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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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식이 그런 차준혁의 모습에 웃음 지었다.

“하하! 우리 군은 이번 작전에 큰 공을 세운 자네에게 포상으로 전역을 시켜 주려고 하네.”

“예? 전역이요?”

“그렇다네.”

“다른 장병들도 있는데 저 혼자 전역하는 것은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군의 현재 인원 구성이 거의 간부들이고 사병 비율이 20%가 조금 넘는 수준이네. 어차피 사병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 전역을 신청하면 모두 전역을 시키는 것이 우리 계획이라네. 물론 일정 기간 정부 관리로 재직해야겠지만 자네의 전역은 오히려 사병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지휘부의 판단이네.”

박충식의 설명에 차준혁이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포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허허! 이거 참, 전역을 하란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바로 승낙을 해?”

“그런 것은 아니고…….”

차준혁이 우물쭈물 거리자 강명철이 웃으며 차준혁의 등을 쳤다.

탁!

“이보라우, 사내가 뭘 그렇게 우물쭈물 거리네?”

“죄송합니다.”

“하! 하! 하!”

얼굴까지 붉히며 고개 숙이는 차준혁을 보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역식은 그 자리에서 진행되었고 박충식에게 신고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전역식을 마친 차준혁은 비서실장인 이현호 소좌와 함께 연희각을 나왔다.

이현호는 차준혁을 동생을 보듯 따듯한 심정으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상해에서 고생 많았지?”

“고생은요.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상해에서 밤의 황태자가 되었었다며?”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자네가 상해에서 날렸다고 박 상위가 벌써 알려 왔어.”

“그렇습니까?”

“그래.”

“하긴, 저뿐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 중 누구라도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는 대로만 서양 여자들에게 대한다면 누구라도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몸이면 몸, 매너면 매너, 우리가 지금 시대 서양인들과 비교해 뭐 빠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유럽에 직접 가면 모르겠지만 상해에 있는 서양 사람들 대부분이 상인 아니면 거친 군인들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부각되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귀족을 높게 여기는 그들에게 대한제국의 친왕이라는 존재감도 크게 먹고 들어갔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겠어. 지금 시대 귀족은 한끗발 하잖아.”

이현호와 그렇게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관아를 나온 차준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한 달 겨우 넘는 기간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현호가 웃으며 설명했다.

“우리 군의 공병단 능력은 이전부터 최고로 알아주잖아. 박연수 공병단장께서 이번 기회에 제주도를 완전히 바꿔 놓겠다고 연일 밤을 새우신다는 말을 들었어.”

“그랬군요.”

차준혁이 놀랄 정도로 불과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제주도는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에 없던 여러 시설들이 몇 개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정도의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변화는 사람들이었다.

이전에 일본인들과 탐관오리들에게 핍박받으면서 늘 주눅 들어 있던 제주 주민들은 삼족오군이 실시하는 영상 교육과 의식 개혁 운동으로 자긍심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진화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제주대대(이전의 제주 진위대대)였다. 한 달 동안 가혹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제주대대는 그동안 완전히 군기가 들어 이제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강군으로 변신에 가까울 정도로 변화되어 있었다.

차준혁은 한라산으로의 산악 행군을 위해 완전군장을 한 채 두 줄로 질서 정연하게 행군하고 있는 제주대대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저 병력이 정말 제주 진위대대 맞습니까? 정말 한눈에 봐도 달라진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한 달 만에 저렇게 눈빛까지 변할 수가 있는 겁니까?”

“교관들의 말로는 대한제국군의 군기가 처음부터 완전 오합지졸은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거기다 신분 상승의 기대감이 군기 상승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징집은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향반들 중 일부가 징병을 거부하는 바람에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크게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 일반 양민들은 군필과 함께 군포는 물론 군역이 완전 면제된다는 말에 지원자가 오히려 너무 많아 이들을 추려 내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하더군.”

“일단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현상이군요.”

“그렇지. 이게 다 자네가 계획한 의친왕을 전면에 내세운 계획 덕분 아니겠어?”

“그나저나 본토에서는 반응이 없습니까?”

“이상하게도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아마 러시아와의 전쟁 때문에 제주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나 봅니다.”

이현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시간을 벌 수 있어 다행이지만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현상이야. 어떻게 된 것이 제주도 같은 큰 지역이 연락 두절이 되었어도 누구하나 제대로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니 참 의외야.”

“훗날을 위해 큰 불상사 없이 시간을 벌었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래야겠지.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지방행정이 엉망이라니 정말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온 것 아니겠습니까?”

차준혁의 위로에도 이현호의 안색은 별로 풀리지 않았다.

“걱정 그만하시고 실장님, 타국에서 고생했다고 위로주 한잔 사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차준혁의 말에 이현호는 그제야 안색이 풀렸다.

“그래, 한잔하러 가자. 그렇지 않아도 차조로 빚은 제주 오메기술이 참 좋더라.”

“실장님이 내시는 것입니다.”

“하하! 그래, 알았어.”

두 사람은 그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관아 앞에 있는 주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후 의친왕이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 제주를 출발했다. 의친왕 귀성 일행은 차준혁을 비롯해 별도의 임무를 맡은 다섯 명이 더 추가되었다.

일본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이번에는 중국 국적으로 위장한 탐라호 선상에서 의친왕이 별도로 끌려오는 배 1척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배가 이번에 나포해 온 러시아 전함인가?”

“그렇습니다. 필리핀으로 도주하던 러시아 전함을 추적하여 이번에 나포해 온 순양함으로, 7,000톤급의 오로라입니다.”

“도주한 함정 3척 중 2척은 놓쳤다고 하던데 다른 문제는 없겠는가?”

“도주하던 러시아 각 전함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우리 전력이 노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쉽군. 2척 다 나포해 왔으면 좋았을걸.”

의친왕이 입맛까지 다시며 아쉬워하자 차준혁이 웃으며 설명했다.

“도주한 2척은 전함의 피해 상황이 아주 극심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2척을 놓친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분석입니다.” 

“놓친 것이 유리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일본은 지금 각국과의 역학 관계 때문에 연합함대를 드러내 놓고 공공연하게 수색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본토 수복이란 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가 연합함대를 나포했다는 것이 최대한 늦게 알려지는 것이 우리에게도 유리하다는 판단입니다.”

“그건 왜 그런가?”

“연합함대가 우리에게 나포된 상황을 일본이 알게 된다면 일본은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최대한 서두르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과인이 듣기로 양국은 종전을 위해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던데 그게 아닌가?”

“시기가 문제입니다. 우리들 때문에 양국이 종전을 하게 되면 분명 일본은 만주 주둔군을 한반도로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20만이 넘는 일본군과 우리 땅에서 싸워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지금 당장은 일본에게는 만주도 중요하지만 대한제국이 더 중요할 테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 일본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국민들에게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히려고 할 것입니다. 또 설사 우리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잿더미가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흐음~~~!”

“그러기 때문에 도주한 2척의 러시아 전함이 필리핀에 도착해 연합함대가 러시아 함대에 승전했다는 것이 다른 나라에 알린다면 우리가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의친왕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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