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 회: 2-18화 --> (53/268)

<-- 53 회: 2-18화 -->

“폐하, 연합함대의 수색은 계속하도록 하고 일단 지금의 상황을 절대 비밀에 붙여야 할 것입니다. 연합함대 실종 문제가 자칫 외부로 새어나간다면 민심이 엄청나게 동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지 않겠소.”

“그래도 반드시 비밀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다행히 러시아 포로들로 인해 국민들 시선을 돌릴 수가 있으니 모든 신문들을 철저히 검열해서 승전 분위기를 이어 나가도록 하면서 절대 비밀로 해야 합니다.”

육군 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도 나섰다.

“대외적인 시선을 가리기 위해 연합함대를 만주로 진격한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 다시 황해로 함대를 급파한다는 폐하의 봉칙 명령을 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야마가타 아리모토가 데라우치의 제안에 찬성했다.

“그게 좋겠소. 이토 군령 부장.”

“예, 원수 각하.”

“일단 귀관이 사세보로 내려가 해군을 대표해 대대적인 승전 행사를 주최하도록 하는 게 좋겠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양의 시선도 돌릴 수 있겠습니다. 제가 회의가 끝나고 바로 내려가 대대적인 승전 행사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토 스케유키 대장이 대답하자 이토 히로부미가 명치일왕을 바라보았고 일왕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짐이 칙령을 내리겠소.”

이토 히로부미가 고개를 숙였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명치일왕의 말을 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자 어전회의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후 대책 마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본영이 이렇게 연합함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그와 반대로 제주도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대양 함대가 연합함대와 러시아 함대를 나포해 다시 제주항에 도착한 것은 제주항을 출발한 지 사흘이 지난 31일이었다. 제주항은 이미 나포한 10척의 러시아 보급선에 선적되어 있는 화물을 하역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하역에는 인근 공사장에 투입되어 있던 일본인 포로들은 물론 많은 제주도 주민들도 일당을 받고 투입되어 있었다.

이렇게 북적이고 있는 제주항으로 20척이나 되는 엄청난 적함을 나포하여 돌아온 대양 함대는 제주 주민들의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입항했다. 

도고 제독과 연합함대 6,000여 명의 일본군 포로와 4,000여 명의 러시아 포로는 수용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비워진 러시아 수송선에 당분간 수용되었다. 

제주 주민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제주항에 입항한 박충식에게 기분 좋은 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박충식은 민간 수송선에 하역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철제 컨테이너에 가득 들어 있는 금괴와 금화 등을 보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김 장군, 돈스코이에 있던 금이 200여 톤이라고 하더니 이렇게나 많은가?”

김종석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처음 예상했던 양보다 많은 거의 250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참으로 대단한 양이로군.”

“러시아 차르가 태평양 함대는 물론 극동군을 이 돈으로 새로 재건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합니다.”

“그랬을 것 같네. 이 정도 군자금이라면 만주에 진주해 있는 러시아 극동군의 전비 충당은 물론이고, 지난해 여순항에서 무너진 태평양 제1함대를 완전히 재건하고도 남겠어.”

쫘르르.

박충식은 금화를 한 움큼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소리를 들으며 이현호 비서실장에게 질문했다.

“이 실장, 차 비서는 언제 귀국한다고 하던가?”

“내일 오전 귀국한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때 김종석이 웃으며 물었다.

“의친왕의 포섭 작전도 그렇고 상해에서는 물론 이번에 적함나포 작전까지 차 비서가 입안한 계획들이 모두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뭔가 포상을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종석의 제안에 박충식도 동의했다.

“그렇지 지금까지 일은 차 비서가 일등 공신이지. 그래 포상을 한다면 뭐가 좋을까?”

그러자 이현호 실장이 나섰다.

“아직 개인에게 직접 포상한다는 것은 이르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포상보다는 차 비서를 전역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역을 시켜?”

“그렇습니다. 앞으로 차 비서가 많은 일을 하려면 앞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계속 사병으로 군에 두기는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 형평성도 있잖은가.”

“우리들이 본래 세운 계획은 일반 병사들은 이번 수복을 마치고 난 후 전역을 원한다면 전역 후 일정 기간 정부 업무에 투입시키거나 군에 남겠다면 정식 사관 교육을 시켜 임관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 비서의 전역이 날짜가 아직 조금 남아 있기는 하나 이번일의 포상 차원에서 조기 전역시킨 후 정부 관리로 임용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알겠네. 일단 차 비서가 귀국하면 본인 의견을 물어본 후 결정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김 장군 포로들 수용 시설은 언제쯤 만들어지겠나?”

“갑자기 많은 포로라 앞으로 한 보름 정도는 시간을 주셔야겠습니다.” 

“아무리 포로라 해도 열악한 수송선에 보름 동안 수용하기는 문제가 있네. 포로들을 투입해서라도 시간을 최대한 당기도록 하게.”

“공병단에 지시해 놓겠습니다.” 

차준혁이 제주로 돌아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차준혁은 제주항 앞바다에 떠 있는 30척의 나포한 함정들을 보자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대단하구나.”

박요한 상위가 크게 웃으며 차준혁을 추켜세웠다.

“하하! 차 비서의 계획이 완전 대성공이구나. 이건 양군의 이리로 함대가 옮겨 온 것이나 다름없어. 차 비서, 대단해.”

“저야 아이디어를 낸 것뿐이지 뭐 한 게 있습니까?”

“한 게 없다니. 자네의 아이디어가 저런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한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저 함대를 돈을 주고 사들였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어갔겠어.”

박요한의 말대로 함대를 구입하거나 건조하는 것은 그야말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 자금이 오죽 많이 들어갔으면 러시아 차르가 250톤이나 되는 막대한 금을 실어 보낼 정도였다.

제주 관아 연희각延曦閣에서의 차준혁의 귀국 보고에는 의친왕은 물론 삼족오군 최고 지휘관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충! 성! 병장 차준혁은 상해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였음을 신고합니다. 충성.”

박충식이 상해에서의 협상을 무사히 마치고 온 차준혁에게 악수를 건네며 노고를 치하했다.

“차 비서,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귀국 보고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과도 모두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는 차준혁에게 김종석이 먼저 칭찬을 했다. 

“독일과의 협상이 예상보다 잘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차 비서 고생했다.”

“독일 영사 바이페르트가 한국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어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친왕이 아는 채를 하고 나섰다.

“바이페르트가 한성 주재 독일 영사로 있을 때 우리 대한제국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번에는 박충식이 차준혁에게 질문했다.

“차 비서, 상해에서는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에 승전했다고 알려져 있는가?”

“그렇습니다. 그 일로 상해 일본 조계는 며칠 동안 대규모축재를 벌이고 있습니다.”

“흠! 그렇다면 일본이 연합함대 문제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는가 보군.”

“귀국하기 직전 마쓰시마 상해 주둔 사령관을 만나 살짝 떠봤는데 그는 연합함대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겠지. 아직은 대본영 지휘부가 일개 대좌에게까지 극비상황을 알려 줄 수는 없겠지.”

박충식이 대한제국 육군 부장 군복을 입고 있는 차준혁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대한제국 군복이 잘 어울리는 것을 보니 자네 군대가 체질인가 보네.”

차준혁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럼 군대가 싫은가?”

박충식의 섭섭한 듯 질문하자 차준혁이 순간 진땀이 나며 변명 같은 대답을 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차준혁이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그렇다고 군에 대해 크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