듭되는 변명에 명치일왕은 다시 또 탁자를 두드렸다.

“지금 온 나라가 러시아 함대에게 승전했다고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데 정작 주인공인 연합함대는 연락이 두절되었다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요. 그런데도 해군의 최고 책임자인 이토 대장은 무작정 기다려 보라고만 하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그때 이토 히로부미가 나섰다.

“폐하,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소인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아! 이토 후작.”

추밀원 의장이며 몇 번의 총리를 역임하여 그 누구보다 일본 정가에 영향력이 큰 이토 히로부미가 나서자 명치일왕은 급격히 흥분되어 있던 심정을 가라앉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우리 대일본제국 최고의 무장입니다. 설사 며칠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별일은 없을 것이겠지만 세상의 일은 알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만일의 일을 미리 대비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만일의 일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이토 히로부미는 짐짓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의 생각으로는 연합함대가 지금까지 연락 두절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명치일왕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변고라니?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다는 승전보가 오지 않았소? 더구나 사세보에는 러시아 함대 제독을 비롯한 수많은 포로들도 후송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변고가 생겼다는 말이오?”

“일본해는 비록 넓지만 사흘이라는 시간이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연합함대가 본토로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이토 대장,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각하.”

내각 총리인 가쓰라 다로가 나섰다.

“이토 후작께서는 우리 연합함대에 변고가 생기리라도 했다는 말씀입니까?”

“본직도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만일의 일에 대비하자는 것이오. 그리고 본직의 솔직한 생각은 아무래도 변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소.”

육군 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 대장이 물었다.

“무슨 혜안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우리 일본제국의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알고 계실 것이오. 이러한 때 만일 연합함대에 변고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고 또 그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문제가 야기되지 않겠소?”

이토 히로부미의 말을 야마가타 아리모토 원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거들고 나섰다.

“이토 후작의 말씀이 맞소. 지금까지 우리 제국은 영국과 미국이 국채를 매입해 주어서 이번 전쟁의 전비를 조달해 오고 있었지만 과도한 국채 발행을 우려한 양국이 더 이상 국채매입을 해 주지 않고 있어 지금 부족한 전비 문제로 만주에 출전해 있는 육군의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소. 이러한 때 연합함대에 변고가 발생했다면 이는 우리 제국으로서는 치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어떻게 하든 연합함대 문제는 절대 비밀에 붙여야 하오.”

육군 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도 나섰다.

“그렇습니다. 만일 연합함대에 변고가 발생했다면 만주 봉천에 주둔해 있는 육군의 안위마저 위태로워집니다.”

그때 명치일왕이 모두에게 질문했다.

“러시아 함대는 이미 연합함대가 격퇴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함대가 연합함대를 공격했다는 것이오. 조선이오?”

명치일왕의 질문에 군령부총장 이토 스케유키 대장이 즉각 대답했다.

“조선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조선의 군함은 겨우 2척뿐인데 그것도 이번 전쟁을 위해 우리가 징발해 놓고 있어 조선의 군함은 단 1척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에 파견 나와 있는 서양 함대라는 말이요?”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상해를 비롯한 중국의 각 개항지에는 우리의 밀정이 전부 파견 나가 있어 서양 함대의 동태를 모조리 감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양 함대의 이상 징후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명치일왕은 다시 흥분하며 탁자를 내리쳤다.

쾅! 쾅!

“이것도 저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그럼 귀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본래 대본영의 어전회의 때 일왕의 참석은 거의 형식에 불과했다. 물론 대본영의 모든 명령이 봉칙명령奉勅命令이라는 일왕의 제가를 받아 육군의 대육령大陸令과 해군의 대해령大海令으로 전군에 하달된다고는 하지만 이는 형식적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대본영 명령은 육군과 해군의 대본영 막료장과 총리대신을 비롯한 육군과 해군의 주요 지휘관이 미리 결정해 놓은 것을 추인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왕의 지위였다.

그렇게 형식적인 참석을 하던 명치일왕이 탁자까지 두드리며 자신들을 질책하고 나서자 어전회의 참석자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죽을 맛이었다.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일왕이 직접 통치를 하게 되었지만 일본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군부 출신 각료들과 어전회의에 참석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처음으로 천왕에게 강한 질책을 받자 모두들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울릉도 근방의 전장으로 급파된 해군 대신이 보내 온 긴급 전문이었다. 

회의 도중 전문을 보고받은 명치일왕은 얼굴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놀라며 되물었다.

“정말 바다에 우리 해군 승조원의 시체가 무수히 떠 있단 말이오?”

보고를 하던 이토 스케유키 군령부총장은 들고 있는 전문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상당한 숫자의 연합함대 승조원 시체와 함께 우리 함정의 파편으로 보이는 각종 부유물이 바다에 무수히 떠다니고 있다는 전문입니다.”

“러시아 함대와의 교전에서는 아군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 연합함대가 전부 수장되었다는 말이오?”

이토 스케유키 군령 부장이 억지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해상에 떠 있는 수많은 승조원들과 부유물로 봐서 어떤 상황도 전혀 배재할 수도 없습니다.”

명치일왕은 망연자실했다.

“승전보가 날아온 지 불과 사흘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는 듯하자 어전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침묵에 잠겨 있던 참석자 중 군 출신이 아니어서 거리가 있던 이토 히로부미 추밀원 의장이 먼저 입을 열어 일왕에게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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